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 & THEME 산수 & 여성을 위한 진혼4 정종미 개인전

여성, 전통, 자연 등 주류의 삶보다는 소외된 영역에 가치를 부여해온 작가 정종미의 20번째 개인전(2.27~4.12)이 고려대학교 박물관에서 열린다. 미술평론가 조은정과 대담을 통해 작가가 지난 30여 년간 펼쳐온 작업세계를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행보를 함께 고민해 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마이너의 삶을 위무하다

조은정 (이하 ‘조’) 이번 전시는 초기 작업부터 최근 작업을 아우르는 회고전이네요.
정종미 (이하 ‘정’) 수련기를 포함해 그림을 그린 지 40년 가까이 됩니다. 개인적으로 그동안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서 어느 방향으로 항해할 것인지 제 안에서 단서를 찾는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전시입니다.
선생님의 작품은 예전부터 꾸준히 봐왔는데요. 처음에는 평면작업을 주로 하시다가 최근 공간에 작품을 구현하는 데 관심을 두시는 것 같아요. 많은 작가가 평면이 가상현실이라면 그것이 실제공간에서 구체적으로 감각되기를 원해서 공간에 대한 탐구를 많이 하는데 선생님도 그런 경로인지, 전통이란 화두를 제대로 구현하기 위한 방법으로 공간을 탐구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두 가지 의미가 동시에 있죠. 제 안에 숨은 세계를 찾아가는 길과 한국 채색화의 뿌리를 찾아가는 길이 별개의 길이 아니고 같은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공동체 안의 나와 개인적인 내가 묘하게 밀착해 있기 때문에 어느 하나를 제외한 상태에서 다른 것이 의미를 갖는 일은 성립되지 않는 것 같아요.
한국화를 색으로 구분한다면 수묵화와 채색화 두 갈래가 있는데요. 선생님의 초기 작업이 색채는 있지만 사대부의 세계관을 반영한 산수의 이상향을 그려낸 것이라면, 이후로 채색화의 뿌리를 탐구하는 작업을 하셨는데 그 두 갈래의 동질성과 배반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제가 여성을 말하는 이유는 남성이 있기 때문이죠. 극과 극, 즉 상극은 상생과 묘하게 얽혀있어서 우리가 상극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상생의 의미도 달라집니다. 학창시절 저를 가르친 선생님 대부분이 광복 이후 수묵추상화 운동에 참여하신 분들이라 수묵화의 비중이 컸어요. 흔히 수묵을 남성 미학이라고 하는데요. 수묵은 조선시대 사회구조 속에서 당시 사대부의 독특한 신분에 의해 만들어졌고 기운을 한순간에 터뜨리는 일품화를 최고로 쳤지요. 동시대에 여성의 미학도 존재했습니다. 대표적으로 보자기인데요. 강한 힘은 없지만 색채와 구성에 여성만이 해낼 수 있는 정서가 담겨있죠. 하지만 결국 색채 안에 먹의 세계가 포함되는 것이지 수묵과 채색이 대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회구조적으로 사람들이 구분을 만들었을 뿐이지 근원적인 것은 다 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수묵운동은 채색화를 왜색倭色 내지 일제 잔재로 간주해 이를 극복하고 타파할 대상으로 여겼는데 그분들 아래에서 교육을 받으신 선생님은 수묵과 채색을 조화로 생각하셨어요. 저는 이 부분이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남성적 이상세계와 색채를 통해 여성적인 감각을 하나로 통합하셨어요. 여기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작품이 <어부사시사>인데요. 분명히 사대부적 세계관과 이상적인 공간 경영에 관한 내용인데 이 부분을 색채로 표현한 점이 굉장한 흥미를 끌었어요. 방금 상생이라고 말씀하시니까 이해가 잘되네요.
제가 보기에 여성은 실제로 약자는 아니지만 사회적인 구조가 여성을 약자, 소수자로 만들었습니다. 채색화 역시 당시 마이너 영역이었어요. 교수님들이 수묵을 하라고 하는 이유가 마이너를 선택하지 말고 주류에 편승하고 대세에 따르라는 것이었지요. 유일하게 채색을 가르쳐주신 이종상 선생님이 10년간 강의하면서 채색화를 완성한 학생은 저밖에 없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정도로 당시 학생들은 채색화를 일절 그리지 않았어요. 저는 의문이 들었죠. 고구려 벽화, 고려 불화도 채색화고 조선시대 주요 그림에만 수묵이 득세했지 초상화, 영정, 민화가 채색화인데 왜 그걸 못하게 하느냐 그런 생각이 들었죠. 채색화의 문제가 여성의 문제와 굉장히 유사하게 느껴진거예요.
핍박받는 대상, 타자화된 대상이라는 점에서 말이죠. 미술계 내부의 권력관계를 삶의 권력관계와 유사하게 이해하고 그 안에서 내가 약자인 여성인데 주류에 편승하기 위해 나와는 정서와 맞지 않는 수묵을 굳이 택해야 하느냐 그런 고민을 하신거군요. 그런데 사실 우리가 여성이지만 젊은 나이에 여성의 문제를 인식하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여성적 삶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대학원 졸업 이후 채색화 작업을 하면서 여성의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당시 뚜렷하게 여성의 문제를 다루어야지 그렇게 결심한 건 아닌데 어릴 때부터 주변 여성들의 삶을 통해서 저에게 내재된 그 무엇이 있었나봅니다. 나이가 들면서 확연히 풀어낼 수 있었을 뿐이죠. 저희 어머니는 근대기 여성의 삶이 대개 그렇듯 굉장히 인내하고 희생적인 삶을 사셨죠. 그리고 저에게 극적인 요소는 피가 섞이지 않았지만 어머니를 대신해 저를 키워준 할머니의 삶입니다. 어릴 때는 따뜻한 품 정도로 생각했는데, 결혼 후 제가 마이너라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할머니를 자꾸 떠올리게 되었어요.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로 계시다가 광복 후 한국에 돌아와 병든 채 길에 쓰러져 계신 걸 아버지가 모시고 와서 치료를 해드렸고 건강을 회복하신 후에 오갈 데가 없으셔서 저희 집에서 일을 도와주시다가 결국 운명하셨어요. 철이 들어 생각해보니, 지금 살아계시면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것이 많은데 어린 나이에 보내드려 안타까움이 커요. 그분을 통해서 제가 느낀 건 여성의 위대한 모성입니다. 상상하기 힘든 고통의 삶을 사셨는데 어떻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저희를 그토록 따뜻하게 돌봐주실 수 있었는지 여성이란 정말 대단한 존재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죠.
내 새끼만 아끼는 이기적인 모습이 아니라 내 새끼가 아니어도 돌보는 포용력과 생명을 살리는 여성의 사랑을 경험을 통해 파악하신 거군요.
네. 여성을 총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굉장히 좋은 계기가 되었지요.
조 초창기 1990년대 작품을 보면 여성의 모습이 명확하지 않고 그저 이미지화되어 있는데 최근에 외면보다 구체적인 모습, 허왕후, 논개, 허난설헌, 명성왕후 등 구체적으로 명명하고 역사적으로 소환할 수 있는 여성, 기억하고 기념할 수 있는 형태로 그려집니다.
한국의 여성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처음에는 길에서 만난 애기 업은 촌부와 같은 익명의 여성을 그렸습니다. 당시에는 여성의 고통을 드러내는 데 집중했습니다. 한국이 식민지, 전쟁을 거쳐 여기까지 오는데 그 배경에는 여성의 힘이 크게 작용했는데도 여성에 대해 가치부여를 안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고발 또는 폭로하고 싶었어요. 이후 익명의 여성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실존하는 구체적인 여성을 담아보고 싶어서 작업이 바뀌게 됩니다. 그런데 작가가 인문적인 부분을 담아내는게 굉장히 버겁더라고요. 역사 속의 여성을 그리면 그 여성이 존재하던 시대를 이해하기 위해 역사도 공부해야 하고 당시 의복도 고증해야 합니다. 지난한 작업이었죠.
사실 현대를 살면서 근대를 쉽게 잊게 되는데 선생님은 식민지 여성으로서 고통스러운 삶을 사셨던 할머니, 전통적인 가부장적 제도에 희생하신 어머니를 통해, 선생님 스스로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한국 사회에서 일반적인 여성이 느끼는 억압적 상황을 경험하셨는데요. 이런 구체적인 경험들이 하나의 작품 안에 전통, 근대, 현대를 모두 담아낼 수 있는 힘으로 작용한 것 같아요. 흔히 페미니즘, 여성주의 문제는 관념화되기 쉽잖아요.
예전에 어떤 평론가가 제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상은 서구 페미니즘의 공격적이고 전투적인 여성이 아니라 포용력있고 고전적인 면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저에게 페미니스트냐고 묻는데 페미니즘이다 아니다를 떠나 이것이 내 삶이고 한국 여성의 삶, 이것이 진실이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선생님의 여성상은 내 삶의 가치를 존중해달라는 웅변적인 요소보다는 선생님의 경험이라는 현재적 입장에서 그들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성향이 더 강한 것 같아요.
그러니까 남성을 극복하는 여성이 아니라 생명을 포용하는 자연과 같아요. 이런 측면에서 페미니즘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여성을 인정하고 가치부여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는 거죠. 결국 남성과 여성의 이야기도 인간의 차원에서 바라본다면 어려운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조금 전에 언급된 <어부사시사>로 돌아가자면 윤선도가 쓴 <어부사시사>는 후렴구를 제외하고 본시는 한글로 쓰여졌습니다. 당시 한시로 쓰여지지 않으면 제대로 된 시 대접을 못 받았는데 한글로 한시 못지않게 깊이 있는 시 세계를 펼쳤기 때문에 국문학적으로 굉장한 의의가 있는 작품이죠. 지금은 한글이 한자와 비교할 수 없지만 영어에 비하면 마이너죠. 그런 식의 순환체계를 갖는 게 인간의 삶인데, 저는 어디까지나 마이너의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사람들이 사회적인 조건으로 저를 마이너로 안 보지만 어릴 때부터 딸이라는 이유로 차별대우를 받으면서 자라왔지요. 그밖에 여러 상황을 봤을 때 제가 마이너가 아니라면 이런 작품을 할 이유가 없어요. 제 그림은 아픔이 있는 여성들에게 말을 거는 것이고 여성의 고통과 인내를 통해서 인간의 삶과 역사를 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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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은 나의 힘
선생님은 일찍부터 전통 안료를 연구하셨고 전통적인 제작방식을 되살리는 데 일조하신 현장성 있는 작가입니다. 그런데 초기 작업과는 다르게 언제부터인가 선생님의 작품을 설명할 때 전통이라는 용어가 자주 거론됩니다. 선생님의 작품을 설명하는 전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전통에 대해 지금 사회적 분위기는 고리타분한 것, 크게 의미부여할 만한 가치가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미국에 잠시 체류한 적이 있는데 이때 일본 문화를 접하면서 전통에 관한 관점이 열린 것 같아요. 일본은 전통을 전략적으로 잘 보존 유지함으로써 얻은 것이 엄청납니다. 이에 비해 미국은 전통이 없는 국가이다보니 이에 대한 콤플렉스가 대단한 편이죠. 그런데 우리는 스스로의 문화에 자부하지 못하고 미국 문화를 부러워하고 추종하기만 했어요.
작업에서 전통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이 예를 들어 오방색 활용 같은 건데요. 미술은 내용과 형식인데, 오방색이 한국의 정신을 담아내기도 하지만 그것이 전통을 표상함으로써 동시에 족쇄가 되기도 합니다. 작가에게 그것 역시 고민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 작업이 한국의 여성을 위무하고 여성성에 바치는 헌사인 만큼 우리 조상들의 어법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재료 기법을 연구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전통의 색채 개념을 접하게 되었고 전통의 색이 왜 그렇게 나올 수밖에 없는지 고민하게 되었죠. 일반적으로 일곱 가지 무지개색이란 표현을 많이 쓰는데 이건 서양식 개념이고 오색무지개가 전통적인 한국적 개념의 색채관이죠.
지금의 작가들 성향을 보면 현대라는 것에 지나치게 함몰돼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라도 그렇지 않아야 이 사회가 균형을 잡고 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해요. 첨단의 재료를 가지고 얼마든지 영혼에 호소하는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지만, 제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고요. 저의 정체성은 전통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일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화적 다양성을 위해 전통을 선택하신 거군요.
그것은 2차적인 이유이고, 근본적인 이유를 말하자면 여성이란 주제를 말하는 데 여성성이 잘 드러나는 전통적인 자연 재료를 사용하는게 잘 맞았어요. 그리고 전통적인 재료를 쓰면서 저 스스로 굉장히 큰 힘을 얻었어요. 일종의 힐링이죠. 자연의 색을 얻으려면 굉장히 번거롭고 육체적 노동이 뒤따르지만 어느 순간 제 주위를 돌아보면 건강이 안 좋아지고 피폐해진 사람이 많은데 저는 이상하게 건강하더라고요.
여성성과 전통, 생명에 대한 관심이 깊이 연결되어 있군요. 선생님께서는 전통적인 색채를 연구하고 복원하는 데 일종의 모범 같은 것이 있나요.
숭례문 복구 때도 드러났지만 한국은 세계 10대 경제대국 안에 든다고 큰소리치지만 국보 1호도 제대로 수리하지 못했습니다. 경제만 선진국이지 문화적으로 굉장한 후진국인 셈이죠. 제가 전통재료를 연구하며 나름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보니 문화재를 복구하거나 복원할 때 관련 문화재 관계자만 참여하는 게 아니라 저 같은 사람도 정보를 제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던 차에 학교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색채연구소를 설립해 전통적인 색채관과 재료기법을 복원하고 개발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옛날에 사용한 천연재료를 똑같이 사용하는 건 어렵지요.
과거와 시스템 자체가 달라졌기 때문에 불가능하죠.
천연재료는 고가인데다 생산량도 감소했고 색채 자체도 다양하지 않아요. 전통적인 안료와 가장 유사한 색감을 지닌 현대 안료를 개발해야 화가들이 한국적인 색을 표현할 수 있어요. 한국의 색채 표준을 만들기 위해서는 굉장히 다각도의 연구가 선행돼야 합니다. 이를 위해 연구소를 설립한 것입니다.
미술사적으로도 의미있는 일이고 사회적으로도 정말 중요한 일인 것 같아요. 문화 원형적 측면에서 색은 나름의 상징이 있고 그것을 현실화하는 데 안료가 동반되어야 하죠. 색을 다루는 작가로서 사회 참여적으로 행동하시는 모습이 인상 깊습니다.
사실 전통은 드러나는 것뿐 아니라 무형적인 부분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는데요. 선생님 작업에서 전통의 문제가 여성, 오방색 등 유형학을 낳는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역사 속의 다양한 여인이 등장하지만 어떻게 보면 하나의 모습으로 수렴되는 면도 있고요. 몇 백년 전의 여인과 동시대인이 공감하기에는 시간차가 많이 나는데요. 외형이 너무 옛날 것으로 고정되어 있다보면 그 막을 뚫고 정서적으로 감흥하기 어려운 점이 있어요. 그 여인들의 틈에 작가의 정서가 들어갈 여지가 별로 없는 거죠. 그리고 전통의 힘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이라면 오방색 말고 다른 면도 보여주셔야 할 것 같아요. 다음 작품에서 어떤 세계를 다루실지 자못 궁금해집니다.
제가 외국에 안나갔다면 이렇게 전통에 집착하지 않았을 거예요. 중요한 문제인데 우리에게 결핍되어 있다고 생각하다보니 그동안 집착한 것 같습니다. 저도 이번 전시를 통해 탈바꿈해야 하고, 그런 고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특히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느낀건데 정체성 없이 쏠린 경우도 많지만 예상외로 전통을 굉장히 고무적으로 받아들이고 탄력있게 수용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제가 느끼는 전통과 젊은 세대가 느끼는 반응에 차이가 큰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전통에 대한 생각의 지평을 넓힐 필요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동안 저의 작업은 사라진 전통미감을 부활시키는데 전념했었는데 이제는 한걸음 나아가 한국적 미감을 승화시켜 새롭게 피어나는 현대성을 담을 생각입니다.
진행 정리・이슬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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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은 정 Cho Eunjung
1962년 태어났다. 이화여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제2회 구상조각회 조각평론상을 수상했다. 서울벤처정보대학원대 문화산업경영학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인물미술사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 《한국조각미의 발견》, 《비평으로 본 한국미술》(공저), 《대한민국 제1공화국의 권력과 미술》,《김종영》 등이 있다.

정 종 미 Jung Jongmee
1957년 태어났다. 서울대 미술대학 회화과와 동 대학원 동양화과를 졸업했다. 뉴욕 파슨스 스쿨 디외 도네 페이퍼메이킹 스튜디오에서 수학했다. 1991년 백악미술관에서 열린 <자・연・인전>을 시작으로 20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제13회 이중섭미술상, 제13회 이인성미술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고려대 디자인 조형학부 교수 및 고려대부설 색채연구소장으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우리그림의 색과 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