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FEATURE 아라리오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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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리오 김창일 회장의 어제와 오늘

배혜경 크리스티 한국사무소 대표

“I have a dream~” 그룹 아바Abba의 경쾌한 노래가 들리면 나는 항상 조건반사처럼 김창일 회장을 떠올린다. 그 노래는 아주 오랫동안 김창일 회장의 휴대전화 컬러링이었다. “나는 꿈이 있고 어두움을 헤치며 때가 되면 비상하리라”는 가사처럼 그는 늘 꿈을 품고 사는 ‘청년’이다.

# Dream
어린 시절 비 온 뒤 갠 하늘의 무지개를 보고 황홀경에 빠지던 소년이 있었다. 무지개는 소년에게 막연하지만 한 가지 꿈을 건넸다. 그 무지개처럼 누군가의 영혼을 정화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이었다. 소년 창일은 장년이 되어 미술관을 견학하고 미술품 수집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제 그 꿈을 멋지게 구체화했다. “LA 현대미술관 MOCA와 디아:비컨 Dia:Beacon을 보면서 나는 내가 머릿속으로 상상하던 미술관이 바로 여기에 있음을 느꼈다”는 그는 전 세계의 좋은 작품들을 수집해서 미술관을 통해 사람들을 문화적으로 풍요롭고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다. 2000년 처음 그를 만났을 때 그는 천안에 미술관을 지을 생각에 가슴이 부풀어 있었고 외국의 건축가와 이미 설계를 진행한 상태였다. 김 회장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가장 놀라운 점은 평생을 간직해온 그의 화두인 꿈에 대한 놀라운 집중력과 자기 최면, 자기 암시이다. 보통 사람은 꿈을 꾸더라도 모든 일상이 일관되게 그 꿈을 향하진 않는다. 하지만 그와 이야기를 하면 끊임없이 “ 꿈, 운명, 아름다움, 예술” 이라는 단어가 반복된다. 그는 실제로 일상에서 잔가지와 군더더기는 다 쳐내고 매우 단순한 삶의 형태를 유지하면서 자신의 꿈에 선택, 집중한다. 3년 전쯤부턴가 그의 휴대전화 컬러링은 들국화 전인권이 절규하듯 부르는 “하지만 후회 없어~ 찾아 헤맨 모든 꿈 , 그것만이 내 세상~”으로 바뀌었다. 그가 꿈꾸던 미술관이 가시적으로 풀리지 않았고 뉴욕 아라리오, 베이징 아라리오의 철수 등으로 인해 힘든 시절을 겪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지난해 소격동과 상하이에 갤러리를, 그리고 옛 공간사옥을 매입해 꾸민 뮤지엄 인 스페이스와 제주도에 세 개의 뮤지엄을 지속적으로 개관했지만 그 모든 것은 결코 하루아침에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지난 35년간 축적된 그의 땀과 노력이 이루어낸 꿈의 결실이라 하겠다.

# Destiny
김창일 회장은 본인이 유학 간 것도 아니고 미술 공부를 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 그림을 그리고 컬렉션을 하게 된 것은 기적이고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그에게 예술은 곧 운명이다. 운명은 그에게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왔고 그중 하나가 공간사옥이다. 어느 날 그가 예고도 없이 우리 사무실에 들러 상기된 표정과 들뜬 목소리로 ‘정말 생각지도 않았던 공간사옥을 인수하게 됐다’는 소식을 전하던 기억이 난다. ‘낡고 침침하고 오밀조밀한 건물에 어떻게 미술관을?”이라는 세간의 우려가 적지 않았지만 그는 보란 듯이 멋진 미술관으로 공간사옥을 살려냈다. 역사성과 정체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컬렉션을 직접 큐레이팅하여 전혀 새로운 형태의 현대 미술관을 만들어낸 것이다. 현대미술을 전시하기 쉽지 않은 공간 구조인데도 신디 셔먼, 바바라 크루거, 앤디 와홀, 마크 퀸, 트레이시 에민등과 백남준, 강형구, 최병소, 이동욱 , 수보드 굽타, 권오상 등의 작품들이 마치 ‘바로 여기가 내 자리야’라고 웅변하고 있는 듯한 미술관…. 참으로 진지한 컬렉션임에도 지루하지 않고 흥미진진하게 전시된 이 미술관이 있어 나는 요즘 외국 방문객이 와도 마음이 놓인다. 그들에게 한국 개인 컬렉터의 실험적인 현대 미술관을 자랑스럽게 보여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 passion
한 남자가 티셔츠에 갇혀 마구 버둥대고 있다. 한 팔을 소매에 끼었는데 다른 한 팔은 소매 구멍이 영 찾아지질 않는다. 너무 허둥대는 바람에 티셔츠는 더 엉키고 만다. 딱 학교에 지각한 소년 같은 이 사람은 바로 김창일 회장이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작품을 어떻게 만들지 아이디어가 머릿속에서 폭포처럼 쏟아져 나와 빨리 작업장으로 달려가려 서둘다가 벌어지는 풍경이다. 이처럼 그에게 창작은 간절한 소망이며 운명 같은 신내림이다. “나는 한때 죽을 만큼 어려운 시절을 겪은 사업가다. 그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꿈이 가득한 아름다운 세상을 나의 예술로 표현하겠노라, 결심했다.”
예전에 그를 보면 솔직히 뜬구름을 잡는 사람인 것만 같았다.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고 에너지가 지나치게 넘치는 무모한 사람. 나처럼 평범한 세상 사람의 잣대로 보기에 그의 열정은 왠지 부담스러웠고 그가 과연 꿈을 이룰 수 있을지 적잖이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그는 지난 16년간 그 어떤 전업 작가보다 더 치열하게, 더 많은 시간을 쏟으면서 다양한 기법과 주제의 실험을 통해 계속 발전된 그만의 독창적 작품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처음에 그가 작품을 한다고 했을 때 나는 속으로 ‘그러지 말았으면…’ 했다. 그냥 취미로 그림을 그리다가 괜히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는 것이 아닐까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오랜 시간 가족과 떨어져 스스로 고독한 환경 속에 침잠하여 자신의 내면에서 솟구치는 열정을 작품에 쏟아 부었다. 그림을 그릴수록 자신이 왜 그림을 그려야 하는지 또 어떻게 그릴지 정신적으로 혼란스러워하며 고민했다는 그는 오늘도 하루의 반은 작품 구상과 작품을 만드는 데 보내고 있다. 그에게 누가 감히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누구보다 더 투철한 작가 정신으로 무장한 그다. 요즈음의 그를 보면 소년처럼 눈이 맑아진 느낌이 물씬하다. 15년 전에 느꼈던 사업가의 풍모보다는 예술가의 아우라가 더 강하다.

# Arario Brand, Collection Brand
“나는 내 가슴을 울리는 작품을 산다.” 김 회장이 컬렉션을 할 때 선택하는 기준은 그 자신의 ‘필feel’이다. 그의 컬렉션은 대부분 커팅에지cutting edge 작품들이다. 매우 실험적이고 이슈가 되는 작품들을 과감하게 컬렉션함으로써 아라리오만의 특별한 아이덴티티를 만들어냈다. 그에겐 시대를 앞서가는 그만의 직관과 필이 있다. 특히 영국의 yBa 작가들과 독일의 라이프치히 화파 작품을 그들이 글로벌 미술계에서 막 부상하기 시작할 때 수집했고, 나아가 아시아의 떠오르는 신진 작가들에 주목하고 컬렉션해왔다. 마크 퀸의 <셀프>나 채프먼 형제의 작품처럼 매우 충격적이고 엽기적인 작품들까지도 수용할 정도로 그는 열려있으며 또한 많은 한국의 동시대 작가도 후원해왔다. 그 동안 동시대 미술시장은 급성장을 했고 키스 해링, 시그마르 폴케, 라이프치히파 작가들, 신디 셔먼, 데미안 허스트, 마크 퀸, 채프먼 브라더즈, 안소니 곰리, 앤디 워홀, 바스키아, 장환 등 등 이미 국제 시장에서 거장의 반열에 오른 작가들의 작품을 일찌감치 수집해온 그의 안목은 결과적으로 아라리오 컬렉션의 정체성이 되었다.
용도 폐기되고 버려진 영화관과 바이크숍 그리고 모텔. 제주도에 있는 이 건물들을 미술관으로 만든다? 우리는 이 건물들이 헐리고 그 위에 번듯한 현대식 미술관 건물들이 우뚝 서게 될 줄만 알았다. 그런데 김 회장은 그 특유의 역설과 예측불허의 감성으로 건물의 많은 부분을 그대로 남겨둔 채 멋진 현대 미술관으로 재창조해냈다. 서구에서는 이미 용도폐기된 건물을 미술관이나 갤러리로 재창조한 경우가 많지만 이렇게 한국적 상황에 절묘하게 접목시킨 것은 그동안 해외의 여러 미술관을 견학하면서 머릿에서 수많은 시뮬레이션을 거친 김 회장 개인의 내공에서 기인한다. 아라리오 제주 뮤지엄의 콘셉트는 죽은 도시를 재생시키고 활성화시키는 새로운 형태의 미술관이다. 이렇게 그는 서울의 뮤지엄 인 스페이스와 일관된 컨셉의 미술관으로 아라리오 뮤지엄만의 새로운 실험적인 브랜드 콘셉트를 만들어 냈고 이는 지역 문화의 가치 향상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와 같이 아라리오 김창일 회장은 아라리오 아이덴티티의 정점에 있다. 그는 사업가, 컬렉터, 예술가로서 아라리오란 브랜드에 스토리를 입히는 사람이다. 그중 어느 하나를 빼면 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듯이 그 셋은 삼각대처럼 김창일이라는 개인 브랜드의 균형을 잡아준다. 그가 회사명을 ‘아라리오”로 채택한 것도 재미있다. 한국적 고유성을 가지면서 외국인도 쉽게 발음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에서 “아라리오”란 참으로 기발한 이름을 추출해냈다. 이처럼 그는 매우 단순 명쾌하게 핵심에 집중한다. 그는 영원한 청년이다. “감사합니다”라는 인사가 입에 붙었고 꾸벅 인사도 잘하며 항상 배우는 학생처럼 스스로를 낮춘다. 그러한 젊은이의 기질은 그로 하여금 남과 다르게 세상을 보고 남과 다르게 세상을 살게 하는 원동력이다. 매우 소탈하고 다혈질인 그는 만날 때마다 기발하고 격식에 얽매이지 않은 행동으로 주위를 무장해제시키며 행복바이러스Happy Virus도 전파한다. 하지만 겉으로 굉장히 외향적이고 사교적으로 보이는 그에게 실제로는 매우 내성적이며 예민하고 상처도 쉽게 받는 소년이 도사리고 있다. 이러한 인간 김창일의 매력이 아라리오에 색깔을 부여하는 근본 원인이 아닐까?
사람들은 김 회장의 승승장구를 보면서 ‘꿈을 실현한 행운아’라며 부러운 시선을 보낸다. 하지만 그에게도 동트기 전의 어둠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오늘 성공은 그의 과거의 수많은 시행착오와 실패 경험의 산물이다. 특히 뉴욕 아라리오와 베이징 아라리오를 닫으면서 그는 많이 슬퍼했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서 그는 많이 배웠고 성장했고 단단해졌다. 성공이 너무 일찍 왔다면 그의 모습은 지금과 많이 다르지 않았을까?
그의 꿈은 실현된 것이 아니라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오늘도 내일도 그의 머릿속에는 무궁무진한 아이디어가 소용돌이치고 있을 것이기에 앞으로 아라리오가 가는 길에 또 어떤 의외와 역설이 튀어나올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우리는 한 시골 사업가의 꿈이 천안이라는 문화적 변방을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이 생동하는 풍요로운 문화도시로 변모시킨 이변을 보았다. 또 서울과 제주의 문화 지형도가 어떻게 바뀌어가고 있는지보고 있다. 앞으로 김 회장은 제주에 6개의 미술관을 더 만들어 그가 지난 35년간 모은 3700점의 컬렉션을 대중과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을 늘려나갈 계획이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는 그의 행보는 생각만 해도 기대가 된다. 그가 ‘그것만이 내 세상’을 외치면서 어떻게 세계적으로 한국 문화의 위상을 높여갈지는 그대로 의문형으로 열어놓기로 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