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 People] 예술의전당에서 개인전을 연 畵手 조영남

_MG_0397

가수의 탈을 쓴 화가 조영남의 미술계 왕따미술전

가수 조영남의 <왕따 현대미술전>(예술의전당 한가람 미술관 제7전시실 8. 3~ 24). 이번 쇼는 미술계에 있는 사람에겐 유감스러운 불량형 전시로 분류된다. 겉으로나 무늬로나 40년 회고전을 빙자한 이 전시는 분명 “왜 우리 놀이터에까지 와서 놀려고 하냐”는 미술계의 아니꼽고 치사한 시선에 대한 그의 강렬한 저항성 퍼포먼스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조영남만큼 현대미술에 해박하고, 책도 내고, 백남준 최욱경 곽훈 등 미술계의 인맥을 아우르고 있는 스타는 단연코 없다. 다만 흠이라면 그가 미술을 너무도 잘 알아 잘난 척하여 화가들에게 미운 털이 박힌 것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런 그가 딴따라가 미술을 한다고, 십수 년 동안 미술계로부터 화가로 인정받지 못한 억울함을 풀기로 작정한 듯 40년간 쌓은 미술 유전인자를 내장까지 다 끄집어 내보였다. 그는 “내가 그림을 그리는 일과 다른 사람이 낚시하는 일은 총체적으로 똑같다”며 그림 그리는 이유를 낚시에 빗대 설명한 적이 있다. 물론 이렇게 그는 향수 달래기 겸 취미로 유화에 손을 댔다고 일찍이 고백한 바 있다. 또한 백수 시절에 행복해지기 위해 음악보다 훨씬 강도 높은 열정으로 미술작업을 위해 고군분투했다고 진술했다. 조영남은 프로 화가이다. 다만 노래로도 돈을 벌고, 그림으로도 돈을 벌었을 뿐이다. 그래서 이 전시는 우리가 그를 왕따시킨 것이 아니고, 거꾸로 그가 미술계를 왕따시켰음을  환기하는 자리였다.
화가는 참 많다. 그러나 몇 년에 한 번씩 개인전도 안하고, 그런 너희들이 미술대학 나왔다고 그래 다 화가냐? 그는 우리에게 들이대며 따져 묻는다. 이 발언은 틀리지 않다. 30여 회의 국내외전을 연 그는 이 점에서 대단히 박식하고 부지런하며 천재적 감성을 가진 예술인임에 틀림없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그는 그림도 그릴 줄 알고 노래도 참 가수답게 잘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 어느 분야든 어느 정도 텃세가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른 것이 죄라면 조영남은 유죄이다. 현대미술에 박식한 만큼 이 바닥에도 텃세가 좀 있다는 것을 일찍 그리고 조금 눈치 챘어야 옳았다.
그는 이 사실을 모른 채 끈질기게 화투패를 그리고 화투에 집착했다. 그는 현대미술이 요구하는 독창성을 고민하다 화투라는 오브제를 선택했다. 화투를 통해  곡절 많은 인생사를 보려 했고, 화투를 통하여 한국적 팝을 내다보았다. 화투를 통하여 작가적 메시지를 토해냈다. 그는 시작부터 조영남표 브랜드와 독창성을 노래하듯이 주장했다. 태극기와 음표들은 그러한 부속품이었다. 그리하여 화투는 꽃이 되기도 하고, 지붕이 되기도, 스무 끗짜리 5광(光)은 영광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일찍이 1969년의 청계천 풍경에서 시작해, 1973년 안국동 한국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연 후 1980년대를 화투작업으로 이어갔고 1990년대 실험 오브제 설치작업 등 그는 정말 피카소처럼 미술과 음악, 설치의 경계를 넘나들며 화투인생의 철학에 올인했다.
우리는 그에게 왜 화투를 그리느냐고 물을 수도, 항의해서도 안 된다. 이번 전시 대표작은 <극동에서 온 꽃>으로 보이지만 그의 작품 중 압권은 보이스에게 헌정한 것처럼 보이는, 죽음에 관한 콘셉트의 발상의 관에 놓인 화투로 덮인 그의 자화상이다. 나머지 요강을 비롯한 회화, 콜라주, 입체 조각, 그리고 마지막 자신의 온통 평면에 대담용 글쓰기, 자기 PR과 변명 등은 그가 현대미술의 다양성을 위해 화폭 가득 묻어놓은 위한 지뢰에 불과하다.
여기에서 문제는 작품에 작가로서의 철학이 있느냐 하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조영남의 40년 왕따 회고전은 콧대 높은 미술계 사람들에게 아부 혹은 엿 먹이는 전시 둘 중 하나이다. 그러나 어찌하랴. 이 전시를 보고 모두가 마냥 즐거워하는 것을. 조영남의 패러디, 오만불손, 자뻑이 모든 그의 잡학과 상상력이 비빔밥처럼 섞여 우리들을 즐겁고 행복하게 한다.
판사는 오로지 판결로 말한다고 했다. 화가도 오직 그림으로 말할 뿐이다. 2000점이 훌쩍 넘는 작품. 그는 이 작품들을 조수도 없이 해냈다. 조영남 어쩌면 그는 가수의 탈을 쓰고 오광이 든 화투 패를 만지작거리며 재미있게 인생을 즐긴 보기 드물게 썩 훌륭한 화가일지도 모른다.

김종근·홍익대 겸임교수
조영남은 1945년 황해도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를 명예졸업하고 미국 플로리다주 트리니티 바이블 칼리지를 졸업했다. 1973년 한국화랑에서 열린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30여 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저서로 《조영남 길에서 미술을 만나다》, 《현대인도 못알아 먹는 현대미술》, 《이상은 이상이상이었다》가 있다.

_MG_03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