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FEATURE the 56th Venice Bienn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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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작 줄리언(Isaac Julien) <DAS KAPITAL>(1867)
센트럴 파빌리온 아레나에서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는 퍼포먼스 장면. 이 퍼포먼스는 현대사회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여러 가지 시선과 차이에 대한 내용이다. 하루에 3번 30분간 진행된다. 이밖에도 아레나에서는 카릴 조레이주와 조안나 하디토마스의 《Latent Images: Diary of a Photographer》(2009~2015)를 낭독하는 퍼포먼스도 열린다. Photo by Andrea Avezzù Courtesy: la Biennale di Venezia

미래로부터 다가오는 과거들

유진상 계원예술대학교 교수

예술이 특정한 결말을 향해 치닫는 것을 경계하는 큐레이터가 비엔날레 주제에 ‘미래’라는 단어를 썼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오쿠이 엔위저는 베니스 전역을 세계의 축소판으로 설정하고 구현하려 한 ‘과거의 미래’, 즉 현재를 의미한다고 말한다. 국가관과 본전시를 통해 그의 목표는 달성되었을까? 필자의 시선을 따라 이번 비엔날레를 생각해본다.

“<새로운 천사(Angelus Novus)>라는 제목의 클레의 그림은 뭔가를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그것으로부터 이제 막 멀어지려고 하는 천사를 보여주고 있다. 그의 눈은 노려보고 있으며, 입은 벌어져 있고, 날개는 펼쳐져 있다. 이것은 역사의 천사를 묘사한 것이다. 그의 얼굴은 과거를 향하고 있다. 연쇄적인 사건들이 떠오르는 거기에서 그는 잔해 위에 쌓인 잔해들과 그의 발치에서 비명을 토해내는 단 하나의 파국만을 본다. 천사는 그곳에 남아 죽은 자를 일깨우고 파괴된 것들을 다시 재건하려고 한다. 그러나 낙원으로부터 돌풍이 불어온다. 그것은 그의 날개 안으로 너무나 강력하게 불어와 천사는 더 이상 날개를 접을 수가 없다. 돌풍이 천사가 등을 돌리고 있는 미래를 향해 더 이상 저항할 수 없는 그를 날려 보내는 동안, 그의 앞에 펼쳐진 잔해의 더미는 하늘 높이 쌓여만 간다. 이 돌풍을 우리는 진보라고 부른다.”
– 발터 벤야민, 《역사철학 논고》, 1940

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의 주제는 ‘모든 세계의 미래들’이다. ‘미래’는 동시대미술에서 거의 쓰이지 않는 단어다. 이 단어가 지닌 목적론적(teleological) 뉘앙스 때문이다. 미래에 대해 말하는 것은 어떤 결말에 대해 말하는 것이자, 그러한 결말에 이르는 방법들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목적론적 이념으로 우리는 성경과 자본론, 그리고 과학적 목적론을 예로 들 수 있다. 목적론은 모든 동시대미술 기획자가 피하려 하는 유일한 주제다. 어떤 큐레이터도 예술이 특정한 결말로 나아갈 것이라고 말하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설령 이념적으로는 절실히 바라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결국 오쿠이 엔위저는 미셸 푸코를 인용하면서 “긍정적이고 다중적인 것, 단일한 것이 아닌 차이들, 단위들이 아닌 흐름들, 시스템이 아닌 동적 배치를 선호할 것”을 강조했다. (미셸 푸코, 질 들뢰즈 & 펠릭스 가타리의 《안티-외디푸스: 자본과 정신분열증》 서문 중) 그가 주제로 언급한 미래는 과거의 미래, 즉 현재를 의미한다. 그것은 1867년에 출판된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 정치경제학 비판》에서 바라본 미래이거나, 1940년에 폴 클레의 <새로운 천사>라는 그림을 보면서 위에 인용한 단상을 쓴 발터 벤야민의 미래이기도 하다. 또 다르게 해석하자면, 여기서 언급한 복수의 ‘미래들’은 이제 창설 120주년을 맞은 베니스 비엔날레가 1895년에 꿈꾸었던 미래로부터 현재에 이르는 수많은 변천이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개방적 플랫폼들을 구축했던 2002년 카셀 도쿠멘타에서와 달리, 이번 비엔날레에서 엔위저는 일종의 닫힌 공간, 즉 초기 비엔날레 공간이었던 자르디니(Giardini)로부터 현재의 아르세날레(Arsenale)와 베니스 전역으로 퍼진 국가관(pavillion)들의 집합적 공간을 마치 세계의 축소판과도 같은 상징적 공간으로 설정했다. ‘모든 세계’란 그러므로 처음부터 일종의 ‘파라다이스’로 꾸며진 이 ‘정원’ 안에 건설되기 시작해 이제 89개(자르디니 29개, 아르세날레 29개, 나머지는 베니스 시내 혹은 주변부에 흩어져 있다)에 이르게 된 국가관의 지정학적 배치를 가리키는 표현이기도 하다. 이는 축약된 세계인 베니스 비엔날레가 실제의 세계, 다시 말해 정치-사회적 세계 전체의 현 상황(state of things)을 예술과 더불어 적극적으로 다룰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된다. 이 전시를 위해 예술감독이 설정한 세 개의 필터 -무질서의 정원, 생동감 : 서사적 지속, 자본론 읽기-는 각각 자르디니, 아르세날레, 그리고 이탈리아관 안에 설치된 ‘아레나’ 등 세 개의 공간을 중심으로 상호지시적인 방식으로 작동하며, 전시뿐 아니라 발표, 토론, 퍼포먼스 등을 통해 올 11월까지 7개월 가까이 그가 ‘형태들의 의회(Parliament of Forms)’라고 이름 붙인 전 지구적 담론과 이슈들의 공회(公會)를 구현하게 된다. 주제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이번 비엔날레의 핵심은 이탈리아관 중심에 커다랗게 설치된 무대-세미나 공간인 ‘아레나’에 녹아들어 있다. 아이작 줄리언(Isaac Julien)이 2012년 런던 헤이워드갤러리에서 기획했던 <Choreographing Capital>의 후속 프로젝트로 이번 비엔날레 기간 전체에 걸쳐 마르크스의 ‘자본론’ 3부작을 읽는 퍼포먼스-세미나가 진행된다.
오쿠이 엔위저가 이번 비엔날레를 통해 세계의 ‘현 상황’, 즉 비극적 전쟁들과 갈등, 모든 곳에서 벌어지는 양극화, 신자유주의의 전횡, 예술의 사물화와 탐욕적 시장논리, 새로운 유형의 파시즘과 국가주의의 대두 등에 대해 ‘베니스 비엔날레’가 대답해야 한다는 당위를 주장한 반면, 그가 보여준 ‘전시’의 현 상태는 여전히 그가 선호하는 전시방식이 그러한 원대한 담론을 뒷받침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게 한다. 136명의 작가가 참여한 본전시는 카셀이나 광주에서 본 것과 마찬가지로 높은 파티션들로 구분된 개별 작가의 독립적 공간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정치적 마니페스토를 제시하기보다는 여전히 미술관 전시에 가까운 정적 동선을 강조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89명이 베니스 비엔날레에 처음으로 참여했다는 평가는 거꾸로 47명이 이미 초대되었던 작가라는 말이어서 빛이 바랜다. 브루스 나우먼, 한스 하케, 게오르그 바셀리츠 등은 기시감 못지않게 구작들과 다름없거나 더 못한 작품들을 보여주고 있어 전시의 혁신성을 떨어뜨린다. 앞서 언급한 아이작 줄리언의 <렉처-퍼포먼스> 프로젝트나 아드리안 파이퍼(Adrian Piper)의 <The Probable Trust Registry: The Rules of the Game #1~3>(2013)과 같은 몇 개의 수행적 프로젝트를 제외하면-사실 그 정도의 작품들은 이전에도, 다른 비엔날레에서도 볼 수 있다-이번 전시는 형식적으로는 이전 전시들과 별반 차별화할 것이 없다. 아드리안 파이퍼가 칠판 위에 ‘Everything will be taken away’라고 적은 <Everything> 연작과, <The End> 연작을 통해 이탈리아의 파시즘을 고발해온 파비오 마우리(Fabio Mauri), 동남아에서 만들어져 가나로 수입된, 가나 노동자들의 구조적 빈곤을 상징하는 코코아 포대자루들로 아르세날레 옆 회랑 전체를 뒤덮은 이브라힘 마하마(Ibrahim Mahama)의 작품 <Out of Bounds>와 아시아에서의 여성 노동착취와 세계화에 따른 지역적 양극화의 심화를 다룬 임흥순의 <위로공단(Factory Complex)> 등은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와 가장 잘 연동되는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남화연의 작품 <Botany of Desire> 역시 이번 비엔날레에서 관객들의 기억에 남는 작품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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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하케(Hans Haacke) <Blue Sail> 1964~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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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 겐즈켄(Isa Genzken) <Realized and Unrealized Outdoor Projects> 1986~1991

개념적 요소는 가득, 비전의 차별화는 글쎄?
김아영의 <제페트, 그 공중정원의 고래기름을 드립니다, 쉘3>는 복잡한 참조들과 그것들의 또 다른 복잡하고도 임의적인 조합이라는 구성이 몰입을 방해했다. 비엔날레 수상자로 황금사자상에 아드리안 파이퍼, 은사자상에 임흥순을 선정, 시상한 것은 ‘정치성’과 ‘노동’이라는 두 개의 핵심 이슈를 살렸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결론적으로 오쿠이 엔위저의 베니스 비엔날레는 개념적 요소들의 구축에서는 흥미로웠지만, 전시 자체로는 그러한 비전을 형식적으로 차별화해내지 못했다.
국가관 전시 가운데는 독일관의 ‘Fabrik’에 소개된 히토 스테예릴(Hito Steyerl)의 <Factory of the Sun>(2015)이 커다란 관심을 모았다. ‘지하’에 설치된 ‘사이버 비치’에서 게임 형태로 제시되는 전지구적 저항의 미션을 텍토닉 댄스와 인터뷰 등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폴란드관 작가인 C.T 야스퍼(Jasper)와 요안나 말리노스카(Joanna Malinowska)의 <Halka/Haiti>는 18세기에 아이티 독립을 위해 싸웠던 폴란드 탈영병들의 후예에게 스타니슬라브 모니우츠코의 1858년 작 오페라 <Halka>를 들려주기 위해 폴란드 국립 오페라단이 그 후예들의 마을인 Cazale의 길거리에서 공연하는 영상이다. 덴마크관의 단 보(Danh Vo)는 1861년에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청년 테오파네 베나르(Théophane Vénard)가 아버지에게 남긴 위로의 편지로부터 시작된다. 빈 병 박스, 깨진 조각들, 낡은 테이블 등을 사용하여 죽음과 운명, 기억과 미래 사이에 끼여있는 존재의 모습을 초현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아르데코 화가이자 분리주의 화가였던 알폰세 무하(Alphonse Mucha)의 회화 <Slave for Humanity>(1926)와 카를 마르크스의 <환영(Illusionism)>에 대한 글을 독특한 미장센으로 해석한 체코&슬로바키아관의 지리 다비드(Jiri David)의 <The Apotheosis>, 그리고 아프리카의 인종차별과 극단적인 가난, 사회-정치적 절망감을 강렬하게 풀어낸 <Trans-African Project: Invisible Borders> 등은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외에도 오스트리아, 프랑스, 우루과이, 아르메니아관 등이 호평을 받았다. 이번 국가관의 황금사자상은 20세기 초의 대학살(genocide)로 촉발된 아르메니안 디아스포라(이산)를 다룬 아르메니아관(큐레이터 아델리나 본 휘르스텐베르그(Adelina von Fürstenberg))에 돌아갔다. 유감스럽게도 이 국가관은 멀리 리도(Lido) 섬에서도 더 가야 하는 외딴 섬(Isola di San Lazzaro degli Armeni)에서 열리는데다가 수상 선정 결과가 오프닝 이후에 발표되는 바람에 프리뷰에 참석한 많은 이가 볼 수 없었다. 전준호와 문경원은 <축지법과 비행술>이라는 주제로 ‘매우 다루기 어려운’ 한국관의 외벽과 내부를 모두 스크린으로 활용하는 야심찬 영상설치 작품을 보여주었다. 임수정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이 작품은 카셀 도쿠멘타와 광주비엔날레 등에서 선보인 <News from Nowhere>의 시퀄에 해당하는 작품으로 디스토피아적 환경에서의 예술의 근본적 역할에 대한 질문을 담고 있다. 많은 이가 국가관 수상 가능성을 점쳤지만, 개인적으로 이들의 작품은 이번 비엔날레에서 제시한 ‘미래들’이라는 주제와는 다소 상이한 미래의 비전을 다룬 게 아닌가 싶다.(물론 국가관 전시가 전체 비엔날레의 주제와 반드시 연관돼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번 비엔날레의 병행전시는 아니지만 피노 컬렉션의 ‘Punta della Dogana’에서 열린 <혀의 미끄러짐(말실수, Slip of the Tongue)>은 덴마크관 작가로도 출품한 베트남 출신 작가 단 보가 큐레이터 및 작가로 참여한 전시로, 이번 비엔날레 기간 동안 가장 많은 호평을 받았다. 어쩌면 이 전시는 오쿠이 엔위저의 비엔날레와 전혀 다른 지점에서 ‘전시’의 강력한 기능을 드러냈다고도 할 수 있는데, 스토리, 참조, 지식에 대한 의존 대신 작품들에 대한 집중도와 작품들 상호 간의 조응만으로 조용하게 고통과 깊은 공감을 생산해내는 마법과도 같은 큐레이팅을 보여주었다. 나이리 바흐라미안(Nairy Baghramian)의 작품 <혀의 미끄러짐>에서 제목을 빌려온 이 전시에는 단 보를 비롯하여 동시대작가들 (장-뤽 물렌느(Jean-Luc Moulène), 펠릭스-곤잘레스 토레스(Felix-Gonzales Torres), 로니 혼(Roni Horn) 등)의 작품 외에도 16세기 작가인 조바니 벨리니(Giovanni Bellini)의 <그리스도의 머리>와 같은 박물관 소장본들도 함께 전시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부분은 2010년 84세로 작고한 낸시 스페로(Nancy Spero)의 <Codex Artaud>(1971~1972)로, 분노와 격정에 가득 찬 앙토닌 아르토(Antonin Artaud)의 글들을 34장의 종이 위에 드로잉, 페인팅과 함께 콜라주한 작품이다.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에는 한국 작가들의 참여전시가 곳곳에서 열렸다. 특히 영국에서 활동하는 김승민이 기획한 <Sleepers in Venice>는 마크 월링거(Mark Wallinger)의 작품을 중심으로 구혜영, 강임윤, 장지아, 이현준 등이 참여하여 국제적인 미술행사 시즌을 경험하게 했다. 무엇보다도 이번에 44개의 병행전시 중 하나로 열린 <단색화전>은 한국 미술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미 80대 중반에 들어선 이우환, 박서보, 하종현 화백이 직접 오프닝과 리셉션에 참여했으며, 매우 많은 유럽의 주요 미술계 인사가 한국의 1960년대 아방가르드 회화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번 전시는, 특히 일본 모노하(物派)가 회화를 거의 다루지 않았기 때문에, 당대의 아방가르드 회화로서 단색화의 의미가 더욱 깊다는 것을 모두가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오쿠이 엔위저의 표현처럼 현재는 과거의 미래이지만, 동시에 과거는 현재의 미래인 것이다. 그것은 예술에서나, 세계의 현상태(Etat des choses)에서 모두 그러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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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와, 베니스는 처음이지?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 국가관 전시 중 참여한 나라 중 눈길을 끄는 국가관이 있었다. 바로 베니스 비엔날레에 처음 참가하기 때문. 그레나다, 모리셔스, 몽골, 모잠비크, 그리고 세이셸 제도다. 또한 에콰도르, 필리핀, 과테말라가 1950~1960년대 이후 반세기 만에 다시 참가해 관람자의 이목이 집중됐다.
참가국의 면면을 살펴보면 그레나다는 7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40여 년에 걸친 독립 투쟁과 혁명 실패, 침략의 역사를 겪어온 그레나다 작가들은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에서 희망 섞인 내외부의 시각을 전하는 작품을 내놓았다. 모리셔스는 14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모리셔스와 유럽 작가 간 대화를 바탕으로 다양한 문화권과 교접한 결과물을 전시장에 설치했다. 몽골은 2명의 작가가 참여해 몽골 특유의 유목민 문화를 담은 작품과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또한 모잠비크는 예술과 전통의 연계점을 보여주는 작업을, 그리고 세이셸 군도는 그곳을 상징하는 원시림을 연상케 하는 작품 등을 선보였다.
오랜만에 베니스 비엔날레를 찾은 국가관도 눈에 띄었다. 1966년 이후 49년 만에 참여한 에콰도르관은 마리아 베로니카 레옹 베인테밀라(Maria Veronica Leon Veintemilla)의 단독 작품으로 꾸며졌다. 두바이에 거주하는 작가는 강렬한 금과 물의 투명성을 주요 요소로 하는 작업을 선보인 바 있다. 51년 만에 다시 참가한 필리핀은 4명의 작가가 빈티지 영상과 설치 등을 선보였다. 과테말라는 1954년 참가한 이후 61년 만에 베니스를 다시 찾았다. 10명의 작가가 책과 영화, 오페라 등에서 영감받은 사진작업 등을 선보였다.
베니스=황석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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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 텐체 루이즈, 다닐로 이랑 이랑, 제레미 기압 (Jose Tence Ruiz, Danilo Ilag-Ilag and Jeremy Guiab <et al., Shoal> 2015

interview

베니스 비엔날레의 역사와 권위, 그늘, 경쟁의 현장에 서다

이용우 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 심사위원 상하이 히말라야뮤지엄 관장

단색화 (4)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 심사위원으로 선임됐다. 개인적으도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한국미술계의 높아진 위상을 확인받은 일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심사위원 선정에 대해 소감을 부탁한다.
베니스 비엔날레 심사위원은 예술감독이 추천, 이사회에서 승인을 받아 임명된다. 상(賞)의 중요성이나 시사성 때문에 베니스 비엔날레 심사위원이 주목을 받는 것 같다. 선후배 미술인이 많은데 먼저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게 되어 송구스럽기도 하다.
국가관과 본전시 심사는 어떻게 이뤄지는가
5명의 심사위원이 합동으로 아침 9시부터 저녁 8시까지 94개 국가관을 돌며 작품을 감상, 검증했다. 자르디니와 아르세날레를 비롯하여 시내 곳곳에 퍼져 있는 국가관을 찾아다니는 것은 고된 노동이었다. 작품을 보고 심사위원들끼리 현장에서 하는 뜨거운 토론이 매우 유익했다.
임흥순 작가가 한국 최초로 은사자상을 수상했다. 한국미술계의 높아진 위상을 말해 준다는 시각이 있다.
고통을 나누는 현장성과 시적 감수성을 함께 갖춘 작품이라는 것이 임흥순 작품에 대한 심사위원들의 공통된 견해였다. 상은 국가경쟁력과 비례한다는 과거의 지배이론은 많이 소멸됐다. 오히려 얼마나 독자적인 자기 목소리를 생산하는지가 더 관건이다. 수상이 마치 미술올림픽에서 메달을 받는 것처럼 인식되는 것은 예술과 상이라는 다소 미묘한 관계를 생각할 때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비평적 시각을 견지하는 관람객 입장에서 이번 비엔날레를 어떻게 보았는가?
예술의 사회적 실천에 대해 중점적으로 질문하는 매우 독특한 구성이었다. 예술의 자본종속을 통렬하게 비판하거나 1867년 발행된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Das Kapital)》을 주제의 전방에 배치하는 등 매우 격렬한 기조를 취했다. 그런가 하면 세계 각 지에서 벌어지는 정치, 사회적 억압의 현장을 고발하거나 차별의 문제를 다루는 등 오늘날 예술의 역할이 목격자 수준을 넘어 참여의 길로 나가도록 안내하는 담론들을 주도했다. 베니스의 과거 전시형태와 견주어 훨씬 진보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보니 우리가 자주 대하는 시각예술의 미학적 아름다움이나 재미, 정보사회와 과학기술만능주의가 선사하는 디지털 문화론 등의 맥락은 억압되었다고 볼 수 있다. 비평가로, 큐레이터로 지난 20년 동안 본 어떤 전시보다 한편으로는 숭고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이론화된 전시, 이념화된 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긴장감 넘치는 비엔날레였다.
수년간 광주비엔날레를 책임진 당사자로서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가 주는 교훈이라면?
광주비엔날레는 그 창설 배경에 ‘광주정신’이라는 깊고 넓은 철학이 있다. 그리고 광주비엔날레의 성공 배경에는 세계 속에 광주를 넓게 열어놓고 광주를 정치, 사회, 문화행동적 플랫폼으로 유도했음을 들 수 있다. 현재 광주비엔날레재단을 구성하고 있는 분들도 이러한 특징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베니스는 국가관체제를 갖고 있는 유일한 비엔날레다. 그리고 감독의 권리를 최대한 보장한다. 5명으로 구성된 소수의 이사가 무한책임을 지는 체제다. 미술, 건축, 영화, 음악, 연극 등 한 재단에서 장르를 분산시키는 것은 자칫 힘을 빼는 체제가 될 수 있어 경영합리화나 경쟁력에서 한계가 있다고 보는 것 같다. 베니스 비엔날레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문제점이 참 많다. 그러나 참고할 점이 더 많다.
병행전시의 하나인 <단색화전>을 기획했다. 전시를 기획한 이유에 대해 설명을 부탁한다.
나는 오히려 늦게 전시기획을 맡은 한 명일 뿐이다. 다만 무대가 베니스여서 시각적으로 두드러져 보이는 것이다. 다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한국현대미술의 20세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언급 할 두 가지 핵심적 담론이 있다. 하나는 서구모더니즘의 영향을 토대로 한국적 토착화를 시도한 단색화이고, 다른 하나는 서구모더니즘의 영향과 모방을 비판하고 자생적 미학으로서의 정치사회적 비평을 시도한 민중미술이다. 이 두 가지는 한국미술사와 비평적 담론을 두텁게 한 중요한 족적이다. 단색화가 뒤늦게 시각적 형식에서 설득력을 획득하고 시장에서 긍정적 반응을 얻고 있다면, 민중미술은 과거의 과도한 정치성, 이념성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진화과정에 있는 괄목할 만한 시각적 현상들이다. 시장에서 단색화에 빠르게 반응한 것은 미술사적 중요성도 있지만 그 아이템이 소장 가치가 강한 회화라는 점도 반영되었다. 회화는 시장의 영원한 우군이니까. 시장의 시각을 떠나 주제적으로 바라본다면 향후 분단국가, 또는 이념논쟁의 생생한 현장으로서의 한국미술을 담아낼 현실주의 미술이 몰고올 제2의 파장은 폭발적일 수 있다. 시간이 더 필요하겠지만 한국미술사 정립 과정에서 1970-1980년대를 현미경으로 바라보는 연구자들의 세밀하고도 넓은 시각이 요구될 것이다.
최근 상하이 히말라야미술관 관장으로 선임됐다. 미술관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운영계획을 알려달라.
일본계 미국 건축가인 아라타 이소자키가 설계했으며, 상하이 푸둥에 있다. 전시면적은 약 4000㎡다. 상하이 히말라야미술관도 사립미술관이라는 한계와 장점을 동시에 안고 있다. 그 자율성을 잘 발휘할 생각이다. 중국과 상하이, 아시아와 세계가 어떻게 상생하는지가 관건일 것이다. 지금까지 중국과 글로벌 프로그램이 반반으로 운영되었는데 더 연구해볼 생각이다. 굳이 비엔날레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는 또 다른 비엔날레도 생각하고 있다. 바탕은 현대미술이지만 영화와 건축, 디자인, 퍼포먼스, 강연시리즈를 담는 비엔날레 같은 것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세계비엔날레협회 회장직을 맡고 있기 때문에 외국 일이 많은 편이다. 특히 내년 후반기부터는 도쿄예술대학의 글로벌아트프로그램 교수를 겸하며, 영화와 건축 프로젝트도 기획하고 있다.
황석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