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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키델릭 아트

사이키델릭 아트 Psychedelic Art(영)

사이키델릭이란 ‘psycho’와 ‘delicious’를 합성한 일종의 심리적 황홀 상태를 가리키는 신조어로서, 이러한 상태를 연출하는 것이 사이키델릭 아트이다. 환각 미술 혹은 일명 ‘엘에스디LSD 아트’라고도 불리며, 환각제 복용에 의한 환시와 환청 등의 체험을 재현할 것을 추구한다. 1963년 샌프란시스코에서 USCO 그룹이 실험적인 작품 활동을 하면서부터 시작되었고, 1960년대 중엽 뉴욕을 중심으로 국제적으로 확산되었다. 1943년에 발명된 환각제인 LSD는 미량의 복용으로도 극채색의 선명한 환각 무늬가 시각적으로 체험된다. 이것은 원래 스위스의 한 제약회사가 정신병 치료제로 개발했으나, 1960년대 미국에서 히피 문화와 함께 대량으로 유포되어 사회문제를 초래하였다. USCO 그룹은 LSD를 복용하지 않고도 복용한 것 같은 환각 증세를 강렬한 빛과 음향, 색채, 진동의 동시 자극 등에 의해 연출하여 인간 의식의 확대를 시도했다. 미술뿐만 아니라 문학에서도 이상한 의식 확대와 병적인 세계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울프Tom Wolfe의 《차가운 LSD 교감 테스트》 등 환각제 문학을 탄생시켰다.
사이키델릭 아트는 다채로운 색채와 유기적인 곡선의 형태로 자극적이고 몽환적인 무늬를 나타낸 회화*, 디자인, 포스터*, 실내장식을 가리킨다. 사이키델릭 디자인의 이차원적인 표현을 삼차원으로 바꾼 사이키델릭 환경(environment)은 음악과 조명, 오락과 결합하여 고고뮤직홀의 환경을 구성하는 차원으로까지 발전한 것이다. 이러한 특수한 인위적 환경 속에서 관람자는 통상적 이성의 작용을 초월하여 해방된 오감의 세계를 향한 여행, 즉 내부 여행(inner trip)을 경험하게 된다. 사이키델릭 아트는 미술 이외에 그래픽 디자인*, 영상, 사진* 분야에서도 크게 고조되었으며, 히피 운동, 로큰롤 음악의 유행과 더불어 패션과 사회풍속에까지 침투하였다.

사직단

사직단 社稷壇 she-ji-tan(중)

종묘와 함께 토지의 신인 ‘사社’와 곡물의 신인 ‘직稷’을 제사지내는 곳. 사직에 대한 제사는 중국에서 주대(周代) 이전부터 있었던 듯하고, 후한後漢의 건무建武 2년(26)에는 낙양의 종묘 서쪽에 태사직단(太社稷壇)이 설치되었다. 이후 명대(明代) 초기까지 대체로 지속되었고 수도의 태사직단은 종묘의 서쪽에 설치되었다. 또한 사단(社壇)은 동쪽에, 직단(稷壇)은 서쪽에 놓였는데, 각각 후토신(后土神)과 후직신(后稷神)을 제사지내고 규모는 사방 5장, 높이 5척, 두 단의 거리가 5장이었다.
사단은 사방을 청백적흑(淸白赤黑), 윗면을 황색의 흙으로 덮고 직단은 5색의 흙을 쓰지 않았다. 명대 초기에는 사직불가분설(社稷不可分說)로 인하여 남경의 태사직단이 상하 2단으로 고쳐지고, 15세기초부터 북경에도 상하 2단으로 되었다. 송대(宋代)부터 청대(淸代)까지 부(府), 주(州), 현(縣)에서도 각각 사직단을 설치했다.
한국에서는 단을 2개로 만들어 사단은 동쪽에 직단은 서쪽에 배치하여 사방이 각각 2장 5치로 북쪽에서 남으로 향하게 하였고 사방으로 계단 3층을 쌓았다. 현재의 사직공원 안에 남아있다.

사진

사진 寫眞 hsie-chen(중)

동양회화에서 초상화*를 가리키는 말. ‘전신(傳神)’ ‘전진(傳眞)’ ‘사조(寫照)’ ‘사모(寫貌)’ 라고도 한다. 진(眞)이라는 글자를 붙이는 것은 초상화의 주인공의 외모뿐 아니라 인품 곧 정신까지도 표현해야 한다는 이상을 나타내는 것인데, 중국화론의 기본 가운데 하나인 기운론(氣韻論)에 입각한다고도 할 수 있다.

사진 사실주의

사진 사실주의 寫眞寫實主義
Photo-Realism(영)

→ 극사실주의

사천왕상

사천왕상 四天王像

수미산 중턱에 살면서 사방을 지키고 불법을 수호하는 네 명의 대천왕으로, ‘사대천왕(四大天王)’ ‘사왕(四王)’ ‘호세천왕(護世天王)’이라고도 부른다. 원시경전인 《장아함경長阿含經》 〈제5전존경第五典尊經〉 제3에는, “사천왕은 그 방위에 따라 각기 자리를 담당하고 정법을 수호하고 마귀의 습격을 방지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사천왕이 조형화된 것은 4세기경에 성립한 《금강명경金剛明經》이나 《관정경灌頂經》이 유행하기 시작한 이후부터이다. 인도에서는 간다라* 지역에서 출토된 불전도*나 부조*에 사천왕상이 나타나는데, 주로 고대 인도의 귀인 형상을 하고 있다.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화되면서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쓴 무인형의 형상으로 정착된다. 운강석굴* 가운데 천왕은 천관(天冠)만 쓰고 갑옷은 입지 않아 무인상으로 정착되기 이전의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수隋, 당唐 이후에야 비로소 갑옷을 입고 천관을 쓴 무장의 형상이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무장형의 사천왕상은 중국, 한국, 일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사천왕은 시대와 나라에 따라 들고 있는 지물*이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칼과 창, 탑 등의 무기를 들고 있다. 그런데 북방다문천왕(北方多聞天王)은 항상 보탑을 들고 있어 명칭을 확인하는데 중요한 기준이 된다.
한편 원대(元代) 이후에는 라마교의 영향을 받은 사천왕이 조성되는데, 동방지국천왕(東方地國天王)이 비파(琵琶), 남방증장천왕(南方增長天王)이 보검(寶劍), 서방다목천왕(西方多目天王)이 나삭(羅索), 북방다문천왕이 사리탑*이나 은서(銀鼠)를 쥐고 있다.
한국에서는 신라선덕여왕 때 양지良志라는 승려가 사천왕상을 조성하였다는 기록이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있어 삼국통일을 전후한 시기에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고, 통일신라시대에 크게 유행하였다. 대표적인 예로 〈사천왕사지四天王寺址 출토(出土) 녹유사천왕상전綠釉四天王像塼〉, 감은사지感恩寺址 3층석탑 출토 청동사리구(靑銅舍利具)에 부착된 사천왕상, 〈석굴암石窟庵의 사천왕상〉 등이 있다.

사티로스

사티로스 Satyros(영)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반인반수(半人半獸)의 괴물. 주신(酒神)인 디오니소스(로마신화에서의 박쿠스)의 종자(從者)로서 이탈리아 신화에서는 ‘파우니Fauny’라고 불린다. 머리에는 뿔이 달려있고 뾰족한 귀와 수염이 특징적이며 때때로 굽을 들고 있다. 기원전 6세기말 아테네에서 열렸던 디오니소스 대축제에서는 비극의 상연 후에 풍자적인 희극인 사티로스극이 공연되었는데, 여기에서 합창단은 사티로스의 모습을 모방한 의상을 입었다. 사티로스는 처음에는 말의 꼬리와 귀를 지니고 수염이 나지 않은 젊은 남자로 표현되었으나, 후에 염소의 다리와 꼬리를 가진 남자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사티로스의 이러한 외모는 ‘실레노스Silenos’와 혼동될 정도로 유사하고 실제로 이들은 동일한 괴물의 두 가지 다른 이름이라고 간주되기도 한다. 예술작품에서 사티로스와 실레노스는 요정들이나 무녀인 마이나스들과 함께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그리스의 조각가 프락시텔레스Praxiteles는 사티로스의 동물적인 특성들을 약화시키고 젊고 아름다운 청년으로 묘사함으로써 새로운 사티로스 상을 창조하기도 했다. 고대 그리스의 도기화에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사티로스는 많은 미술작품의 주제로 등장하였다.

사회적 사실주의

사회적 사실주의 社會的寫實主義
Social Realism(영)

1920년대와 1930년대에 주로 미국과 멕시코에서 제작된 좌익 정치미술* 운동으로서, 특히 1930년대 미국의 경제 위기를 통해 부각되었다. 사회적 사실주의 작가로는 벤 샨Ben Shahn(1898~1969), 에버굿Philip Evergood(1901~1973), 잭 레빈Jack Levine(1915~ ), 그로퍼William Gropper(1897~1977) 등 주로 마르크시즘에 경도된 화가들이 많았다. 이들은 추상을 무책임한 양식이라고 간주하면서 계급투쟁이나 사회부조리, 소외된 하층민의 생활상 등을 주제로 구상회화를 제작함으로써 자본주의에 대항하였다. 또한 정치적인 회합을 위하여 석판화*와 특히 깃발, 선동적인 문구의 포스터*를 제작했으며, 《새로운 대중들The New Masses》이라는 정기간행물에 그림과 삽화를 싣기도 했다.
그러나 사회적 사실주의는 어떤 특정한 하나의 양식을 지칭하는 용어는 아니며 그 범위도 미국뿐만 아니라, 멕시코의 민중화가인 리베라Diego Rivera(1886~1957)와 오로츠코Jose Clemente Orozco(1853~1949)의 벽화시리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에는 동구권 국가에도 적용되었지만, 전후에 좌파가 영향력을 상실하면서 동시에 몇몇 평론가와 화가들에 의해 격렬한 비판을 받았다.
한편 오늘날의 사회적 사실주의는 노동자 계층을 다룬 진부하고 사실주의적인 작품으로 나이나 지식 수준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미술 작품을 경멸적인 의미로 부르는 용어로 그 뜻이 바뀌었다. 이러한 의미의 사회적 사실주의는 사회주의 사실주의*와 혼동되곤 하는데, 반드시는 아니지만 구소련과 중국, 북한 같은 공산주의 국가와 결부되는 경우가 많다.

→ ‘사회주의 사실주의’ 참조

사회주의 사실주의

사회주의 사실주의 社會主義寫實主義
Socialist Realism(영)

1934년 제1회 소비에트 작가협회에서 공식적으로 주창된 창작이론 및 방법으로 이후 반세기 동안 구소련의 미술과 문학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로 작용하였다. 혁명 후의 구소련에서는 사회주의 사실주의와 변증법적 유물론을 결합하여 고유의 예술 원리를 발전시킴으로써 예술을 통해 스탈린이나 레닌 같은 지도자의 정치적 찬양 혹은 당의 엄격한 문화 정책에 의한 혁명의 미래상이나 공동체 의식을 고취시키고자 했다.
조형예술에 적용된 사회주의 사실주의는 정치에 종속된 수단으로 미술이 프롤레타리아 계급에 봉사하고 현실을 역사적 발전 속에서 사실적으로 포착하려는 경향이다. 미술 작품은 당이 부여한 기본적 의무에 부응해야 하며, 혁명의 발전 속에서 구소련의 현실을 인민에게 정확히 전달해야 하는 것이 그 목적이었다. 즉 사회주의 사실주의에서 예술은 미래지향적이고 당파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역할을 담당했던 것이다. 상부 구조의 일부인 예술은 집단적 의식이라는 이데올로기 교육을 위한 수단인 동시에 자본주의에 대한 사회주의 체제의 계급투쟁의 무기였다.
사회주의 사실주의는 정치적인 주제의 변증법적인 묘사와 반(反)추상을 지향하였고, 모더니즘*을 형식주의*로 비난하는 한편 당파성이 없는 사실주의*를 자연주의*로 간주하여 부정하였다. 따라서 형식상의 추구는 철저히 배제되었으며, 중요한 것은 정치적 주제와 기교였다. 사회주의 사실주의 회화와 조각 작품들은 이에 입각하여 적극적이고 용맹한 노동자들과 농부들을 이상화하여 그려냈다. 1930년대 말에는 레핀Ilya Répine(1844~1930)과 수리코프Vassily Sourikov(1848~1916)를 선두로 한 ‘러시아 사실주의의 계승’이 합법적인 국가 기준으로서 부각되었고, 이는 즈다노프Andreii Zhdanov가 주도하였던 1950년대 중반까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후 많은 이론적 정립을 거쳐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사비츠키Konstantin Savitski 등의 작가들을 중심으로 새롭게 쇄신된 사회주의 사실주의가 등장하였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에는 소비에트 이데올로기의 영향 하에 놓인 모든 공산국가들이 사회주의 사실주의를 예술 생산의 토대로 삼았다.

사회학적 미술

사회학적 미술 社會學的美術
art sociologique(프)

1960년대말 프랑스에서 등장한 연구 동향. 사회학적 미술의 주요 대표자로는 포레스트Fred Forest, 피셔Hérve Fischer, 테노Jean-Paul Thénot, 스니에르Alain Snyers 등이 있다. 이들은 대중화 과정에서 야기된 일상의 삶과 문화 사이의 단절, 개인적 소외감, 특수 지식의 집중화 등 현대 사회의 위기상황을 직시하였다. 따라서 미술도 이제는 전위가 되는 것보다, 사회적 현실과 직접 관련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을 폈다.
이같은 목적을 실행하기 위해서 포레스트는 1969년부터 비디오를 이용하고 1972년에는 신문과 TV, 라디오 등의 대중매체를 통해 독자와 관객의 반응을 조장하고 이를 작품에 포함시켰다. 이처럼 사회학적 미술은 대중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대화 방법의 토대 위에서 작품의 근간을 구축하고 있으며, 1980년 이후에는 몇 권의 《카이에Cahiers》를 출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