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 TOPIC

외관 (8)

서울 강남구 언주로에 새로운 문화공간,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Platform-L Contemporary Art Center)가 들어섰다. 개관 기념전으로 중국의 양푸동과 한국의 배영환의 개인전이 열린다. 양푸동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세 여성과 사슴 등에게 투영해 표현했으며, 배영환은 동시대를 살면서 느끼게 되는 상실감과 억압 등을 새로 은유하였다. 전시는 8월 7일까지.

나선형 역사 속에 비친 남성적 향수(鄕愁)

진휘연 한예종 교수

한 공간에서 동시에 열린 두 개인전에서 한국과 중국의 중견작가가 신작을 선보였다. 양푸동은 오프닝에 맞춰 마련된 작가와의 대화 시간에, 자신의 작품세계와 신작에 대해 비교적 상세한 설명을 들려줬다. 중국 근현대화와 경제적 팽창에 따른 도시화와 서구화, 그리고 중국 역사의 단면을 세계미술의 흐름에 근거해서 비디오와 설치, 사진으로 제작해온 작가는 이번에 차이추성 감독의 1935년 영화 〈신여성〉에 대한 일종의 오마주로 〈천색: 신여성 II〉를 제작했다.
신여성은 타지역, 특히 발달한 서구의 영향으로 달라진 옷차림을 하고, 전통이나 관습에 저항하는 모습에 국한되지 않는다. 사회, 정치, 경제, 문화적 지위 향상이나 활동 영역의 확장은 물론, 가정 안에서의 역할 변화, 그것을 둘러싸고 진행되는 타자의 수용을 아우르는 복잡하고도 총체적인 인식을 포함할 뿐 아니라, 변화를 선도하는 담론의 주체로서 인정될 때 신여성은 현재진행형 존재가 된다,
그러나 양푸동은 새로운 매체의 시대에서 만나는 여성 이미지로 신여성의 범주를 규정하고 있는 듯하다. 광고나 잡지에 등장하는 여성의 멋진 외모와 상품과 연결된 이미지들, 핀업걸들을 연상시키는 행동이나 포즈를 따라 하는 모습으로 그려낸다. 그의 작품 속 신여성은 결국 대중매체에서 반복해 노출되는 여성의 이미지에 가깝고, 매체가 그것을 재생산하는 방식에 대한 관심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런 점은 이미 1970년대 후반 신디 셔먼의 작품 〈무제: 영화스틸〉에서 다뤄졌고, 이후 여러 작가의 주제가 되기도 했다.
여성 둘이 몸에 밀착된 짧은 옷차림으로 서로의 몸에 손을 대고 있는 장면이나 비키니를 입고 과장된 움직임으로 발랄함과 젊음을 드러내는 모습, 화면 밖 관객을 강렬하게 응시하는 모습 등을 취하며, ‘여성성’과 대중매체의 이미지 체계가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발전해왔음을 시사하고 있다.
양푸동은 남성 시선의 타자로서 존재할 뿐 아니라, 매력의 주체로서 여성의 자의적 태도를 과장되게 표현함으로써, 소위 여성성, 아름다움, 젊음의 허구성을 드러낸다고 했다. 매체의 선정성을 암시하지만, 동시에 여성 스스로가 이미지 제작의 주체로서 모든 장면을 연출하고 있음도 강조한다. 이런 점에서 그의 신여성은 신디 셔먼의 작품 속 여성들과 또 다른 측면을 갖는다.
눈에 보이는 것이 강렬할수록 그 뒤에 숨은 허상이 감지되지만, 작품은 실체가 아닌 것을 드러내기보다는 허구를 향한 여성과 매체의 양방향 욕망에 대한 포착이란 점에서 흥미로웠다. 무리 지어 포도를 기어가는 작은 벌레들에서 그의 의도는 절정을 맞는다. 서구 정물화의 전통에서 제기된 ‘베니타스,’ 허무함과 삶의 유한함이란 경구를 빌려와서 눈에 보이는 것에 대한 경계이자 유희의 함정을 지적한다.
장면마다 프레임의 시간을 조절하고 소리를 더함 으로써 극적이고도 흡입력 있는 영상 작품을 소개해온 작가는 중국 특유의 미적 감각, 여성에 대한 전통적 미학의 유산과 새로운 취향 간의 충돌도 담아낸다. 고대 진나라 황실에서 유래된 〈위록위마(謂鹿爲馬)〉를 기초로 한 〈사슴과 말〉에선 진짜처럼 보이는 사슴 주위를 빙빙 도는 말의 모습에서 2000년의 시간차를 두고 이어지는 중국의 역사와 예술적 감성의 연대가 부각되기도 한다.
경제적 부흥으로 사회 변화가 급격한 곳에서 여성의 이미지는 언제나 전면에 나타나는 기호가 된다. 작가는 중국 여성을 담아내는 매체의 역사적 흐름을 전제하면서도 이것을 어느 시기에도 보편성을 가질 수 있는 상황으로 전환시키려했다. 그래서 이들은 서양 기원의 옷차림에 중국 전통의 머리모양을 결합한, 모호하지만 동시에 탈지역적, 탈시간적 존재로 각인된다.
그러나 현재의 눈과 과거 사이의 거리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무수한 변수가 양푸동 작품에서 점차 정형화하고 있지는 않은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여성과 매체, 그리고 진실과 허구라는 익숙하고도 반복적인 주제 너머의 무엇을 제시하기에 이번 작품은 매우 예스러워 보였다. 주제를 압도하는 감각적 영상도 이미 익숙한 느낌이다. 진짜와 가짜가 함께 존재하기 위해 설정된 구분과 분리의 경계가, 아슬아슬하게 숨었다 드러나기를 반복해야 하는데, 이 작품에서는 경계와 거리가 모두 너무 분명하고도 꾸준했다.

양푸동 〈천색: 신여성Ⅱ〉 5채널 HD 컬러 비디오 설치 12~15분 47초 2014

양푸동 〈천색: 신여성Ⅱ〉 5채널 HD 컬러 비디오 설치 12~15분 47초 2014

양푸동 (3)

정제된 공간에서 잠든 반항의 날개
시사적이고도 무게 있는 주제를 능숙하게 비튼 또 다른 작가, 배영환은 〈새들의 나라〉라는 낭만적 제목을 선택했다. 배영환은 자유와 억압, 권력과 욕망이라는 보편적 화두를 다룬다. 영상, 조각, 드로잉, 설치 등 입체적인 형식을 갖춘 전시에서 깃털 옷을 입은 댄서가 크로마키 배경에서 춤추는 모습을 촬영해서 〈추동추사〉란 동영상 연작으로 제작했다. 마치 새의 깃털만이 즉흥적으로 움직이듯 역동적인 모습을 담았다. 북소리의 빠른 비트에 맞추어 움직이는 깃털은 생명, 에너지, 기운, 자유의 상징처럼 보인다.
아래층의 〈말, 생각, 뜻〉과 〈사각 지구본〉은 함께 설치돼 있어서 마치 한 작품처럼 느껴진다. 눈금자 위에 눈을 가린 채 앉아 있는 큰 앵무새는 현실을 거부하는 존재이자 복종을 강요하는 권력의 실체일 수도 있고, 날기를 희망하지만 가린 눈 때문에 제한되고 억압된 세계를 상징하기도 한다. 그 주변에는 네모난 입방체 위에 대륙과 바다가 뚜렷하게 구분 돼 표시된 변형 지구본들이 놓여 있다. 진실을 거부하고, 자신의 세계에 빠져서 평평한 지구만을 신봉했던 과거 인간의 잘못된 신념, 거짓된 착각에 대한 작가의 일갈이다. 이번 전시에서 소리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자 작품의 한 부분이었다. 빠른 비트의 북소리는 경쾌한 움직임을 원시의 힘처럼 느끼게 하고 확성기와 라디오에서 나오는 각국의 뉴스들도 일상이 주는 소음과 정보의 간극을 강조한다.
배영환은 깨진 소주병 조각들로 화려한 샹들리에를 만들고, 각성제로 유행가의 가사를 적거나 악보를 만들면서 권력의 가시적, 비가시적 억압에 대한 보통 사람들의 일상을 애정어린 시각과 낭만적 감성으로 제시해왔다. 시각, 촉각, 청각을 모두 자극하는 그의 작품들에서 주제의 무게와 감각적 측면은 늘 균형을 맞춰왔다. 자유로운 움직임을 통해 제도의 모순과 통제를 거부하려는 그의 의도는, ‘지금 이 시간’이라는 시사적 관점과도 연관된다. 다만 매우 설명적이고 친절한 작품과 지나치게 정돈된 표현에서, 배영환의 이번 작품들은 새로운 변형을 앞두고 있다고 느껴졌다.
이 두 작가의 개인전은 플랫폼-엘의 개관전이라는 점 외에는 공통점이 없는 듯 보인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볼 때, 현대사회에서 매 순간 마주치는 매체의 힘과 시민 간 상호성을 담보하고, 과거부터 연속성을 갖는 시간 안에서 오늘 이 시점의 문제, 역사의 아이러니를 이미지화한다는 점에서 큰 공통점을 갖는다. 또한 감각적, 감성적 표현과 만듦새도 닮아있다. 그런데, 이들이 분석한 역사와 이미지에는 남성 시각의 편향성도 존재한다. 보이는 것 너머에서 작동하던 권력으로서의 남성 실체에 대해 큰 비판 없는 수용은 동시대 억압과 모순 안에서도 이어질 뿐 아니라, 더욱 견고한 역사화 과정을 거치게 된다. 특히 양푸동의 작품들, 자본이 요구하는 여성의 이미지에서는 허구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이 드러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여성들의 욕망만이 더욱 강렬하게 다가왔다. 배영환 작품에서 권력과 자유라는 구조 안에서 춤추는 주체의 모습 역시, 체제 안에서 이미 용납되는 수준이자 지극히 낭만적인 반항의 표현으로 보인다.
유사한 궤도를 도는 역사의 흐름이 언제나 확장된다고 믿는다면, 이 작가들의 낭만적 감성이 또 다른 변형을 준비한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출발점에 선 미술관 역시 여러 모양의 충돌을 수용할 수 있는 큰 시각의 기관이 되길 기대해본다. 지나치게 깔끔해서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을 듯한 공간의 성격도 앞으로 도전받아야 할 부분이었다. ●

배영환 (15)

배영환 〈말, 생각, 뜻〉 혼합재료 210×225cm 2016

배영환 (9)

배영환 〈추상동사-Can you remember?〉4채널 영상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