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신지도제작자

송원아트센터 8.5~26

채은영 독립큐레이터

현대미술에서 공간과 장소성에 관한 작업은 인간과 자연을 소재로 한 것만큼 흔하다. 도시 일상 공간의 규범과 제도를 일탈하고 표류하는 심리지도 방법론은 다른 장소성으로 우리의 실재를 재배치하며 재인식하는 데 유용하기 때문이다. <신지도제작자(New Cartographers)>는 이러한 방법론에 근거해 비가시적 영역과 관계들을 14명의 작가, 디자이너가 심리적 개인적 조형 방법론에 따라 가시적 매핑으로 엮은 전시다.
1층에는 세밀한 드로잉으로 여러 도시 지도를 중첩하여 새로운 지도를 만들고, 1880년에서 1960년대 세계지도를 재구성해 드로잉을 만든 줄리앙 코와네, 에코 세대의 통계를 다이어그램으로 보여준 옵티컬레이스(박재현, 김형재), 2차원의 지도를 잘라내 3차원 공간으로 만든 임선이, 도시의 공감각적 풍경을 소리지형도로 선보인 백정기, 정치사회경제 시스템을 매핑하는 카토그래피 작업을 하는 부로 데튜드, 사회의 불안, 공포 등의 흔적과 드로잉을 만든 유창창이 신지도 제작자로 소개된다. 1층 일부와 지하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에는 서구의 당대 사회와 욕망을 보여주는 옛지도와 관련 서적들이 지도 아카이브로 소개된다.
지하층에는 자신의 일상적 공간 기록을 지도로 만든 김정은, 한강을 따라 수집한 개인의 물건과 사연을 보여준 자우녕, 근현대 서울의 도시 변천사를 슬라이드 프로젝트로 보여준 전진열+안창모, 구룡마을과 송도신도시 등 여러 지역을 GPS로 찾아 만보객이 되어 읖조리는 비디오프로젝션을 선보인 린다 하벤슈타인, 자전거 공유시스템 데이터를 기반으로 매핑하는 심규하, 오래된 골목길의 색들을 색면들로 재구성한 김태현, 도시 공간의 자연-인공 사이 관계성을 설치와 드로잉으로 보여준 심윤선이 신지도제작자다.
전시는 작가, 디자이너, 도시 연구가들의 드로잉, 회화, 사진, 비디오, 사운드, 설치, 다이어그램 등 다양한 형태로 구성됐는데, 이점에서 작가 리서치를 폭넓게 한 기획자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기획자는 이렇듯 다양한 방법으로 기존 지도가 우리에게 강요했던 세계와 삶에 대한 인식틀을 벗어나, 우리가 알고 이해해야 할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여주려 한다. 그리하여 삶정치를 회복하는 새로운 장소성을 위한 희망의 공간을 구축해가는 신지도제작자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앞서 이야기했듯 도시 일상 공간에 관련된 적잖은 작업과 전시가 심리지도 방법론의 만보객을 표피적으로 동어반복하며 일상성에 기대거나, 여러 방법론의 종합선물세트식 전시 구성에 기댄다면, 이번 전시는 그러한 전형성을 갖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무엇보다 비가시적 영역을 가시적으로 매핑하는 것보다 매핑의 과정을 통해 다른 맵을 만드는 지도제작자들에 주목한 것은 공간과 장소성에 대한 다른 관점을 제시하기 위해서다.
지도 제작자인 작가, 디자이너, 도시 연구가를 내세운 기획의 관점에 대한 기대에 비해 실제 전시는 왜 신지도제작자에 무게 중심을 두었는지에 대한 핵심 근거가 약간 모호하다. 다양한 제작자들이 각각의 방법론으로 다른 가시성의 지도를 제작하는 것은 개인적이고 심리적 방법론에 작업을 하는 예술가들에 있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제작자들을 내세운 기획의 킥이 구체적이지 않아 14명(팀)의 신지도제작자 사이의 관계와 매핑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생각해야 했는데, 최근 신지도제작자들의 유행(?)에 대한 기획자의 배경 설명이 있었다면 기획의 결이 좀 더 섬세하지 않았을까. 미술 쪽 작가와 달리, 디자이너와 도시 연구가의 참여 혹은 협력도 단순히 구성을 위한 수적 다양성의 방편일 것이라는 비판을 벗어나기 위해선 참여에 대한 기획의 근거가 좀 더 분명해야 한다. 물론 기획의 근거나 킥이 지나치게 현학적이거나 이론적일 필요도 없고 자신의 언어로 설명하면 되는데, ‘왜’라는 질문에 기획의 답이 열려있는 탓에 다소 전형적이거나 모호한 작업들은 기획에 힘을 주기엔 역부족이고, 상대적으로 서구 중심의 세계나 서울 중심적 매핑은 미시 영역을 자본과 제도로 내밀화화는 신자유주의적 상황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전시장의 공간적 제약 탓이겠지만 전시 구성은 언어화된 기획 글과 14개의 새로운 지도 그리고 지도 아카이브들을 물리적 공간에 매핑하기엔 조금 아쉽다. 현재 공간(전시 공간)에 여러 지도와 자료들의 시공간적 매핑들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장소성이 기획의 의도를 경험하게 하는데, 공간 제약과 많은 작가와 작업들을 우선적으로 고려한 배치가 작업들과 제작자들 사이의 관계성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 야심차게 준비했을 지도 아카이브는 1층 작업들 사이에 커다란 지도와 박물관 유리케이스 속 고서들처럼 놓여있고, 1층과 지하층 연결 계단에 아무런 설명없이 아트 포스터처럼 걸려 있어 세계의 가시성을 위한 다른 안내서라기보단, 앤틱한 지도 이미지로 비친다. 최근 여러 전시에서 간과하는 부분인, 외국어에 익숙하지 않은 관람객을 위한 최소한의 번역이나 설명은 공공기금을 받는 전시나 프로젝트에서 최대한 소통을 위한 시작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여 년간 상업갤러리에서 일한 기획자가 독립 큐레이터로서 공공 영역에서 여는 본격적 전시라는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적잖은 기획자가 물리적인 자기 공간의 힘을 받아 이력과 네트워크를 쌓거나, 일반인이 공무원 시험에 붙거나 대기업 취직을 원하듯 공공기관에서 자본과 제도의 기반을 얻고자 한다. 그런 이유인지, 최근 기획전시는 공공미술관과 거대 상업갤러리의 기획전 그리고 정책적 의도와 자생적 시도가 맞물린 미술시장 관련 행사로 집중된다. 소규모 공간의 전시는 파편화와 자기복제 그리고 다른 공동체적 연대 속에 있다면, 자기 공간이 없이 재원 조성을 위한 시도를 통해 자본과 제도적 긴장을 조율하며 예술 기획을 하는 독립 큐레이터들을 만나기가 더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이것은 기획자 개인 의지나 욕망에 빗대어 탓할 현상은 아니다. 그보다는 이미 우리 미술계도 자본과 제도의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창작기획자들 그리고 공간들의 각자도생 속에 미술의 삶정치성 회복에 대한 기대를 갖기 힘든 탓이다. 이런 제도적 상황에서 건강한 자기조직화를 시도하며 자본과 제도 사이를, 중앙과 지역 사이를 넘나드는 독립 큐레이터들이 지치지 않고 오래 버틴다는 것이 심신에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래서 전시에 대한 아쉬움은 다음 행보를 위한 조언의 의미이며, 전시를 준비하고 기획하고 진행하며 노력과 열정을 보여준 기획자에게 미술이 다른 희망의 공간을 안내하는 지도로써 의미를 회복하는 데 자산이 될 것이라 격려의 말과 함께 응원을 보낸다.

위 심윤선 <Constructed Island> 혼합재료 가변설치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