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 FOCUS SeMa Blue 2016 Seoul Babel

서울바벨_서울시립 (11)

청년, 중진, 원로로 구분되는 SeMA 삼색전 시리즈 중 하나로 동시대 한국 미술계에서 활동하는 청년 작가들의 움직임을 집중 조명하는 전시가 열렸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서울 바벨전>(1.19~4.5)이 그것.
서울시 곳곳에서 자생적으로 생성되고 있는 공동체 형태로 예술 창작활동을 선보이는 예술 플랫폼 총 17팀, 70여 명의 기획자 및 작가들이 참여했다. 이들 대부분은 일시적 임차 공간을 공유하거나 혹은 온라인, SNS상의 비물질적인 공간을 넘나들며 한시적으로 모였다가 흩어지는 등 비정형화된 활동을 선보인다. 800/40, 아카이브 봄, 지금여기, 청량엑스포, 합정지구 등 참여 플랫폼은 전시 안에 전시를 구성하며 저마다의 개성을 연출한다. 필자는 최근 청년 작가들의 움직임을 예술의 사회화 과정에서 주목되는 흐름으로 보고 심층적 해석을 시도한다.

미술관에 입성한 신생공간의 딜레마

신현진 미술비평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서울 바벨전>은 서울에서 활동하는 신세대 미술가의 예술실천을 한자리에 모아 놓음으로써 2013년부터 달구어진 ‘청년작가,’ ‘세대론,’ ‘신생공간’ 등의 이슈를 다시 한 번 무대의 중앙에 세우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바벨’이라는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서울 바벨>이 그렇다고 신세대의 예술실천을 시원하게 정의해주는 전시는 아니었는데 필자는 이 지면을 빌려 신세대 예술인의 실천경향이 혹시 예술의 사회화 연장선에서 해석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자 한다.
필자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신세대를 다룬 이전의 글들에서는 모던과 포스트모던 사고 프레임의 충돌이라는 결론으로 마무리되곤 했다. 그중 기억에 남는 것은 1990년대 대안공간 세대를 “이젠 우리가 알아서 뜰거야!”로, 현재의 젊은 세대를 “이젠 우리끼리 터잡고 놀거야”로 대조하면서 신세대가 성찰과 저항이라는 비평적 시각을 잃었음을 한탄한 글이다.1
1990년 말에서 2000년대의 청년에 의해 주도된 ‘대안공간’의 활약을 지켜보았고 최근 청년 중 상당수가 전시공간이나 일시적 프로젝트를 마련하고 있음을 알게 된 기성 예술계가 이들을 ‘신생공간’이라 부르며 어떤 대안을 제시할지 기대하고 실망하는 것은 일견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러나 ‘너희의 정체를 밝히라’는 요구에 대한 신세대 당사자들의 대응 또한 의미심장한데 이들은 첫째, 신생공간이란 명칭은 누구를 계승하는 사고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둘째, ‘청년’이라는 용어가 조만간 중년이 될 자신들의 개별성을 담보하지 못함을 지적했다.2 덧붙여 이러한 요구가 기성세대의 욕망이라며 이렇다 할 미학 없음이 왜 보편적인 문제가 아니라 신세대에게 부과되는 과제여야 하는가를3 되묻기도 했다. 옳은 말이다. 신세대는 대안공간처럼 공간을 구심점으로 활동하지도 않으며 SNS를 통해 동시다발적으로 모였다가 흩어질 뿐이다.4
더구나 “개별적인 예술실천을 함께 할 뿐, 균질성을 경계하면서 공동체를 작동시키는 통일된 포지션을 갖지 않는다”5는 이번 전시에서 더해진 ‘작동하지 않는’ 공동체라는, 신세대를 정의하는 표현은 ‘무위’6와 같은 유럽 후기구조주의 이론과 공명하고 있다. 이를 감안했을 때 ‘너희의 목표가 무엇이냐?’라는 질문은 그저 미술사를 통해 미술운동의 흥망성쇠를 꾸준히 접해왔고, ‘대안’을 찾아 어딘가로 발전해가야 한다는 변증법의 강박에 시달리는, 그리고 상업화된 예술계에 실험미술의 활력을 수혈 받고 싶은 욕망을 가진 기성세대의 구조주의적 사고 프레임에서 비롯된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므로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입장을 철학의 관점에서 보면 모던과 포스트모던 사고체계의 차이를 보여준다는 결론도 내려질 법하다.
한편, 신세대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규정하려 할 때 이들은 자신의 미술을 보여주는 대신에(혹은 미학이 아직 정리될 단계에 있지 않거나일 텐데) 왜 존재하는 방식을 표현하는 단어인 ‘작동하지 않는’ 일시적 연대, ‘인스턴스(instance),’ 혹은 ‘노드(node)’를 사용할까?7 필자는 현대판 신구 논쟁이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의 발전 도상에서 ‘사회화’를 겪는 예술을 반영한다고 해석한다. 달리 말하자면 예술은 형이상학의 세계에서 현실세계로 내려오는 사회화 과정을 겪고 있으며 초월적 관념이 더 이상 예술계가 행사할 규범을 제공할 수 없기 때문에 예술은 상대적 가치체계라는 맥락 안에 놓이게 되었다. 정치 행동을 유발하는 상대주의라는 현실에서 예술인은 스스로의 예술실천을 사회와 조율하는 정치, 제도적 과제도 함께 떠안게 된 것은 아닐까? 그리고 미학의 내용을 규정하는 일만큼이나 혹은 그보다도 중요한 현실적 사안이 된 것은 아닐까?
1960년대 미국의 대안공간이 포스트모던 예술을 가장 먼저 소개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안공간을 포스트모던 미학과 동일시하지 않고 ‘공간’이라는 제도적 용어로 아우를 수밖에 없지 않은가? 대안공간 이래 사회 안에서 예술의 위치를 조율하는 활동은 미학만큼의 비중을 가지고 평행하게 이뤄져왔다. 사회화의 내용으로는 당연히 자본주의와의 협상이 주를 이룬다. 1960년대 개념미술은 행정의 미학으로 표현되고8 1960년대 미국 대안공간은 국가가 지원금 수혜의 기본조건으로 전제한 대로 운영위원회-디렉터-큐레이터로 구성된 위계질서를 갖춘 관료화를 택하면서 기업 운영 논리를 수용하였다. 1990년대 유럽이나 한국의 대안공간은 자본주의의 승자 독식 개념을 내면화한 자기 프로모션 개념을 확산하였으며 대표적인 예가 신진작가 스타 만들기이다. 그리고 2010년대 신세대는 국립현대미술관에 청년관 건립(2013)으로 경쟁우위라는 정치적 지원을 요구하고, 작가피(2014)로 예술이 노동임을, 예술 활동의 파생 산물을 굳-즈(2015) 라고 명명하면서 예술의 경계가 흐려짐을 알려주었다. 이들이 철학적으로는 각각 다른 입장을 표방하는 탓에 누가 누구를 계승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예술과 정치, 경제 논리를 점점 더 근접하게 하는 예술의 사회화 측면에서 보면 동일한 발전 경로에 놓인다.

서울바벨_서울시립 (7)

전솔비, 김양우, 오유진, 이지원, 김정화가 운영자로 활동 중인 ‘800/40’은 전시, 공연, 음악 등 다양한 장르의 작업을 발표하는 플랫폼으로 을지로 대림상가에 위치해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청년 세대의 불안을 반영한 < 27 Club전 >을 마련했다.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예술실천
대안공간이나 신생공간이 풀뿌리 예술기관이라는 규모에 근거하여 비교의 대상이 되곤 하지만 자본주의 논리를 수용하는 활동 측면에서는 미술관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와 관련하여 레베카 고든-네스빗은 파리 근대미술관의 <삶/생활>(1996), 광주비엔날레의 <멈춤>(2002), 스웨덴 루지움의 <발틱 바벨>(2002)을 비교한 논문을 발표하였다.9 이들 전시는 수도권의 거대 규모 미술관이 대안공간들을 대거 초청하여 당시의 역동적인 새로운 기운들을 해석하고 정리해 보여주는 공통점을 가진다. 그러한 맥락에서 <서울 바벨>은 영국 테이트 모던이 기획한 (2010)와 함께 고든-네스빗의 논지와 많은 유사 지점을 보여준다. 고든-네스빗은 논문에서 대규모 미술관의 행동 양식이 맥도날드와 같은 다국적 기업이 전 세계 지역의 상권을 확보할 때 지역의 자생적 산물을 메뉴에 활용하면서 맥도날드의 서비스가 식당문화 기준으로 자리 잡도록 유도하고 종국에는 지역의 소규모 식당을 대체하는 활동과 유사하다고 주장했다.
말하자면 미술관은 지역의 자생적이고 실험적인 예술실천을 미술관 프로그램으로 활용하고 혼란처럼 보이는 예술실천을 거대 기관들이 정의한 큰 그림으로 제시한다. 이로써 미술관은 예술실천을 통제하고 재분배하는 권위를 행사할 기회를 얻는다. 따라서 서울시립미술관이 신세대를 대체할 생각도 없겠지만 “기획자들 및 작가들의 독립적이고 유기적인 행보를 지원하려는”10 본연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신세대의 실천을 활용한 서울시립미술관에 동시대 예술실천을 정의하는 권위와 예술계 안에서의 헤게모니를 자본주의 방식으로 부여한다.
사회화의 과정에서 대안공간의 역사가 자본주의에 많은 것을 내어주는 편이었다면 신세대의 활동은 적어도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개별적 예술인의 실천이 좀 더 민주적으로 존재하는 방식을 도모하는 정치에 가깝다. 작가 수의 과부하로 기존 예술계 기관들이 이들을 소화할 수 없게 되자 소통의 기회를 임의로 제공한다는 인스턴스와 예술계가 중앙에서 이미지를 프로세스하고 재분배하기 이전의 단계에서 관객과 예술계에 이미지로의 접근성을 용이하게 한다는 노드의 개념은 예술계 바깥의 예술인들에게 대외적 예술실천의 기회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또한 “제도의 승인 이전에 동료의 승인에 만족”11 한다는 그들의 선언은 예술이 예술계의 권위 바깥인 사회로 확장되어 주관적인 예술실천이 유의미함을 알려주는 지시자이다.
이들의 활동은 예술계 바깥의 예술에 호환성을 부여함으로써 좀 더 민주적인 예술 환경을 만든다. 다만 이들이 동료의 승인에 만족하는 행위는 비전공 미술인 동호회가 “터잡고 노는” 행위와의 구별도 모호하게 만든다. 이들의 실천이 예술의 민주화라는 사회적 기능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인스턴스’와 ‘노드’로 좁혀지는 신세대의 활동은 신세대가 생각만큼 래디컬하지 않음을 알게 해주는데 제도의 승인 ‘이전’이라는 표현은 예술계에 간택되기 이전의 시간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예술계로의 입성보다 더 중요한 것이 예술적 체험이라는 뜻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신세대가 “터잡고 논다”는 야유에도 일리가 있는 셈이다.
경계가 모호해진 현재 예술의 사회화된 여건을 인지한 신세대에게 찬사를 보내고 싶지만 이들은 선택의 기로에 서있는 듯하다. <서울 바벨>류의 전시가 예술계로부터의 승인을 행사함으로써 참가자들이 예술계에 입성하는 공생의 관계를 이루기 때문이다. 이들이 예술계를 의식하는 예술인이고 예술계의 법칙에 적응하려 한다면 동호회 활동과의 차이(우위)도 증명하는, 즉 미학을 가시화하는 책임도 스스로에게 있음을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이들이 예술의 민주화라는 사회적 기능을 인식한다면 <서울 바벨>류의 전시는 기성 미술관들에 의해 형식주의로 정리되기 때문에 신세대의 예술실천은 예술이 사회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재 조율하는 기능으로부터 멀어질 공산이 크다는 점을 환기하고 싶다.●

위 전솔비, 김양우, 오유진, 이지원, 김정화가 운영자로 활동 중인 ‘800/40’은 전시, 공연, 음악 등 다양한 장르의 작업을 발표하는 플랫폼으로 을지로 대림상가에 위치해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청년 세대의 불안을 반영한 을 마련했다.
아래 ‘정신과 시간의 방’은 오은, 정재용, 정홍식, 최중호로 구성된 ‘그룹789’가 서울 성산동의 임시 공간을 거점으로 삼아 작가 되기 훈련의 일환으로 진행하는 한시적 프로젝트다. 2주에 한 번씩 자율적으로 작업을 교체한다는 그룹 내부의 규칙을 이번 전시에도 적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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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엑스포’는 2015년부터 2017년까지 가동하는 한시적 프로젝트 공간으로 퀴어문화를 조명하는 전시와 프로젝트를 선보인다. 최진용 <깨끗한 거리 캠페인>(오른쪽) 캠페인 운영, 홍보 부스, 웹사이트, 책자 가변크기 2015

1 노형석, <이젠 우리가 알아서 뜰거야!>, 《월간미술》(2015, 08), p.71.
2 현시원, <국립현대미술관을 박차고 나온 젊은 예술가들>, 《프레시안》(2015.07.31).
3 윤율리, <하나의 유령이 미술을 배회하고 있다>, 반지하 블로그.http://vanziha.tumblr.com/tagged/text 2월 14일 접근)
4 강정석, <서울의 인스턴스 던전들>, 반지하 블로그 (http://vanziha.tumblr.com/tagged/text)
5 하마, <이미지 공유지로서의 신생공간 ‘노드’ 혹은 ‘대안공간 2.0’>, 하마 블로그 (http://artcomics.tistory.)
6 신은진, <서울 바벨전> 도록, p.13. 예술가 모임 ‘활활’을 설명한 부분.
여기에 낭시를 적용할 수 있는데 <서울 바벨>의 기획자 신은진은 부제로 작동하지 않는 공동체를 고려했었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7 강정석, 하마, 같은 글.
8 Benjamin Buchloh, ,《October》, Vol. 55 (Winter, 1990), pp.105~143.
9 Gordon-Nesbitt, Rebecca. , 《Life/Live: The Artistic Scene in the UK in 1996》, exhibition catalogue
(Paris: The Musee d’Art Moderne de la Ville de Paris, 1996).
(출처: https://shiftyparadigms.wordpress.com/non-fiction/surprise-me/2016년 2월 18일 접근)와 Gordon-Nesbitt, Rebecca. , 《Verksted #1》, Jonas Ekeberg, Ed.
(Oslo: Office for Contemporary Art, 2003), pp.59~87 참조.
10 <서울 바벨>(2016) 보도자료.
11 신혜영, <지속가능한 구조를 위한 작은 움직임>, 《굳-즈 2015》 행사도록 (2015), p.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