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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너리즘

매너리즘 Mannerism(영) Manierismo(이) Maniérisme(프)

1520년경부터 17세기 초에 걸쳐 주로 회화를 중심으로 유럽 전체를 풍미한 미술 양식. 매너리즘이라는 용어는 17세기 이후부터 미술에 관한 문헌에서 쓰이기 시작했으며, 역사적, 비평적 의미가 함축된 복합적인 의미로 문학 비평 및 신학에도 통용되었다. 보통 미술사의 시대 구분에서는 르네상스 미술*에서 바로크 미술*로 이행하는 사이(1530~1600)에 이탈리아에서 나타났던 과도기적인 미술 양식을 말한다.
매너리즘이란 종종 성숙기 르네상스 고전주의*의 쇠퇴를 뜻하거나 고전주의에 대한 반동을 일컫는다. 또 성숙기 르네상스와 바로크를 이어주는 교량적 역할을 하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명칭 자체는 ‘스타일, 양식’을 의미하는 이탈리아어 ‘마니에라(maniera)’에서 유래했으며, 개성적인 양식이 아닌 모방이나 아류 등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매너리즘이라는 용어는 ‘퇴보에 도달한 전통주의’ 혹은 ‘정신적인 위기의 시대에 두각을 나타낸 죽어가는 양식의 마지막 표현’ 등으로 매도되기도 했다.
그러나 20세기 초 매너리즘 시대의 예술가들에 대한 관심이 부활하면서 독일의 비평가들과 역사가들은 매너리즘을 엘 그레코El Greco(1541~1614)에서 정점에 이른 유럽의 예술 운동으로 소개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매너리즘이 독일 표현주의*의 미학적 왜곡 및 정신적 격렬함 등이 무분별하고 기묘하게 반영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옥스퍼드 사전에서는 매너리즘을 ‘독특한 방식에의 과도한 또는 부자연스러운 탐닉’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193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영국의 역사가들은 매너리즘이라는 말보다 ‘후기 르네상스’라는 용어를 선호했다. 1935년 무렵부터 영국의 미술사가들은 매너리즘이 보여주는 긴장과 과장을 이 시대가 르네상스 시대와 같이 하나의 이상에 의해 지배되던 시대가 아니라, 여러 경향들이 교차하며 갈등을 일으키던 위기의 시대였던 데서 오는 일반적인 불안의 반영으로 해석했다. 13~15세기의 프랑스 궁정 문학이나 이탈리아에서 ‘매너’라는 말은 보편적인 인간행동과 예술양식에 사용되는 말로서 영어의 ‘스타일’이라는 단어와 유사한 뜻을 갖고 있었다. 바자리Giorgio Vasari(1511~1574)에 따르면 매너는 유사한 예술 작품의 바람직한 성격을 뜻하는 ‘우아함’이라는 말과, 사실적이라기보다는 ‘이상화된 아름다움, 기품, 세련, 능숙함’에 버금가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미술에서 매너리즘의 특징으로는 왜곡되고 늘어진 구불거리는 형상, 불명료한 구도, 양식적인 속임수와 기괴한 효과 등을 들 수 있다. 콘트라포스트와 인체를 극도로 길게 늘이는 과장된 표현이 조각과 회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매너리스트 미술은 열광적 감정, 긴장과 부조화의 느낌, 신경 불안의 감각을 전달한다.
묘사하는 내용 자체는 기묘하고 복합적이지만, 내용*보다는 양식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16세기 이탈리아의 매너리즘 예술가들이 고전적 아름다움과 조화를 추구하는 르네상스의 이상에 의식적으로 반기를 들거나 전통과의 단절을 시도한 것으로 보이는 증거나 이유는 없다. 그들은 오히려 좀 더 미묘하고 세련된 우아함을 추구하려고 했으며 코레지오Correggio(c.1490~1534)와 라파엘로Raffaello Sanzio(1483~1520),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1475~1564)가 이룩했던 최상의 완벽을 계속 추구하고자 했다.
그러나 신플라톤주의의 교리와 함께 자연의 아름다움을 재현하는 것보다는 예술가들의 마음속의 이상적인 아름다움이 강조되었으며, 더 큰 미적 효과를 추구하기 위해서 예술가들의 독창성과 상상력이 장려되었다. 그리하여 과장되고 병적인, 때로는 기괴하기까지 한 작품이 나오게 되었다. 또 전문가와 소수의 지적인 엘리트에게 부응하기 위해서는 심원한 암시, 놀라움, 새로움을 추구해야 했다. 마침내 16세기말에 와서 고전적 균형, 이성과 자연의 조화, 편안함과 기능을 추구하던 르네상스의 이상은 매너리즘의 불안정성, 기형적인 자세, 불안정한 구도, 자의식 강한 기교, 모호함의 강조로 변형되어 20세기의 초현실주의*의 한 특성을 예고했다.
한편 이탈리아 매너리즘의 장식적 우아함, 지적 에로티시즘 등은 프랑스 퐁텐블로파* 속에서 프랑스적 취향으로 변모했다. 영국에서 매너리즘의 영향은 미약하나마 엘리자베스 시대의 예술에서 엿볼 수 있다. 1590년대에 매너리즘은 카라밧지오Caravaggio(1571~1610)의 사실주의와 카라치Annibale Carracci(1560~1609)의 신고전주의*에 의해 밀려나게 된다. 그후 18세기말에 몇몇 낭만주의* 화가들에 의해 일시적으로 부활되었을 뿐이었다. 20세기에 들어와서 초현실주의자들은 자신들과 매너리즘 사이의 유사성을 발견했다. 그러나 매너리즘에 대한 20세기의 관심은 일반적으로 그 동기가 모호하고 해석상의 의견도 서로 엇갈리고 있다. 또한 일반적으로 매너리즘은 기교주의, 형식주의*, 현상 유지를 고수하는 경향이나 자세를 비판하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