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 FOCUS Imaginary Asia

상상적아시아 (4)

AES+F 〈신성한 알레고리〉 5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39분 39초 2011
Ⓒ AES+F, Courtesy of the artist & Multimedia Art Museum Moscow and Triumph Gallery

상상적 아시아

서구를 중심으로, 승자를 중심으로 기술되어온 역사의 관습에 순응하지 않는다.
아시아 권역 고유의 역사와 시간 그리고 그 과정에 축적된 기억을 좀 더 주체적으로 반추하고 현재로 소환한다. 이에 관한 일련의 이야기가 지난 3월 9일 백남준아트센터에서 개막한 〈상상적 아시아전〉을 통해 펼쳐지고 있다.
무엇보다 전시 제목 ‘상상적’에 주목하자. 일방적인 서술과 기록이 아니다. 17명(팀)이 참여해 23가지로 풀어낸 ‘무빙 이미지’에 눈과 귀를 집중해보자. 여유 있는 관람시간은 필수 지참이다. 전시는 7월 2일까지.

호 추 니엔〈미지의 구름〉싱글 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30분 2011

호 추 니엔〈미지의 구름〉싱글 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30분 2011

확실성에 관하여

이병희 | 독립큐레이터

기획 의도이자 이 전시의 특징은 우선 “무빙이미지”로 총칭하는 시간매체들을 주로 싱글채널로 그룹상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지역과 역사에 대한 내러티브를 기존의 공식적인 서술이나 해석과 평가를 통해서가 아니라 개인적, 상상적 시간 이미지를 통해서 재구축하려는 점이 특징적이다. 나아가 경계를 넘어서서 새로운 ‘가능성’이라는 것이, 패러다임의 전환, 새로운 감각과 정서적 공동체 형성이나 소통방식의 공유, 새로운 수평적 관계상을 상상적으로 전망할 수 있느냐의 문제까지 던지고 있다.

참여 작가들을 일별해보면 우선 공통적으로 ‘아시아’의 근대성을 포스트 식민적, 포스트 민족주의적, 해체 혹은 다중 매체 차원에서 다뤄온 작가들임을 알 수 있다. 비판된 지점은 전지구화와 새로운 착취에 기반을 둔 자본-신자유주의적 경제-정치적 거래로부터 초래된 문제와 갈등, 소외, 고립 등이고, 나아가 생명의 단독성 차원에서 귀환을 감각적, 정서적인 차원에서 다뤄온 작가들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상 지금은 새로운 보수화와 파시즘(민족주의적 관점에서)의 대두라는 ‘경직’의 시기이자, 다른 한편으로는 첨단 기술과 미래에 대한 새로운 전망 등을 절실하게 염원하고 개발하고자 하는 ‘소프트한’ 미디어 세대들의 출현이 다소 아이러니한 레이어를 형성하고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여기서 이 전시를 단순한 반복 소개 차원에서 보기보다는 다각도로 접근해 미래적 시간(가능성의 지점)을 단지 메시아적 ‘기다림’으로써가 아니라, 실천의 측면에서 그리고 나아가 트라우마적 조우와 정서적 귀환, 충동의 재발굴 측면에서 가늠해보는 기회로 볼 필요가 있다.

전시 출품 작품군을 몇 가지로 엮어볼 수 있는데, 우선 ‘지역’ 중심의 역사서술과 내러티브 위주의 작품군이 있다. 다음으로 근대적 내러티브가 포스트 근대적 매체 해체와 재조직의 과정에 등장하는 작품군으로, 여기서는 근대 주체의 소외, 재고립, 확장, 상실 이후 타자성들의 다양한 형태로의 귀환을 볼 수 있다. 다층감각과 정서의 전환 지점에 아피찻퐁의 다섯 개의 싱글채널 에피소드를 둘 수 있다. 이것은 어떤 전환의 지점으로 볼 수 있으며 이어서 다음으로 감각적, 정서적, 새로운 판타지적 역할이 어떻게 소비가 아닌 새로운 확실성의 영역이 될 수 있는지의 여부를 담지하면서, 마지막 지점으로 넘어가게 된다.

우선 ‘지역’을 중심으로 한 근대적-선형적 시간성에 근거한 작품군에서 시작한다. 여기서 처음에 보게 되는 것은 아이다 마코토의 작품이다. 자칭 일본 수상이라는 자의 퍼포먼스 연설인데, 이 작품에서 연설자는 ‘영어’ 공용화의 불편함을 퍼포밍하면서 전지구화를 적극 철회하고 역사를 되돌려 민족주의로 돌아갈 것을 주장한다. 날리니 말라니와 양푸동의 작품을 통해서 이러한 제안의 배경에는 사실 아시아 역사의 실질적인 이유와 그 중심에 ‘폭력’이 있음을 재확인하게 된다. 여기에서 아시아 고유의 민족주의와 가부장제, 혹은 계급주의가 전지구화를 통해 청산되었다기보다는 새로운 형태의 폭력으로 세탁되었고, 이어 보다 중층적인 ‘피해자’를 반복 재생산하고 심지어 미디어적으로 소비하고 있음을 성찰적, 정서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포스트 전쟁 증후 혹은 트라우마를 매체적으로 다룬다고 볼 수 있는 작품군에서는 근대적 시간성의 해체와 내러티브의 트라우마적 귀환을 볼 수 있다. 디지털 이미지로 재연된 비무장지대(DMZ)에서의 추억과 ‘지뢰’라는 매몰-잠재된 살상을 서정적으로 다룬 권하윤의 〈489년〉과 베트남 전쟁에서 일본의 패배라는 소재를 갖고 현대 일본 사회의 측면을 강박적인 리인액트먼트(재연) 방식을 통해 다소 증상적 후유증의 상태로 다룬 딘 큐 레의 〈모든 것은 재연이다〉가 조우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메이로 고이즈미의 〈영원한 처녀〉는 민족주의가 초래한 민족 주체성의 상실과 전지구적 소비대상화에 대한 포스트 트라우마적, 메타 미디어적 작품이 된다.

이어서는 아시아의 전지구화가 가져온 신자유주의적 파괴성이 단지 인권적, 지리적인 차원과 같은 타자화의 영역뿐 아니라 고유한 주체의 단독성의 영역에서 자리 잡고 있던 주술성, 판타지, 심지어 마술성과 미신성 등의 영역에까지 영향을 미쳤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미신적 혹은 판타지의 영역이 물질성의 차원으로 비천해진 것을 보여주는 호 추 니엔의 〈미지의 구름〉과 아흐마드 호세인의 작품 〈제4단계〉는 여기에서 한 쌍을 이룬다.

염지혜 〈분홍 돌고래와의 하룻밤〉싱글 채널 비디오 설치, 컬러, 사운드 21분 30초 2015

염지혜 〈분홍 돌고래와의 하룻밤〉싱글 채널 비디오 설치, 컬러, 사운드 21분 30초 2015

아래 쉬빙 〈지서(地書): 팝업북(낮)〉(왼쪽)영상 설치, 컬러, 사운드, 6분 20초 2015〈지서(地書): 팝업북(밤)〉 영상 설치, 컬러, 사운드, 3분 50초 2016 © Xu Bing Studio

 쉬빙 〈지서(地書): 팝업북(낮)〉(왼쪽)영상 설치, 컬러, 사운드, 6분 20초 2015〈지서(地書): 팝업북(밤)〉 영상 설치, 컬러, 사운드, 3분 50초 2016 © Xu Bing Studio

키워드로서 무빙이미지의 진면목

보다 일상적으로 친근해진 디지털 매체들의 다중시간적, 혼성적 타자성과의 조우 차원을 볼 수 있는 작품군에 염지혜의 〈분홍 돌고래와의 하룻밤〉이 있다. 이어 점차로 “무빙이미지”의 ‘반복-다중 시간성’과 새로운 소통방식으로서의 역할이 강조되어 감을 알 수 있고, 여기서 쉬빙의 디지털 시각언어_기호 책을 흥미롭게 열람할 수 있다. 쑹둥의 〈시작 끝〉의 무한 반복적 이미지와 직접적 재현 불가능성에 대한 시적 접근과 딘 큐 레의 〈네 순간의 무역센터〉로부터 우리는 전지구적 트라우마가 공유 (불)가능한 것인지, 혹은 불가능성 자체로 추상적으로 봉합되어 잠재성의 차원으로만 드러나는 것인지를 보게 된다.

아피찻퐁의 5개의 싱글채널 공간은 전체 전시에서 갈라짐의 지점, 경계 지점의 구실을 한다. 그동안 알려졌다시피 아피찻퐁은 포스트 식민주의의 관점에서 온정적인 정서를 바탕으로 배제된 생명의 영역이 어떻게 미디어적으로 귀환하는지를 보여왔다. 이에 우리는 역사와 한 국가, 지역의 이야기가 보다 복합적이고 다중적인 시·공간적 차원에서 전개되고 반복되며 웅얼거리는 차원에서 폭로될 수 있음을 보았다. 이를 통해 전설, 과거, 꿈, 트라우마, 판타지 등과 같은 비언어적, 비제도적, 상상적, 상징 이전의 상태, 혹은 무의식이나 전의식 상태와 같은 단독성의 영역이 어떻게 역사성이 실재적인 차원 즉 파편적 전체로, 혹은 이미지적 서술로, 혹은 주체-타자 간의 관계 항 속에서만 부상할 수 있는지를 역설케 된다.

만일 우리가 이 기점을 지나, 언뜻 어떤 변환의 기점을 감지할 수 있었다면, 하룬파로키의 다큐멘터리는 단지 다양성의 비교가 아니라, 세계의 전지구화와 그 역사의 궤적을 다시 걷게 되는 길잡이가 된다고 볼 수 있다. 와엘샤키와 문경원과 전준호의 작품에선 에피소드 혹은 소문이 단지 개인적인 상상적 내러티브로서 이국적이거나 흥미로운 차원이 아니라, 심각한 실재성의 차원일 수 있음이 드러난다. 여기서 잠시 새롭게 획득될 확실성은 혼성적이고 다중적 시간의 패러다임에서만 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거론할 작품군에서는 일종의 봉합과 무한반복이 어떻게 하여 근대적인 시간성을 넘어선 다른 차원의 시간성에서 정서와 감각으로 확장되는지를 보게 된다. 전시장의 마지막 지점에서 문틴&로젠블룸, AES+F의 작품을 보게 되는데, 파토스적 인물들의 다소 장엄해보일 수 있는 포스트 휴먼적 매체퍼포먼스 이미지가 특징이 된다. 즉 근대의 잠재성이란 것이 전지구화와 신자유주의적으로 ‘소비’되고 남겨진 ‘이미지’들이 되었을때, 과연 이들이 다시 다층적인 감각과 복합적인 감성, 정서와 순수 형식으로의 충동 등을 통해 산-죽은 상태가 아닌 생동하는 포스트 휴먼적 내러티브를 새롭게 구축해 나갈 수 있을지, 그리고 이때 어떤 확실성에 기반을 둘지, 혹은 요청되는지를 되묻게 되기에 이르는 것이다.

과연 새롭게 감각적 정서적으로 귀환해온 단독성의 영역들과 새로이 발굴될 세대성이 새로운 패러다임과 혼성적 (포스트 휴먼적 관점의) 시간을 내다볼 때 어떤 기틀이자 잠재성이 되며 또한 어떤 기점이 될 수 있겠는가. 물론 전시 관람의 시작에서 꿈꾸고 상상했던 새로운 내러티브, 혹은 시간적 경험이 비록 꼬박 하루가 걸리는 관람이라 할지라도, 그 짧은 시간에 획득될 리는 없다. 실천의 시간은 아마도 분명한 확실성에 기반을 둘 것이며 현대성이란 갈라짐의 연속이고, 역사란 파편화된 고유 요소들이 순수 형식으로서의 충동처럼 출몰하는 시간이라는 점은 확실한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