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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플라스틱 plastics(영)

‘조형성 있는’이라는 의미의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말. 플라스틱 아트란 반죽하거나 틀에 넣어 형이나 모양을 만들 수 있는 물질을 이용하는 예술을 말한다. 회화*에서 플라스틱이란 말을 쓸 때는 부조*나 입체적인 인상을 주도록 묘사한 형태를 의미한다. 플라스틱이 처음 도입되었을 때는 기존 재료의 대체물로 사용되는 경향이 있었고, 그 결과 ‘플라스틱’이란 말은 ‘진짜가 아니다’라는 경멸적인 의미를 내포하게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플라스틱이란 외부의 힘, 또는 열에 의해 변형될 수 있으며, 그 후 원형으로 돌아가지 않는 성질을 지닌 자연 및 합성의 재료를 뜻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최초의 인조 플라스틱인 셀룰로이드가 미국에서 특허를 받은 것은 1869년이었으며, 최초의 합성 플라스틱 ‘베이클라이트’가 제조된 것은 1907년이었으나 현대의 플라스틱 산업은 1930년대에 들어서 확립되었다. 그 후 많은 건축가들, 디자이너들, 및 예술가들이 플라스틱을 소재로 사용해 왔으며, 플라스틱을 조각재료로 사용한 최초의 예술가는 펩스너Antoine Pevsner(1886~1962)와 가보Naum Gabo(1890~1977)이다. 그 밖에 플라스틱을 소재로 사용한 예술가들에는 플라이슈만, 올덴버그Claes Oldenburg(1929~ ), 칼더Alexander Calder(1898~1976), 길라르디Piero Gilardi, 세자르César(1921~ ), 모홀리 나기László Moholy-Nagy(1895~1946), 소토Jesus Raphael Soto(1923~ ), 이바랄Yvaral, 르 파르크Julio Le Parc(1928~ ), 쇠페르Nikolas Shöffer(1912~ ) 등이 있다.

플라잉 버트리스

플라잉 버트리스 frying buttress(영)

고딕*식 성당 건축의 독특한 양식으로 신랑*에 설치된 둥근 지붕의 무게를 떠받쳐 벽면으로 전하기 위해 측랑*의 지붕 위에 덮여진 아치*. 이 장치를 설치함에 따라 둥근 지붕의 하중을 계단식 홀에서 유지할 필요가 없게 되어 고딕 건축의 구조적인 미가 발달하게 되었다.

→ ‘부벽’ 도판 참조

플랑보와이양 양식

플랑보와이양 양식 Style Flamvoyant(프)

14세기 후반에서 16세기에 이르는 프랑스 고딕* 건축의 최종단계를 가리킨다. 19세기초, 드 코몽Arcisse de Caumont에 의해 건축사에 도입된 용어. 이 양식은 곡선 양식의 반대 형태이며 후기 고딕 양식의 특징인 격자창 장식으로부터 파생된 것으로서 마치 ‘불꽃’ 같은 형태를 이루고 있다.
장식이 보다 강조된 성숙기의 방사선 양식에서 볼 수 있는 건축의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 이 양식의 사용은 보통 성가대 본당 칸막이 같은 것에 국한되었으나, 교회 외부에 대해서는 보다 광범위하게 적용되어 교회 전체 모습을 완전히 변형시키기까지 했다. 최초로 1370년 루엥 성당의 서쪽 정면에 사용되었다. 이 양식은 상Sens, 보베Beauvais, 온브뢰Envreux 성당의 원화창(圓花窓) 형태나 루엥 성당의 푸르 드 뵈르 탑, 루엥 성당과 방돔의 라 트리니테La Trinité 성당의 정면 등에 나타나 있다.
이 형태들은 개별적으로는 매우 정교하나 실질감은 없다. 건축 장식이라기보다는 금속 세공 같은 독특한 인상을 주며 초기 양식과는 거의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대개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한 노력이며 1510년 노르망디의 르네상스* 형태에서와 같은 과용은 창조성의 붕괴를 은폐하고 있다.

플럭서스

플럭서스 Fluxus(독)

유동(流動), 유출(流出), 변전(變轉)의 뜻으로, 본래 ‘밀려오는’이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말이다. 혼합매체*(mixed media)적인 액션* 형식의 하나로 극단적인 반예술적 전위운동을 가리킨다. 1960년대 초 동명(同名)의 그룹이 조직되어 뉴욕을 중심으로 유럽 각지에서 활동했다. 그 구성원은 고정되어 있지 않으나 음악가, 화가, 시인, 무용가, 영화작가 등 전 예술 분야에 걸쳐 있으며 이들의 국적도 다양하다.
추진자의 한 사람인 마키우나스George Maciunas에 따르면, 플럭서스는 기존의 예술, 문화 및 그것이 만들어 낸 모든 기구에 대해 불신하는 반예술적, 반문화적인 전위운동이라고 선언했다. 그는 또한 유럽주의도 배격하고 예술의 전문화 및 예술적 자아를 증진시키는 모든 예술 형태에도 반대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또한 플럭서스의 멤버였던 보이스Joseph Beuys(1921~1986)는 혼합매체에 의한 무대 상연을 통해서, 연기(演技)와 문학의 창조성을 부정하고, 연기에 탐닉하는 해프닝*에 대해서도 반대 운동을 전개했다. 그리고 그는 자유 의지에 의한 픽션이 없는 이런 이벤트는 전통적인 극장 공간과 문학적 공상과는 배치되는 것으로, 현실성 자체를 전면에 드러내기 위해 무대에 올려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플럭서스란 개념은 바로 이와 같은 예술 행위를 가리키는 명칭이라는 것이다. 그 행위는 어떤 내용을 표현코자 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경과에 따라 저절로 구성되는 것으로 표현은 제한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예술적 의도는 상대적으로 인위적 성격, 즉 부자연스러움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술=인생’이 아니고 ‘반예술=인생’이란 등식을 설정하고 있다. 특히 음악의 분야에서는 “경직된 과거의 형식과 사회적 인습을 건강한 카오스로 해체하는 경향”(요셉 보이스)이 백남준白南準에 의해 시도되었다. 즉 그는 개방적인 의식적 연쇄음(儀式的連鎖音) <심포니 No. 5>로서 이를 구체화하고 있다.
플럭서스의 멤버는 이 밖에 브레크트George Brecht, 오노 요코小野洋子, 히긴스Dick Higgins, 놀즈Alison Knowles, 패터슨Ben Patterson, 윌리엄스Emmett Williams, 영La Monte Young 등 1960년대 전위 예술의 중요 작가들이 거의 다 참여하고 있다. 플럭서스는 1962년부터 비스바덴, 코펜하겐, 파리, 뒤셀도르프, 암스테르담, 런던, 뉴욕, 기타 여러 도시에서 기념 행사를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