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하태범 – White-시선 White-Line of Sight

하태범  __  White-시선 White-Line of Sight

소마드로잉센터 10.9~26

하태범 작가의 개인전이 2014년 가을에 열렸다. 그간 사진과 영상, 설치,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로 <화이트>시리즈 전시를 지속적으로 진행해 온 터라 장르 변화의 색다른 시도는 예측할 수 없었다. 실상 조각을 전공했지만 독일 유학 후 한국에서는 줄곧 작품 결과물을 사진과 영상, 설치로 선보였다. 물론 작업 과정에서 조각적인 요소가 빠져있던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조각, 영상, 사진이 된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의 발현을 예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번엔 작년과는 또 다른 결과를 이끌어냈다. 통상 작업내용을 관통하는 사유는 일맥상통하지만 결과적으로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조각전시를 이끌어냈다.
이번 전시 역시 화이트의 네거티브 측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냈으며, 전시 자체에서 다양하게 어우러진 작품들의 화이트는 아름다운 한민족의 색일 수도 있고, 모든 긍정의 의미를 품은 색일 수도 있지만 실상 작가는 그곳에 또 다른 함정이 있음을 실토한다. 전시장 입구에 설치된 어린이 난민구호물자를 모집하는 단체, 직접적이고 물질적인 후원을 바라는 단체 등이 제작한 홍보영상을 가감 없이 작업의 일부로 노출시켰다. 그 영상은 결과적으로 화면 속에 등장하는 아이들에게 연민을 느끼며 바로 그 단체로 연락을 하게끔 편집된다. 하지만 편집구성을 떠나 화면 속의 이미지들을 한 장 한 장 순차적으로 떠올려 본다면 그곳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모두 천진난만한 순수한 얼굴을 하고 있으며, 때로는  ‘내가 못살고 있고, 내가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구나’ 라는 인식도 하지 못한 채 즐거운 오후 한때를 보내는 이미지도 종종 만나게 된다.
그간 하태범의 작업은 매스컴에 보도된 자연재해, 전쟁과 같은 재앙을 다루되, 모두 화이트로 탈색하여 그 사진으로 하여금 인간이 느끼게 되는 연민의 감정을 모두 제거했다. 즉, 그 연민의 감정이 화이트에 의해 제거되었지만 탈색되기 이전의 실제 보도이미지를 보게 되더라도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무감각해지는 인간 심리를 포착해 보여주기도 했다.
이번에 새롭게 제작된 총 4점의 화이트 조각은 모두 선진국과 좀 더 잘사는 사람들로부터 지원과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매스컴 광고에서 따온 이미지들이다. 과거엔 인간을 둘러싼 모든 재앙에 무감각한 개개인을 되돌아보게 했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특별히 ‘아이들’로 대상을 압축했다. 즉 하나의 대상으로 일관화했다는 것은 그간 온 지구에서 일어난 사고를 무자비하게 채취했던 상황과는 다르다. 그리고 전시된 조각 4점은 모두 난민캠프에서 따온 아이들의 이미지이지만 불쌍해 보인다기보다는 아름답거나, 용맹스럽게 보이기까지 한다.
우리가 접하는 아이들 이미지를 차용한 지원 광고를 통해 모두 ‘돕자’라는 심리를 발현하게 한 자와, 그대로 수용하는 사람,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애처롭게 해서 동조를 끌어내려 아이들의 이미지를 자극적으로 이용하는 자, 또 그것을 외면하는 사람, 이러한 이미지 생산자, 소비자의 메커니즘에서 비켜나 있는 천진무구한 아이들. 이 모두 작가가 느끼고 재현하고 싶었던 감정 선이 아닐까.
올 한 해는 다사다난했다.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우리가 예술의 영역에서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궁극적으로 반성한 해였다. 이를 계기로 이득을 취하려는 이기적인 어른, 어떠한 특정 외침을 정치적인 이슈로 오해하는 어른, 또 반대로 이를 통해 좀 더 나은 사회로 가자며 따뜻한 메시지를 던지는 어른들…. 우리는 다층적인 각도의 상황을 맞이했다. 이렇듯 하나의 색 혹은 하나의 이슈를 두고, 편협하고 일관된 논의만이 아닌 비록 하나인 것 같지만 그 안엔 무한히 다양한 측면의 상황과 레이어가 공존하고 있음을 각인시키고자 했던 작가의 노력이 지속적으로 빛을 발했으면 한다. <화이트(2012)>, <화이트-사인(2013)>, <화이트-시선(2014)>, 화이트를 둘러싼 우리의 고정관념을 무너뜨리고 또 이러한 관념을 뒤틀어 우리 사회에 공존하는 심리를 더욱 심도 있게 이끌어가길 바란다. 벌써부터 또 다른 <화이트-…(….)>시리즈 작업이 궁금해진다.
이은주·아트스페이스 정미소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