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Feature]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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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것들

연탄(11.3%), 삐삐(9.3%), 공중전화(7.3%), 버스 안내양(5.3%), 시내버스 토근·회수권(5.1%). 이상은 2007년 갤럽에서 만 19세 이상 성인남녀를 대상으로 ‘지난 20년간 우리 주위에서 사라진 것들, 즉, 오래전에는 쉽게 볼 수 있었지만 요즘은 잘 볼 수 없거나 잊혀진 것들로 어떤 것이 가장 먼저 생각나십니까?’를 물은 조사에서 상위 5위를 차지한 답변이다. 새로운 상품, 건물이 사회를 언제나 진보시킨다는 이상 아래 우리의 일상 속 풍경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한다. 그러나 개발은 무엇의 소멸 위에 존재한다. 최근 새로 생긴 것만큼이나 사라진 것을 기억하는 바람이 여기저기서 불고 있다. 1980년대에 유행하던 가요의 리메이크앨범, 1990년대를 배경으로 삼은 드라마와 그 당시를 주름잡던 가수들의 컴백이 자연스러워졌다. 도시 속 네모반듯한 빌딩숲보다 얼마 남지 않은 오래된 동네가 관광지가 되고, 인터넷에는 ‘00년대 생 공감’이란 키워드로 1980~1990년대 출생한 젊은이들이 자신의 어린 시절 추억을 공유하는 시리즈가 유행처럼 번졌다. 지나간 시간을 기억하고, 소멸된 것에 대해 회고하는 자세는 단순히 나이 지긋한 이들의 ‘추억 팔이’에 그치지 않는다. 어제를 지나온 모두가 사라진 것을 곱씹는다.
미술은 익숙했으나 요즘은 잘 볼 수 없는 혹은 잊혀진 것들을 어떤 식으로 표현할까.
《월간미술》은 사라진 것을 작업의 소재나 주제로 취하는 작가 7인(팀)의 작품을 만나본다. 이들의 작업은 관객에게 경험하지 못한 혹은 경험한 과거의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개발논리의 산물인 폐허라는 도시 속 공간에 대해 미술계에서 다양하게 시도되는 대처법, 최근 열린 일련의 전시에서 잊혀진 과거를 회고하는 성격을 띠는 전시도 짚어본다. 모든 것이 빨리 변화하고 쉽게 잊혀지는 지금, 생성되는것 보다는 없어진 것, 그리고 그 사라진 것들을 포착한 미술 속 기억의 책장을 열어본다. 2014년 끝에 서서, 지금 우리 곁에서 아련해져가는 것들에 대한 미술의 마주하는 법을 살펴보자.

생활의 추억

오브제의 발전 속도가 빨라짐에 따라 우리 주변을 둘러싼 다양한 도구가 어느새 오래되어 사라지고 그 자리는 새로운 무엇인가로 대체된다. 정재호의 작품은 지금은 사라진 익숙한 형태의 생활 속 물건을 보여준다.

정재호-대화_ 사본

<대화> 한지에 아크릴 135×200cm 2013

정재호-트랜지스터_ 사본

<트랜지스터> 한지에 아크릴 88×104cm 2014

“오래된 구형 전화기를 그린다면 그 이유는 전화기라는 쓰임에 있지 않다. 쓰임보다는 오히려 그 생김새에 있다. 투박한 외형은 그것이 다름 아닌 ‘전화기’라는 물건임을 강하게 보여준다. ‘전화기’라는 물건의 대명사에 요즘의 핸드폰 따위는 어울리지 않는다. 핸드폰은 존재감이 없다. 핸드폰뿐인가, 요즘의 사물은 모두 존재감이 없다. 얼마 전에 마트에서 커다란 TV를 보았는데 TV는 없고 화면만 있는 디자인이었다. 그러니까 사물의 기능이 형태가 되는 꼴이다. 나는 그런 사물을 보고 도무지 그릴 욕구가 생겨나지 않는다.
그림에 대한 욕구는 이야기에 대한 욕구와는 다르다. 그것은 순전히 생김새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난다. 이야기가 붓질을 지속시켜주지는 않는다. 그림은 매우 지루한 붓질의 과정이다. 그걸 지속시켜 주는 것은 역시 그 사물의 형태이다. 붓질은 떨어져 있는 사물들을 다시 만지는 행위이다. 저기 있는 저것은 만질/그릴 만한가? 다소 에로틱하지만 그게 진실이다.”
– 정재호

휘발하는 풍경

우리의 주거환경은 짧은 시간에 주택에서 아파트로 변화했다. 당대의 생활상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주거의 변화를 작가 김주리는 예민하게 드러낸다. 동네에서 사라져가는 근대주택은 흙과 물로 재현한 그의 작품에 의해 전시장에서도 서서히 무너져간다.

김주리 (3)

<휘경;揮景-h07> 흙, 물 70×36cm, 2012

김주리 (1)

< landscape-scence01(부분) > 흙 물 245×245×40cm 2014

“<휘경:揮景> 이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한국의 근대주택 시리즈는 1970~1980년대에 대량으로 지어진 주택으로 그 수가 점차 줄어들고 있지만 여전히 도시의 곳곳에서 서민의 보금자리 구실을 하고 있는 가옥들에 관한 작업이다. 근대건축물이 지어진 초기에 서구에서 들어온 붉은 벽돌과 시멘트 기와의 조합과 더불어 여러 형태의 문화와 욕구들이 혼합된 한국형 근대 주택의 모습이다.
실제 존재하는 집을 일정한 비율로 축소해 흙으로 재현해낸 다음 물을 부어 서서히 무너지는 과정을 통해 이 시대에 집이 가지는 의미와 역사성, 죽음과 소멸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 사회의 건축물은 당대의 정신과 문화, 재료, 시대적 상황이 혼합된 시대적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건축물을 흙으로 빚어 물로 녹이는 작업들은 생성과 소멸이라는 어쩌면 당연한 삶의 알고리즘으로 이는 삶에 대한 관심, 자기 반성적 존재성의 인식에 대한 고찰일 것이다.”
– 김주리

아련한 공간

사진작가 김지연은 동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어린 시절 추억의 공간을 작품에 담는다.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었던 이발소, 정미소는 이제 거의 눈에 띄지 않는 곳이다. 아련한 추억을 회상시키는 그의 사진은 세대를 막론하고 복합적 감성을 자극한다.

김지연-이용원

<귀빈 이용원> 사진 2004

김지연 책-1

왼쪽에서부터 진안골 졸업사진첩, 근대화상회, 정미소의 풍경과 인물을 담은 사진집

“어떤 사람들은 나를 추억을 찍는 사진가라고 이야기한다. 시대에 뒤처진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향수를 달래는 감정을 사진을 빌려 말하는 사람이라 여긴다. 정미소라든지 이발소 등…
물론 여기에는 내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겨있다. 그런데 이것을 나 혼자 생각하고 있으면 향수지만 모두와 공유하면 역사가 되고 문화가 된다. 그러나 나는 한 이발소, 한 이발사와 정면으로 마주서서 이들의 직업, 이들의 인생을 직시하고자 했다. 사라지는 것을 기억한다는 일에 이미 감상적인 의미가 내포 되어 있다고 본다. 나는 그 감상을 무시하려 하지 않는다. 다만 그 위에 떠있는 찌꺼기인 거품을 제하고 정제된 감정을 껴안고 싶다. 그렇다! 역사에 남을 일은 아니더라도 우리의 삶을 공유하는 일은 가능하지 않을까!”
– 김지연

사라진 전시장

새로 생기는 갤러리만큼 이런저런 이유로 사라져가는 전시공간도 많다. 젊은 작가 오희원은 지난 몇 년간 생성, 소멸되는 전시장을 리서치해 지도에 표시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그리고 캔버스에 텅 빈 전시장을 담았다. 지금은 사라져 볼 수 없는 전시공간이 그의 그림에 남아있다.

Blind Site 4

종로구 통의동에 위치했던 브레인팩토리 전시장을 그렸다. < Blind Site : A dry atmosphere > Oil and color pencil on canvas 130.3×89.4cm 2012

Blind Site 2

강남구 청담동에 위치했던 PKM Trinity Gallery의 전시장을 그렸다. < Blind Site : Natural > Oil and color pencil on canvas, 145.5×97cm 2011

“회화 연작은 사라져가는 풍경을 기념한다거나 혹은, 묘사에 집중한 그림이나 제도 비판을 의도한바 또한 아닌 불명확한 상태에서 출발한 작업이었다. 전시장이란 특수한 공간에 내재하는 양상을 관찰하면서 재현된 회화는 익명의, 개별성을 함축한 공간으로 관망되면서 범주화된 전시장들의 축약된 세계로서 가시화돼왔다. 실공간의 기록을 단서 삼아 다층화된 시선 아래, 작업은 과거와 현재, 현실과 비현실, 시간의 연속성과 단절 같은 상반된 흔적을 기록하는 매개체로서 그려졌고, 의도의 개입 여부를 떠나 현재를 관찰하는 재현의 도구로 읽히면서 시간의 동반 아래 의미가 생성되고 있었다. 재현하는 대상과의 거리감을 확보하고자 한 회화는 강화된 과거와 망각돼가는 오늘 그리고 흐릿한 미래를 암시하는 정조를 드리우며 그려진 대상을 표지하는 상징으로 대리되었고, 과거의 미술이 설정했던 배경과는 달리, 눈에 보이지 않게 재편되는 사태를 기록해 나가는 과정을 취하면서 변모된 오늘의 이미지를 그려 나가고 있다.”
– 오희원

암갈색의 마찰

요즘은 주변에서 찾기 힘들지만 예전에 성냥은 식당, 다방, 레스토랑 등에서 계산을 하고 손쉽게 구할 수 있던 물품이다. 이기일은 전시 리플렛을 성냥으로 제작하고, 성냥의 주재료인 유황을 사용한 다양한 작업을 선보였다.

이기일 (1)

<성냥그림> 캔버스에 발화제 232×160cm 2005

이기일 (2)

2005년 관훈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전시광경

“한때 전국에 300여 개의 수공업 형태 성냥공장이 있었으나 모두 사라지고 지금 단 한곳이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경북 의성에 위치한 국내 유일한 성냥공장 성광사의 협조를 받아 제작된 이 작업은 손의 움직임과 마찰에 의해 발화하는 구체적인 물질을 선택하였다. 격동기의 사상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군인의 형상을 성냥 재료인 유황으로 만들고 전시 마지막 날 돋보기로 점화하였다.”
– 이기일

간판쟁이의 리얼리즘

1990년대까지만 해도 영화관 앞에는 상영 영화를 소개하는 간판이 있었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를 담아 지나가는 이의 눈을 사로잡던 영화간판은 이제는 볼 수 없는 시각매체 중 하나다.

박태규 (2)

박태규 <추억 Memory1>합판위에 페인트 180×90cm 2002

“어느 순간 역사 속에서 사라진 극장 간판. 박태규는 유일하게 수제간판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이 시대 마지막 영화 간판쟁이다. 극장 간판하면 상업적인 것이 전면에 드러나 있어 순수미술의 영역에 포함시켜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박태규는 아카데미즘 미술에서는 볼 수 없는 대중적으로 친숙한 이미지와 매체적 특성을 무기로 삼아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구축해오고 있다. 그의 작품 속에는 시대상이 담겨 있으며, 대중과 가까이 호흡하며 인생의 기쁨, 슬픔 등 삶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매끄럽지 않고 다소 투박한 붓질은 의도적으로 사진과 같은 느낌을 피하고 우리네 인생사의 고단함을 화폭에 담아 따뜻하게 위로하고 싶은 작가의 속내가 묻어 있다. 그리하여 박태규의 작품은 보는 이들에게 각자의 삶의 역사를 돌아보게 하고 그 속에 살아 숨쉬었던 추억과 향수에 젖게 만드는 매개체 역할을 합니다. 한때는 저급한 것으로 여겨졌던 간판을 자신만의 독자적 미술세계로 승화시킨 작품을 통해 새로운 리얼리즘 미술의 매력을 경험하고,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각자의 생에서 아름다웠던 한때를 추억해 볼 수 있게 한다.”
– 나민환 (큐레이터)

그림1

김.강.박 씨 <우리생애 최고의 순간> 캔버스 위에 유화 100×65cm 2008

“물질주의에 의한 사회의 변질은 ‘인간을 위한 도구’에서 ‘도구를 위한 인간’의 형태로 삶을 변화시켰다고 생각한다. … 디지털 프린트나 화려한 컴퓨터 영상에서 느낄 수 있는 기계적 조형이 아닌, 직접 손으로 차곡차곡 그려 올린 영화간판을 통해 위트 있는 언어로 묵직한 아날로그적 감성을 담아냄으로써 잊혀가는 휴머니즘을 드러내고자 한다. 또한 간판 제작 형식을 통해(지워내고~그리는) 대상을 탐구하는데 있어 표면적 시각 요소보다 내포된 역사성이 주는 가치에 더욱 접근하는 탐구 방법을 취하고 있다.”
– 김.강.박 씨(김현승, 강천식, 박종호)

Report

타임캡슐 봉인해제

잡지, 신문, 포스터를 포함한 다양한 디자인 소품은 세월이 지나면 당대를 보여주는 중요한 시각 사료 구실을 한다. 최근 과거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서 다양한 시각매체가 전시장에 등장했다. 단순히 지난 시간을 담은 사진이나 영상을 넘어 다양한 오브제들이 전시의 중요한 아카이브로서 함께 한다. 서울역사박물관의 기증유물특별전 <응답하라 1994 그후 20년>(10.29~2015.2.22)은 역사의 흐름을 생활 문물로 보여주는 전시다. 서울 수도 탄생 600주년이던 1994년 서울의 생활, 풍습, 인물, 문화예술 등을 상징하는 문물을 선정해 남산골 한옥마을에 매설한 타임캡슐과 1994년 어느 날을 영화, 비디오, 사진, 소리 등으로 기록한 이재용 감독의 기록물 <한 도시 이야기> 등을 전시했다.
이 기록물은 작가 최정화, 오형근을 비롯해 각 분야의 예술가들과 일반 시민들의 참여로 이뤄져 일상의 기록을 다각도의 시선으로 남겼다. 현재는 슬라이드 필름과 기록영상, 그 기록이 담긴 테이프와 필름이 전시되어 있다.
또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상설전시장은 다양한 시각자료로 한국의 역사를 한눈에 살펴 볼 수 있게 전시했다. 반공, 유신, 산아제한 등을 다룬 포스터는 사회 변화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1960~1980년대 한국의 성장을 주제로 한 제3전시실은 영화, 음악, 스포츠, 패션 등 당시의 대중문화 아이템을 실물자료와 영상으로 살펴볼 수 있도록 전시하고 있다. 이와 비슷한 전시가 더 페이지갤러리에서 열린 한국근현대 체험전시 <노 모어 아트전>(7.3~9.28)이다. 이 전시는 복고주의적 시점에서 과거의 거리를 재현하고 마치 영화세트장처럼 관객이 드나들 수 있도록 했다. 이중섭, 박수근, 구본웅, 이인성, 나혜석이 살았던 공간을 재구성하고 이상의 제비다방, 국제시장 같은 곳을 재현해 관객이 우리나라 근대문화의 중심을 체험해 볼 수 있도록 했다. 이처럼 생활 속 물품들이 전시장으로 들어와 우리의 향수와 기억을 자극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역사를 그리는 중요한 자료 구실을 하고 있다. 전시라는 방식을 통해 단순히 과거의 문화나 공간을 박제화하는 위험성도 있지만, 당시를 경험한 많은 이에게 추억을 떠올리고, 그 시대가 생소한 이들에게는 사료로서 읽힐 수 있기에 의미가 있다. 복고문화는 단순히 세대간의 차이로 구별짓기보다 그 간극을 좁히는 소통의 무대가 될 수 있다. 지금 너무나 익숙한 물건도 자료로서 또 사료로서 탈바꿈할 순간이 머지않았다.
– 임승현 기자

대한민국역사박물관 (5)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제3전시장에 전시된 포스터와 당시의 시대상을 보여주는 물품들. 대중문화를 엿볼 수 있는 영화 포스터와 간판도 전시되어 있다.

더페이지 (9)

더페이지 (4)
더 페이지 갤러리에서 열린 <노 모어 아트전> 전시장 광경. 건물의 겉모습뿐 아니라 실내까지 재현했다.

응답하라 (6)
서울 600주년을 기념해 제작한 타임캡슐을 포함해 1994년의 생활상을 당시의 물품을 통해 살펴보는 서울역사박물관 전시장 광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