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김실비 엇갈린 신(들)

인사미술공간 6.26~7.14

고동연 미술사

작가 김실비는 현대사회에서 일어나는 정치, 문화, 과학기술과 연관된 주요 이슈들을 영상, 설치, 행위의 다양한 매체에 걸쳐 표현해왔다. 덕분에 ‘지독하게’ 비판적이고 이상주의적인 작가의 쟁점인, 과연 전지구화 시대에 정치와 과학기술은 우리를 자본주의의 폐해로부터 영영 구해낼 수 없는가의 문제가 관객들에게 쉽게 인식되기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전통적으로 동유럽과 서유럽의 경계선에 위치한 베를린에 거주하는 김실비가 상업화된 전지구적인 문화, 경제 현상에 대하여 극도의 혐오를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베를린은 문화적 상업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공동체적인 삶에 대한 향수, 패배주의, 이민문제 등의 거의 모든 이슈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베를린과 한국을 오가는 김실비가 바라본 국내의 사회적, 정치적 현실도 베를린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번 전시에서도 전시장 2층에는 영국, 한국 등 다양한 국가들에서 전 세계적으로 사용되어온 저항적인 포스터들과 억압적인 현실을 보도한 내용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런데 김실비의 작업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소재적인 측면보다는 그녀의 블랙 유머이다. 지하 1층 <엇갈린 신(들)>과 사운드아트 <영상 속 우주 ASMR>은 인지학적인 측면에서 관객을 자극한다. 과연 우리는 부조리한 리얼리티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가? 통상적으로 원초적인 질문을 던지는 인간은 비판적이다. 적어도 표피적으로는 일상으로부터 탈출해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자 노력하기 때문에 우회적으로 비판적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김실비는 가장 원초적인 신과 우주의 근원조차 코믹한 방식으로 다룬다. 시공간을 초월해서 우리가 상상하는 신의 이미지들을 조합해 보여준 ‘신전’ 위에 설치된 영상 <엇갈린 신(들)>은 인류 역사의 발전단계에서 등장한 신에 대한 욕망을 반어법적인 방식으로 풍자하기 때문이다.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종교는 정치적, 사회적 모순을 눈 막음하려는 ‘촌극’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작가는 1층의 백색소음이 이러한 촌극으로부터 관객들이 탈출하도록 돕기 위한 상징적인 기재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종교로의 귀의가 결국 초월로 이어질 수 없듯이 백색소음이 ‘끔찍한’ 리얼리티로부터의 온전한 해방을 돕지는 못할 것이다.
여기서 김실비의 비판은 유효하다.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현실은 암울하며 종교나 우리시대의 종교에 해당하는 디지털 환경을 통한 처방 또한 한시적이다. 작가는 유튜브에서 접할 수 있는 ASMR(자율감각 쾌감 반응)을 가지고 불면증을 고친다는 사이버 치료에 대하여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디지털화된 환경이 포퓰리즘과 상업주의에 거의 완전히 장악당한 현실을 알게 된다면 이러한 사이버 치료 또한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
그러나 현학적인 자료들을 버무려 놓은 김실비 전시에 대한 아쉬움은 남는다. 일차적으로 배경 설명 없이 일반 관객에게 김실비의 전시는 과중하다는 인상을 준다. 물론 이러한 배경에는 한국 미술계가 인용해온 이론의 폭이 매우 좁다는 사실, 한 집 건너 십자가가 있지만 신과 연관된 어떠한 심도 있는 질문도 제기하지 않는 우리 인문학계나 지식인들의 무책임함, IT 강국이라고는 하지만 자신이 사용하고 있는 기계가 어떠한 정서적, 사회적, 문화적 변화를 일으키는지를 진심으로 관찰하고 비판하려는 태도가 부재한 점 등을 들 수 있다. 그럼에도 동시에 너무 많은 이야기가 한 전시에 공존하면서 작가의 특정한 시점을 인식하는 것이 관객으로서 쉽지 않았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관객으로서 웃어야 할 시점과 울어야 할 시점이 모호하였다. 과연 불평등한 사회적 현실을 고발한 포스터들 앞에서 우리는 울어나 하는가? 아니면 모순된 탈출구를 희망하는 신의 이미지 앞에서 웃어야 하는가? 게다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과연 누가 전지구화를 비판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우리는 과연 각종 정치적이고 과학기술인 사회적 기재들로부터 의연하게 탈출할 만한 능력과 용기를 지니고 있는가? 어렵고 심오한 질문이다. 게다가 작가가 스스로를 사회로부터 분리해서 던질 수 있는 질문도 아니다. 그렇기에 이에 대한 작가의 설득력 있는 입장과 태도가 궁금하고 아쉽다.

위 김실비 <엇갈린 신(들)> 영상 10분42초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