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 FEATURE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

공재와 마주하기: 국립광주박물관 <공재 윤두서전>을 가다
임승현 | 기자

“모든 사람들이 한쪽에 치우쳐서 두루 잘하지 못하거나 어떤 이는 두루 잘하나 공교하지 못했으니 요컨대 모두 작가라 할 수 없다. 그 모든 사람들의 것을 모두 집대성한 자는 오직 윤두서뿐이구나!” 한국미술사에서 중요한 회화비평집을 저술한 남태응南泰膺(1687~1740)이 《청죽만록聽竹謾錄》 중 ‘화사畵史’에서 윤두서를 평한 글 중 일부다. 윤두서 회화의 정교하고 공교로운 맛은 오랫동안 높게 평가 받았음을 엿볼 수 있다.
윤두서 서거 300주년을 맞아 국립광주박물관에서 공재 윤두서와 그 일가의 예술세계를 조명하는 최초의 전시 <공재 윤두서>(2014. 10.21~10.18) 열렸다. 이번 전시의 중심은 공재를 조선 후기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연 선구자이자 르네상스인으로 보고 다가가는 데 있다. 이 기조 하에 그의 회화와 학문적 성과를 다각적 시선으로 살펴보고 그 일가와 후대 화가들의 그림을 함께 소개한다. 특별히 녹우당綠雨堂(사적 제167호)에서 소장한 공재 윤두서 일가의 책과 글씨, 그림이 최초로 외부에 선보여 전시를 더욱 풍요롭게 했다. 녹우당은 해남윤씨 어초은공파漁樵隱公派의 종가로서 우리나라 가사문학에 획을 그은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1587~1671) 고택으로 익히 알려진 곳이다. 전시된 녹우당 소장품 중 단연 주목되는 작품은 <자화상>이다. 정면을 응시하는 통찰력 있는 눈동자와 매서운 눈매, 정교한 필선의 사실적인 수염이 보는 이를 압도하는 전신傳神의 절정인 이 작품은 미술에 무관심한 이들에게도 익숙한 명작이다. 바로 공재 윤두서의 명작이다. 이번 전시는 그와 그의 일가에 수준높은 작품을 실견할 수 있는 자리로 기대가 크지만 유물을 소개하는 방식도 눈길을 끈다. <자화상>을 그릴 당시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거울을 함께 배치한 방식을 일례로 들 수 있다. 이 거울에 대해 국립광주박물관 박해훈 학예연구관은 “그동안 해남윤씨 집안에서 대대로 사용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전시를 위해 거울 뒷면을 조사하면서 17세기 후반경에 제작된 일본 거울임이 밝혀졌다”고 전했다. 또한 전시 말미에 <자화상>을 둘러싸고 제기된 다양한 미술사적 해석을 더해 관객이 각기 나름의 해석을 해볼 여지를 뒀다. 전시가 단순히 유물을 선보이는 것을 넘어 오랜조사와 학술적 연구의 결과를 펼치는 장임을 증명한 대목이다.
<자화상> 한편에는 옥동玉洞 이서李敍(1662~1723)가 쓴 녹우당 현판이 전시돼 있다. 옥동 이서는 윤두서와 둘도 없는 친구였다. 사실 이서가 쓴 현판이 자화상과 함께 배치된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17~18세기는 서예에 있어 전서篆書와 예서隸書가 새롭게 주목받은 때다. 이서와 윤두서는, 학계의 논란이 있는 용어이기는 하나 ‘동국진체’라는 새로운 서체를 개발하고 구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기에 이서가 쓴 이 현판 글씨는 곧 윤두서의 서예 미감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유물인 셈이다.
녹우당을 나와 박물관으로 나들이한 작품 중 주목할 만한 것으로 윤덕희가 윤두서 사후에 윤두서의 그림과 글씨 중 좋은 작품을 모아 엮은 서화첩 《윤씨가보尹氏家寶》와 《가전보회家傳寶繪》가 있다. 화첩 특성상 수록된 모든 작품을 한번에 볼 수 없는 것이 아쉬울 만큼 화첩의 모든 작품은 뛰어난 회화미를 자랑한다. 이 화첩은 공재가 《고씨화보》 《당시화보》 등 중국에서 수입한 화보를 임모臨摹하며 습득한 남종화풍, 더불어 사실주의적 태도와 사의를 중시하는 그의 회화관을 볼 수 있다. 《윤씨가보》에는 말 그림, 산수화 등과 함께 <짚신삼기> <나물 캐기> 등 윤두서가 그린 조선 후기 풍속화가 포함돼 있다. 윤두서의 풍속화는 그의 일가를 넘어 조영석 강희언 등 후대 선비화가들이 풍속화를 그리는 기반이 되었다. 그러므로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다. 윤두서뿐 아니라 아들 윤덕희와 손자 윤용의 산수화, 인물화, 말 그림을 다수 선보이는 제2,3부 전시실은 윤씨 일가의 뛰어난 회화적 역량이 결집된 장이다.
이번 전시는 조선 후기의 화단뿐 아니라, 실학적인 측면을 강조하며 변혁적인 인간관을 제시한 윤두서를 다시 주목했다. 현재 호남화단의 뿌리로까지 해석을 확대한, 윤두서를 재평가할 수 있는 장이다. ●

 

왼쪽 위 해남 녹우당과 옥동 이서가 쓴 현판©국립광주박물관

 해남 녹우당과 옥동 이서가 쓴 현판©국립광주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