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Feature] 삼성미술관 Leeum 개관 1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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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미술관 Leeum 개관 10주년 기념전: 교감 특별전을 둘러보고

안휘준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명예교수, 문화재청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

2014년 8월 20일 오후 나는 그동안 써오던 논문 한편을 대충 마무리 짓자마자 서둘러 삼성미술관 리움으로 향하였다. 전날 공개하기 시작한 <리움 개관 10주년 기념전: 교감(交感)>을 빨리 보기 위해서였다. 삼성미술관 리움의 조지윤·이승혜 학예원이 나와서 맞아주었다. 모처럼 만난 이 제자들의 안내를 받으며 고미술 상설전시관인 Museum1의 4층으로 승강기를 타고 올라가 고려청자 전시부터 보기 시작하였다. 평소 상설전시를 통하여 눈에 익은 작품들 이외에 보지 못하던 새로운 자기들도 여러 점 볼 수 있어서 반갑기 그지  없었다. 그런데 고려청자들은 구면이든 신출이든 단 한 점도 예외 없이 지고(至高)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뛰어난 조형성과 형태미, 그윽하고 고운 비색(秘色, 翡色)의 유약(釉藥), 섬세하고 세련된 문양 등 무엇 하나 흠 잡을 데가 없다.
송나라의 태평노인(太平老人)이라는 학자가 그의 저술 《수중금(袖中錦)》에서 ‘천하제일(天下第一)’을 꼽으면서 고려의 비색, 즉 청자를 꼽은 사례가 떠올랐다. 고려청자는 하버드대의 박물관 전시에서도 ‘천하제일(The First under the Heaven)’으로 소개되었을 정도로 서양에서도 그 진가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번 전시에 출품된 작품들은 최고 중의 최고(The best of the best)라고 부를만하다. “어떻게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낮은 신분의 고려 도공들이 이처럼 놀라운 수준의 아름다움을 그토록 다양한 방법으로 창출할 수 있었을까” 늘 경이롭게 느꼈지만 이번에는 더욱 감탄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역시 자신들의 비법을 소중하게 여기고 철저하게 지켜낸 ‘청기와쟁이들’의 작품 답다. 청기와도 청자를 굽던 청자 도공들이 만든 것이어서 ‘청기와쟁이’는 ‘청자쟁이’로 바꾸어 불러도 상관없을 것이다. 청자는 공예이면서 유약의 제조법과 번조법 등 전 제작과정이 당시로서는 최첨단 과학기술이었던 것이다. 영국의 한국도자기 전문가 곰퍼츠(Gomperts)가 고려청자의 4대 업적으로 꼽았던 ‘아름다운 조형성’, ‘신비로운 유약색깔’, ‘상감기법(象嵌技法)의 창안’, ‘진사(辰沙)의 최초사용’ 등도 절감하며 재확인하였다.
평생 걸작들 앞에서도 알량한 미술사가의 냉철한 객관성을 보도(寶刀)처럼 앞세워 표정관리를 엄격히 하면서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자 애를 썼건만 이제는 늙어서일까 이번에는 보석 같은 청자들 앞에서 자제력을 잃은 듯 한숨과 감탄이 입에서 저절로 주체할 수 없이 튀어나왔다. 실로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품의 높은 격조와 다양성을 다시 한 번 절감하였다. 이어서 보게 될 다른 전시도 대단한 것임을 예감케 하였다. 4층의 고려청자실에서 나는 이미 미적 포만감을 충분히 느꼈고 설령 더 이상 다른 전시를 못 본다 해도 아쉬울 것이 없을 것 같이 느껴졌다.
그러나 두 제자는 3층의 조선시대 도자기실로 나를 이끌었다. 조선왕조 전반기에 우리 도공들이 발전시킨, 다른 나라에는 없던 조선 고유의 각종 분청사기와 조선시대 초기부터 말기까지 간단없이 지속적으로 만들어진 순백자 및 청화백자를 위시한 다양한 백자들은 잠시 동안이지만 나를 시각적 충격 속에 어리둥절하게 하였다. 마치 4층에서 3층으로 갑자기 떨어진 것처럼 타임머신을 타고 별개의 세계로 옮겨진 듯 혼미하게 느껴졌다. 한국의 도자기를 모르는 외국인들은 아마도 4층의 고려도자실을 본 다음에 3층의 조선도자실로 들어서면서 ‘같은 나라의 도자기 맞아?’라는 의문을 갖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고려와 조선왕조의 도자기들이 드러내는 차이는 새삼스럽게도 그야말로 ‘드라마틱’하게 느껴졌다. 전에는 늘 같은 층의 다른 전시실에서 두 시대의 도자기들을 수평적으로 이동하면서 보았기 때문에 느끼지 못했으나 이번의 리움 전시에서는 같은 건물의 4층에서 3층으로 수직 이동한 후 층을 달리하여 보니 그 차이가 그렇게 별나게 두드러져 보일 수가 없었다. 이번의 삼성미술관 리움 전시를 통하여 겪은 새로운 시각적 경험이었다.
이 방의 압권은 그 유명한 얼룩진 달항아리이다. 둥글고 아담하고 덕스러운 몸매, 희고 깔끔한 피부, 넘치는 안정감 등등 흠잡을 데 없는 보름달 같은 아름다움의 극치이다. 얼룩마저도 흰 캔버스 위의 담갈색 추상화같이 보여서 전혀 밉지가 않다. 다음 기회에는 조그만 별실을 만들어 따로 모셨으면 좋겠다. 주변에 누구의 어떤 작품을 갖다 놓아도 압도당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귀얄문 편병도 형태의 특이함과 자유분방하고 거침없는 귀얄무늬가 돋보이는 세계 유일의 대표작이다. 그렇다고 다른 분청사기들이 그보다 못하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각종 분청사기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형태와 무늬와 유약의 안정적인 소박성, 넘치는 창의성과 누구도 지울 수 없는 또렷한 한국성, 확연한 시대성과 지역성을 이번 전시에서 다시 한 번 절감하고 거듭 확인하였다.
15세기의 <청화백자매죽문 항아리> 앞에서는, 중국 것보다 뛰어난 우리나라 미술의 대표작들을 선정하여 기술한 졸저 《청출어람의 한국미술》(사회평론, 2010)에 여러 차례의 주저 끝에 포함시키지 않은 것을 거듭거듭 후회하며 개탄하였다. 중국에서 워낙 뛰어난 청화백자들이 원대부터 청대에 이르기까지 수도 없이 생산되었기 때문에 우리의 이 가작을 누를 수 있는 작품이 혹시라도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염려가 앞서서 포함시키기를 망설였던 것인데 역시 포함시켰어야 마땅했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참으로 후회스러운 일이다. 이 항아리에 그려진 매화와 대나무 그림은 일류 화원의 작품이 분명하여 회화사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처럼 도자사 뿐만 아니라 회화사의 측면에서도 더없이 중요한 작품인 것이다. 이 청화백자의 아름다움과 뛰어남을 거듭 재확인한 것을 소득으로 여기며 마음을 달랬다. 이번 전시에서 얻은 또 다른 큰 소득이다.
2층으로 내려가니 긴 설명이 필요 없는 정선의 <금강전도>와 <인왕제색도>, 김홍도의 <군선도> 등 국보들이 반겨주었다. 정조대왕의 화성 능행(陵幸) 장면을 그린 그림 중의 한 폭인 <환어행렬도>도 낙폭이지만 최고 수준의 궁중기록화로서 눈길을 끈다. 이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하였다는 서도호의 <우리나라>는 수많은 아주 작은 인물상을 군집시켜 한반도 형태를 재현했는데 작품 속에 깃든 젊은 작가의 남다른 창의적 생각과 수고로움을 마다않는 성실함이 합쳐져 관객들의 눈길을 끌어들인다. 평면미술인 회화의 방에서 회화도 아닌 엑스트라가 관람객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작가의 능력과 평판, 작품이 지닌 한반도의 지도와도 같은 조형성이 합쳐진 결과일 것이다.
1층 전시실에서는 불교미술과 금속공예를 감상하였다. 국보 제196호인 통일신라의 <백지묵서 대방광불화엄경>과 변상도, 국보 제218호인 고려의 불화 <아미타삼존내영도>와 삼국시대 및 후대의 불상들, 금관을 비롯한 각종 금속공예들이 각기 뛰어난 아름다움과 함께 역사적 의미를 드러낸다. 불화와 불상 곁에 배치된 마크 로스코의 추상화와 자코메티의 조각은, 이번 전시의 기획자들이 보여주고 싶어 한 ‘교감’에 대한 강한 의도를 엿보게 한다. 이로써 Museum1의 고미술전시관을 터질 듯한 미적 포만감 속에서 떠날 수 있었다.
이어서 ‘동서교감’을 느끼게 하고자 계획된 한국의 근현대미술과 서양의 미술을 Museum2 현대미술관에서 보게 되었다. 현대미술의 조형적 변화, 예술의 본질에 대한 탐구, 다양화하는 여러 가지 특성 등을 엿볼 수 있었다. 현대미술 전시는 Museum2의 2층부터 지하 1층까지 차지하고 있다. 동서 현대미술의 여러 경향과 대표적 작가들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 실험적 성격의 작품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현대미술 전시는 기획전시실과 로비로 까지 이어졌다.
이번 전시는 고미술 상설전시관인 Museum1과 현대미술 전시관인 Museum2 등 삼성미술관 리움 전체의 공간을 모두 활용하여 한국의 전통미술과 현대미술을 위주로 하면서 서양 및 중국 등 외국의 현대미술까지 포함하여 최대한 많은 작품을 ‘교감’이라는 시각에서 효율적으로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이번의 삼성미술관 리움 10주년 기념전은 종래의 전시들과 원칙적인 점에서는 공통된다. 다만 전시의 규모가 훨씬 더 커지고, 박물관 전시공간을 비우지 않고 꽉 메우듯 최대한 활용하여 동서고금의 다양한 미술의 흐름과 특성을 되도록 많이 소개하되 ‘교감’이라는 큰 명제로 조화롭게 묶어보고자 한 점이 두드러진 차이일 뿐이다.
지금까지 삼성문화재단은 1965년 설립 이후 호암미술관, 호암갤러리를 거쳐 삼성미술관 리움, 플라토(구 로댕갤러리)에 이르기까지 줄기차게 ‘삼성미술관 리움만이 할 수 있는 전시’, ‘삼성미술관 리움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전시’를 개최해왔다. 1990년대에 호암갤러리에서 개최했던 <고려, 영원한 美>, <大고려 국보전>, <조선전기 국보전>, <조선후기 국보전>, 리움에서 열었던 <조선말기 회화전>, <금은보화전>, <조선화원 大展> 등은 그 대표적인 예들이다. <리움개관 10주년 기념전: 교감>은 특히 더욱 주목할 만한 전시다. 삼성미술관 리움이 아니면 어떤 박물관이 이런 대규모의 폭넓고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다양한 전시를 할 수 있겠는가. 한국의 고미술은 물론 현대미술, 그리고 서양의 현대미술까지 어우르는 다양하고 수준 높은 막강한 소장품, 대규모의 전시가 가능한 넉넉한 전시공간, 뛰어난 전문 인력, 옹색하지 않은 예산 등이 모두 갖추어져 있는 삼성미술관 리움 같은 미술관이나 박물관이 아니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전시들이다. 이런 전시들을 통하여 국민은 많은 문화적 혜택을 누려왔다.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차제에 실제로 가까이서 보고, 느끼고, 생각만 하고 글로써 드러내지 않았던 몇 가지를 이번의 전시를 핑계 삼아 털어놓고자 한다. 만약 삼성미술관 리움이 없었다면 우리나라의 문화와 문화재, 현대미술이 어떻게 되었을까를 전제로 하여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첫째는 위에서 언급했듯이 리움이 다른 박물관이나 미술관들이 열 수 없는 ‘굉장한’ 전시회를 끊임없이 열어왔으나 그 중요성을 제대로 아는 국민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막연히 ‘돈이 많으니까 하는 일이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문화를 키우고 문화재를 보전하겠다는 투철한 인식과 애국심이 없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크나큰 중대사가 바로 문화재와 미술품을 수집하고 박물관을 세워 국민을 위해 전시하고 교육하는 일인 것이다. 실로 국가를 위해서 또는 국가가 할 일을 대신해서 하는, 숭고한 애국적 문화사업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도 그 고마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국민이 많다는 것은 여간 아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리움은 지나치게 좌고우면하지 말고 당당하게 홍보를 보다 적극화하고 국민들은 그런 전시들을 통하여 우리의 역사와 문화는 물론 현대미술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을 기르는 소중한 기회로 삼아야만 한다.
둘째는 삼성미술관 리움이 오랫동안 수집해온 수많은 문화재와 현대미술품의 엄청난 가치를 정부와 국민 모두가 올바르게 인식하고 인정해야 마땅하다는 점이다. 간송 전형필 선생 이후 이병철 선대회장과 이건희 회장· 홍라희 관장 부부, 호림박물관의 윤장섭 회장을 비롯한 문화재 및 미술품 수집가들이 없었다면 간송선생 사후의 문화재 분야의 공백을 누가 메우고 가꾸며 끊임없는 문화재의 해외 밀반출을 어떻게 막을 수가 있었겠는가. 간송선생과 더불어 후대의 애국적 문화재 수집가들에 대해서도 올바른 평가가 똑같이 공평하게 이루어져야만 하고 대등하게 고마운 존재들로 대우해야 마땅하다.
셋째는 삼성미술관 리움 같은 박물관과 미술관이 많이 생겨날 수 있도록 ‘문화융성’ 차원에서 정부의 정책이 마련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1000개의 박물관 늘리기는 언뜻 성공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진정으로 견실한 사립박물관과 미술관은 지극히 드물다는 사실을 전문가들은 훤히 알고 있다. 우선 돈 많은 재벌들이 리움 수준의 튼실한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세울 수 있도록 정부는 세제상의 혜택을 부여하는 등 정책적 배려를 하는 것이 장족의 국가 발전과 문화융성을 위해서 절실하게 요구된다. 예를 들어 자동차를 생산하는 재벌은 자동차박물관, 소비재를 주로 만들어내는 재벌은 소비재박물관의 설립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나라가 선진국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데에는 박물관과 미술관의 숫자가 얼마나 되며 그것들이 또 얼마나 알찬지도 중요한 잣대가 됨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삼성미술관 리움의 10주기를 충심으로 축하하며 무궁한 발전을 기원해 마지않는다. 훌륭한 전시를 위해 애쓴 홍라희 관장과 홍라영 상임부관장, 우혜수 학예실장을 위시한 직원 모두에게도 전시를 만끽한 관람자의 한 사람, 연구자의 한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한다. 끝으로 오늘의 리움이 있게 한 이건희 회장의 빠른 쾌차를 마음으로부터 기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