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ght & Issue] 제주 4・3, 기억 화해 치유

제주 4・3, 기억 화해 치유

1894년 갑오년의 동학민중혁명으로부터 두 갑자가 돌았다. 새날 새 세상이 올 것인가? 하늘 모심이 사람 모심이고(侍天主),
내 마음이 곧 네 마음이며(吾心卽汝心), 내 안에 하늘 기르기(養天主)의 철학이 들 싹으로 피어야 한다. 나(주체)와 너(타자)를 폭력적·강제적으로 구분했던 위험사회의 현실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동학의 포접제(包接制)는 계급적 조선사회를 변혁하려는 사회적 대전환이요, 아방가르드 운동의 요체였다. 접(接)마다 접주(接主)를 두었던 것은 신라 최치원의 접화군생(接化群生)과 상통한다. 모든 생명과 만나서 관계를 맺고 변화하라는 그 정신! 하늘·땅·사람·정신·마음을 공공(公共)하는 철학으로서 “지극한 기운이 오늘에 이르러 크게 내리도록 빕니다. 하늘님을 모셔 조화가 정해지는 것을 영세토록 잊지 않으면 온갖 일을 알게 됩니다(至氣今至 願爲大降 侍天主 造化定 永世不忘 萬事知)”를 주문했던 그 실심(實心)을 위해서!
동학 100주년이던 1994년 제주 4・3미술제는 시작되었고 올해 20주년이 되었다. 1948년 4・3사건이 터진 뒤 46년이 흐른 뒤였다. 1988년 무렵 제주 미술동인 ‘바람코지’ 작가들이 미학적 접근을 시도했으나 본격화한 것은 그때였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올해 4・3미술은 새로운 방향타를 제시하고 나섰다. 동학의 접화군생과 다르지 않다. 첫 접화는 미국의 캘리포니아 샌타로사시(市)다. 그곳 소노마카운티미술관에서 지난 2월 7일부터 5월 4일까지 <동백꽃지다 : 제주 4・3을 다룬 한국의 현대미술가들전>이 개최된 것이다. 소노마카운티는 제주와 자매도시를 맺고 있는 곳이기도 하고, 더군다나 4・3사건이 미군정기의 일이라 전시 장소의 상징은 매우 컸다. 기억, 화해, 치유 등 세 개의 주제로 구성된 이 전시는 로비와 아트숍을 비롯해 기획전시실과 소전시실까지 1백여 평의 1층 공간을 가득 채웠다. 아트스페이 씨의 안혜경 디렉터가 기획하고 다이앤 에반스 관장과 소노마카운티의 작가 마리오 우리베가 서로 공공하는 예술기획으로 협력해서 탄생시킨 전시는 향후 4・3미술 국제교류의 신호탄이 될 것이 분명하다. 소노마카운티미술관은 전시개막 후 첫 토요일과 일요일을 ‘특별주간’으로 기획했는데, 토요일 오전에는 강요배 작가의 4・3미술 연작 작품으로 4・3사건의 전개과정에 대한 강연과 4・3중앙위원회 전문위원을 지낸 김종민의 “제주 4・3민중항쟁과 미국” 주제 강연이 진행되었고, 오후에는 캘리포니아대 크리스틴 홍 교수의 “한국전쟁” 주제 강연과 오멸 감독의 영화 <지슬> 상영회가 있었다. 일요일에는 소설가 현기영의 “기억투쟁으로서의 문학” 주제 강연, 임흥순 감독의 시적 다큐멘터리 <비념> 상영회, 필자와 캘리포니아대 민영순 교수, 작가 강요배의 토론회, 그리고 딘 볼세이 리임과 램지 리임 감독의 다큐멘터리 <잊혀진 전쟁의 기억> 상영회가 진행되었다.
두 번째 접화는 4월 1일부터 20일까지 제주도립미술관에서 개최한 <오키나와 타이완 제주 사이 : 제주의 바다는 갑오년이다!전>이었다. 4・3미술제 20년 만에 처음으로 예술감독제가 도입되었고 필자가 그 역할을 맡았다. 그동안 4・3미술제는 탐라미술인협회의 프로젝트형 기획전시였으나 이번 전시에서는 제주미협, 한라미협을 비롯해 국내외 작가들을 대거 초대하여 국제전으로 치렀다. 접화군생의 핵심이 다른 생명들과의 만남, 관계 맺기, 변화이기에 4・3을 제주로부터 아시아로 확대해 전유하고 공유하는 공공지(公共知)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66년이 된 4・3사건은 이미 한국사회에서 잊혀진 지 오래일뿐더러, 제주 밖의 사회가 4・3사건을 회억하거나 또는 그것을 미학적 사건으로 기획하려는 시도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오키나와는 2차 세계대전 중 10만여 명의 민간인이 희생되었고, 타이완에서는 1947년 2월 28일 중화민국 통치에 맞선 본토인들의 항쟁으로 3만여 명이 희생했던 2・28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1948년 제주 4・3사건이 벌어졌다. 쿠로시오 해류를 따라 동아시아 세 섬에서 벌어진 이 비극적인 학살은 21세기 새로운 동아시아를 상상하기 위해서 반드시 풀어야 할 평화적 과제가 아닐 수 없다.
40여 명이 참여한 이 전시도 또한 제주 내에서 시작한 국제교류의 첫 신호탄이라 할 것이다. 안팎으로 제주 4・3미술이 확장되고 있다. 공공하는 예술로서 4・3미술은 홀로주체가 아니라 서로주체의 서로 삶을 위한 미술운동이 되고 있는 것이다.

김종길・미술비평

제인 진 카이젠  5채널 비디오 설치 2011

제인 진 카이젠 <거듭되는 항거> 5채널 비디오 설치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