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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술가협회

신미술가협회 新美術家協會
Neue Künstler-vereiningung München, NKV(독)

뮌헨을 지배하고 있던 유겐트슈틸*에 반대하고 후기 인상주의*와 야수주의*적인 경향에 의거하여 1909년 1월 설립된 표현주의* 작가들의 협회.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1866~1944), 카놀트Alexander Kanoldt, 에르프슬뢰Adolf Erbslöh가 주도하여 성립되었으며, 야블렌스키Alexej von Jawlensky(1864~1941), 쿠빈Alfred Kubin(1877~1959), 뮌터Gabriele Münter(1877~1962), 베레프킨Marianne von Werefkin(1860~1938) 등도 창립 회원이었다.
그 밖에 바움Paul Baum, 호퍼Carl Hofer(1878~1955), 베흐데예프Vladimir von Bechtejeff, 보시Erna Bossi, 코간Moissey Kogan, 무용수인 자하로프Sacharoff 등도 1909년에 잠시 참여했으며, 1910년에는 프랑스 작가인 지리외Pierre Girieud와 르 포코니에Henri Le Fauconnier(1881~1946), 1911년에는 제2회 전시를 보고 감명 받은 마르크Franz Marc(1880~1916)와 피셔Otto Fischer가 가입했다. 피셔는 이후 칸딘스키가 떠난 후 이 협회의 대변인이 되었다. 이 협회의 전시회는 모두 세 번에 걸쳐 개최되었다. 1909년의 첫 전시는 보수적인 관중이 그림에 침을 뱉을 정도로 대중과 비평가 모두에게 지나치게 급진적인 경향을 보였다.
두번째 전시는 보다 유럽적인 성격을 띠어 러시아의 부르류크 형제David & Vladimir Burljuk, 데니소프Wassili Denisoff, 모길레프스키Alexandre Mogilewsky 등과 피카소Pablo Picasso(1881~1973), 루오Georges Rouault(1871~1958), 브라크Georges Braque(1882~1963), 드랭André Derain(1880~1954), 반 동겐 Kees van Dongen(1877~1968), 블라맹크Maurice de Vlamink(1876~1958) 그리고 독일의 조각가 샤르프Edwin Scharff와 회트거Bernhard Hoetger 등 많은 초대작가의 작품이 전시되었다.
그러나 에르프슬뢰가 새로운 국면으로 전개되는 칸딘스키의 추상을 거부하자 칸딘스키를 비롯해 그와 예술적 사상을 함께 발전시켰던 뮌터, 야블렌스키, 마르크 등이 탈퇴하였고 회원 대다수는 유겐트슈틸과 야수주의적인 양식을 혼합한 경향으로 작업하게 되었다. 칸딘스키와 그의 추종자들은 청기사파*를 새로이 설립하였고, 신미술가협회의 제3회 전시일자와 같은 날에 최초의 전시회를 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