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 TOPIC MARK ROTH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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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추상표현주의를 대표하는 작가 마크 로스코(Mark Rothko, 1903~1970)의 초기작부터 타계 직전까지의 작품 50점을 소개하는 <마크 로스코전>(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3.23~6.28)이 열린다. 알려진 바대로 로스코의 작업은 신비로움을 넘어 종교적 차원의 감흥을 일으키는 힘을 지닌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성당을 연상시키는 전시장을 거닐면서 작품이 주는 ‘숭고함’이란 어떤 것인지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추상의 의미와 유효성

정무정 덕성여대 교수

마크 로스코(Mark Rothko, 1903~1970)는 2차 대전 이후 국제적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추상표현주의를 대변하는 작가다. 로스코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작품들은 대체로 커다란 수직의 캔버스에 몇 개의 사각형이 배치된 형태를 취한다. 전반적으로 그의 작품에선 정면성과 대칭성이라는 형태적 특성상 정적인 느낌이 지배적이지만, 동시에 표면의 섬세한 회화적 터치로 그 정적인 공간을 채운 미묘한 파장이 감지되기도 한다. 이로 인해 그의 작품은 일찍부터 신비적, 종교적 차원의 감정과 정서를 환기시킨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예컨대 미술사가인 존 캐너데이(John Canaday)는 1961년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전시리뷰에서 그의 회화에 보이는 색채의 무게감과 사각형의 거대함이 원시적 종교의 제의적 상징을 시사한다고 주장했고, 1978년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열린 회고전을 보며 미술비평가 힐튼 크레이머(Hilton Kramer)는 그의 작품세계를 ‘종교적 신념의 미술’로 규정지었다. 깊은 공명을 자아내며 많은 관람자를 작품 앞에 멈춰 서게 하거나 눈물 흘리게 만드는 로스코 작품의 이러한 특성은 깨달음의 순간처럼 단숨에 형성된 것이 아니라 부단한 탐색과 도전과 변화의 결과로 얻어진 산물이었다.
주요 추상표현주의자들 중 가장 연장자였던 로스코는 라트비아 출신으로 1925년 뉴욕시의 비공식미술학교인 미술학도연맹에 등록해 미국 초기 모더니스트인 막스 웨버(Max Weber)를 사사했지만 본질적으로는 독학으로 미술공부를 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의 초기 작업은 주로 피카소를 연상시키는 구상작품이나 존 마린(John Marin)이나 밀턴 에이버리(Milton Avery)와 같은 미국 1세대 모더니스트의 영향을 보이는 작품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작업에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938년부터로 이 시기에 시작된 신화적 주제의 반추상 작업은 1940년대 초반까지 지속된다. 이들 작품에서는 고대 미술, 그리스 도기회화, 건축 장식에서 유래된 수평적 띠로 화면이 구획되고, 구획된 공간에 고대미술의 잔재나 파편을 연상시키는 이미지가 채워져 고대 그리스의 종교적, 신화적 장면이 연상된다. 특히, <안티코네>, <독수리의 전조>, <시리아의 황소>, <이피케니아의 희생>과 같은 이 시기 작품의 제목은 로스코의 고대 미술과 신화에 대한 관심을 잘 보여주는 데, 1943년 10월 아돌프 고틀리브와 함께 출연한 라디오 방송(WNYC)에서 그는 신화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경험을 표현하고 있다는 신념을 피력했다. “우리의 제목이 익숙한 고대의 신화를 연상시킨다고 할 때, 우리가 그러한 것을 다시 사용하는 이유는 그것이 기본적인 심리적 관념을 표현하기 위해 우리가 의지해야 할 영원한 상징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간의 원시적 공포와 욕구의 상징으로 그리스, 아즈텍, 아이슬란드 또는 이집트 등 어느 지역, 어느 시기를 막론하고 오직 세부에서만 변화할 뿐 그 실체는 변하지 않는다. 현대심리학은 삶의 외적인 조건이 모두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우리의 꿈과 일상 언어와 미술에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고 본다.”
1943~44년에 이르러 로스코는 이러한 신화적 구체성이 자신의 작품에 대한 해석을 한정시킨다는 생각에 변화를 모색하게 된다. 이 시기 그는 주로 수채로 작업하며 세부 묘사보다는 일반화된 형태를 선호하고 수용성 물감이 자아내는 유동적 붓터치에 집중했다. 이들 종이작업에서는 대체로 명도가 낮은 색이 넓은 부위에 다소 투명하게 채색되고 그 위에 무정형의 형태가 배치된다. 이 무정형의 형태는 인간 존재를 암시하면서 동시에 원초적 유기체를 연상시킨다. 바탕색이나 수평선으로 구획된 얕은 공간 속에서 부유하는 듯한 이 연약한 형태는 면도칼 같은 날카로운 도구나 붓의 나무 손잡이 등으로 갓 칠한 물감을 긁거나 문지르고 물감을 뿌려 점묘적 효과를 내는 등의 새로운 기법을 통해 획득된 것이다. 이 시기 로스코의 자유로운 실험은 미로, 클레 등의 작품과 같은 유럽 모더니즘 미술에 대한 이해와 마타, 에른스트, 마송과 같은 초현실주의자들의 회화, 드로잉에 구사된 정신적 자동기술법의 영향으로 가능한 것이었다.

 캔버스에 유채 236.6×211.5cm 1956 © 1998 Kate Rothko Prizel and Christopher Rothko/ARS, NY/SACK, Seoul

<무제> 캔버스에 유채 236.6×211.5cm 1956 © 1998 Kate Rothko Prizel and Christopher Rothko/ARS, NY/SACK, Seoul

“나는 추상주의자가 아니다”
이 시기부터 미국 미술계도 로스코를 비롯한 추상표현주의자들의 새로운 작업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1945년 3월에 열린 <비평가의 문제(A Problem for Critics)전>을 통해 하워드 퍼첼(Howard Putzel)은 “1940년 이래로 회화에서 새로운 변형을 향한 추세가 나타났다”고 주장하며 그 ‘새로운 변형’의 근원으로 아르프, 미로(Joan Miró) 그리고 피카소를 꼽았다. 추상표현주의의 이론적 토대를 세운 비평가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도 퍼첼의 주장에 공감했지만, 미국 미술가들의 작품을 아르프나 미로와 연관시키지 않았고, 1948년에 이르러서는 큐비즘의 쇠퇴를 선언함과 동시에 큐비즘의 개념적 토대와 구조에서도 벗어난 비위계적이고 전면적인 구성을 통해 새로운 출발이 이루어졌다고 주장했다. 반면 당사자인 추상표현주의자들은 유럽미술과의 관계 속에서 추상표현주의 작품의 기원과 새로운 형식적 발전을 설명하는 퍼첼이나 그린버그의 주장을 반박했다. 예컨대 바넷 뉴먼은 자신의 의도가 미술에 형이상학적 내용을 부여하는 ‘숭고’의 표현임을 강조했고, 로스코도 퍼첼의 분석에 대해 실망감을 느끼고 1945년 6월 1일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신화창조자이다. 따라서 실재에 대한 호불호의 선입관을 갖고 있지 않다. 모든 신화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회화는 기꺼이 실재의 파편을 ‘비실재적’이라 간주되는 것과 결합하고 이러한 통합의 타당성을 강조한다”고 주장했다.
1946년부터 로스코의 작품은 보다 추상적으로 변화하였다, 화면에 분산된 형태가 더 거칠어지고 가장자리가 회화적으로 처리되는 과도기를 거쳐 형상과 배경이 완전히 통합된 전체 화면에 부유하는 듯한 부드러운 사각의 형태가 활기를 부여하는 양상으로 바뀐 것이다. 이처럼 로스코가 추상으로 완전히 전환한 것은 다양한 기법에 의해 획득된 그의 합성적 형상조차 매우 제한적이고 구체적이라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같은 이유로 제목을 붙이는 것도 포기하고 숫자로 대체했다. 이러한 그의 성숙기 작품은 너무 추상적이고 이야기와 모방을 거부한다는 점 때문에 많은 의심과 비판을 받았지만 로스코는 계속해서 그의 성숙기 회화가 추상적이라는 평가에 반론을 제기하며 오히려 사실적이며 진정하고 구체적이며 무엇보다도 의미 있는 주제를 지니고 있다고 주장했다. “나는 추상주의자가 아니다.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색채나 형태 또는 다른 어떤 것의 관계가 아니다. 나는 기본적 인간의 감정—비극, 엑스터시, 운명 등—을 표현하는 데만 관심이 있다. 많은 사람이 내 그림을 대면하면서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눈물을 흘린다는 사실은 내가 이 기본적 인간의 감정과 소통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내 그림 앞에서 우는 사람들은 내가 그 작품을 그릴 때 느낀 것과 동일한 종교적 경험을 갖는 것이다. 만일 색채의 관계에만 감동을 받는다면 중요한 점을 놓치는 것이다.”(Seldon Rodman, <Conversations with Artists>, New York: Capricorn, 1961, pp. 93~94)
이러한 주장은 로스코의 추상적 형태가 가시적 경험과 직접적 연관은 없지만, 그의 초기 작업에 보이는 유기적 형상에 내포된 원리와 의지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는 의미라 할 수 있다. 원시, 고대미술과의 정신적 유대감을 공언하고 비극적이고 영원한 주제만이 유효하다고 주장하는 로스코에게 그의 성숙기 추상작업은 추상적 사고와 경외심의 살아있는 매개물이었던 셈이다. 여전히 로스코의 작품 앞에서 무언가에 홀린 듯 멈춰서는 관람객은 로스코의 진정성을 웅변하는 증거라 할 수 있다. 워싱턴 국립미술관이 소장한 로스코의 작품이 대거 한국에 들어와 꾸려진 이번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전시는 그의 진정성을 확인할 좋은기회가 되리라 본다.

 캔버스에 아크릴 152.4×145.1cm 1970

<무제> 캔버스에 아크릴 152.4×145.1cm 1970

interview

“〈마크 로스코전〉같은 의미있는 전시는 계속 열려야”

㈜코바나컨텐츠 대표 김건희

㈜코바나컨텐츠 대표 김건희

전시를 개최하게 된 계기에 대해 알려달라.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하는 작가다, 작품평가액이 매우 높은 데다가 미국의 국립미술관인 워싱턴국립미술관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이 해외반출을 안하기로 유명한 터라 감히 들여올 엄두도 내기 어려운 작품이었다. 그런데 미술관의 리노베이션 덕분에 대규모 마크 로스코 전시를 기획하게 되었다.
이번 전시에서 로스코의 어떤 면모를 드러낼 수 있을지 설명을 부탁한다. 마크 로스코는 양차 세계대전을 겪고 미국으로 망명한 작가로, 랍비교육까지 철저하게 받은 유대인 출신이다. 신화, 철학, 성서의 본질을 학습한 그는 이후 인간을 철저히 연구하면서 고유의 정신세계를 구축했다. 당연히 작품 또한 깊고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담고 있다. 그래서 우리와 호흡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그의 초기부터 중기 전성기 말기에 이르는 작품을 총망라해 한 작가의 위대한 작품세계를 만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다.
이번 전시를 관람할 때 흥미를 더욱 돋울 수 있는 팁을 알려준다면? 전문가를 제외한 대중은 사실 유명한 인상파 작가인 고흐의 진짜 가치도 잘 모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전시에서 그 기본개념을 제대로 설명하느냐 여부는 중요한 문제다. 유명해서 보러 오고, 식별할 수 있는 소재라서 그림을 이해한다. 본 전시는 더 어려운 추상이다. 추상을 통해 오히려 그 전 시대의 인상파나 입체파를 이해할 수 있는 이해의 장을 마련하려 했다. 조용한 공간, 침묵의 공간, 명상의 공간 그림과의 거리 45cm, 어두운 조명 등등 까다로운 전시 관람조건을 제시한 로스코의 전시장은 모든 걸 떠나 뭉클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누구나 마음이 움직이고 눈물이 나는 특이한 경험을 미술을 통해 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종교적인 경험까지 제시한 로스코의 특별함은 이 전시가 주는 강한 감동이다. 로스코 전시장에 오면 눈물 흘리는 사람을 아주 쉽게 볼 수 있다.
문화 기업을 운영하면서 경영 방향과 그에 대한 정의를 어떻게 세우고 있는가? 마크 로스코 전시를 결심했을 때 내 가족을 포함 아무도 지지하지 않았다. 역시 대중성이 문제였다. 그래서 더욱 외로운 결정을 해야 했다. 손해를 결심했다는 게 솔직한 대답이다. 그만큼 국내 최초 마크 로스코 전시는 가치 있다는 판단에는 지금도 물러섬이 없다. 결정을 하고 나서는 누구나 이해하기 쉽고, 접근하기 쉬운 전시를 만드는 게 나의 관건이었다. 기획의 문제였다. 기획이 실패하면 장기적 경기불황에 총체적 난국인 국내 정세에 마크 로스코라는 대중성 없는 전시는 큰 실패로 끝날 것임이 분명한 일이었다. 전문가들과 사명감 있는 분들을 찾아가 절실한 도움을 요청했다. 기획에서부터 마케팅까지 정말 그분들의 도움으로 한국에 이런 좋은 콘텐츠를 선보이게 되어 뿌듯하다. 이처럼 의미있고 가치있는 전시는 반드시 되풀이되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미국국립미술관 소장품이 대규모 소개되는 최초 전시 <마크 로스코>는 대한민국 전시계에 큰 영향을 줄 것임은 분명하다.
황석권 수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