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Artist] 정복수

작가 정복수의 그림은 인간의 육체에서 시작해 육체로 끝난다. 그가 그린 인간의 모습은 벌거숭이다. 심지어 몸 속 머리속까지 보인다. 그의 그림에 나타난 얼굴과 몸은 생물학적 인간의 형상인 동시에 정신과 내면의 초상이다. 지난 40여 년간 한 가지 테마, 즉 인간의 육체에 몰입해 온 정복수의 ‘그림 그리기’는 수행자의 몸짓이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이 시대 인간의 비망록이다. 인간의 본질과 원형을 탐구하며 자의식의 심연을 드러내는 작가 정복수의 작품세계를 살펴본다.

욕망의 탈주선을 따라 그린 욕망지도, 몸 지도

고충환  미술비평

느끼는 사람에게 삶은 비극이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삶은 희극이라고 했다. 느낌으로 사는 사람에게 삶은 순간순간이 고통의 연속이고, 생각으로 사는 사람에게 삶은 우습지도 않을 만큼 우습다는 얘기다. 느낌으로 산다는 것, 그것은 삶에 밀착된 삶이며 몸으로 산다는 것이다. 생각으로 산다는 것, 그것은 삶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남의 집 불구경 하듯 관망하는 삶을 산다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이 세계를 읽는 코드는 원체는 다중채널이지만, 그 채널은 크게 정신코드와 몸코드로 구분되고 모아진다. 당연히 상대적이지만, 정신코드로 사는 사람이 있고, 몸코드로 사는 사람이 있다. 정신코드가 발달한 사람이 있고, 몸코드가 발달한 사람이 있다.
정복수는 몸으로 사는 사람 같다. 달면 삼키고 쓰면 내뱉는 사람 같다. 겉과 속이 같아서 속이 없는 사람을 생속이라고 한다. 작가는 그런 생속 같다.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 그대로 믿는 사람 같다. 심성이 투명해서 그럴 일도 없겠지만, 상대에 대한 배려 때문에 속에 없는 말을 하지도 않고 할 줄도 모르는, 그런 사람 같다. 그런 사람은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 그대로 믿는다고 했다. 그럼, 표면만 보고 표면을 믿는다는 말인가. 너나 할 것 없이 이미지의 정치학이 대세인 시대에, 그리고 그렇게 저마다 이미지로 자신을 포장하기에 급급한 시대에 표면만큼 의심스러운 것도 없음을 다들 안다. 그래서 행간읽기와 이면읽기가 중요한 거다. 그럼 다시, 작가는 표면만 보고 표면을 믿는 사람인가.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정반대다. 그런 사람의 감각촉수는 거의 동물적이기 때문에 우회를 모른다. 대상 자체를 직접 겨냥하고 사물 자체를 직접 향한다. 그래서 행간읽기며 이면읽기랄 것도 없이, 사물대상 자체를 바로 꿰뚫어본다. 뭐 직관이며 혜안이랄 것까지는 없을 것 같고, 생속(속이 따로 없는)이 생속(사물대상의 진상)을 알아보고, 투명한 것이 투명한 것을 알아채는 것,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정복수는 그렇게 몸으로 살고 몸으로 그린다. 그리고 그렇게 몸을 그린다. 그러므로 그의 몸 그림은 어느 정도는 자기 자신을 그린 것이기도 하거니와, 다른 사람들을 그린 것이기도 하고, 인간일반을 그린 것이기도 하다. 그림 속 사람들은 꼭 누구를 그렸다기보다는, 그저 익명적 주체들을 그린 것이고, 심지어 성기가 아니라면 남녀 구별조차 없는, 그런 그림이다.
다시, 작가는 몸을 그린다. 성기가 노출된 것으로도 알겠지만, 발가벗은 몸을 그린다. 창자와 같은 장기가 적나라한 것으로 보아 거듭 벗겨진 몸을 그린다. 옷을 벗기고 살 껍질을 벗겨낸, 그런 몸을 그린다. 무슨 말인가. 작가는 몸속 장기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투명한 몸을 그린다. 투명한 몸? 투명한 사물이 유행이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투명시계, 투명가전, 투명액세서리가 유행이다. 그 자체가 시대양식 내지 모드로 볼 수도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 불신시대를 증언해주는 알레고리처럼 읽히는 것은 왜일까. 표면만 봐선 도무지 믿을 수가 없는 시대, 온통 정체를 까발리기에 급급하고 연연해하는 시대, 그래서 더 이상 숨을 수도 숨을 데도 없는 시대에 대한 증거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와는 정반대로 온통 이런 이데올로기며 저런 이념, 이런 가치관이며 저런 세계관, 이런 진리며 저런 진실, 이런 상식이며 저런 합리로 첩첩이 중무장한, 그리고 그렇게 중무장 뒤에 숨는 사람들을 증명하는 것처럼 보인다.
정복수가 그린 투명인간은 바로 이런 시대적 증언으로 인해 비로소 그 의미를 획득한다. 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작가는 사람들의 옷을 벗긴다. 특히 자본주의 시대에 옷은 계급과 신분의 기호다. 그렇게 계급과 신분으로 사람들을 포장해주는 위선의 옷을 벗어던지라고 주문하는 것이다. 옷은 그렇다 치고, 살 껍질은 또 왜 벗기는가. 살 껍질은 문명이 만들어준, 또 다른 옷이다. 인간을 인간이게 해주는, 인본주의와 휴머니즘의 이름으로 유통되는, 이성과 상식과 합리라고 새겨진 레테르를 무슨 장신구처럼 치렁치렁 매달고 있는, 도덕과 윤리로 중무장된, 그런 옷이다. 그 옷을 벗겨내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인간이 자연에서 문명으로, 문맹에서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억압된 것들이 귀환한다. 야생과 야성, 본성과 본능, 동물성과 식물성, 무의식과 잠재의식, 폭력욕망과 살해욕망, 마술과 주술과 같은 어둠의 자식들이 줄줄이 되돌아온다. 작가는 사람들의 옷을 벗겨 그렇게 귀환한 탕아들을 보고 싶고, 맞이하고 싶고, 방기(방출?)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진인(문명화 이전의 본연의 인간)의 도래며 회복을 보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되돌아오는 것들이 줄줄이 잇지만, 그것들은 크게 욕망과 욕구로 모아진다. 욕망과 욕구는 하나같이 억압된 것이란 점에서 같지만, 욕망이 영원한 결핍으로 조건 지워진 인간의 존재론적 조건이란 점에서, 그리고 욕구가 근본적으로 해소될 수 있는 생물학적이고 생리적인 현상이란 점에서 다르다. 흥미로운 것은 욕망과 욕구가 반비례한다는 점이다. 욕구가 해소되면 꼭 그만큼 욕망이 억압된다. 욕구를 좇으면 꼭 그만큼 욕망이 허해진다. 욕구가 없으면 덩달아 욕망도 없어지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해소되거나 덜어졌다는 착각을 줄 수는 있다. 불완전하지만, 금욕주의가 의미를 갖는 이유로 봐도 되겠다. 게다가 자본주의 시대에 욕망은 또 다른 의미기능을 수행한다. 자본주의가 약속하는 욕망은 사실은 또 다른 욕망 아님 더 큰 욕망을 불러들이기 위한 계기로서 작동하며, 따라서 욕망 자체는 결코 채워지지도 해소되지도 않는다. 애당초 욕망은 해소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욕망은 존재론적 결핍 아님 존재론적 원형 같은 것으로서 주체가 세계의 맨살과 대면하는 일(현상학적 에포케와 불교의 면벽수행이 겨냥하는)이 일어나지 않는 한, 그 실체를 알기도 붙잡기도 어렵다. 생물현상과 유리된 것은 아니지만, 생물현상에 기인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작가는 욕망하는 인간을 그리는가, 아니면 욕구하는 인간을 그리는가. 표면적으로 작가는 욕구하는 인간을 그리고, 생리적 인간을 그리고, 허기진 인간을 그리고, 실존적 인간을 그리고, 지금 여기의 긴박한 인간을 그리는 것 같다. 그리고 욕구로 나타난 그 생리적 현상은 욕망이라는, 보다 근원적이고 존재론적인 뿌리의식에 연동되고, 이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는 것 같다. 작가는 무엇보다도 지금 여기의 긴박한 인간을 그린다고 했다. 말하자면 작가가 일종의 투시도법을 적용해 그린, 엑스레이필름 기법을 적용해 그려서 보여주는 신체의 부분들, 이를테면 성기와 창자, 눈과 입술은 사실은 이 신체부위들로 대리되는 인간시장의 탐욕과 권력다툼을, 그리고 건전한(건강한?) 욕망의 표출을 그린 것이다. 말하자면 나는 마구 남근을 휘두르고 싶다. 죽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수행되는 법의 입법자가 되고 싶고, 질서의 집행자가 되고 싶고, 권력의 주체가 되고 싶다. 그리고 나는 출세를 위해서라면 누구라도 기꺼이 빨아줄 용의가 있다. 모든 것이 상품으로 심지어 인간마저 상품으로, 통용되는 이 천민자본주의 시대에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나는 기꺼이 너를 밟아줄 준비가 돼 있다. 작가는 그런, 상대를 향해 날름거리는 세 치 혓바닥을 그리고, 상대를 유혹하는 고혹적인 입술을 그리고, 전시만으로도 상대의 기를 죽이기에 충분한 단단한 놈을 그린다. 그리고 건강한 성욕과 건전한 식욕을, 축복처럼 터지는 성기의 환희와 절정을 그리고 창자의 추억을 그린다.

 나무에 유채 110.4×89.5×6.5cm 2004~2010

<존재의 집> 나무에 유채 110.4×89.5×6.5cm 2004~2010

 캔버스에 유채, 오브제 259.1×193.9×6.5cm(입체 143×40×20cm) 2008~2011

<꽃이 떨어지는 시간> 캔버스에 유채, 오브제 259.1×193.9×6.5cm(입체 143×40×20cm) 2008~2011

존재의 비망록
창자의 추억? 작가는 몸으로 살고 몸으로 그린다고 했다. 여기에 작가는 몸으로 보고 몸으로 생각하고 몸으로 느끼고 몸으로 욕망한다. 작가는 말하자면 온몸으로 본다. 그래서 몸 전체에 눈이 달려있다. 작가는 또한 온몸으로 욕망한다. 그래서 몸 전체가 성기다. 무슨 말인가. 작가에게 욕망의 지점들은 특정의 신체부위에 연루되지도 한정되지도 않는다. 욕망의 탈주선을 따라 욕망의 성분들은 몸 바깥쪽으로 확장되고, 몸 안쪽으로 연장되며, 의식 너머로 범람하고, 무의식을 파고든다. 그렇게 작가의 그림에서 신체 부위는 더 이상 전체와 부분과의 유기적인 관계에 예속되지 않고, 오로지 욕망의 성분들에 연동될 뿐이다. 무슨 말인가. 작가는 신체를 고정된 실체로 보지 않는다. 대신 욕망의 성분 여하에 따라서 항상적으로 이행 중인 대상, 자유자재로 재편되고 재구성되고 재구조화되는 대상으로 본다. 여기서 대상은 곧 몸에 해당하고 주체에 해당한다.
다시, 무슨 말인가. 작가의 자의식은 포스트 모더니즘적이다. 모더니스트와 포스트모더니스트는 어떻게 갈리는가. 모더니스트는 세계가 하나의 유기적인 전체로서 구조화돼 있고, 주체 역시 그 전체를 한눈에 조망하는 총체적 인식이 가능하다고 본다. 이에 반해 포스트모더니스트는 이런 세계의 형이며 주체의 꼴이 사실은 신념 내지 욕망일 수는 있어도 그 자체 사실이 아니라고 본다. 말하자면 그에게 세계는 파편화돼 있고, 주체 역시 조각나 있다. 그래서 겨우 부분인식만을, 그러므로 불완전인식만을 할 수가 있을 뿐이다. 이를테면 맥락 속의 사유가 가능할 뿐이다. 맥락 밖에는 아무것도 없고, 텍스트 밖에도 아무것도 없다. 그저 이런 맥락 아님 저런 맥락 속에서 저마다의 세계를 짓고 공 굴릴 뿐. 거대담론과 대서사와 같은 거시적인 비전이 흘러간 옛 노래로 치부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바로 이런 연유에서다. 작가의 그림에서 신체가 마구 절단되고 자유자재로 결합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저 신체를 그린 것이라기보다는, 바로 욕망의 탈주선을 따라, 욕망지도를 그린 것이고 몸 지도를 그린 것이다. 그럴 때에야 비로소 창자 끝에 매달린 성기를, 허벅지 안쪽에 숨어 있는 입술을, 가슴 위에 정박한 입술을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작가는 이런 그림이 지겹다. 허구한 날 욕망을 직시해야 하고, 항상 의식의 성기(레이더?)를 곧추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지긋지긋한 자기 그림을 밟아달라고 주문한다. 그렇게 밟아서 그림이 더럽혀질 때 비로소 그림은 완성된다고 보고, 최소한 그림이 의미를 획득한다고 본다. 무슨 말인가. 작가가 그린 그림을 밟는다는 것은 작가를 밟는다는 것이다. 마조히즘인가? 마조히스트인가? 맞다. 그러나 그 마조히스트는 감각적 쾌를 향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인식을 향하고 존재인식을 겨냥한다는 점이 다르다. 욕망을 외화하고, 욕망을 직시하고, 욕망을 죽여라. 그러면 비로소 욕망(불교에서의 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있을 것이다. 다만, 죽음을 담보할 때만이 그렇다는 전제를 기억할 일이다. 조르주 바타유 식으로 말하자면 마조히스트는 작은 죽음이고 예비적인 죽음이다(바타유는 에로스를 작은 죽음이라고 했다).
작가는 리어카에 화구를 싣고 전국을 주유하면서 오로지 그림만을 그리고 싶다고 했다. 한편으로 그림이 지겹다면서, 다른 한편으론 오로지 그림만을 그리고 싶단다. 이 무슨 모순화법이고 이율배반인가. 그러나 사실은 그렇게 볼 일은 아니다. 지겹기 때문에 그려야 하고, 지겹기 때문에 살아야 한다. 할 줄 아는 것이 그림밖에 없고, 살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그림밖에 없고, 세상에 복수할 수 있는 무기가 그림밖에 없기 때문이다. 니체는 미학이 아닌 그 무엇으로도 이 삶은 정당화될 수가 없다고 했다. 태어난 이유를 해명해주는 것으로 치자면 오로지 미학밖에는 없다는 말이다. 쥐가 궁지에 몰리면 내면으로 숨는다고도 했다. 내면 말고 따로 숨을 데도 없었을 것이다. 여기서 내면과 미학은 하나로 통한다. 그러므로 니체에게 미학은 더 이상 삶을 아름답게 해주고 삶을 의미 있게 해주는 휘황찬란한 무엇, 의미심장한 무엇이 아니었다. 미학이란 자기 내면을 파고들고, 삶을 직시하는 것을 의미했다.●

정복수는 1955년 경남 의령에서 태어나 1985년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했다. 1979년 청년작가회관에서 첫 개인전 <바닥畵-밟아주세요>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20회 여회 개인전과 <한국미술 -인간 동물 기계전>(국립현대미술관 1997), <1980년대 리얼리즘과 그 시대>(가나아트센터, 2001) <다시보는 1970-80년대 한국미술>(서울시립미술관, 2012) 등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현재 경기도 안성시 보개면 작업실에서 작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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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로의 여행> 캔버스에 유채 72.7×90cm 2008~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