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손몽주 표-류-로

홍티아트센터 2014.12.15.~1.30

손몽주는 합성고무밴드를 이용해 공간을 횡단하는 일종의 띠 작업을 지속적으로 진행해왔다. 이 작업들은 ‘공간의 변형과 확장’이라는 주제를 구현하며 지난 10여 년 동안 800km에 달하는 작업으로 이어졌다. 이제는 손몽주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버린 이 작업들은 공간의 문제뿐 아니라 빛의 효과와 관객 참여적 의미를 더해가며 다양한 형태로 진화해왔다. 손몽주의 작업, 특히 공간을 띠로 나누는 아이디어는 무척 신선하고 다양한 확장 가능성을 가진 듯 보인다. 공간에 대한 제약이 없고 어떤 상황에서도 작품 설치가 가능한 매우 유용한 설치방식을 적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업의 여러 양상에도 불구하고 손몽주의 작업은 공간에 지나치게 형식주의적인 관점으로 접근한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미학적 순수주의 혹은 형식주의를 넘어서려 한 설치미술을 하면서도 그의 작업은 여전히 그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아이러니 같은 것. 다시 말해 캔버스를 공간으로 확장한 정도의 실험으로만 느껴졌다. 물론 특정한 장소에서 이루어지고 다양한 개념들이 교차하는 설치미술의 기본적인 특징을 가지고는 있지만 공간은 여전히 중성적인 배경, 즉 삶이나 존재가 가지고 있는 무게가 탈각된 공간이었다.
최근 작가는 “표류로”라는 주제의 전시를 열었다. ‘표류’의 미래적 가치를 담기 위한 제목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이번 전시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작가의 작업이 내용과 형식에서 커다란 변화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모티프는 단순하다. 대마도를 방문하면서 그곳에서 표류해온 고사목을 우연하게 발견하게 된다. 무심하게 떠내려 온 표류목을 통해 작가는 ‘시간’ 혹은 ‘삶의 의지나 지향’과 같은 의미들을 사유한다. 작가가 생각하는 것처럼 “표류”의 의미는 어쩌면 삶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특징일지도 모른다.
다대포 홍티아트센터 레지던시에 참여하고 있는 작가는 그곳에서 표류목을 구해 이번 전시를 진행했다. 무중력의 공간을 부유하는 듯 한 표류목들은 작가의 작품에서는 ‘장소’와 ‘사물’을 상징하는 오브제들이다. 이러한 표류목의 등장은 중성적인 혹은 배경으로서의 공간을 ‘의미’와 ‘해석’의 장소로 전환시킨다. 시간의 결이 켜켜이 새겨진 표류목과 작가 특유의 띠 작업이 만나 정서적 반응을 호출하는 공간을 연출했다. 형식주의의 버릇을 온전히 벗어나진 못했지만 이번 전시는 새로운 시작의 단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흘러가는 것의 무게에 대한 자각, 이것이 손몽주의 ‘표류로’ 전시에 대한 긍정의 이유다.
이영준 김해문화의전당 전시교육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