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박형근 Tetrapode

자하미술관 4.1~5.1

고원석 전시기획
어딘가에 실재하지만 볼 수 없었던 것들을 찾아 기록하고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사진이 견지해온 가장 오랜 방법론일 것이다. 때문에 사진가들에게는 현실을 기록하는 매개체로서의 이미지가 갖는 무한한 가능성을 인지하고 해독하는 특별한 감각이 내재되어 있다. 그 감각이 향하는 방향들이 사진작업의 미학적 독창성을 결정하는 토대일 것이다.
박형근의 전작들을 주목하게 된 건 그의 사진이 무거운 현실과 역사를 기록하되 사실에 대한 발언을 철저히 제어하고 새로운 상상력의 공간을 열어놓는 감각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의 사진 속 피사체들은 대부분 역사의 무게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들이었지만 그 역사의 무게는 쉽게 그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이전에 나는 그것이 그의 사진이 대상을 보여주는 것보다 보는 사람의 세계와 접속할 수 있는 어떤 영역을 확보하는 데 집중했기 때문이라고 언급했었다. 그건 관념의 재현이기보다 몸이 찾아낸 풍경들의 묘사에 가까웠다.
이번 개인전에서 박형근은 시화호 근처의 풍경을 대상으로 한 작업들을 선보였다. 이전부터 유지되어 온 그의 정체성은 여전히 단단한 기저를 이루고 있지만, 피사체의 구성은 전보다 더 편안해진 느낌이다. 과거의 사진들은 자신이 이미지를 구성하는 미학적 정체성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 고밀도의 것들이었다. 종종 그는 잘 보이지 않는 설치의 방법으로 풍경에 개입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전시의 신작들은 그러한 조밀한 구성으로부터 자유로운 모습을 띠고 있다. 많은 사진이 대상 그 자체만으로도 어떤 강력한 메시지를 던져주는데, 정작 그 대상은 일정하지 않다. 로드킬 당한 짐승의 사체와 같이 강력한 리얼리티부터 가벼운 개입을 통해 초현실적으로 변해버린 풍경까지, 다양한 것들이 등장한다. 이는 그가 시화호 주변이라는 대상을 명료한 메시지로 표현하고 있지 않음을 의미하며, 오히려 더 많은 얘기를 개입시키고자 했음을 추측하게 한다.
작업의 이러한 변화는 작가가 시화호라는 대상에 담긴 통사성을 의식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제주 4·3 사건이나 5·18 광주민주화 운동과 같은 무거운 역사의 이미지와 관계하며 중년에 접어든 작가의 호흡이 이전과 달라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대상 대신 대상과 접속하는 어떤 영역을 재현하고자 했던 그의 전형적 태도가 조금 다른 구성과 방식으로 재현되었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의 의미가 있다. 화면 구성의 통일성과 피사체의 일관성이 와해된 대신, 사진들이 담지하고 있는 시공간의 정체성은 더 분명해졌고, 이미지의 지속성은 더 길어졌다.
이를 작가가 성취해낸 새로운 미학적 영역으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시를 준비하는 작가들은 정작 자신의 작업이 획득하게 될 새로운 해석의 여지까지 염두에 두기 어렵다. 작가의 작품이 안고 있는 다양한 가능성을 이끌어내는 기획력의 부재가 아쉬운 전시다.

위 박형근 <Fishhooks>(벽면) C-프린트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