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소현 개인전 – 몸으로 展하다

 

몸으로 展하다

YEO SO-HYUN

2014. 11. 12 – 11. 17

인사아트센터

시대의 우울, 인간에 관한 연민의 시선

 

탄식의 긴 호흡과 역겨움의 구토, 허무의 중얼거림과 몽유의 발걸음.
서거나 앉거나 눕거나 간에 그들은 모두 잿빛의 불안한 몸짓을 하는 벌거벗은 사람들.
깊이를 알 수 없는 단절의 어두운 공간에 갇힌 채 홀로 혹은 무리지어
갈라진 상처를 끌어안고 힘겨워하는 이들은 누구이며 왜 어디로 가는 것일까.
작가 여소현은 이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추론할 시각적 실마리를 화면 속에 펼쳐 놓았다.

숭고하고 초월적이며 절대적인 가치로 자리 잡았던 이데아와 종교의 시대를 지나 현대사회로 이어지는 역사의 진화과정에서 인간은 그 실존적 존재가치에 눈을 뜨고 육체와 정신을 억눌렀던 기존의 질서로부터 해방되어 새롭고 자유로운 삶의 주체로 거듭나고자 했다.다양한 인간중심적 사상과 문명의 진보는 보다 자유롭고 인간다운 삶으로 이끄는 강력한 동력을 제공했고 그 성과에 힘입어 모두가 꿈꾸었던 유토피아가 열릴 것처럼 기대하며 들뜨기에도 충분했다.

그러나 그 어떤 사상과 문명, 사회체제도 인간을 완전히 자유롭게 할 수 없었다.
역사의 발걸음은 모든 개인의 자유롭고 행복한 삶의 방향을 지향하지만 여전히 불행의 덫들은 자유를 갈망하는 자들의 발목을 시시각각 조여 오고 있다. 잠깐 마음을 놓고 한눈을 파는 사이 우리는 다시 억압과 불안의 어두운 그늘이 짙어지고 넓어지는 것을 다시 지켜 봐야하지 않는가. 지극히 한심하게도 우리들의 삶은 그 형식만 바뀌어 갈 뿐, 원리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때로 많은 철학과 사상이 구원의 손길처럼 다가와 네가 깨우치고 지혜를 얻으면 머지않아 세상도 변하리라 달콤하게 속삭였지만 세상은 그 지혜 넘치는 자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변화는 더디고 문명과 세속화는 이성을 추월해 더 빠른 속도로 진행하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고뇌하는 자들은 고통의 근원과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 질문을 계속하며 프로메테우스의 노고를 기꺼이 감내하고자 한다.
삶에 관한 끊임없는 질문을 외면하지 못하는 것은 깨어있는 자들에게 주어진 무거운 의무이자 또한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의 가장 이성적이고 고귀한 정신의 산물, 예술의 의지이기도 하다.

여소현의 작품 속 인물들은 고통 속에서도 고뇌하고 질문하는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의 전형들이다.니체가 말한 “극복되어져야할 그 어떤 존재”로서의 내면적 성찰은 물론이고 고통의 근원에 관해 사유하며 그 불안을 드러내는 이 시대의 우울한 상징적 존재들이다.
그러나 작가는 그 존재의 우울을 구체적인 이미지나 현실적 상황을 인용해 직접 설명하지 않고 다만 벌거벗은 사람들의 몸짓으로부터 이끌어낸 은유의 힘을 통해 관객과의 공감과 소통의 길을 열어놓고 있다.

우리에게도 미술이 풍자와 직설을 통해 프로파간다의 역할을 해야 했던 암울한 시대적 상황이 있었다. 이제는 프로파간다의 의미가 이데올로기적인 색채가 입혀진 구시대의 낡은 유물로 기억될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화가 구체적으로 이미지와 연출을 통해 대중을 설득하거나 결집하고 동의를 얻고자 했던 변혁의 시절, 작품 속에서 폭발하듯 강렬히 분출했던 에너지는 시대상황 뿐만 아니라 미술의 역사에서도 중요한 장을 차지하는 성과이자 당대 미술의 당당한 존재이유 중 하나였다.

독일 판화가 케테 콜비츠의 작품들을 상기하면 미술의 구체적 현실참여가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 사람들 가슴에 파고들며 대중에게 위로와 용기를 전하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나는 이 시대에 변호 받을 수 없는 사람들, 정말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한 가닥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고 싶다”고 했던 케테 콜비츠의 작품관은 오늘 우리의 시대적 우울과 어둠 속에 갇힌 사람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용기의 손을 내미는 작가적 양심과 의무를 일깨운다.
그렇게 콜비츠의 인물상들이 드러내는 고통과 슬픔. 불안과 분노는 시대를 훌쩍 뛰어넘어 여소현의 인물들에게로 이식되어 우리 앞에 나타난다.

작가의 화면을 지배하는 색채는 인물과 배경 모두 검회색의 무채색이 주종을 이룬다. 세상의 모든 것들, 그들의 색을 한데 섞으면 만들어 질 수 있을 것 같은 깊은 무채색이다. 이 시대의 우울과 불안. 슬픔과 분노들을 선정적인 원색의 외침이 아닌 무거운 검회색의 고뇌와 침묵으로 상징하려는 작가의 조형적 결단이리라.
또한 작가는 인체에 관한 미학적 접근의 유혹을 자제하고 가리거나 감추지 않고 고스란히 드러나는 원초적인 몸의 이미지를 통해 지극히 연약하고 무력하나 사색하고 고뇌하며 끝없이 질문할 수 있는 이성적 힘의 존재, 그 어떤 세속이 치장이나 차별 없이 모두 닮은 형태로 태어나 살아가는 거친 듯 다정한 우리의 이웃들, 더불어 연민의 시각을 통해 이해와 소통이 필요한 존재로 등장시키고 있다.
여소현의 작품은 결코 프로파간다적 구호와 함성을 앞세우지 않는다.
상처받고 슬퍼하고 절망하는 존재들을 쓰다듬고 품어주는 공감과 연민의 은유적 표현이다.

예술가는 그의 직관과 통찰력을 통해 시대를 읽고 파악한다.
그리고 예민한 감성의 촉각, 밝은 지성의 시각과 조형적 질서를 통해 그 시대정신을 작품에 반영한다.
도도한 미술의 역사를 통해 증명 되었듯 시대정신이 충실히 반영된 작품은 그 어떤 조형적 탐구나 심미적 유희보다 더 고귀하고 아름다운 예술의 존재의미로 살아남아 기억된다.
표현 양식은 현저히 다르지만 여소현의 작품 속에 지속되어온 시대정신의 발현이 위대한 작가 케테 콜비츠의 작품세계로 부터 내려오는 미술사의 큰 흐름과 당당히 합류하길 기대한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시대를 바라보는 양심과 지성. 인간의 관한 연민과 구원의 온기가 담긴 작품이 아니겠는가.

여소현의 개인전에 부쳐 -자유기고가 최화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