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 TOPIC 세밀가귀 細密可貴:한국미술의 품격

한국미술은 ‘여백의 미’만으로 정의할 수 없다.
삼성미술관 Leeum에서 열린 <세밀가귀細密可貴 : 한국미술의 품격전>(7.2~9.13)은 한국미술사에서 최고의 섬세함과 완성도를 추구한 작품을 총망라해 한국미술의 또 다른 면모를 집중 조명한다.
고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금속공예, 나전, 도자, 회화 등 전 분야의 국보・보물급 작품들이 세밀한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준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현재 전 세계에 남아 있는 고려 나전 17점 중 8점이 공개되는 등 그동안 국내 전시에서 볼 수 없었던 명품들이 한자리에 모여 한국미술의 화려한 스펙트럼을 자랑한다.

11 불상 (8)

<금동 천수관음보살 좌상> 71.5cm(높이) 고려~조선 초 (대한불교조계종 홍천사 소장)

2 금관 (4)

국보 138호 <금관> 11.5cm(높이) 가야 5~6세기 (삼성미술관 Leeum 소장)

세밀의 미, 한국미의 또 다른 아름다움

김홍남 이화여대 명예교수, 전 국립중앙박물관 관장
전시 제목, <세밀가귀(細密可貴): 한국미술의 품격>에 등장한 ‘세밀가귀’란 표현은 다소 생소하게 들리겠지만 “세밀함이 가히 귀한 경지에 이르렀다”라는 뜻으로 1120년대 초 한국을 다녀간 중국사신 서긍(徐兢)(1091~1153)이 남긴 그의 견문록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서 고려나전에 대해 남긴 기록을 인용한 것이다. 한국미술의 품격을 세밀함에서 찾아보고자 하는 전시기획의 의도가 분명히 드러나는 제목이다.
전시는 “文문양: 정교함의 극치, 화려함의 정수,” “形형태: 손으로 빚어낸 섬세한 아름다움,” 그리고 “描묘사: 붓으로 이룬 세밀함” 세 부분으로 구성되었고, 이 세 특징을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금속과 도자공예, 나전칠기공예, 불교미술, 회화작품 등에서 찾아보고자 하였다. 전시품들은 국보와 국보급 미술품들로서 자체 소장품에서는 50점만 엄선하고 국내 16곳, 해외 21곳에서 대여받은 80점을 합한 총 130점이 기획전시실 2개층을 메우고 있다. 전시 주제도 만만치 않은데다 해외 대여는 성사되기도 어렵고 또 막대한 예산이 들어 “과연 리움만이 가능한 전시”라는 감탄사를 자아낼 만하다.
1부에서는 백제금동대향로, 2부에서는 고려옻칠나전경함, 3부에서는 조선시대 초상화가 단연 돋보인다. 이 전시에서 풀기에 가장 어려웠을 것으로 추측되고 실상 비교적 취약한 부분이 3부, “描묘사: 붓으로 이룬 세밀함”이다. 유교국가 조선은, 세밀과 장엄의 미학이 일관성을 보인 불교국가 고려와 달리, 소박·담백의 유가적 미학이 부상하면서 기교미와 세밀미를 추구한 장인예술전통은 수세에 몰리게 되었다. 중국은 9세기 말 이후부터 이미 철학, 사상, 종교 그리고 예술사조에서 이론적 사고가 직관적 사고로, 인위에서 무위자연으로, 기교에서 무기교로 점차 확산해 나갔다. 그 결과 정밀함이 지성사회에서나 순수예술세계에서 이탈하고 급기야는 퇴출되는 위기를 맞는다. 중국문화권인 한국에서도 조선시대부터 서서히 두 가치의 공존과 충돌이 일어난다. 이러한 미학적 이중구조 속에서 세밀가귀의 기획의도를 관철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3부 전시공간을 들어서면서 데자뷔(기시감)가 몰려왔다. 20여 년 전 미국 순회전 <18세기 한국미술>(1993년 뉴욕 Asia Society에서 시작) 준비과정에서 고민했던 일들이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전시의 영문제목, “Korean Arts of 18th Century: Simplicity and Splendor”는 고심 끝에 두 가치의 공존을 인정하고 정면 돌파하는 해법을 택했음을 말해준다. 조선시대미술에 단순·소박미와 더불어 화려의 미가 산발적이 아닌 일관성을 띠고 민간, 궁궐, 종교미술(전시의 세 부분)에 보이며 이 예술혼을 살리고 주도해 온 궁궐미술이 조선시대미술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전시이다. <세밀가귀전>은, 깊은 곳에서 18세기전과 강렬한 연속성을 느끼게 하면서, 나아가 조선시대 필의 힘을 휘두른 유림 미학에 떠밀리고 폄하된 장인 예술과 그 공묘함에 초점을 맞추고자 했다. 따라서 초상화와 궁중기록화는 물론이고 두 가치의 경계를 넘나드는 수묵화도 세부묘사가 출중한 작품들을 끌어들였다.

6 나전 (6)

<나전 국당초문 경전함>(왼쪽) 24.8×47.2×25.8cm(높이) 고려 13세기 (보스턴미술관 소장)

16 일반 회화 (8) - 원본

보물 1493호 이명기 <오재순 초상>(오른쪽) 비단에 채색 152×88.9cm 조선 18세기 말~19세기 초 (삼성미술관 Leeum 소장)

한국미의 새로운 기준
지난 몇 년간 리움이 기획한 전시들, <조선화원대전> (2011)과 <금은보화: 한국전통공예의 미전> (2013), 그리고 올해의 <세밀가귀전>의 기획 의도에는 근대한국예술론과 미술사 서술의 편향성과 왜곡에 대한 질타와 수정주의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이 편향성은 근대일본의 미학자이며 조선민예연구가인 야나기 무네요시로 더욱 공고해졌다. 그가 펼친 “질박과 무기교의 기교”야말로 한국미의 본질이라는 예술론은 오랫동안 “한국적인 것”을 규정하는 잣대로 적용되고 현대 한국인들마저 마치 집단최면에 걸린 양 이 ‘잠언’을 되뇌곤 한다. 그 결과 조선시대 예술의 총체적 이해는 물론이고 그 이전 시대 예술의 진면목을 이해하는 방향감과 균형감을 잃어버렸다.
이들 리움 전시에 더 큰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자면, 기교와 ‘순수예술’의 분리현상이 빚어낸 사태, 바로 근대 이전 중국·한국미술의 불완전성을 직시하고 바로잡으려는 노력이다. 이 분리 현상은 기교와 사실주의로 꽃피울 수 있었던 예술혼의 잠재성과 창의력을 죽이는 결과를 낳았다. 우리가 무엇을 놓쳤는가는 서양미술의 발전사를 보면 더욱 자명해진다. 문제는 한중 양국이 이 불완전성을 극복하고 분리된 예술언어의 재통일을 시도하지도 못한 채 20세기 들어 세상이 바뀌고 서양문화의 물결에 휩쓸리고 만 것이다. 그 결과 우리의 문화사적, 미술사적 사고의 틀도 그 안에 갇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전시들은 이토록 오랜 세월 기교와 무기교로 분리된 예술언어를 중개하고 균형을 이루는 지점을 가리키려고 한다. 그리고 그 결의를 전시기획자 조지윤의 글에서 읽을 수 있다. “이 전시를 통해 세밀하고 정교한 표현이 우리 미술을 바라보는 새로운 해석의 기준이라고 제시함으로써… 지금껏 주목받지 못하였던 한국미술의 또 다른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이 전시가 “한국미술을 더욱 다각적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삼성미술관 Leeum의 시각을 집대성한 전시이다”라고 힘주어 말하고 있다. 누군가 말했다. “가장 원대한 비현실을 붙드는 사람만이 가장 원대한 현실을 창조해낼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이 전시에 들어 있는 미래의 잠재성이 아닐까 생각하며 깊은 사색에 빠져든다.
좋은 전시는 “놀랄 줄 아는 능력”을 잃어가는 현대인에게 느끼는 법을 되살리고 경이감을 되찾아준다. <세밀가귀전>이 주는 “아 우리에게도 이러한 섬세함이 있었구나!”하는 경이감은 자각과 반성을 유도한다. 한국인이 놓아버린 듯한 세밀의 정서와 기교의 미를 찾고 기억하게 하고자 하는 의도는 설치기술에 세심하게 배어 있다. 곳곳에 설치된 인터랙티브 디지털 영상의 세부확대기능은 시각적 한계를 극복하게 해준다. 이 전시는 느리게 움직여야 하는 전시이다. 작품 한 점 한 점에 집중하고 작은 세부까지 면밀하게 들여다보는 세심한 관찰력이 필요한 전시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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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나전 (14)

<나전대모 국당초문 삼엽형합>10.2cm (지름), 4.1cm(높이)고려 12세기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소장)

해외소재 고려나전 8점 한자리에

김홍남 이화여대 명예교수, 전 국립중앙박물관 관장
특별공간이 주어진 고려나전은 이 전시의 화중왕(花中王)이다. ‘세밀가귀’가 고려나전을 향한 찬사였던 만큼 제목 값을 톡톡히 하고 있다. 대개 사진으로만 접하던 해외 소재 고려경함이 일본뿐 아니라 구미 각국의 소장품까지 포함해서 총 6점이나 집결했다. 앞으로 언제 또 이런 호사를 누릴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다. 고려경함은 고려불화와 함께 세계적인 미술품 반열에 들어있고 세계미술시장에서 그 부문의 동아시아미술품 중 가장 고가로 거래된다. 2006년 가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나전칠기, 천년을 이어온 빛전>이 고려경함에 한해서는 일본 소장처에만 의존하여 관장으로서 못내 아쉬웠던 기억이 떠오르면서 이 전시가 그때의 한을 풀어주는 것 같아 감회가 깊다.
서긍은 중세중국의 문화최성기 북송 말의 예술가황제 휘종(徽宗, 재위 1100~1125)의 신하로 시·서·화에 능한 인물이었다. 휘종은 세밀화의 대가였고 그가 이끌던 한림도화원은 화조화, 영모화 등 세밀화 부문에서 걸출한 화가들을 배출하였다. 황실 관요는 청자와 백자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고 골동수집 열기도 뜨거웠던 때로 감식안이 고도로 발전하였다. 궁궐 밖에서는 소식(蘇軾)일파의 평담천진(平淡天眞)과 불속(不俗)의 사인(士人) 예술론이 중국예술의 미래 방향을 예견하고 있던 시절이었으나 궁궐과 화원의 기조는 정교한 기교의 장식성이었고 세밀함을 귀히 여긴 시대였다. 서긍이 휘종황제에게 올리는 보고서인 <고려도경>은 문화와 예술에 대한 관찰기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특히 공예에 대해 예리한 감식력을 보인다. 전시에 나온 경함 6점은 제작 시기가 모두 나전문양의 도안화가 가속된 13세기 이후임에도 불구하고 극히 정교하고 화려하다. 그러하니 서긍이 보았던 12세기 초의 고려나전은 과연 어느 정도였을까?
이 궁금증을 다소나마 해소해주는 유물이 소품이긴 하나 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과 보스턴미술관에서 온 삼엽형합(三葉形盒)과 화형합(花形盒) 2점이다. 이들 12세기 사례에서는 뛰어난 기형 제작은 물론이고 재료사용은 현미경으로나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약 0.3mm 정도의 얇은 자개절단기법과 석황과 진사로 뒷면을 채색한 대모복채기법 및 극세의 황동금속 꼬기기법 등을 혼합사용하여 화려하고 섬세한 결과를 낳았다. 12세기의 나전경함의 모습을 유추해 볼 수 있게 하는 작품으로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포류수금문 나전향상이 있다. 이 시기의 명품 중 명품이나 현재 복원 불가능할 정도로 파손상태가 심하다. 재현이라도 되어 세상에 그 존재가 널리 알려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11세기에 고려왕실이 중국황실에 나전칠기를 선물했다는 《동국문헌비고》의 기록으로 보아 12세기 전부터 이미 고려나전공예가 자신감과 국제적 명성을 누리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휘종황제 재임기까지 고려왕실의 화가와 공예가가 파견되어 휘종의 칭찬을 받기도 하고, 화원에 들어가 기예를 닦을 정도로 북송황실과 긴밀한 문화예술교류를 유지하고 있었다. 13~14세기 몽골이 지배하던 원대에는 화원이 쇠락하고 궁중예술이 전반적으로 침체되자 원황실은 고려조정에 불화와 경함을 공물로 요구할 정도였다. 실로 동아시아에서 고려의 불화와 나전칠기공예의 수준을 따라갈 나라는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