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1 2 7

습필

습필 濕筆

동양회화의 기법으로 붓에 물기가 많이 밴 것을 가리킴. 갈필*(渴筆)과 대비되는 의미로 당唐의 장조張操(즈앙 차오)가 창안하였다고 전한다. 오대(五代)의 형호荊浩(싱 하오)는 스스로, “붓 끝은 겨울나무처럼 가늘고, 먹은 엷기가 들판의 구름처럼 가볍다(筆尖寒樹瘦 墨淡野雲輕)”고 했는데, 여기서 ‘가볍다(輕)’는 것은 바로 물기가 가득한 습필을 썼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송北宋의 곽희郭熙(구어 시)는 “먹의 색깔이 축축하게 윤기나지 않은 것을 일컬어 말랐다고 하며, 말라있으면 생기가 없어 보인다(墨色不滋潤 謂之枯 枯則無生意)”고 하면서 그림 속에 반드시 습필이 있어야 함을 주장했다.
청대(淸代)의 장경張庚(즈앙 껑)은 만년에야 비로소 그 뜻을 깨닫고 “습필은 어렵지만, 건필은 쉽다(濕筆難工 乾筆易好)”고 말했다. 갈필이 문인화의 전형적인 필법인 것처럼 인식되면서 한때 다투어 건필만을 추구하면서 습필은 속된 기교(俗工)라고 여기며 버리기도 했다.
예를 들어 청말의 진조영秦祖永(친 쭈융)은 “그림을 그리는 데에 가장 피해야 할 것이 습필인데, 붓을 놀리면서 먹의 화려하고 깨끗함만 추구한다면 힘을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습필법을 버리고 건필을 택하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현대의 황빈홍黃賓虹(후앙 빈홍, 1864~1955)은, “건필이 있어야 습필도 있고, 습필이 있어야 건필도 있게 된다”고 주장, 건필과 습필이 함께 사용되어야 비로소 수묵의 최고 경지라 할 수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