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 SHIN’S DESIGN ESSAY 8

원형 복원과 파괴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

사람은 누구나 중고 제품보다 새 제품을 더 좋아하게 되어 있다. 새것은 누구의 손때도 묻지 않은 순수한 것이고 고장 나거나 망가질 가능성도 낮기 때문이다. 그러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누군가 앉아서 오랫동안 썼고, 그래서 낡고 부실해진 의자나 조명이 ‘빈티지’라는 이름으로 사랑을 받기도 한다. 어떤 경우엔 같은 모델의 최신 제품보다 값이 더 나가기도 한다. 예를 들어 찰스와 레이 임스 부부가 디자인한 합판 의자의 경우 1950년대에 생산된 오리지널 빈티지 제품은 상당히 비싸다. 물론 이 제품들이 지금 나오는 것보다 품질이 더 좋은 것도 아니지만 말이다.
오리지널, 또는 진본에 대한 가치는 세월을 뛰어넘을 뿐 아니라 시간이 지날수록 높아진다. 세상에 오직 하나만 존재하는 예술작품뿐 아니라 대량 생산되는 공업제품에서도 오리지널은 사람들을 유혹한다. 오리지널이 낡았다고 새로운 부품으로 수선하거나 개선하지 않는다. 그러면 왠지 오리지널이라는 품위에 흠집을 내는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세월의 때가 묻어나는 예스러운 나무의 질감에 반짝거리는 새 나사가 박혀 있다면 얼마나 이질적으로 보일 것인가? 오리지널은 영원히 변화하지 않는 원형이 아니다. 자연스럽게 세월의 흔적, 자연의 힘에 굴복하는 자국을 남긴다. 표면은 변질되고 외부에서 침입한 이물질이 원래의 맑은 색을 탁하게 만든다. 오래된 것 같은 그 느낌은 미학적 쾌감을 주기도 한다. 반드시 낡아야 오리지널은 아니지만, 오리지널들은 대개 세월 때문에 반드시 낡아지고 고색창연古色蒼然해지기 마련이다.
19세기에 활동한 영국의 장인이자 디자이너인 윌리엄 모리스는 당시 영국에서 일어난 고딕 건축 복원운동에 반대했다. 19세기 영국에서는 고딕부흥운동이 맹렬하게 일어났다. 길버트 스콧이라는 건축가는 오래된 건물들을 과거 고딕의 원형대로 복원한다는 명분 아래 건물에 남은 수많은 세월의 흔적을 모조리 없애고 옛날 양식을 만든다는 계획과 실행으로 큰돈을 벌고 있었다. 이런 원형 복원은 오히려 원형을 파괴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윌리엄 모리스에게 “옛날 건물이란 낡아가는 것”이고, 낡아감이야말로 건물의 원형이기 때문이다. 그는 고건축보호협회를 만들고 이렇게 호소했다. “오래된 기념비적 건물을 감시하고, 비바람을 막는 것 이상의 모든 ‘복원’에 저항하며 건물들을 보호하자.” 원형 복원은 또한 건물의 기능과 아무 관련 없는 겉모습만 바꾸는 것으로, 예술을 내용이 아닌 껍데기로만 보는 건축 장사꾼들의 무지한 짓이었다. 모리스는 당대 예술비평가인 존 러스킨의 다음과 같은 말을 인용해 고건축 보호의 명분으로 삼았다. “그들의 노동으로 지은 것을 우리가 허물 권리는 없다.… 그들이 남긴 것을 사용할 권리가 우리에게만 주어진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그들의 후손 모두의 것이다.”
최근 문화재청이 사직단社稷壇의 복원 계획을 발표했다. 현재 사직공원으로 알려진 종로구 사직동의 사직단은 원래 조선시대 국가의 안녕과 풍년을 위해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그러나 일제가 이곳을 공원으로 만들고 그 역사적 의미를 거세해버려 이를 다시 복원하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원형 그대로’ 복원하려면 종로도서관, 시립어린이도서관과 같은 주변의 주민생활시설들을 철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오래된 과거를 복원하고자 최근의 역사, 현재의 생활을 파괴하겠다는 것과 같다. 종로도서관이나 시립어린이도서관 역시 가까운 역사의 원형이고 문화적 의미를 지니는 건물들이다. 더구나 현재 주민의 사랑을 받는 꼭 필요한 시설이다. 반면 사직단을 복원한들 옛날처럼 제사를 지낼 것도 아니다. 그냥 박제화된 역사적 유적이고 관광지가 될 것이다.
만약 주변 시설을 침범하지 않고 복원한다면야 누군들 그런 문화적 사업을 말리겠는가! 역사를 기억하고 유적을 보존하여 후세에 알리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모든 유적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거나 복원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변화해서 현재에 존재하는 것 역시 우리에게 소중하기 때문이다. 변화해 지금에 이른 것 역시 우리 마음대로 허물 권리가 없으며 후손에게 넘겨줘야 하는 것이다. 자연적 흐름을 거스르는 원형 복원주의는 생활의 파괴를 동반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