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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盉

→ ‘이기’ 참조

화계

화계 畵繼

중국 남송南宋의 등춘鄧椿(덩 츠운)이 저술한 회화 이론서 10권. 북송北宋 희녕 7년(熙寧, 1074)에서 남송 건도 3년(乾道, 1167)까지의 화가 219명에 대한 간략한 전기와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그림의 목록 및 그림에 대한 평론, 일화 등을 기록하고 있다.
1~5권까지는 황제 귀족 문인 등 사람에 따라 분류했다. 6~7권까지는 산수 인물 화훼영모 소과약초 소경잡화 등 그림에 따라 나누었는데, 여러 대가들의 기교와 그들의 장단점을 각각 서술하였다. 8권은 자신이 실제로 본 명화 중 기이한 흔적들을 기록하였다. 9~10권은 잡설(雜說)로 화론*과 고사일화를 서술하였다. 특히 10권에는 휘종화원(徽宗畵院)에 관한 기록이 많아 주목된다.
등춘은 문인화*가 아주 흥성하던 시대에 살았기 때문에 회화를 사회적, 정치적 교육을 행하는 방법으로 보지 않고 순수한 미감에 기여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따라서 사류(士流)를 중시하고 공기(工技)를 낮게 평가하면서 예술적 재능의 ‘천부’적 성질을 강조한 곳이 많아 북송 원체화*파(院體畵派)의 격법설(格法說)을 일변시켰다. 즉 문인화가 문동文同(원 통), 소식蘇軾(쑤 스, 1036~1101), 미불米芾(미 후, 1051~1107) 등의 미학사상이 곽약허郭若虛(구어 루어쉬, 11세기 후반경 활동)의 《도화견문지圖畵見聞誌》를 계승한 등춘의 《화계》에 집중적으로 반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정당독서기鄭堂讀書記》에서는 “조사하여 판단하는 것이 명쾌하고 타당성이 있으며 조리도 정연하다”고 평하였다.

화공

화공 畵工

그림을 직업으로 삼은 예술 공인을 가리킴. ‘단청사부(丹靑師傅)’라고도 한다. 사회적인 지위에 따라 민간화공과 궁정화공으로 구분한다. 맡는 일에 따라 벽화공(壁畵工), 칠화공(漆畵工), 자화공(瓷畵工), 연화공(年畵工), 정선화공(灯扇畵工), 조각화공 등으로 나뉜다.
화공의 그림은 석굴이나 묘실의 벽화*, 건축물의 그림 등 중국 민족회화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 왔다. 역대 회화에서 화공과 그들의 작품은 상당히 많은 수를 차지하지만, 봉건사회에서 줄곧 지배계급의 멸시와 비하가 있어 왔다. 역대에 걸쳐서 기록되거나 전설로 남은 화공으로는, 춘추전국(春秋戰國) 시대의 노반魯班(루 빤), 서한西漢의 모연수毛延壽(마오 이앤서우), 동한東漢의 위개衛改(웨이 카이), 당唐의 송법지宋法智(쏭 화즈) 송문군宋文君(쏭 원쥔), 북송北宋의 조대형趙大亨(자오 따헝), 남송南宋의 소조蕭照(샤오 자오), 원元의 마군상馬君祥(마 쥔시앙)과 그의 장남 마칠등馬七等(마 치덩) 및 주호고문인朱好古門人(주하오꾸먼르), 장준례張遵禮(즈앙 쭌리), 명明의 노홍路洪(루 홍) 하충河忠(허 쫑), 청淸의 장문휘張文輝(즈앙 원후에이) 장태고張太古(즈앙 타이꾸), 양연옥梁延玉(량 띵위) 등이 있다. 연화(年畵)쪽으로는 양유청(楊柳靑)의 장롱자張聾子(즈앙 룽쯔), 대립삼戴立三, 고동헌高桐軒, 양속楊續(양 쉬), 염문화閻文華(이앤 원화) 등과 도화오(桃花塢)의 천노전踐老錢 등이 있다.
근대 중국의 화공은 대개 경식(京式, 북경지구)과 소식(蘇式, 소주지구)으로 크게 양분되는데, 경식의 채화(彩畵)는 장식 도안에 뛰어나고 소식의 채화는 화조화*에 특징이 있다. 제재는 산수 화조 외에도 인물화*가 민간에 유행하는 희곡고사(戱曲故事) 및 소설에 많이 이용되었다. 화공들은 스스로 안료(顔料)를 만들었고, 일부 뛰어난 화공들은 스스로 새로운 분본*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화금청자

화금청자 畵金靑磁

→ ‘고려청자’ 참조

화랑

화랑 畵廊 gallery(영)

미술품을 진열, 전시하고 판매하는 장소. 근대 미술사에서 화랑이 차지하는 비중은 자못 커서 거대한 미술관* 시설 이상의 역할을 맡고 있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화가가 소위 파트롱*의 권위로부터 독립하면서 작품 발표의 장소로 개인의 화랑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쿠르베Gustave Courbet(1819~1877)가 개인전을 연 이래, 살롱 출품 이외에도 화랑에서 개인전이나 그룹전을 여는 기회가 급격히 늘어났다. 따라서 인상주의* 이후의 근대 미술사는 화랑을 주요 무대로 하여 전개되었다고 해도 좋을 정도이다. 이를테면 인상파 화가들의 활동은 뒤랑-뤼엘 화랑과 깊은 관계가 있고, 입체주의* 화가들의 작품은 칸바일러 화랑(현 루이즈 레일리스 화랑)에서 일반인에게 전시되었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에도 1945년에 포트리에Jean Fautrier(1898~1964)의 ‘인질(人質)’전과 뒤뷔페Jean Dubuffet의 ‘오트 파트*’전을 개최하여 전후 회화사에 이름을 남긴 파리의 르네 드루엥 화랑이나 추상 표현주의* 작가들의 작품을 차례로 공개한 페기 구겐하임의 ‘금세기 미술’화랑 등을 비롯, 많은 화랑이 적극적인 역할을 했다. 오늘날에도 이런 류의 창조적 의욕에 가득찬 화랑이 있으나, 전체적으로 볼 때 구입자와 화가 사이의 중개적 역할을 하고 있다.

화론

화론 畵論

동양 회화에 관한 이론 논평을 저술한 것. 화론의 범주에는 창작의 원리에서부터 기법, 품평, 감정, 비평, 역사, 감상과 수장에 이르는 모든 논저가 포함된다. 화론은 일찍이 중국 남북조(南北朝)시대의 고개지顧愷之(꾸 카이즈, 345~406)에서 부터 시작되어 사혁謝赫(시에 허)에 이르면 ‘기운생동(氣韻生動)’과 같은 미학적 개념이 제기된다. 이후 송대(宋代)부터 청말(淸末)에 이르기까지 ‘문인일사(文人逸士)만이 기운생동을 행할 수 있다’는 회화이론이 화론사에서 우위를 점해왔다. 한국에서는 고려시대* 이후부터 화론에 대한 논의가 등장하였지만, 본격적으로 행해진 것은 조선시대* 후기부터이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화론서로는 《청죽화사聽竹畵史》를 들 수 있다.
화론의 내용은 크게 논화(論畵), 평전(評傳), 사전(史傳), 저록(著錄) 등으로 분류된다. 또한 제찬(題贊), 화발(畵跋)을 모은 제발집(題跋集), 판화 삽도에 의해 화법을 설명한 화보, 그외에 표장(表裝) 및 감상을 논한 것도 광의의 화론이라 하겠다. 그 내용을 간략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논화:회화가 예술로서 평가된 것은 육조시대 부터이며 사혁의 《고화품록*》이래 그 회화비평의 기저에는 기운론(氣韻論)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 ②평전:육조시대의 화가 품조品藻(핀 차오)가 화가의 간략한 전기를 기술한 것에서 평전이 시작되었다. 당(唐) 이후에는 수묵화*가 발전함에 따라 ‘일품(逸品)’의 기준이 덧붙여졌다. ③사전:회화의 역사 및 본질을 논하는데 당말(唐末)의 장언원張彦遠(즈앙 이앤위앤)이 저술한 《역대명화기*》에 의해 형성되었다. 북송北宋의 곽약허郭若虛(구어 루어쉬)의 《도화견문지*》, 남송南宋의 등춘鄧椿(덩 츠운)의 《화계*》, 원나라 탕후湯垕(탕 허우)의 《화감畵鑑》 등이 있다. ④저록:공사(公私)의 감장품목록(鑑藏品目錄)으로 많은 작품을 기술 고증 평론하고, 특히 화가 평전을 첨가한 예가 많다.

화마

화마 畵馬

중국화의 화제(畵題) 중 하나로 말을 그린 그림. 중국에서는 한대(漢代)의 화상석*에서 이미 회화적 성격이 농후한 말그림이 등장, 말그림의 전통이 매우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당대(唐代)에는 그 유행이 절정에 달해 한간韓幹(한 깐)같은 말을 전문으로 그리는 화가가 출현했을 정도이다. 그 시대의 말 그림의 특색은 인물화*에서처럼 엄격한 사실적 형태를 추구한 것이었다. 이러한 특색은 대체로 후대(後代)에도 이어지는데, 이는 인물 초상화와 마찬가지로 대상의 특징을 정확하게 포착하여 그리는 전신사조(傳神寫照)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후 북송의 이공린李公麟(리 꽁린, 1040~1106)은 그의 <오마도권五馬圖卷>에서 보여주듯이 당대 화풍을 소화하여 능숙한 수법의 말 그림을 많이 남겼다. 원대(元代)에 들어와서는 조맹부趙孟頫(자오 멍후, 1254~1322)가 이공린의 수법을 새로운 형태로 부활시켜 좋은 작품들을 남겼다.
한국에서도 중국과 같이 말그림의 역사가 오래되었는데 이미 청동기시대의 문양에서 말그림을 찾아 볼 수 있다. 회화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는 조선 중 후기에 들어와서 제작된 이영윤李英胤의 <수마도瘦馬圖>, 윤두서尹斗緖의 <사자황獅子黃> 등을 들 수 있다.

화반

화반 花盤

한국 전통 목조건축물에서 창방 위의 포벽 중간에 얹어서 주심도리밑 장여*를 받치기 위해 화분, 연꽃, 사자 등을 그려 끼우는 널조각. 복화반은 화반의 모양이 아래쪽이 넓고 위쪽이 좁은 것을 일컫는다.

화보

화보 畵譜

중국화의 각종 기법을 종류별, 계통별로 편집한 책. 중국의 판본기술이 확립된 송대(宋代)부터 화가나 문인이 그림을 배우는 입문서로서 생겨났다. 화보라는 말은 북송北宋 선화 연간(宣和)에 나온 《선화화보*》에서 비롯된 것이다. 화보는 《선화화보》와 같이 그림을 곁들이지 않고 문자로만 설명한 것과 《매화희신보梅花喜神譜》와 같이 그림을 곁들여 설명한 것 등 두 종류로 나뉘어진다.
일반적으로는 화법에 대한 도해가 있고 문자로 된 간단한 설명이 덧붙여진다. 그림이 곁들여진 화보로는 남송南宋 송백인宋伯仁(쏭 보르언)의 《매화희신보梅花喜神譜》(1238)가 가장 오래되었다. 북송 이후 사군자* 등이 유행함에 따라 원대(元代)에는 이간李衎(리 칸, 약1260~1310)이 대나무의 생태와 묵죽*(墨竹)에 대한 화법(畵法)을 상세히 도설한 《죽보상록竹譜詳錄》을 발간하여 명성을 얻었다.
명明, 청淸 이래의 화보는 위의 두 화보를 계승한 것으로, 《역대명공화보歷代名公畵譜》 《만소당화전晩笑堂畵傳》 《당시화보唐詩畵譜》 《시여당보詩餘堂譜》 《십죽재서화보十竹齋書畵譜》 등이 있고, 화법도해로는 《도회종이圖繪宗彛》 《고송죽보高松竹譜》 《설호매보雪湖梅譜》 《개자원화전*》 등이 있다. 또한 회화이론서이면서도 화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 있다. 즉 명대(明代) 당인唐寅(탕 인)의 이름을 따서 편찬한 《당육여화보唐六如畵譜》, 청나라 강희 연간(康熙, 1662~1722)에 편찬된 《패문재서화보佩文齋書畵譜》 등이다.

화불

화불 化佛

변화한 부처. ‘응신블(應身佛)’ 또는 ‘변화불(變化佛)’이라고도 한다. 불, 보살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나타나는 것으로, 작은 여래형(如來形)으로 표현된다. 보통 관음보살과 대일여래는 보관(寶冠)에 화불이 표현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며 광배*에 작은 화불을 배치하는 경우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