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FEATURE] 뮌스터 조각프로젝트 – 땅으로 내려온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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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Koki Tanaka 〈Provisional Studies: Workshop #7 How to Live Together and Sharing the Unknown〉 ‘10일 동안 함께 사는 법’을 뮌스터 시민 8명에게 질문하고 이에 대한 답변을 영상으로 담았다 아래 Nicole Eisenman 〈Sketch for a Fountain〉 편하게 산책을 나온 관람객이 전통과 현대, 유머, 관능 등의 요소를 발견할 수 있는 작업이다

땅으로 내려온 미술

황석권 | 《월간미술》 수석기자

올해 뮌스터조각프로젝트(Skulptur Projekte Munster 2017, 6.10~10.1)에 미술계의 다양한 기대감이 얹혔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우리의 일상 속 시야에도 공공미술 현장이 쉽게 잡힐 정도로 그 개념에 상당히 익숙해졌다. 서울역 고가도로를 리모델링해 시민에게 오픈한 ‘서울로 7017’에 설치된 <슈즈트리>가 큰 논란을 일으키며 공공미술에 대한 논쟁이 일반인 사이에도 흘러들어가 각종 대중미디어를 비롯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갑론을박이 오고갔다. 대부분 자신의 미적 기준에 작품을 끼워 맞춰 호불호에 대한 단편적인 의견을 개진하는 식이지만 공공미술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무관심을 환기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전 지자체들이 경쟁적으로 설치한 무분별한 공공 조형물들의 문제점들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여지도 남겨놓았다.
이번 뮌스터조각프로젝트가 국내의 관심을 받는 또 다른 이유는 40년 넘게 행사 터줏대감을 자임해온 카스퍼 쾨니히가 총괄하는 마지막 프로젝트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다. 1977년 프로젝트 출범 당시부터 기획에서 손을 뗀 적이 없는 카스퍼 쾨니히는 한국과도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데 양현미술상 심사위원으로 활동했고, 또한 뮌스터조각프로젝트가 서울의 도시길러리 프로젝트나 안양공공미술프로젝트 등 국내 공공미술프로젝트의 롤모델이자 중요한 레퍼런스였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오랜 기간 총감독을 맡는 것은 우리 상황에서는 좀처럼 없는 사례이기에 카스퍼 쾨니히의 뮌스터조각프로젝트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이렇듯 우리의 상황과 맞물려 뮌스터조각프로젝트를 올해 유럽에서 열리는 이른바 ‘그랜드투어’의 메인 메뉴 중 하나로 넣기에 충분했다. 10년이라는 오랜 기간 준비하는 장대한 프로젝트라서도 그렇고. 화이트큐브 안에서만 유효한 매우 한정적이고 편협한 모더니즘적 미적 의미를 공공미술은 어떻게 넓혔을까. 바로 미술관을 뛰쳐나와 미술을 탈담론화 하고 탈제도화했다. 일상의 맥락과 연결시키려는 시도와 탐구를 선지식 없이 단순히 몸으로 느끼게 하며 오롯이 ‘site’의 숨은 맥락을 그곳에서 드러내는 이른바 ‘과정으로서의 미술’이 ‘발견’ 되는 지점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것들을 위한 전제 조건은 예술가와 그가 이룩한 현현물이 놓인 미술과 다른 레이어로서의 공간 상정이다. 우선 작가는 일상이라는 사회적 활동에 어떤 발언을 하여 개입할 것인가, 꼭 그래야만 하는가 혹은 그것이 미술의 문법 체계에서 온당한가에 대한 논의가 있을 것이다. 뒤이어 작품이 놓인 공간이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맥락에서 작품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따른다.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고속열차(ICE)는 뮌스터 역에 당도했다. 인구 30만 중 5만5000명이 학생이라는 뮌스터는 인구 1인당 3대의 자전거가 등록되어 있을 정도로 ‘자전거의 도시’로 유명하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없는 평평한 지대인지라 자전거를 타고 도시를 다니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실제로 이번 뮌스터조각프로젝트는 자전거 대여소를 LWL미술관 뒤편에 마련해 관람객의 편의를 도모했다. 작품은 대부분 공원으로 조성된 순환공원 겸 자전거 도로의 내부와 주변에 설치되었고 그간 뮌스터조각프로젝트에 초대되어 영구설치된 작품도 이번 프로젝트에 초대된 작품을 찾아보며 만나볼 수 있었다. 뮌스터에서 자동차를 타고 43번 도로 남쪽으로 1시간가량 질주하면 화려했던 광업도시 마를(Marl)에 당도하게 되는데 이곳에도서 연계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가장 많은 관심과 호응을 이끈 작품은 역시 피에르 위그의 <After ALive Ahead>였다. 시내 중심지에서 20~30여 분간 열심히 자전거 페달을 밟아 달려온 이들은 입장객을 엄격히 제한하는 위그의 작업을 보기 위해 길게는 1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2016년 폐쇄된 아이스링크의 콘크리트 바닥을 절단하여 하부의 흙이 드러나게 했고, 천장에는 개폐되는 전동루프를 달았다. 해가 뜨고 지는 하늘 아래 마치 동토(凍土)의 발굴현장을 연상하게 한 이 작업은 인위적으로 만든 작은 풍경을 통해 그 안에서 보이지 않지만 치열하게 벌어지는 다양한 유기적 움직임을 담았다.
관람객이 작품에 참여하여 즐거워하는 현장도 볼 수 있었다. 뮌스터 역 동남부로 약 10분 정도 걸어가면 운하와 연결된 작은 항구가 있는데 이곳에 Ay?e Erkmen의 <On Water>가 설치되어 있다. 어른 무릎에 차일 정도 깊이의 물에 잠겨 있는 다리를 건너면 걸어서 족히 20분 이상 걸릴 거리를 가로질러 갈 수 있게 한 것. 안전요원이 배치된 가운데 다소 쌀쌀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기꺼이 신발을 벗고 물을 건넜다. 이 대단할 것도 없는 행위에 많은 이가 즐거움을 느끼는 이유가 궁금했다. 미술행사라는 인식이 없다면 놀이공원에서 롤러코스터를 타는 즐거움과 차이가 없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전까지 돌아가는 것을 당연시했던 곳을 마치 물을 걷는 듯한 체험을 통해 가로질러 갈 수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삶의 변주를 느껴서가 아닐까? 그렇다면 작품은 그곳을 건너는 이들의 삶에 개입한 셈이 된다. 그래서 이는 공공미술의 범주에 들어오게 된다.
10년을 준비하여 개최하는 프로젝트의 면모를 드러내는 사이트도 있었다. 문화센터이자 Aram Bartholl <5V> 퍼포먼스가 열린 Theater Im Pumpenhaus 인근 시민농장의 회원들을 2007년에 섭외해 10년 동안 그들의 일상을 기록하고, 책으로 엮어 보여주는 Jeremy Deller의 <Speak to the Earth and It Will Tell You>가 그것이다. 개별 프로젝트를 10년 동안 준비했다는 점도 감탄스럽지만, 프로젝트를 위해 자신들의 일상을 꾸준하게 기록한 참여자들의 의식도 놀랍다.
20년 전 백남준이 은빛자동차 32대로 제작한 <32 cars for the 20th century: play Mozart’s Requiem quietly>가 설치됐던 Munster Schloss를 찾았다. 뮌스터 베스트팔렌 빌헬름대학 건물 앞은 이제 백남준의 작품을 찾아볼 순 없었지만 후면의 공원에서 Jenny Holzer나 Dan Graham, Martin Boyce의 영구설치 작품을 만나볼 수 있었다. 물론 주변 공원에도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새로이 설치된 작품이 이곳을 찾는 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부동산 투자회사 LBS Westdeutsche Landesbausparkasse 사옥 내에 Hito Steyerl의 <HellYeahWeFuckDie>가 들어서 있었다. 2015년 베니스비엔날레 독일관을 흡사 중력이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공간처럼 만든 화한 작가의 이번 작업은 로봇개발사의 홍보 영상물을 연상하게 했다. 화면에서는 로봇동물의 움직임과 그것을 더욱 정교하게 제어하려는 각종 실험이 3D시뮬레이션으로 보여지고 있었다. “오늘날 로봇은 미래의 공룡이다”라는 작가의 말은 이곳이 예전에 동물원 자리였다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디지털 영상은 과거와 현재, 미래의 시간의 연속을 보여주지만 이곳이 과거 인류의 출범 이전 공룡의 천국이기도 했다는 점을 그리 멀지 않은 과거의 시간과 연계하여 보여주고 있다.
뮌스터조각프로젝트의 각각의 사이트를 찾아다니며 발견한 흥미로운 지점이 몇 가지 있다. 그것은 뮌스터조각프로젝트가 세계 유명작가들을 불러 모아 벌이는 대형 전시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런 프로젝트는 이미 세상에 널리고 널렸고, 이번 그랜드투어의 각 사이트가 그러했다. 도리어 기자의 머리에는 뮌스터라는 도시가 각 작품에 선명히 드러났다. 이는 설치물이 놓인 장소의 역사와 의미를 알아내야 한다는 강박으로 다가왔다.
또한 뮌스터조각프로젝트는 도시를 꾸미는 장식프로젝트를 지향하지 않는다는 점을 발견했다. 이는 작가가 이른바 점령군으로서, 도시의 어떠한 맥락도 파악하지 못한 채 자신의 예술적 욕구를 펼쳐놓는 그런 프로젝트가 아니라는 의미다. 참여작가가 전 도시를 빈 캔버스 삼는다면 한 번 벌이고 마는 1회성 행사에 그칠 것이다. 그러나 뮌스터조각프로젝트는 이미 40년을 이어왔고 그 스스로가 존재의 이유와 가치를 증명하고 있었다.
뮌스터라는 도시 안에서는 여러 생각이 드는 것이 틀림없었다. 이전에는 ‘미술’에 대해 ‘좋다’, ‘나쁘다’하는 가치판단을 얼마나 빠른 속도로 내리느냐가 관건이었다면 이제는 미술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부각되었다. 거대한 자본 앞에서는 그 자본을 보이지 않게 하기, 절대 권력 앞에서는 비껴서 가기, 다른 가치의 미술들과는 거리를 두고 뒷면을 살펴보기. 이와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은 아마 그랜드투어의 마지막 일정을 뮌스터로 잡은 취재 동선의 영향일 수도 있다. 오로지 사적영역에서 탄생한 작품과 개입이 전제되어야 할 작품이나 프로젝트는 분명 차이가 있으니 말이다.
다시 서울로 돌아가는 하늘길에서 처음 가졌던 공공미술에 대한 몇 가지 단상을 떠올렸고 뮌스터에서 확인하거나 다른 방식의 접근법과 비교해보았다. 우리 공공미술에 대한 논의의 해답을 뮌스터에서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이전 카스퍼 쾨니히가 “서울의 공공미술프로젝트에 참여한다면 어떻게 해볼 생각이냐”는 한 언론의 질문에 “뮌스터프로젝트를 했던 건 뮌스터 근처에서 자라나 그곳의 역사를 알았기 때문이다. 그 도시의 상황은 그 도시 사람이 잘 안다. 그래서 미안하지만 내 머릿속의 해답은 없다”고 한 답변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