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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교미술

도교미술 道敎美術 Taoistic Art(영)

도교의 종교 활동 혹은 종교 철학을 조형화한 회화, 글씨, 조각, 공예, 건축을 지칭한다. 도교의 성립은 후한後漢 한안 원년(漢安, 142) 장도릉張道陵(즈앙 따오릉)이 촉蜀의 곡명산鵠鳴山에서 태상노군太上老君으로부터 ‘정일명위도(正一明威道)’를 배운 뒤부터 시작된다. 태상노군은 노자老子가 종교화된 천상세계 즉 ‘태청(太淸)’에 머문다는 이른바 신선이라는 뜻이지만, 그 태상노군의 상위(上位)에 노자가 설한 도(道)의 진리, 그 자체를 신격화한 ‘상청천(上淸天)’의 태상도군太上道君이 가미된 것이다.
6세기경에는 중국 불교의 미륵신앙의 영향을 받아 천상세계의 최고위(最高位)인 ‘옥청(玉淸)’에 머문다는 원시천존元始天尊(玉皇大帝)이 탄생하고, 삼청(三淸;太淸, 上淸, 玉淸)과 삼존(三尊;老君, 道君, 天尊) 등 도교교리학(道敎敎理學)의 중요 부분이 확립되었다. 태상노군의 교계(敎誡)인 《동진부洞眞部》, 태상도군의 《동현부洞玄部》, 원시천존의 《동진부》 등의 경전으로서 《삼동三洞》이 정리되고, 《삼동》의 경전에 다시 불교의 십이분교(十二分敎) 등이 가미되어, 도교의 일체경(一切經), 즉 삼동사보(三洞四輔)를 주축으로 한 《도장道藏》이 성립되었다.
북위北魏 이후 제왕이 머무는 곳을 ‘자금성紫金城, 紫禁城’, 대전(大殿)을 ‘태극전太極殿’이라 명칭한 데서 도교 건축의 성격을 알 수 있다. 이 사상은 근대에까지 일관되게 나타나는데, 북경 고궁(北京古宮, 紫禁城)은 도교 교리의 기본개념을 명칭화하여 궁전 즉 태화전太和殿, 중화전中和殿, 보화전保和殿, 건청궁乾淸宮, 곤녕궁坤寧宮 등을 남북으로 건립하였다. 도관(道觀)과 악묘(岳廟)는 대체로 궁정 건축을 모방하여 간략화한 형태이다.
현존하는 유구(遺構)로는 산동성山東省 태안泰安 대묘垈廟 〈천주전〉, 산서성山西省 태원太原의 〈진사성모전晋祠聖母殿〉(1023~1032), 산서성 예성藝城 영락궁永樂宮의 〈삼청전三淸殿〉과 〈칠진전七眞殿〉, 항주杭州 서호반西湖畔의 〈악왕묘岳王廟〉(1194~1224) 등이 있다.
회화의 예로는 후한 말~위진(魏晉)시대의 신수경(神獸鏡)에 천왕대제와 서왕모西王母, 동왕부東王父 등의 〈선인옥녀仙人玉女〉가 있다. 또한 산동山東 하남河南지방의 화상석*, 화상전*에도 황제(黃帝), 노자, 일월성신(日月星辰), 용호(龍虎), 봉황(鳳凰), 귀사(龜蛇) 등 교리적으로 미성숙한 신선설화를 회화화한 소박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동진東晋의 고개지顧愷之(꾸 카이즈, 344~406)의 작품으로 도교의 수신(水神)인 낙신(洛神)을 화제로 한 〈낙신부도*落神賦圖〉가 유명하다. 육조(六朝)시대의 종병宗炳(쫑 빙)도 숭산嵩山, 화산華山 등의 신선이 머무는 영산(靈山)의 묘법(描法)을 그의 저서인 《화산수서》에 정리했으며, 후대의 미불米芾(미 후, 1501~1107), 황공망黃公望(후앙 꽁왕, 1269~1454), 석도石濤(스 타오, 1641~1717) 등은 도교적인 산수화*를 그린 화가들이다.
성당(盛唐) 때 도관벽화(道觀壁畵)의 양상을 기록한 장언원張彦遠(즈앙 이앤위앤, 815~875경)의 《역대명화기*歷代畵名記》 제3권을 보면, 장안에서 활약한 화가 오도현吳道玄(우 따오쉬앤)은 태청궁太淸宮에 〈태상노군상〉, 용흥관龍興館에 〈명진경변도明眞經變圖〉, 낙양洛陽의 노군묘老君廟에 〈오성도五聖圖〉를 그렸다고 한다. 그 외에 당시 도교적인 화제로서는 〈감천궁도甘泉宮圖〉 〈오악진형도五岳眞形圖〉 〈5성팔괘28수도五星八卦二十八宿圖〉 〈음양택상도陰陽宅相圖〉 〈대수신지도大蒐神芝圖〉 〈황제승용도黃帝昇龍圖〉 등이 있다. 북송北宋 때에는 무종원武宗元(우 쫑위앤)이 그렸다고 전하는 〈조원선장도朝元仙仗圖〉가 있다. 그 내용은 원시천존 또는 현원황제玄元黃帝를 알현하는 신선들의 의장식(儀裝飾)을 오도현 풍의 백화*(帛畵) 로 묘사한 두루마리*이다. 원대(元代)에는 공개龔開(꽁 카이)가 종규(鐘馗)를 소재로 그린 〈중산출유도中山出遊圖〉, 안휘顔輝(이안 후에이)의 〈하마철괴도〉가 있으며, 많은 화가들이 도석화*(道釋畵)를 즐겨 그렸다. 명대(明代)에는 만력 28년(1600)에 펴낸 《열선전집列仙全集》이 있다.

도금

도금 鍍金 gilding(영)

물건의 표면상태를 개선할 목적으로 다른 물질로 얇게 피복하는 것. 미술 분야에서는 금이나 다른 금빛 나는 물질을 회화*나 조각*, 그리고 건축상의 장식 등의 표면에 물리적, 회화적 처리로 얇게 입힌 박, 또는 이를 입히는 공정을 말한다. 도금은 서양에서는 로마 시대에, 동양에서는 전한(前漢)시대부터 시작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에 중국에서 기술이 전래해서 많은 불상의 도금에 이용되었다. 삼국시대에 우리나라를 통해 일본에도 기술이 전파되었다.

도기

도기 陶器

→ ‘자기’ 참조

도리

도리 道里

지붕의 서까래를 직접 받치는 부재로서, 지붕의 하중을 직접 또는 보*를 거쳐 기둥에 전달하는 가구재. 목조건물에서 가구재의 최상층에 놓이며, 대개 보에 직각방향으로 설치된다. 단면의 형태가 방형(方形)인 납도리와 원형인 굴도리가 있으며, 놓이는 위치에 따라 종도리(宗道里), 중도리, 하중도리, 삼중도리, 주심도리, 내목도리, 외목도리 등 7종으로 나뉘는데 집의 규모에 따라 차이가 있다. 이 도리에서 앞뒤의 서까래가 서로 만나며, 이는 한국 전통 건축물의 가구에서 기본부재로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공포* 부위에 주심포*, 다포*, 익공* 등의 형식 없이 도리만으로 지붕을 받치는 집을 도리집이라 한다.

→ ‘초익공’ 도판 참조

도리아 양식

도리아 양식 Doric Style(영)

그리스 건축의 초기 양식으로서, 도리아계 그리스인들이 발전시켰고 이후 로마인들이 수정하였다. 도리아 식의 기둥은 거의 세로홈(fluting)이 있으며, 주초(柱礎, base)가 없다(로마의 도리아 양식은 주초가 있다).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단순한 형태의 주두* 및 트리글리프*와 메토프*로 구성된 엔타블러처*의 프리즈*이다. 상단에 있는 코니스*의 아랫부분에는 ‘뮤튤*(mutule)’이라는 작고 납작한 일련의 벽돌이 있다. 장식적인 뮤튤과 그 바로 아래에 위치하는 트리글리프는 초기 목재 건축물의 구조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뮤튤은 목재 처마 밑에 보이는 서까래 끝에 해당되며, 트리글리프는 지붕 들보에 해당한다. 뮤튤과 트리글리프는 구테(guttae)라는 작은 막대모양 장식에 의해 고정되었다.
초기의 그리스 도리아식 사원의 원주*는 굵으며, 이후의 것들보다 더 촘촘한 간격으로 세워졌다. 도리아식 원주는 고전 양식 중에서 가장 견고하고 꾸밈없는 기둥으로서 그 비례가 남성 신체의 비례와 관계된다고 여겨졌다. 실상 도리아 양식은 막사, 도시성문, 감옥 등 방어적이고 공격적이거나 실용적인 건축물에 특히 적합하게 보였다. 또한 도리아식 주식*은 콜로세움의 하층을 이루면서 다른 주식들을 지탱하는 강한 성격을 보여준다.

→ ‘엔타블러처’‘주식’ 도판 참조

도리원도

도리원도 桃李園圖

동양 인물화*의 한 화제(畵題). 당대(唐代)의 시인 이백李白(리 바이)의 병려체(騈儢體) 문장 《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書》에 입각하여 그린 상상화이다. 복숭아꽃(桃)과 오얏꽃(李)이 만발한 정원에 등불을 켜고 술잔을 기울이며 시작(詩作)을 즐기는 문인들을 그린 작품이다. 오랜 작례로 명대(明代)의 구영仇英(처우 잉)과 성무엽盛茂燁(츠엉 마오이에)의 작품이 알려져 있다.

도무스

도무스 domus(라)

집이라는 뜻의 라틴어. 고대 로마의 부유층이 사는 고급 주택으로 중산층의 집합주택인 ‘인수라(insula)’와 구별된다. 첫번째 안뜰인 아트리움*은 오락을 하거나 일을 하는 데 사용되고, 두번째 안뜰은 대개 정원이 딸려 있으며 열주랑이나 열주*로 둘러싸여 있다. 폼페이에서도 그 예를 볼 수 있다.

도미니크 수도회

도미니크 수도회 Dominican Order(영)

툴루즈에서 성(聖) 도미니크가 1206~1216년 에 창건한 로마 가톨릭 교회 내의 탁발 수도회. 프랑스 프루유에서 설립하여, 교황 호노리우스 3세로부터 공식 인가를 받았다. 복음의 전파를 목적으로 신학의 학문적 중요성을 깨닫고 파리 대학을 비롯해 쾰른, 볼로냐, 옥스퍼드 등의 명문대학에서 성서와 설교 및 신학, 철학, 교회법 등을 연구하여 학문적인 공헌을 하였다.

도사파

도사파 土佐派

야마토에*(大和繪)를 고수한 도사씨(土佐氏)를 중심으로 하여 세습적으로 형성된 15~17세기 일본의 대표적 궁중 어용화파의 하나. 무로마치*(室町)시대에는 가노파*狩野派, 운코쿠파*雲谷派와 함께 3대화파의 하나였으며 가노파와 함께 에도시대*(江戶, 1603~1867) 말기까지 일본화단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도사파 양식*은 헤이안시대*(平安)와 가마쿠라시대*(鎌倉)의 순 일본적 세속화의 전통인 야마토에로 계승되었다. 이들 화파의 그림은 궁중의 에코도로(繪所)를 세습적으로 지내면서 형성되었다. 족보에 따르면, 그 효시가 헤이안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이는 17세기에 조작된 것이며 실제로는 15세기의 후지와라 유키미쓰藤原行光와 그 아들 도사 유키히로土佐行廣가 그 시조로 알려져 있다.
이들의 작품은 대개 헤이안시대와 가마쿠라시대의 세속화의 전통에 따라 소재와 기법을 반복하는데 그쳤지만 도사 미쓰노부土佐光信와 같은 몇몇 화가의 작품은 당시 귀족들이 매우 좋아하였다. 도사파의 마지막 대가였던 도사 미쓰요시土佐光吉는 오사카大阪 근처의 상업항구인 사카이堺로 이주하여 부유한 상인들의 후원을 받았으며, 모모야마(桃山)시대의 가노파 화가들에게 채색법을 전수하기도 하였다. 그 손자 도사 미쓰오키土佐光起는 궁정 에코도로의 책임자 지위에 올랐으며 그의 자손들은 대대로 19세기까지 그 직책을 승계받았으나 화풍상의 발전은 없었다.

도산시대 미술

도산시대 미술 桃山時代美術

→ 모모야마시대 미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