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FACE 2015 조혜진

“<한시적 열대展>은 열대식물이라는 외래종의 유입이 한국적 맥락에서 정착해가는 상황을 추적하며 이 과정에서 기형적으로 변형된 식물과 그 근저에 깔린 생활방식, 문화적 현상을 드러낸다. 작가에 의하면 열대를 경험하는 방식은 아파트 실내에 정원을 만들어 식물을 키우는 과정에서 접하게 되는데, 이러한 생활 방식 안에서 열대식물은 실내에 맞춰진 작은 형태로 변형되어 소비되는 과정을 거친다. 작업은 열대식물이 용도 면에서 제 목적을 다하고 바깥으로 나왔을 때 낯설게 보여지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 노해나 독립큐레이터

한국식 열대의 풍경

작가 조혜진은 사물에 관심이 많다. 아니 사람이 사물을 대하는 방식에 관심이 많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사물은 사회 속에서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관계망 속에서 만들어지며, 인간의 욕망을 그대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케이크갤러리에서 열린 세 번째 개인전 <한시적 열대>(5.30~6.28)의 전시장은 비교적 썰렁한 편이다. 하지만 조혜진의 작업은 보기보다 풍부한 맥락을 포함한다. 열대식물을 주요 키워드로 신문기사, 학술자료, 인터넷, 현장 리서치 등 다양한 참고자료를 활용해 시대를 거치면서 외국에서 들여온 열대식물이 한국적 상황에 정착하는 과정을 조명했다.
전시장에 설치된 <이용 가능한 나무>는 행운목, 고무나무 등 열대식물이 죽고 난 이후 버려진 것을 수거해 각목형태로 만든 것이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아파트에서 살아온 작가는 원래 베란다에 키우는 식물을 특별히 열대식물이라고 의식해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최근 이사간 아파트에서 사람들이 화단에 식물을 가꾸면서 겨울이 되어 죽으면 버리고, 또 새로운 식물을 키우는 반복의 과정을 2년여 관찰하다가 한국사회에 열대식물이 많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고 광범위한 리서치를 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가정집에서 기르는 이파리가 넓은 관엽 식물은 대부분 열대식물에 해당한다. 하지만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는 여름에는 온도와 습도가 열대지방과 비슷하지만 겨울이 되면 급격히 추워져 열대식물을 제대로 키우기가 쉽지 않다. 작가가 아카이브한 자료 중 1958년 한 기사에는 열대식물의 월동관리 방법에 대한 정보가 구체적으로 실려있다. 1969년에는 서울 중심부 길가에 기존의 향나무를 뽑고 68월남장병들이 보내준 종려나무를 가로수로 심어 이국적인 정취를 내기도 했다. 주택이나 아파트 실내에서 그리고 가로수에 열대식물이 가꿔지는 현상은 상황 그자체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국적 집단 무의식을 보여준다. 작가는 식물의 형태가 사회 안에서 규격화되고 패턴화되는 모습을 각목의 풍경으로 대체시켰다.
또 다른 모습은 전시장에 배치된 자료집 속에 들어 있다. 작가는 방대한 리서치를 토대로 <종려나무와 도시루 사이에서>라는 한 편의 보고서를 썼다. 열대식물이 화환업계에 공산품화되어 유통되는 과정을 포착한 것이다. 경조사 화환 가장자리 장식에 종려나무 잎이 사용되기도 하지만 1990년대 말 부산에서 종려나무 잎을 대체할 플라스틱 잎사귀인 ‘도시루’가 개발되었고, 이것이 화환업계를 장악하게 된다. 검소한 생활을 장려하는 정책에 따라 화환 자체의 수요가 줄었다가 1990년대 말 가정의례법이 폐지되고 이후 급격히 늘어난 수요를 감당했기 때문이다. 작가는 ‘종려나무’에서 ‘도시루’로 전환되는 과정을 추적하면서 국가가 사회 문화를 통제하는 방식과 더불어 자본주의 시장 논리가 생활 전반에 반영되는 논리를 추출해냈다.
한편 열대에 대한 환상은 한국뿐 아니라 다른 국가에서도 엿볼 수 있는 사회적 현상이다. 애초에 관엽식물을 실내에서 키우는 것은 제국주의 시기 유럽에서 희귀 식물을 채집해 소개한 것에서 시작해 우리나라까지 오게 된 것이다. 전시장 다른 방에는 <우산으로 야자수를 만드는 방법>, <페트병으로 야자수 줄기를 만드는 방법>에 대한 매뉴얼과 그 모형이 소개되어 있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다운받은 이미지를 스크랩해 열대 레시피를 선보였다. 여기에서 작가의 역할은 리서치, 스크랩과 매뉴얼 제작이다.
조혜진의 작업은 조소를 전공한 작가들이 일반적으로 새로운 형태를 생산하고 구현하는 것과 달리 사람들이 생활 속에서 사물과 관계 맺는 방식에 주목한다. 그녀는 “평범한 사람들, 예술가가 아닌 사람들이 무엇인가 만드는 행위야말로 실로 강력한 의사 표현이자 적극적인 행동”이라고 말한다. 오늘날 일상의 사물은 더 이상 장인의 손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고, 산업에 의해 사물이 형태가 결정되고 상품화 된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는 일반인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행위가 흥미롭기만 하다.
이슬비 기자

조혜진은 1986년 태어났다. 이화여대 조소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2012년 유중아트센터에서 열린 첫 개인전 <유용한 사물>을 시작으로 3회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서교예술실험센터, 갤러리 팩토리, 복합문화공간 에무, 공간291 등에서 열린 단체전에 참여했다.

 

조혜진 (4)

<이용 가능한 나무> 수집한 열대식물을 각목으로 조각(행운목, 파키라, 녹보수, 고무나무) 가변설치 2015

 위 <우산으로 야자나무를 만드는 간단한 방법>(오른쪽) 설치와 매뉴얼 제작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