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FEATURE 비 서구사회를 바라보는 시각

로렌스3
영화  포스터와 스틸컷 1962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 포스터와 스틸컷 1962

강정인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서구중심주의는 서구를 예외적으로 특권화해 격상시키는 서구(유럽)예외주의와, 서구가 일방적으로 선택한 (보편적인?) 잣대에 의해 비서구문명을 격하하는 오리엔탈리즘으로 구성돼 있다.
이러한 서구예외주의는 유럽에서 근대성(또는 근대문명)의 출현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바, 세 가지 명제로 구성돼 있다. 첫째, 유럽문명에 내재한 ‘독특한’ 요소들이 유럽에서 자본주의, 산업혁명, 계몽주의, 자유주의 등 근대성의 출현을 가능케 했다. 둘째, 유럽문명은 오직 유럽 내재적인 독특한 요소에 힘입어 근대성을 ‘자생적으로’ 출현시켰다. 셋째, 근대 유럽에만 존재한 것으로 단언된 독특한 요소들은 서구 역사의 초기부터 지속적으로 존재해 온 모종의 항구적 속성-고대 그리스문명, 로마문명, 유대교 또는 기독교 정신 등-으로부터 유래한다.
비서구사회에 대한 서구의 지식체계인 ‘오리엔탈리즘’은 서구의 예외성을 여타 세계와 구분하게 해주는 기능을 한다. 《오리엔탈리즘》에서 사이드(E. Said)는 19세기 유럽의 지식인들이 주로 아랍과 이슬람 지역을 대상으로 창안한 지적 구성물을 오리엔탈리즘으로 개념화하고 이를 비판했다. 서구인이 보는 동양은 동양 본래의 모습이 아니라 부정확한 정보와 왜곡된 편견으로 가득 찬 허구일 뿐이라고 통박했다. 나아가 오리엔탈리즘에 내재된 지식과 권력(서구의 동양 지배)의 상호 불가분적인 결탁관계를 폭로했다. 즉 베이컨의 말처럼 ‘아는 것(지식)이 힘(권력)’이기도 하지만, 푸코가 갈파한 것처럼 ‘힘이 지식을 창출한다’는 것이다.
오리엔탈리즘은 비서구사회를 중대한 경제적·사회적·정치적·문화적 요소의 ‘부재’ 또는 ‘일탈’을 통해 설명한다(‘부재의 신화’). 막스 베버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서문에서 비서구문명을 과학, 역사연구, 예술, 건축, 전문화된 관리와 행정, 법치, 자본주의 등이 부재한 것으로, 나아가 자본주의를 가능케 한 ‘합리성’이 결여된 것으로 설명했다. 서구문헌에서 궁극적으로 영원한 정체상태에 있는 비서구문명은 총체적으로 ‘역사’가 없는 것으로, ‘문화’가 없는 것으로 빈번이 서술됐다.
또한 서구문명은 그들의 주된 타자인 동양을 새롭게 구성하여 ‘일탈’로 규정하는 오리엔탈리즘을 발전시켰다(‘일탈의 신화’). 그리하여 동양은 “만족시킬 수 없을 정도로 무한한 아랍인의 성적 욕망” “이국적인 여성” “인파로 붐비는 시장” “신비주의적 종교” 등의 이미지를 떠안게 되었다. 나아가 경제적으로는 “아시아적 생산양식” 정치적으로는 “동양적 전제정치”라는 일탈적 범주로 구획되었다.
오늘날 서구인이 제작한 아랍이나 이슬람지역 배경의 소설, 애니메이션, 영화 등에서도 오리엔탈리즘은 보이지 않는 무대장치로 기능을 한다. 대표적으로 정지인이 엮은 책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편》에 소개된 영화이기도 한 〈아라비아의 로렌스Lawrence of Arabia〉를 들 수 있다. 이 영화는 1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아랍 민족의 독립에 적극 참여했던 영국군 장교 T. E. 로렌스의 ‘실화’를 바탕으로 구성된 작품이다. 로렌스는 분열된 아랍군을 통합하는 데 앞장섰고 게릴라 활동을 진두지휘해, 아카바 기습 점령,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 점령 등 혁혁한 공을 세우며 아랍민족의 영웅으로 추대되었다. 이 작품은 1963년 아카데미상 7개 부문을 휩쓸었으며, ‘세계’ 영화사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그런데 그 ‘실화’는 점차 사실이 아닌 ‘허구’인 것으로 밝혀졌다. 영국의 작가 리처드 알드링턴은 《아라비아의 로렌스: 전기적 질문》(1955)이라는 책에서 로렌스가 사기꾼이었으며 그의 공적이 부풀려졌다고 주장해 커다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요르단의 역사학자 슐레이만 무서 역시 《T. E. 로렌스: 아랍의 관점》(1966)이라는 저서를 통해 아랍 혁명이 한 영국군의 영웅적인 활약이 아니라 수많은 아랍인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졌다는 주장을 상세한 역사적 사실을 통해 밝혀냈다. 결국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가 서구인의 시선으로 아랍의 역사와 로렌스의 삶을 그려냈고 그 점에서 (비록 세련된 수준에서지만 여전히) 오리엔탈리즘을 내장하고 있었다는 점을 부정하기 어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