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 PEOPLE 윤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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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의 길로 들어선 일이 지금껏 해온 수많은 선택 가운데 가장 잘 한 선택이었다고 말하는 윤난지 교수. 알고 싶은 의욕과 배움의 나눔을 통해 더 많은 배움을 얻고자 시작한 ‘읽기모임’이 2012년 ‘현대미술포럼’으로 명칭을 바꿔 활동 범위를 점차 확장해온 지 어느덧 5년여가 흘렀다. 대안적 연구공동체의 모델로 떠오른 이 모임의 중심에는 20여 년간 모임을 이끌어온 그가 있었다. 그의 연구실을 방문해 미술사학자이자 교육자로서 견해를 들어보았다.

연구공동체의 대안을 제시한 미술사학자

지난 12월 14일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1990년대 이후, 동시대미술 읽기〉 제하의 학술심포지엄이 개최됐습니다. 대표로 계시는 현대미술포럼을 내걸고 마련한 첫 번째 외부행사였는데요. 개최 소감 간략하게 부탁드립니다.

우선 매우 기쁩니다. 우리 ‘읽기모임’이 한국미술사를 만들어가는 현장에서 쓰일 수도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준 자리였어요. 그동안 저희는 주로 출판 작업을 해 왔고 이렇게 전시와 연계된 미술현장의 행사에 참여한 것은 처음입니다. 당일 행사장에 와주신 많은 분께도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어요.

심포지엄을 준비하게 된 과정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저희는 2년쯤 전부터 동시대 한국미술을 10개 주제로 나누어 공부하고 토론하는 모임을 가져왔어요. 그러다 김홍희 서울시립미술관장과 우연히 만난 자리에서 저희와 같은 주제의 전시를 열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대화 과정에서 〈X: 1990년대 한국미술전〉의 부대 심포지엄을 공동주관하자는 논의가 이루어지게 되었지요. 그동안 우리가 공부해온 10개의 주제 중 시립미술관 전시와 부합하는 4편의 글을 전시 큐레이터들과 함께 선정하였고, 전시를 기획한 시립미술관 여경환 선생의 글을 합쳐 총 5편의 글이 발표되었습니다. 하지만 본래 책 출간을 목표로 공부해왔기 때문에 최종 목표는 책을 내는 것입니다.

수요일 오후 1시에 포럼이 열린 탓에 현장에 오지 못한 다수의 지인이 당일 배포된 책자를 구입하고 싶다고 했어요. 대략 1200부를 찍었다고 들었는데요. 그 책이 모두 소진됐으니 많은 분이 다녀간 듯합니다. 이처럼 소박한 공부 모임이 공적인 심포지엄 행사로 개최될 수 있었던 건 아무래도 오랫동안 함께 해온 읽기모임 회원들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 모임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과정 등을 들려주세요.

《모더니즘 이후 미술의 화두》 서문을 쓴 당시에도 이 모임이 언제 시작되었는지를 더듬어 보았는데요. 기억이 잘 나지 않을 정도로 별 큰 목표 없이 자연스럽게 모인 모임이죠. 아마 1995년 여름경에 시작했던 거 같아요. 제가 1991년 박사학위를 받고 이듬해에 교수가 됐죠. 그리고 학생들을 가르치다보니 당대 미술에 관한 이론들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거슬러 올라가면 1980년대 중엽부터이지만 1990년대 당시에도 우리 미술계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말이 회자되고 있었어요. 이것에 대해 알고 싶은데 관련 자료는 대부분 외국 문헌이었어요. 그래서 그것들을 그야말로 ‘읽기’ 위해서 모이기 시작했어요. 외국 문헌을 선정하여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각자 번역한 내용을 다 함께 공부했죠. 규모도 크지 않았어요. 5~6명 정도로 작게 시작했는데 원하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이다보니 이렇게 커졌어요. 처음에는 주로 동료 연구자들이었는데 이제는 대부분이 제자들이지요. 공부한 자료들이 점차 쌓이니까 번역한 수고가 좀 아깝더군요. 그래서 아예 주요 포스트모던 이론들을 제가 선별해서, 각자 맡은 글의 전문(全文)을 번역해 와 소리 내어 읽고 다 같이 틀린 것을 바로잡아 주며 토론하는 식으로 진행하여 출판까지 하게 되었어요. 첫 번째 책이 《모더니즘 이후 미술의 화두》라는 이름으로 1999년 9월에 출판되었고 이후 《전시의 담론》, 《페미니즘과 미술》 그리고 2016년에 나온 《공공미술》까지 총 4권이 출판됐습니다. 4권의 번역 작업에 총 21년이 걸렸네요. 모두 저와 읽기모임 참여자들의 관심사가 자연스럽게 반영된 결과물이지요. 모두가 책임감을 갖고 번역, 토론, 교열 과정을 여러 차례 가졌어요. 전 바로 그 부분에 읽기모임의 가장 큰 의미를 두고 싶어요. 첫 번째 책은 모두 6쇄를 찍었으니 미술이론서로는 괜찮은 반응이지요. 물론 여기엔 《화두》 시리즈를 출간해주신 출판사 눈빛의 도움도 컸습니다. 저희를 믿고 재론 없이 모든 책을 내주셨거든요. 그런데 번역이란 작업은 너무나 어렵고 힘든 과정이라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자인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시리즈라 할 수 있는 ‘읽기’ 제하의 책이 나오게 된 과정도 설명 부탁드려요.

최근 몇 년간 회원들의 글을 모아 편집하는 일을 진행했는데, 지금까지 3권의 책이 나왔어요. 《추상미술 읽기》, 《현대조각 읽기》, 《한국현대미술 읽기》 등입니다. 그 후속으로 지금은 동시대 한국미술의 현장을 주제로 앤솔로지를 진행하고 있지요. 최근 20~30년 동안의 한국미술을 역사적으로 기록하자는 취지에서 시작한 작업이에요. 그런데 일을 진행하다보니 동시대미술을 기록하는 일의 중요성을 더욱 절감하게 되더군요.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잘 보존돼 있는 자료를 찾기가 쉽지 않았거든요. 이번 전시를 진행한 여경환 선생도 그런 고충을 말씀하셨어요. 시간이 더 가기 전에 부지런히 자료를 보존하고 해석하는 작업이 이뤄져야 합니다. 물론 한 시대 미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역사적 거리가 확보되었을 때 그러한 해석이 수정될 수 있는 여지는 전제로 하고요.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을 종합해보면, 읽기모임이 선생님께는 각별한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맞아요. 이 모임이 지속된 지도 벌써 20여 년입니다. 읽기모임의 가장 큰 의미는 무엇보다 배움을 나눈다는 데 있을 것 같아요. 긴 과정을 함께하며 서로 많은 것을 배웠으니까요. 특히 배움은 나눌수록 커진다는 당연한 사실을 확인해 온 과정이지요. 이 모임은 일종의 대안적인 연구모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정관도, 규칙도 없이 편안하게 토요일 오전 10시 반에 오고 싶은 사람들만 제 연구실로 모이지요. 발표자는 ‘숙제’를 해 가지고 오고. 매우 느슨하고 유동적인 모임이지요. 2~3명이 올 때도, 20여 명이 모일 때도 있습니다. 사실 정확히 누가 회원인지 아닌지도 모릅니다. 대화 주제도 공부와 일상을 왔다 갔다 하지요. 천천히 걸어왔는데 책 출판과 학술 발표 등의 결실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오히려 이러한 느슨함 혹은 유연성에서 비롯된 것 같아요. ‘사적이자 공적인 혹은 그 어느 것으로도 규정할 수 없는’, 그런 의미에서 매우 여성적인, 이것이 우리 모임의 성격을 말해주는 것 같네요. 얼마 전 공적인 면모를 갖추기 위해 현대미술포럼이라는 이름을 지었지만 아직도 우리들은 읽기모임이라고 불러요.

그렇다면, 이제 1990년대 한국미술계에 불었던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 얘기를 나눠봐야 할 듯싶은데요. 이번 심포지엄에서 논의한 시기 역시 1990년대이기도 하고요. 언어로써 1990년대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련의 동향을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번 심포지엄을 준비하면서 미술사, 나아가 우리 역사에서 1990년대가 어떤 시대였는지 되돌아볼 수 있었어요. 우선 이번 시립미술관 전시를 통해 1990년대가 ‘전시’란 형태로 구현됐다는 사실 자체가 의미 있다고 봅니다. 그것은 결국 1990년대 미술에 ‘역사적인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이지요. 당시 자료나 작품을 가능한 한 수집하고 복원하고자 한 노력을 높이 평가하고 싶어요. 이러한 시도는 사실 1990년대 당대에도, 또한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가버려도 할 수 없는 작업이지요. 지금이 가장 적절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그 시대를 볼 수 있는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시야가 확보되었다는 의미에서이지요.

사실 1980년대 후반에 태어난 제게 1990년대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아직 형성되지 않았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선생님께서는 그 시기를 보다 객관적으로 생생하게 기억하고 계실 듯합니다.

되돌아보면 1990년대는 한국현대미술의 전환점 같은 시대였어요. 무엇보다도 모든 종류의 경계가 허물어지기 시작한 때였다고 볼 수 있지요. 그 이전에는 사회적 발언의 미술, 순수 미학을 추구하는 추상미술 등이 동시대에 대립하거나 시대를 바꿔 출현했는데, 1990년대에는 많은 작가가 추상과 구상을 넘나드는 양식을 보이거나 형상을, 때로는 정치적인 메시지를 작품에 담고자 했고 대중문화에서 차용한 도상을 사용하기도 했어요. 페미니즘 전시들이 열린 것도, 뉴미디어 아트가 본격적으로 수용된 것도 이 시기입니다. 그야말로 다양한 가치들이 혼입하고 공존하는 시대였지요. 우리가 당시 읽은 글들이 우리 미술 현장에도 적용될 수 있겠다는 것을 실감한 시기였지요.

그렇다면, 선생님께서는 1990년대 사회를 어떻게 기억하고 계시나요.

그 당시에 요즘 보는 ‘카페’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근대기의 다방을 대신하는 공간인데, 다방과는 달리 그 공간에는 젊은이들이 모였지요. 최정화의 카페 공간 같은 소위 ‘폐허 디자인’이 시작된 것도 이때로 기억됩니다. 근대의 잔재가 새로운 미학적 의미를 부여받으며 재탄생하는 공간,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공간, 이런 특성이 카페나 그 시기 새롭게 등장한 대안공간에서 볼 수 있는 특성이었지요. 이런 공간적 특성이 보여주는 것처럼, 이 시기에는 사회적으로도 세대 간의 교차가 활발히 이루어지기 시작했지요. X세대, 오렌지족 같은 용어가 일반화했듯이 젊은 세대가 문화를 이끌게 되었을 뿐 아니라 기성세대도 그들의 감각을 공유하기 시작한 시대이지요.

1990년대만의 시대정신이 있다면요?

‘1990년대 이후’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시대정신(zeitgeist)’이란 말은 이 시기에 맞지 않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매우 ‘모던한’ 어휘이기 때문이지요. 이 시기에는 오히려 ‘시대감각’이라는 말이 적절하다고 봐요. 표피적이고 빠르게 변화하는, 그리고 다양성이 용인되는 감각 그 자체, 그것이 1990년대 이후를 특징 짓는다고 생각해요. 동시대의 세계적인 문화현상을 공유하면서도 우리만의 독특한 문화적 정서들이 혼존하는 현장, 그것이 1990년대 이후 한국의 모습이지요.

다시 선생님과 읽기모임으로 돌아와서 이야기를 나눠 보겠습니다. 읽기모임의 모든 활동에서 선생님은 주축이셨습니다. 대학원 수업, 과제 평가, 논문 세미나 등의 학교 활동과 책 집필, 그 밖의 연구 활동들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원동력 같은 건 없어요.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무언가를 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냥 꾸준히 일을 해온 것뿐입니다. 무엇이든 시작하면 그만둘 용기를 못내는, 일종의 결정 장애 때문이지요. 공부하는 사람들은 다 느끼는 것이겠지만 몰두하는 시간만큼은 너무나 마음이 평안하지요. 저는 그게 행복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해주세요.

가까운 계획은 읽기모임 회원들과 지금 진행하고 있는 동시대 한국현대미술에 관한 책 출판을 마무리짓는 것이에요. 그 후에는 1970~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 후속연구를 진행해볼까 구상 중입니다. 그러나, 읽기모임도 그 시작처럼 자연스럽게 해체될지도 모르지요. 그러면 못하는 거고요. 또 개인적으로는, 제가 2018년 2학기를 끝으로 26년간의 교수직을 은퇴합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수업하고 논문지도하면서 잘 마무리할 수 있기를 바라요. 은퇴 후에도 당분간은 공부를 계속하긴 할 거 같아요. 조금은 여유롭게. 또 현재 제가 쓰고 있는 한국현대미술사 책을 잘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1990년대 중엽부터 틈틈이 써온 글을 보완하는 중이에요. 그렇게 저는 한국현대미술사에 대한 공부를 하는 것으로 연구 인생을 마감할 듯싶어요. 멀리 돌아 가장 가까운 내 나라 미술로 돌아온 셈이지요. 민족주의적인 사명감에서가 아니라 가장 잘 볼 수 있는 것을 보자는 생각에서지요. 아무래도 외국의 사례들은 제가 살아온 시대와 사회가 아니기 때문에 제게는 매우 버추얼(virtual)한 것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어느 순간 들었어요.

미술사학자, 교육자로서 후배와 제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요.

일단 미술사는 ‘바쁜 공부’입니다. 책만 읽어서는 안 되고 직접 전시장을 다니면서 작품을 보는 것이 필수적이지요. 전 세계를 여행해야 하는 공부에요. 또한 현대미술사의 경우 작가도 만나야 하고, 글도 논문 뿐 아니라 비평문 등 다양한 글을 써야 하지요. 이러한 바쁨을 기꺼이 받아들여야하는 공부라고 생각합니다. 또 한 가지, 제가 자주 하는 말인데, ‘미술사도 사람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작품 속에서 혹은 연구의 현장에서 우리는 ‘사람’을 만나고 또한 사람에 대해 배우게 됩니다. 그것이 미술사 공부입니다. 미술사가 ‘인문학의 꽃’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작품을 연구해서이기도 하지만, 사람을 공부하는, ‘따뜻한’ 학문이기 때문이지요. 간혹 학생들에게서 미술사가 너무 어렵다는 고민을 듣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미술사를 공부하게 된 것이 얼마나 가슴 뛰는 일인지를 먼저 느껴보라고 말합니다. 어떻게 잘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기보다 얼마나 잘한 일인지를 생각하다보면 어느새 잘하게 될 것이라고요.
진행ㆍ정리 = 곽세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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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더니즘 이후 미술의 화두》(눈빛)는 윤난지 교수가 읽기모임을 통해 번역한 글을 주제별로 엮은 책으로, 총 4권이 나왔다. 1960~1990년대에 논의된 미술계의 다양한 담론을 다룬다.

윤 난 지 Yun Nanji
1953년 출생했다. 1976년 이화여자대학교 문리대학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1979년 동 대학원 사회학과에서, 1984년 미술사학과에서 석사학위를, 1991년 동 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까지 저서 6권, 번역서 3권, 편저 7권 등 총 16권의 책을 발간하였고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2000년 석주미술상 평론부문과 2007년 석남미술이론상을 수상했다. 현재 이화여대 미술사학과 교수, 현대미술포럼 대표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