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FORUM 〈일월오봉도〉와 〈수렵도〉에 깃든 동양사상

강인수 콜로라도 덴버대 강사

현재 미국에 거주하는 필자가 조선시대 <일월오봉도>와 고구려 무용총의 <수렵도>를 음양사상과 우주생성론에 기반한 정치사상으로 재해석한 원고를 《월간미술》로 보내왔다. 대학에서 Computer Lab을 운영하면서 비트(Bit)와 바이트(Byte)로 이루어진 컴퓨터의 디지털 로직과 주역의 괘획 간의 상관관계를 연구해온 필자는 “두 그림이 그려진 시대와 표현은 전혀 다르지만 사상과 철학, 그리고 예술적 기법을 공유하고 있다”며 “방대하고 심오한 사상이자 철학서이며 신학서이다. 곧 우리의 주역이다”라고 해석한다. 《역경》과 유가사상을 중심으로 해석한 두 그림의 연결고리를 살펴본다.

음양의 법칙과 대인의 정치
조선 왕조 500여 년간 제왕의 권위를 상징해온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와 고구려 무용총 〈수렵도(狩獵圖)〉는 전혀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그 기본 구도와 드러내고자 한 사상과 철학, 그리고 예술적 기법이 동일한 그림이다. 이 두 그림은 직접적인 전승 관계에 있다. 〈일월오봉도〉를 보면 ‘하늘과 산과 물과 나무’를 기본 구도로 삼았다. 고구려 무용총 〈수렵도〉 역시 상·중·하단에 배치된 작은 3개의 산 또는 구릉이 하늘과 산과 물을 상징했다고 가정해보면 오른쪽에 거대한 나무가 배치되었기 때문에 이들이 서로 유사한 구도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에 그려진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가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천지만물을 내신 하느님과 이 분을 빼닮은 최초의 인간인 아담에 관한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했듯 두 그림 역시 천지만물의 생성에 관한 동양의 전통적인 음양오행 우주생성론을 동일한 형식으로 나타낸 것이다.
〈일월오봉도〉와 〈수렵도〉는 하늘(일월)과 산과 물과 나무라는 누구나 쉽게 알고, 경험할 수 있는 물상을 이용해 음양의 법칙을 담아낸 동양의 고전 《역경(易經)》과 이에 대한 유가의 해석을 단 한 장에 담아낸 그림이다. 한자로 쓰인 복잡하고 난해한 경전을 간결하고 쉬운 하나의 이미지로 드러낸 것이다. 차갑고 뜨거운 음양 2기(氣)가 오르내리며 내는 물질인 물과 불이라는 수화(水火)의 작용이 천지를 낳고, 이들이 서로 사귀며 천지만물을 내는 과정, 즉 《역경》의 8괘와 64괘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이를 통해 관념과 추상으로 빠지기 쉬운 동양사상과 철학을 살아있는 실천적 지식으로 체득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 한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큰 그림’을 그리게 해주는 기능과 역할을 한다. 즉 오늘날의 관점으로 보면 한 국가나 기업을 경영하는 최고 의사결정권자에게 필요한 식견과 통찰력을 기를 수 있게 해줄 뿐만 아니라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신과 소통하며 현명한 판단을 내려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키는 길을 열어주는, 이판(理判)이라는 영적 세계로 인도하는 인문학적 지리정보시스템(GPS)이나 가상현실(VR) 세계인 셈이다. 〈일월오봉도〉와 〈수렵도〉는 천명을 받들어 새로운 나라를 세운 태조 이성계와 동명성왕 주몽의 업적과 그 계승자들이 선왕의 정치를 본받아 선정을 베풀어 문물이 풍성한 태평성대를 이루어왔다는 자부심과 후대 임금이 반드시 명심해야 할 교훈을 함께 전한다. 천지를 받드는 성인, 즉 정자(程子)가 “그 덕은 성인이고, 세속적 지위는 왕”이라고 한 대인의 정치에 관한 그림이다.

물은 차갑게 내려오고, 불은 뜨겁게 타오른다
공자는 《역경》의 첫 번째 괘이자 하늘을 상징하는 건괘(乾卦)에 나오는 밭[田], 즉 세상에 드러난 현룡과 하늘을 나는 비룡이 상징하는 대인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같은 소리는 서로 응하고 같은 기운은 서로 구하여, 물은 습한 곳으로 흐르고 불은 건조한 곳으로 나아가며, 구름은 용을 좇고 바람은 호랑이를 좇는다. 그리하여 성인이 나옴에 만물이 우러러본다(同聲相應 同氣相求 水流濕 火就燥 雲從龍 風從虎 聖人作而萬物覩)” (성백효 역주, 《주역전의 상》, p.170~171, 전통문화연구회 참조

먼저 〈일월오봉도〉를 보면 산봉우리가 해와 달보다 높이 솟아올라 거의 하늘 끝에 닿았다. 이 산 중턱에서 발원한 두 개의 거대한 폭포는 아래 계곡의 연못으로 쏟아져 내리고, 그 좌우 양쪽에 뿌리를 내린 두 그루의 붉은 소나무는 온 산을 뒤덮고 있다. 산이 해와 달보다 높이 솟았다면 이는 이 땅의 산이 아니라 저 하늘의 구름 산이고, 이 구름 산에서 발원한 폭포는 하늘에서 쏟아지는 (빗)물이다. 산을 넘어 온 하늘을 뒤덮은 구름에 뿌리를 둔 붉은 소나무는 번개나 벼락과 같은 불로 봐야 한다. 주자는 “푸른 하늘이 곧 만물이 의지하는 리(理)인 태극”
이라고 했다. 여기서 푸른 하늘의 해와 달은 태극에서 비롯된 음양, 산은 차갑고 뜨거운 음양 2기를 상징하는 구름 산, 5개의 산봉우리는 음양 2기의 오행, 폭포와 소나무는 음양 2기가 오행을 하여 생성해내는 물질인 물과 불을 상징한다. 〈일월오봉도〉는 조선의 선비라면 누구나 한 번씩 읽던 《성리대전》에 나오는 “수지윤하 화지염상 (水之潤下 火之炎上)(물은 차갑게 적시며 내려오고, 불은 뜨겁게 타오르는)”의 음양 작용을 드러냈기 때문에 결국 태극 문양으로 그 뜻을 간략하게 나타낼 수 있다.
그림은 ‘텅 빈 태허의 우주 공간(Void)’에서 천명에 따라 예정된 어떤 변화가 일어나 차갑고 뜨거운 김이나 수증기와 같은 기운이 오르내리며 내는 대폭발 같은 음양수화(陰陽水火)의 작용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오행으로 천지가 이루어지고, 이들이 서로 사귀어 일월성신과 동식물과 만물의 영장인 사람을 내고, 모든 이 중 으뜸가는 분인 성인이 세상에 출현해 천하만국을 태평하게 한다는 공자의 우주론과 정치사상을 줄거리로 삼았다.

조선의 건국
공자는 고요한 이 땅 위에서 춘하추동 사시가 순환하는 천지의 교류를 두고 “구름은 용을 쫓고 바람은 호랑이를 쫓는다”고 했다. 여기서 용은 좌청룡으로 양인 봄과 여름을, 호랑이는 우백호로 음인 가을과 겨울을 가리킨다. 뜨거운 양기가 자라면 연못이나 바다의 차가운 물은 증발하면서 높이 올라 푸른 구름 산을 이루었다가 차가운 음기가 자라면 먹구름이 되어 낮게 드리웠다가 천둥 번개가 칠 때 생명의 물을 이 땅에 차별 없이 뿌린다. 구름은 뜨거운 태양을 쫓고, 바람은 차가운 보름달을 쫓는다.
〈일월오봉도〉의 좌우에 배치한 해와 달은 ‘지는 해와 떠오르는 달’이다. 10간과 12지지를 이용한 동양의 전통적인 방위표기법으로 보면 달은 동남, 해는 서북에 배치되었다. 즉 정면에서 보았을 때 그림의 왼쪽이 동방, 오른쪽이 북방이다. 그림에서 음양 2기의 5행을 상징한 5개의 산은 왼쪽부터 각각 목화토금수 5기(氣)와 동남중서북이 된다. 불을 상징하는 소나무가 뿌리를 내린 북산과 동산은 한겨울 동지가 지나 생겨난 양, 물을 상징하는 폭포가 쏟아져 내리는 남산과 서산은 한여름 하지가 지나 생겨난 음이 자라는 ‘음양 2기의 소장(消長)과 수화의 생성(生成)에 관한 법칙’을 각각 드러낸다. 〈일월오봉도〉는 결실과 정의를 상징하는 지는 해와 떠오르는 달로 하늘에서 음양 변혁의 천도(天道)가 이루어져 만물이 생성되었고, 성인의 덕을 지닌 태조 이성계가 세상에 으뜸으로 출현하여 천명에 따라 혁명을 일으킨 뒤 조선이라는 나라를 새로 세웠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신유교라 불리는 성리학을 국교로 삼은 조선은 경전에 나오는 유가적 논리체계를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직관적인 이미지로 바꾸어 제왕의 권위를 드러냈다.

태조 이성계가 받은 천명
〈일월오봉도〉는 오랜 세월 동안 풍상을 겪어온 이끼 낀 소나무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데, 이는 공자가 《논어》에서 “날씨가 차가워진 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름을 알 수 있다”고 한 바로 그 나무이자, 조선 개국의 일등 공신인 삼봉 정도전이 당시 동북면도지휘사로 있던 이성계 장군을 찾아가 그가 천명을 받은 재목임을 알고 군영 앞 노송에 남겼다는 《용비어천가》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시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아득한 세월에 한 그루 소나무 / 푸른 산 몇 만 겹 속에 자랐구나 / 잘 있다가 다른 해에 만나볼 수 있을까 / 인간을 굽어보며 묵은 자취 남겼구나(蒼茫歲月一株松 生長靑山幾萬重 好在他年相見否 人間俯仰便陳)”
(출전: 한영우 《정도전 사상의 연구》 p.25, 서울대출판부)

음양수화와 주역 팔괘
음양수화의 작용을 드러낸 〈일월오봉도〉를 보면 푸른 하늘의 해와 달, 좌우로 배치된 폭포와 소나무가 ‘1-2-4-8’이라는 수를 이루고 있는데, 이는 공자가 〈계사전(繫辭傳)〉에서 “태극이 양의를 낳고, 양의가 사상을 낳고, 사상이 8괘를 낳는다”고 한 말을 이미지로 나타낸 것이다. 8괘는 하늘과 땅, 산과 연못, 우레와 바람, 물과 불을 가리키는데, 그림에서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무성하게 자란 거대한 붉은 소나무는 불(火)이자 우레(雷), 바람(風)을 상징한다. 〈설괘전(說卦傳)〉을 보면 그림의 소나무처럼 “좀처럼 보기 드문 무성함(繁鮮)”을 이룬 것은 우레를 상징하는 8괘의 진(震)에 속한다. 그림은 〈설괘전〉에 나오는 “하늘과 땅이 자리를 잡고, 산과 연못이 기를 통하고, 우레와 바람이 서로 가까이 일어나고, 물과 불(또는 번개와 벼락)이 서로 싸우지 않는다(天地定位 山澤通氣 雷風相薄 水火不相射)”고 한 8괘에 관한 경전의 내용을 그림으로 드러냈다.

주역 64괘와 조선의 제왕학
8괘를 상징하는 물상(物象)은 상하 좌우로 배치돼 기계적인 균형을 이룬다. 이는 하늘의 일월과 이를 품고 있는 좌우 동·남과 서·북의 산과 소나무와 폭포와 연못이 엄정한 대칭 관계를 보여준다. 8괘가 서로 섞여 만물을 내는 과정, 즉 64괘(8×8)를 드러내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림에서 푸른 하늘과 산(또는 땅)은 임금이 받들어야 할 천지 건곤(乾坤), 폭포와 소나무는 물과 우레로 혼란에 빠진 천하를 다시 안정시킬 수 있도록 돕는 제후 또는 신하를 임명하는 도에 관한 수뢰둔(水雷屯)을 의미한다. 폭포의 발원지인 산속의 샘물은 비록 그 시작은 미약했으나 강과 내를 이루어 바다로 나아갈 수 있게, 즉 형통하게 해주는 성인의 공덕에 관한 산수몽(山水蒙)을 뜻한다. 윗사람이 베푸는 은택과 왕업(王業)을 상징하기도 하는 폭포와 소나무는 창업과 천하가 다스려졌음을 의미하는 수화기제(水火旣濟), 소나무와 폭포는 세습 군주가 선왕의 정치를 본받아 태평성대를 이어나가는 수성(守成)에 관한 도를 담고 있는 화수미제(火水未濟)가 된다. 〈일월오봉도〉를 관조하면 동양의 고전 중 가장 난해하다는 《역경》의 심오한 세계가 한눈에 들어온다. 〈일월오봉도〉를 보면 조선의 제왕, 즉 천지를 받들어 일월과 같이 행하는 대인이 반드시 갖추거나 행해야 할 덕목이 무엇인지를 나름대로 추정해볼 수 있다. 그림은 제왕을 위한 학문을 담고 있다.

선천복희팔괘도

〈주자의 선천복희팔괘도〉 (출전: 성백효 역, 《주역전의 상》, p.89, 전통문화연구회)

<일월오봉도>에 영향을 끼친 불가와 도가의 세계관
그림은 아래로 끝없이 베푸는 따스하고 뜨거운 자비와 높이 나는 새와 같은 절대적 경지와 자유를 사랑했던 불가와 도가가 서북으로 지는 태양과 같이 마지막 광채를 발산하고, 이 땅의 정의를 주장했던 유가가 차가운 보름달처럼 동남으로 떠오르던 시대 상황을 보여준다.
유·불·선 3도 중 해와 달이 산 중턱에서 돈다는 우주론은 불교에만 해당된다. 〈일월오봉도〉에서 거의 하늘 끝까지 솟아오른 산은 수미산(須彌山), 이 사이에 걸려 있는 일월은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이 동서남북을 지키고 있는 산 중턱, 그 아래 기슭에 펼쳐진 바다에서 일렁이는 엄청난 크기의 파도는 “큰 구름과 비가 수레바퀴만한 물방울을 풍륜 위에 뿌려 수륜과 금륜을 이룬다”고 한 경전의 내용과 관련 있다. 그리고 산속의 폭포와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는 수풍지화(水風地火)가 되어 극대와 극미의 세계를 보여준다(권오민 역주, 《아비달마구사론 2》, 동국역경원 참조). 또한 5개의 봉우리와 그 아래 바다와 산과 물과 좌우 두 그루의 나무는 중국 고전 〈산해경〉에 나오는 5산 4해의 천하관과 치산치수(治山治水)와 왕조의 흥망성쇠에 관한 중국 하나라 우왕의 가르침, ‘두 그루의 복숭아나무가 큰 숲을 이루었다’는 이수목(二樹木)에 관한 일화와 장자에 나오는 오래 사는 나무에 관한 내용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자세한 내용은 《산해경》, 정재서 역주, 민음사 참조). 〈일월오봉도〉는 조선이라는 나라가 대외적으로 성리학을 국시로 삼았지만 불가와 도가도 함께 품고 가겠다는 왕실 내부의 종교적 지향점을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잃어버린 우리의 기록 문화와 역사
조선시대 제왕의 권위를 상징한 〈일월오봉도〉와 비슷한 유형을 중국이나 일본에선 찾기 어렵다. 이러한 독창성 때문에 지금까지 이 그림이 갖고 있는 상징적 의미나 역사적, 미술적 가치를 제대로 설명해낼 수 없었다고 볼 수 있다. (〈일월오봉도〉의 독창성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김홍남, 《중국 한국 미술사》, 학고재, 2009/ 이성미,《어진의궤와 미술사》, 소와당, 2012 참조). 그동안 민화나 왕실과 나라의 국태민안을 비는 부적 정도로 취급받았던 이 그림에 대한 연구가 최근 미술사 학계에서 이루어져 《시경》에 나오는 ‘천보(天保)’ 또는 ‘유교적 통치원리를 드러낸 그림으로 고대로부터 이어지는 정령주의적 전통과 유가와 도가, 그리고 음양오행 사상을 담은 것으로 보인다’는 등의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분석은 문헌에 바탕을 둔 정확한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 채 ‘마땅히 그러할 것’이라는 추상적 개연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계가 있다. 이 그림을 알면 조선시대 왕조실록과 의궤의 관계처럼 문자로는 다 전할 수 없어 그림이라는 형식을 이용하여 기록해온 우리의 잃어버린 전통 문화와 역사를 찾을 수 있다.

구름은 용을 쫓고 바람은 호랑이를 쫓는다
고구려 무용총 〈수렵도〉는 1938년 당시 일본 도쿄제국대학과 교토대학 교수이던 이케우치 히로시와 우메하라 스에지에 의해 발굴된 이래 지금까지 사슴과 호랑이를 잡는 ‘고구려의 강건한 무인정신’을 드러낸 사냥 그림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이 그림 역시 조선의 〈일월오봉도〉와 같이 공자가 주역 건괘에 나오는 대인을 상징하는 현룡과 비룡에 관해 설명하면서 ‘물은 습한 곳으로 흐르고 불은 건조한 곳으로 나아가며, 구름은 용을 쫓고 바람은 호랑이를 쫓는다’고 한 말에 바탕을 둔 그림이다. 〈수렵도〉는 사냥하는 장면을 사실적으로 묘사했지만 〈일월오봉도〉와 같이 주변 대상과 비교할 때 전혀 비례가 맞지 않는 엄청난 크기의 나무와 사슴이 뛰어넘는 작은 산, 2명의 사냥꾼과 3명의 몰이꾼, 사냥꾼이 쏘려고 하는 끝이 뭉뚝한 비살상용 화살, 소와 수레 등에 대해 하나의 일관된 논리로 설명할 수 없었다.

수렵도일부1 사본

하늘과 산과 물과 나무와 주역 8괘
〈수렵도〉에서 상·중·하단에 각각 배치된 3개의 구릉 또는 산을 〈일월오봉도〉와 같이 하늘과 산(또는 땅)과 물, 그리고 그 오른쪽에 배치된 바람에 흔들리는 거대한 붉은 나무는 불을 상징한 것으로 보자. 물은 차갑게 적시며 내려오고, 불은 뜨겁게 타오르는 음양의 작용과 천지가 교류하며 내는 8괘가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그림 오른쪽 위와 왼쪽 아래, 전통적인 방향표기법을 적용하면 서남과 동북에 배치된 2명의 사냥꾼이 타고 있는 말은 다른 3명의 몰이꾼이 탄 말보다 월등히 크다. 이는 천지를 상징하는 용마(龍馬)와 빈마(牝馬)다. 남북 상하로 배치되어야 할 천지가 좌우로 이동한 것은 천지가 서로 사귀어 만물을 내는 동적인 과정을 나타내려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오른쪽 위에 배치된 용마를 탄 사냥꾼 뒤에 위치한 구릉은 용을 쫓는 구름과 양기, 나무를 흔드는 실체와 도망치는 범은 호랑이를 쫓는 바람, 호랑이가 숨어드는 흰 산은 음기를 나타낸 것이 된다. 또한 사냥꾼에게 쫓기고 있는 듯한 암수 2마리 사슴은 인의(仁義)가 이루어진 세상인 태평성대의 조짐을 알린다는 전설의 동물 기린(麒麟), 그 아래 오른쪽 하단에 배치된 1마리 수사슴은 기(麒)로 차가운 정의를 추구하는 덕이 있는 군주의 어진 정치를 상징한 것으로 보인다. 그림은 ‘이 땅에서 정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저 하늘이 명령한 나라를 세울 수 없다’고 말한 송대 주자의 정치사상을 연상케 한다. 용마와 빈마를 탄 사냥꾼은 천지를 받들어 행하는 대인으로, 고구려를 건국한 동명성왕 주몽과 그 계승자인 무용총의 주인을 뜻한다. 주변에 배치된 3명의 몰이꾼은 주몽을 도와 고구려를 건국한 일등 공신인 오이, 마리와 협보가 된다.

지는 해와 떠오르는 달
〈수렵도〉가 배치된 무용총 내부 천장을 보면 해와 달이 동서로 배치되었다. 이를 전통적인 방향표기법으로 보면 〈일월오봉도〉와 같이 ‘해가 지고 달이 떠오르는 때’를 드러낸 것이 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해가 동방으로 떠오르는 아침에 북두칠성이나 남두육성과 같은 별을 볼 수 없다. 무용총 천장에 배치된 일월 역시 천도가 순환하여 천지간 만물이 이루어졌고, 성인의 공덕을 지닌 주몽이 세상에 나와 천명을 받들어 고구려를 건국하였으며, 그 계승자인 무덤 주인에 의해 선왕의 태평성대의 정치가 이어져 고구려의 종묘사직이 반석에 오르게 되었음을 상징한다.

주역 64괘로 기록한 무덤 주인의 공덕
〈수렵도〉 역시 3개의 산을 좌우 음양으로 나누고, 두 그루의 나무가 하나가 된 연리지를 배치하여 〈일월오봉도〉와 같이 주역 64괘가 구성될 수 있도록 구도를 잡았다. 산(또는 땅)과 물과 나무가 뿌리내린 오른쪽 하단, 즉 〈일월오봉도〉에서 지는 해가 배치된 서북을 보면 수뢰둔(水雷屯), 산수몽(山水蒙), 지수사(地水師), 수지비(水地比), 그리고 산지박(山地剝) 괘가 몰려 있다. 천지일월 건곤감리와 이 5개의 괘를 하나의 이야기로 엮으면 “고조선이라는 큰 산이 무너져 내리고 민족이 갈라져 서로 싸울 때 새롭게 떠오르는 태양과 같았던 불세출의 지도자인 주몽이 세상에 으뜸으로 출현하여 3명의 조력자와 함께 소인을 물리치고 대인을 가까이 하며 백성을 편안하게 길러 근본을 튼튼히 한 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강한 군대를 양성하여 한나라를 물리치고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대업을 이루었다”는 내용의 서사시가 된다. 〈수렵도〉는 무덤 주인이 망국의 위기에 처했던 고구려를 다시 살려낸 ‘재조(再造)’의 공덕을 이루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주몽의 고구려 건국에 버금가는 기록으로 남긴 것이다.

수렵도일부2 사본

 

소수림왕과 해동불법을 연 순도와 아도
무용총은 고구려의 왕립학술기관인 태학(太學)을 설립하여 인재를 양성하고, 율령을 반포해서 법치를 확립하였으며, 우리나라 최초로 불교를 받아들여 고구려 중흥의 토대를 마련한 소수림왕의 무덤으로 보인다. 〈수렵도〉에 나오는 소가 끄는 수레, 즉 우차(牛車)를 보면 무덤의 주인이 누구인지 추정해 볼 수 있다. 《삼국사기》 신라 본기 눌지마립간 22년(438)의 기록을 보면 “이때 백성들에게 우차(牛車)의 이용법을 가르쳤다(敎民牛車之法)”는 구절이 나온다. 이는 고구려 장수왕 26년에 해당된다. 신라에서 소를 밭갈이에 이용한 우경은 우차가 나온 지 60여 년 뒤인 지증마립간 3년(502)부터 사용되었다. 우차가 고구려에 먼저 소개됐다고 하더라도 시간적 차이는 크지 않았을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무용총의 축조 연대는 소수림왕
(371~384)과 장수왕(413~491)의 치세인 4세기 말~5세기 사이로 볼 수 있다. 소수림왕과 눌지왕의 치세 기간은 고구려와 신라에 불교가 처음 소개된 때다. 우차는 불교의 전래와 밀접하게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소를 신성시하는 불가에서 소를 보호하기 위해 수레와 농경에 이용하도록 권장했던 듯하다. 일본인 이케우치 히로시는 〈발굴조사보고서〉
에서 북방 접객도의 검은 윗옷을 입은 손님을 도사나 승려로 보고 그림이 도가나 불가의 영향을 받았다고 추정했지만 이들의 옷은 고구려의 전통복식이다. 오히려 붉은 옷을 입은 이가 승려 복장에 더 가깝다.
무용총 벽화에서 소가 끄는 수레와 승려가 등장한 것은 무덤의 주인이 불교를 공인했다는 사실을 알리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흰 소는 진리의 불성(佛性), 대승과 소승불교, 수레 안에 실린 짐은 경전, 소와 수레를 이끄는 붉은 옷 입은 이는 승려, 승려가 치켜든 막대기는 중생을 올바로 인도하는 회초리로 교화를 상징한 듯하다. 소수림왕은 유가와 불가를 모두 받아들여 정의롭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나라를 다스렸던 것으로 보인다. 소수림왕이 즉위했을 때 고구려는 건국 이래 최대 위기에 처해 있었다. 부친인 고국원왕때 연나라가 침입했다. 연나라는 남녀 5만여 명을 포로로 잡아가고, 수도인 환도성을 헐고 왕궁을 불태운 뒤 그 후환을 없애기 위해 고국원왕의 생모인 미천왕비를 볼모로 삼았다. 또한 미천왕릉을 파서 그 시신을 실어가기까지 했다. 결국 고국원왕은 혼란기를 틈타 침입한 백제 개로왕의 평양성 공격을 막다 사망했다. 절치부심한 소수림왕은 교육 기관을 설립하고, 율령을 반포하며 내치를 다지는 한편 불구대천의 원수인 연나라를 멸망시킨 전진의 왕 부견이 보낸 사신과 승려 순도와 아도를 맞아 초문사와 이불란사를 세워 해동 불법의 단초를 열어 고구려 중흥의 발판을 마련했다.

일본의 식민사관과 중국의 동북공정
일본인에 의해 발굴된 고구려 무용총 〈수렵도〉는 한·중·일 인문학계의 편협한 시각과 오해와 무지를 잘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이 그림을 만주 벌판을 누비던 강건한 고구려 무인의 자주정신을 드러낸 것으로, 일본은 기이한 사냥 그림으로, 중국은 중원의 지방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유적으로 해석한다. 그 어느 나라도 이 그림이 《역경》과 유가 문화의 뿌리가 되는 공자의 우주론이나 대인의 정치사상과 관련 있다고 해석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공자의 학문을 받아들인 고구려는 멸망한 뒤 계승자 없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중국에 속한 하나의 지방 정권에 불과한가? 무용총 벽화의 내용과 기법을 분석해보면 조선의 〈일월오봉도〉와 직접 연결되어 있음이 분명하다.
두 그림은 유·불·선 3도 같은 이질적인 사상이나 종교 등을 개방적으로 수용해온 우리의 문화적 전통을 담고 있다. 회화라는 형식을 이용한 독특한 기록 문화와 복잡하고 난해한 내용을 간결하고 쉽게 표현해내는 직관적 사유체계 등을 잘 보여주고 있다. 고구려와 조선의 제왕을 상징한 그림이 《역경》과 이에 대한 공자와 유가의 해석을 담고 있다고 할지라도 중국 황제 뒤에 놓였던 병풍과 달리 한자를 사용하지 않은 것은 우리의 ‘도통(道統)과 왕통(王統)(Governance)’을 바로 세우고, 지켜내기 위한 노력에서 나왔다고 봐야 한다. 우리나라와 중국, 그리고 일본의 인문학계는 공자의 우주론과 덕(德)이 있는 군주와 현명한 신하, 즉 대인이 서로 만나 태평성대를 이루어내어 천하 만민을 이롭게 한다는 이견대인(利見大人)의 정치사상과 우리 미술의 독창성은 알지 못한 채 모두 엉뚱한 말만 하고 있다. 무용총은 고대 동양 인문학의 정수이자 근현대 인문학의 왜소하고 초라한 무덤이다.
시와 역사와 사상과 철학, 그리고 신학을 담아낸 그림은 조선의 인문학적 전통을 상징한다. 그림은 주역이고, 주역은 그림이다. 시서화(詩書畵)는 곧 시서역(詩書易)을 말한다. 정자는 역을 공부하는 목적은 ‘말[辭]’을 아는 데 있다고 했다. 제왕의 권위를 상징한 〈일월오봉도〉와 〈수렵도〉는 우리말로 쓰인 장대한 서사시이자 역사서이고, 방대하고 심오한 사상이자 철학서이며 신학서이다. 곧 우리의 주역이다. 오랜 세월 가다듬어온 우리의 정언(正言)과 정음(正音)이 여기에 담겨 있다. 그동안 ‘왕실과 나라의 국태민안을 비는 ‘본[本]’을 보고 그린 그림으로 삼라만상을 드러내었다’는 식의 천부당만부당한 피상적 평가 속에서 보물이나 국보의 반열에도 오르지 못하는 굴욕을 겪어야만 했던 〈일월오봉도〉는 우리의 문학과 역사뿐만 아니라 유·불·선 3도를 단 한 장의 예술로 녹여낸 인류 인문학 역사상 전무후무한 지적 시도와 열정을 담아낸 그림이다.●

최예선의 달콤한 작업실 7

봄밤, 연애소설 읽는 사람들

봄이라서인가, 서점 신간코너에 연애소설들이 수두룩하다. 이 분홍빛 장르는 진부하도록 똑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하고 있는데도 변함없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사랑이 인생의 전부란 걸 모르지는 않는데, 그래도 뭔가 그 앞에 두어야 할 것이 많다고 믿고 있는 게 일반적인 성인들이 아닌가 싶다. 한창 사랑을 찾아 헤맬 때도 연애소설엔 손을 댄 적이 없건만, 요즘은 이런 책들을 슬쩍슬쩍 들춘다. 어떤 밀어들이 연애라는 중차대한 행위를 이끌어가나 힐끗거리면서.
그 이유는 연애소설 읽는 모임을 1년째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애’를 주제로 한 소설을 선정해서 2주에 한 권씩 읽고 격주 월요일마다 작업실에서 모인다. 밤은 이야기와 함께 더욱 짙어진다. 연애를 이야기하는 밤이라니, 다시 못 올 시절이다. 참가인원은 모두 넷이다. 소설 쓰는 남자와 소설을 쓰고 싶은 두 여자, 그리고 연애가 하고 싶은 한 여자. 이들이 사랑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은, 사랑이 간절하거나 사랑에 대해 쓰거나 썼던, 사랑이 더 이상 없다고 믿고 있거나, 사랑보다 더 다급한 게 있다고 믿는 정도.
작년 3월말부터 시작했으니 딱 1년을 맞았고, 그 사이에 스무 권의 소설을 읽었다. <롤리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휴먼 스테인>, <개선문>, <순수박물관>, <나를 보내지마>, <슬픈 짐승>, <단순한 열정> … 이런 소설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읽는 소설은 거의 대부분 연애소설이다. 인간의 감정과 행동 그리고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랑이라면 그걸 빼놓고 어떤 소설이 성립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소설에서 인간의 태도와 심리, 선택의 문제 등을 환기할 수 있는 드넓은 세계관을 보여준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하지만, 그 정도로 깊이 있게 쓴 연애소설은 손에 꼽힌다. 책을 읽어갈수록 다음에 읽을 책을 선택하는 일이 점점 어려워진다.
일 년 동안만 해보자던 모임을 당분간 더 지속하기로 했다. 시즌2를 위한 열 권의 책을 선정하면서 모르긴 해도 심중에서 꿈틀거림이 있지 않았을까? 쓰는 자로서 사랑의 본질을 직시하려 했던 1년 동안, 나는 수많은 문장에 밑줄을 긋고 되새겼다. “정말 내가 그때 죽었다면 내가 놓쳤던 것이 무엇이었을까. 인생에서 놓쳐서 아쉬운 것은 사랑밖에 없다.” 모니카 마론의 <슬픈 짐승>에 등장하는 이 문장은 평생 가져갈 것 같다.
작업실에서는 연애소설 읽는 모임 외에도 ‘소설클럽’이라는 독서모임이 진행된다. 이 모임도 15회를 넘겼으니 벌써 1년 반을 함께해왔다. 한 달에 한 권의 소설을 읽고 토론하는 형식인 것은 같지만 소설클럽은 참가자들이 번갈아가며 발제를 맡는다. 각자 개인적인 관점에서 책을 읽고 토론거리를 준비하는 것이다. 함께 소설을 읽고 책 이야기하는 모임을 소설 애호가들의 유별난 취미라고 치부할 법도 한데, 소설클럽 이야기를 꺼냈을 때 많은 사람이 흥미로워했다. 자신에게 잘 맞는 독서 모임을 찾는다면 꾸준히 참가하고 싶다고 말이다. 소설 읽는 인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출판계는 만날 우는 소린데, 이토록 열렬히 독서에 몰두하고 싶은 사람 또한 많다는 건 아이러니하면서도 흥미로운 일이다.
요즘은 ‘함께’라는 말을 곰곰이 생각한다. 함께 읽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 한 잔의 차를 함께 마시는 것, 함께 여행을 가는 것. 분명, 혼자 하는 행위와 다르다. 처음 독서모임을 준비할 때는 반신반의의 마음이 있었다. 시간 낭비는 아닐까, 좋아하지 않는 책을 읽어야 한다면 그것 또한 얼마나 고역이랴, 취향도 관점도 다른 사람들과 토론하는 일이 내게 어떤 도움이 될까, 독서모임을 이끄는 리더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하는데, 경험이 전무한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등등 염려는 끝도 없었다.
1년이 지난 후 모임의 행로를 더듬어보니 여기까지 오게 된 건 ‘함께’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나의 주제를 갖고서 두 시간이건 세 시간이건 집중해서 이야기를 한다는 건 일상 어디에서도 경험하기 어려운 일이다. 혼자 하는 독서라면 혼자 납득하고 감동받은 데서 끝났을 테지만, 여럿이 모였을 때 정보와 경험과 해석과 감성은 사람 수만큼 배로 커졌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일이 이렇게 재밌구나 느낀 시간이기도 했다. 한편, 문학과 삶을 논할 때는 일상에서 긁힌 감정들이 회복되는 것 같았다.
책은, 언제나 많은 덤을 주었다. 함께 읽는 건 ‘세 번의 독서’다. 책을 세 번 읽는 것이다. 책을 펼치고 혼자 읽어가는 첫 번째 독서, 함께 이야기하면서 확장되는 두 번째 독서 외에도, 한 번의 기회가 더 찾아온다. 바로 독서모임을 하고 난 다음 날이다. 머릿속에서 맴돌던 생각들 ? 아직 정리되지 않은 생각이나 감정, 혹은 내가 집중했던 소설 속 디테일 등 – 이 가볍게 정리되면서 나만의 작은 결론에 이른다. 머릿속이 맑아지면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샘물처럼 솟는다. 손이 근질거리는 그 느낌이 좋다. 소설의 깊은 곳에서 내 삶이 만개하는 것 같다.
달콤한 작업실 7어쨌건 이야기한다, 우린. 소설에 대해. 이 소설로 인해 우리의 감정이 얼마나 복잡해지고 예민해졌던가. 소설이란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것임을 함께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복잡한 층과 결의 삶의 영역에 말없이 귀 기울이는 것이었다. 귀를 기울이면 속닥속닥 들려온다. 목청 높여 밀려들어온다. 누군가에겐 캐시미어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비수가 되는 이야기들. 배꼽 잡고 웃게 만들다가 글썽글썽 눈물짓게 만드는 이야기들. 내 곁에 고여 있는 이야기의 강물에 조심스럽게 발을 담근다. ●

ART BOOK

사유할 수 없는 유령의 공간

조르조 아감벤 지음/윤병언 옮김《행간》자음과 모음 2015

금세기 테크놀로지로 명명된 판타지의 세계는 무한으로 열려 있다. 결코 의심치 않는 기술적 형이상학의 (비)현실적 공간 속에서 우리는 인간 주체로서의 존재와 위안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 거대한 기술의 환영 속에서 우리는 나르시스와 피그말리온, 스핑크스와 오이디푸스를 만나며 자본주의의 페티시즘에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모든 (비)현실은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에게는 결코 사유될 수 없는 빈 공간이다. 그에게 모든 (비)세계는 유령이자 오드라덱의 모습으로 현시된다. 아감벤은 《행간》에서 유령이라는 주제를 통해 왜 우리가 비현실적인 것에 주목해야 하는지 묻는다. 《호모 사케르》, 《아우슈비츠의 남겨진 것》등의 저자이자 정치철학자로 유명한 아감벤의 《행간》은 예술에 대한 비평과 고대와 중세, 현대를 넘나드는 철학적 분석과 방대한 문헌학적 조사를 통한 예시와 수사로 가득 차있어 해석하기 만만치 않은 책이다. 행간(行間)으로 번역된 스탄차(Stanza)는 시(詩)의 거주지이자 피난처가 되는 공간으로, 행과 행 사이의 경계를 의미하며 이 경계공간에서의 비평이 곧 이 책의 핵심이다. 그는 서양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판타지이자 비현실, 비장소의 이미지인 유령에 대해 4부에 걸쳐 설명하며 소유할 수 없는 것의 향유(시, 예술)와 향유할 수 없는 것의 소유(철학)에 대한 미학적 통찰을 잘 보여준다.
1부 ‘에로스의 유령’에서는 중세시대 정오의 악령으로 대변된 나태와 게으름이 어떻게 사랑의 열정인 에로스로 연결되는지에 대해 살펴본다. 뒤러의 <멜랑콜리아>는 단지 중세의 금기된 상징인 우울증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상실과 연관된다. 우울증은 뿌리칠 수 없는 성적 욕망과 닮아있는데 그는 이 우울, 멜랑콜리아가 가질 수 없는 대상을 마치 잃어버린 대상처럼 보이게 하는 상상력에 가깝다고 보았다. 영혼의 촉수로서 우울은 유령과 줄곧 함께해왔으며 꿈과 사랑, 그리고 고귀한 창조 행위에 깊게 관여해 왔다는 것이다. 2부 ‘오드라덱의 세계’는 자본주의의 상품과 페티시즘의 관계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는 여성(어머니)이 가지고 있어야 하는 남근의 부재가 바로 특정한 물건에 대한 페티시즘(주물)이 되며 이것이 자본주의의 추진축이 된다고 보았다. 마르크스가 주장한 노동의 생산품이 사용가치를 벗어나 단지 껍데기인 비물질적 환영의 기호가 되어 결코 소유할 수 없는 주물이 된 것처럼 상품은 이미 이미지로서만 존재한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이러한 상품의 주물화(페티시즘)가 만국박람회를 통해 예술작품과의 경계를 허물어 예술이 20세기 모더니티를 위한 대가로 자기부정을 해야만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상품이 단지 교환가치에 머물지 않고 댄디와 같이 사용가치를 넘어 우아함과 과분함을 목적으로 하는 사물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 즉 비현실의 전유를 가능케 하는 초월적 대상인 예술적 장난감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3부 ‘말과 유령’에서는 1200년대 궁정연애시에 나타난 피그말리온과 나르시스를 통해 페티시가 어떻게 이미지가 되었지에 대해 상세하게 기술한다. 피그말리온과 나르시스가 사랑한 이미지는 욕망의 기호 아래 놓이는 것으로 인간의 영혼 속에 기억된 흔적이다. 이미지는 심장이 아닌 뇌실, 즉 뇌 속에 위치한 환상적인 영(fantastikon pneuma)으로부터 나온다. 인간의 육체인 심장과 정신인 뇌를 직접적으로 매개하는 즉각적 감각기관인 프네우마(정령으로 생명체인 정자와 정기를 의미함)는 자연의 영과, 생명의 영, 감각의 영을 연결하여 물질적이면서도 비물질적인 유령의 이미지를 만든다. 이 환상적인 영인 프네우마를 통해 에로스가 나르시스와 피그말리온 사이를 오가며 우울증과 에덴의 순수한 사랑을 만들어낸다. 그렇기에 프네우마의 ‘영’은 단지 육체의 대척점으로서의 영혼이 아닌 두 세계, 형이상학적인 파열의 결합을 시도한다. 4부 ‘퇴폐한 이미지’에서는 기호학을 통해 스핑크스를 분석한다. 수수께끼의 상징은 기의를 갖지 않는데 오이디푸스가 그 수수께끼를 풀었기에 그 자체로 언어적 파열과 혼돈, 카오스를 가져다준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감벤은 기호학이 기표와 기의에 대한 낡은 경계에 구속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예술이 오이디푸스(지성)가 아닌 페티시즘과 상징의 은유인 스핑크스의 판타지로 인도한다고 보았다.
사유할 수 없는 빈 공간을 사유하고자 한 아감벤의 대(大)여정은 주체와 세계 모두 결핍된 판타지의 세계에서 의미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가능성을 찾고자 한다. 테크놀로지의 판타지에 달라붙은 기계-인간의 삶을 살아가는 이 시대, 아감벤이 이미 1977년에 예견한 대로 유령의 이미지로 가득 찬 세계에서 우리가 과연 비현실에 주목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물음이 마치 유령처럼 여기저기로 떠다닌다.
백곤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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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6)겸재 정선, 붓으로 조선을 그리다
이석우 지음
겸재 정선의 삶과 작품세계를 대표작 16점을 테마로 조명했다. 책에서 저자는 정선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미술가로 지칭하며 서양화법을 국내로 들여와 진경산수화풍이라는 독특한 세계를 개척했다고 평가한다.
북촌 336쪽·2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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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5)예술가의 뒷모습
세라 손튼 지음/배수희 옮김
‘미술가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제프 쿤스, 아이웨이웨이, 데미안 허스트 등 현재 전 세계 미술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33인의 작가를 통해 살펴본다. 정치, 친족, 숙련 작업이라는 3개의 표제로 접근해 미술가들을 비교·대조한다.
세미콜론 584쪽·29,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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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4)나를 설레게 한 유럽 미술관 산책
최상운 지음
유럽의 대표 미술관에서 살펴봐야 할 작품을 소개하는 예술기행서다. 이탈리아 우피치 미술관에서 시작해
영국 테이트 모던 미술관까지 이어지는 여정을 통해 유명 미술 작품의 매력을 간접 체험할 수 있다.
소울메이트 428쪽·1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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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10)이주헌의 ART CAFE
이주헌 지음
미술을 통해 바라본 세상을 자유롭게 써내려간 에세이 책이다. 《ART CAFE》라는 책 제목에 보다 충실하기 위해 기존 책에 있던 긴 호흡의 글들을 빼고 단상 형식의 글 19편을 한 장으로 엮어 개정판을 발간했다.
미디어샘 300쪽·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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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14)코끼리의 방
전영백 지음
‘건축-공간-작품’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는 설치작업이 관람자에게 시각적 차원을 넘어 몸으로 체현되는 공감각적 경험을 하게 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공간을 다루는 작가 10인의 작업세계를 5가지 테마로 나누어 집중 탐색하였다.
두성북스 292쪽·2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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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9)뜨는 동네의 딜레마 젠트리피케이션
DW 깁슨 지음/김하현 옮김
뉴욕 맨해튼 일부 지역과 브루클린에 거주하는 시민 28명을 직접 만나 젠트리피케이션의 다양한 모습을 담았다. 뉴욕이 겪어온 젠트리피케이션 과정을 통해 우리나라의 현실을 되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했다.
눌와 408쪽·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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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3)디자인 뮤지엄, 여기
이현경 지음
한 나라의 디자인 역사, 성격, 이념을 배울 수 있고 일상생활의 문화와도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 디자인뮤지엄을 소개한다. 뮤지엄 건축의 배경 및 교육프로그램에 관한 정보, 뮤지엄 관계자들의 인터뷰가 수록되어 있다.
안그라픽스 312쪽·2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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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11)철학이 있는 도시
우석영 지음
동서고금을 아우르는 미술작품 50여점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왜 그렇게 살고 있는가’라는 화두를 다룬다. 그림 읽기를 매개로 휴전 후 한국사, 당대의 한국, 도시, 집단과 개인의 문제를 논의한 사회비평서다.
궁리 328쪽·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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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1)예술 판독기
반이정 지음
예술은 현실의 거울이라는 관점으로 예술과 비예술을 구분하는 기준을 깨고자 했다. 판독 대상은 언론 보도, 영화, 광고, 상품 등으로, 그 안에 나타난 예술적 속성을 찾고 그에 따른 공통점과 차이점을 살펴본다.
미메시스 360쪽·2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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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7)반 고흐의 태양, 해바라기
마틴 베일리 지음/박찬원 옮김
1980년대부터 반 고흐를 연구해온 저자가 소개한 해바라기 정물 연작의 새로운 이야기를 담았다. 1부에서는 작가 생전에 해바라기 연작이 탄생한 과정을, 2부에서는 사후 그 작품들이 현재의 장소에 옮겨지게 된 여정을 살펴본다.
아트북스 322쪽·3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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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12)쉽게 읽는 서양미술사
이케가미 히데히로 지음/이연식 옮김
대학교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한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한 책으로, 미술사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서양 미술사의 전반적인 흐름을 알려준다. 문명의 시작부터 현대까지의 미술사를 순차적으로 설명했다.
재승출판 272쪽·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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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8)비밀의 미술관
최연욱 지음
블로그에 ‘서양화가 최연욱이 들려주는 재미있는 미술 스토리’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글들을 엮은 책이다. 서양미술사에 기록되지 않은 화가와 그의 작품 주변의 이야기들을 모아 이해하기 쉽게 설명했다.
생각정거장 288쪽·15,000원

ART JOURNAL

취임 3개월 맞은 마리 관장 비전 밝혀
국립현대미술관 목표와 4대 중점과제 발표

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이 취임 3개월을 맞아 3월 18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국립현대미술관 목표와 4대 중점과제’를 발표했다. 마리 관장은 이날 세계적 수준의 미술관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을 목표로 한국 미술의 시스템을 세계화하여 동시대 문화의 중심기관으로서 역할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가 발표한 4대 중점과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중장기 관점의 강좌, 토론, 심포지엄 등 학예 분야의 지적 의욕을 고취하여 연구부문을 체계화하고 독자적인 연구 프로그램을 개발한다. 둘째, 모든 미술관 출판물을 조율, 감독하여 출판물 품질에 대한 기준을 통일하며 다양한 콘텐츠를 생산한다. 셋째, 기관의 커뮤니케이션 기능을 강화, 체계화하고 4관 체재의 고유한 정체성을 확립한다. 넷째, 대국민 서비스 확대를 위해 고객관계관리(CRM)와 정보관리를 통합하고 소장품과 아카이브의 디지털 품질과 접근성을 개선한다.
이날 마리 관장이 거듭 언급하며 강조한 말은 “학예사 전문성 강화”다. 작가, 큐레이터, 역사가 등 전문인들 간의 지적네트워크를 형성해 미술관과 국내외 지적 영역을 연계하는 가교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생각이다. 또한 연중 전시회 수를 줄여 전시의 기획력 강화 및 질적 향상에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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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주제발표

예술의 역할에 질문을 던지다
〈2016 광주비엔날레〉주제 발표

광주비엔날레 조직위원회가 지난 3월 21일 기자회견을 열고 〈2016 광주비엔날레〉(9.2~11.6) 전시주제 및 행사 기존구성을 발표했다. 전시주제인 ‘제8기후대(예술은 무엇을 하는가)’는 12세기 페르시아 철학자인 소흐라바르디가 착안하고 프랑스 철학자 앙리 코르뱅이 다듬은 개념에서 착안했다. 예술이 미래의 변화를 위해 할 수 있는 일과 역할에 대한 탐구를 의미한다. 이번 주제는 예술 자체의 의미를 되짚어보려는 감독의 이러한 해석은 곧 전시 구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마리아 린드 <2016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을 비롯해 최빛나, 마르가리다 멘데스, 아자 마모우디언, 미셸 웡 등의 큐레이터 팀과 미테-우그로 지역협력 큐레이터가 참여했다. 마리아 린드는 3월부터 11월까지 9개월간 매달 4개의 지역 밀착 프로그램을 미테-우그로와 공동 실시하며, 지역 대안학교와 연계해 진행하는 ‘인프라 스쿨’, 다양한 국가의 100여 개 비영리 예술기관 및 단체와의 네트워크 구축 등 전시가 열리기까지의 전 과정을 전시에 흡수한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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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시티 간담회

화성인의 언어로 본 미지(未知)의 시간
〈미디어시티 서울 2016〉전시 주제 및 참여 작가 발표

지난 3월 8일 〈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 서울 2016〉 기자 간담회에서 김홍희 서울시립미술관 관장은 백지숙 예술감독 등이 자리한 가운데 전시 주제 및 참여 작가를 발표했다. 9월 1일부터 11월 20일까지 열리는 이번 행사는 전례 없이 서울시립미술관 전관이 활용된다. 전시 제목 〈네리리 키르르 하라라〉는 시 〈이십억 광년의 고독〉에서 따온 화성인의 말로, 미래의 언어 혹은 미지의 것으로 남아있는 과거나 현재의 언어를 표현한 것이다. 이번 비엔날레는 전쟁, 재난, 빈곤 등 사회문제를 어떻게 미래에 대한 기대감으로 전환시킬 것인가 하는 질문에서 출발해 한국이라는 지정학적 맥락 안에서 펼치는 동시대 작가들의 상상력에 주목한다. 나아가 미디어가 접목된 예술언어를 통해 다양한 종류의 미래를 제안한다. 또한 비정기 출판물 《그런가요》를 발간하고 작가와 시민이 참여하는 여름캠프 프로그램을 진행해 한시적 행사라는 비엔날레의 한계를 보완하고자 한다. 백지숙 예술감독은 “젊은 작가들의 신작을 다수 선보일 예정이며 여성 작가와 아프리카 및 중남미 작가들의 비율을 늘릴 예정이다”고 밝혔다. 현재 참여 작가는 총 30명이 확정됐으며 최종 작가 50여 명의 명단은 6월 중에 결정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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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자

한국적 정체성의 새로운 실험
김수자〈현대차 시리즈 2016〉선정

국립현대미술관(관장 바르토메우 마리)이 주최하고 현대자동차가 후원하는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차 시리즈 2016〉 작가로 김수자가 선정됐다. 전통과 현대, 특수성과 보편성을 넘나들며 자아와 타자의 관계를 통해 치유와 재생의 문제를 독창적인 방식으로 풀어내는 김수자의 이번 신작은 국립현대 미술관 서울관에서 오는 7월부터 2017년 3월까지 선보인다.
최종심사에는 선정위원장 김성원을 비롯해 고동연, 조선령, 바르토메우 마리, 강승완, 이지윤 등 총 6인이 참여했고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사들의 작가추천 경쟁 프레젠테이션을 거쳐 선정했다.
현대차 시리즈는 2014년부터 10년간 현대자동차가 우리나라 대표 중진 작가에게 대규모 신작을 실현할 기회를 제공하는 장기 연례 프로젝트다. 작가의 창작 의욕을 고취시키고 작업 활동에 새로운 전환과 발전의 계기를 마련함으로써 한국 현대미술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기획됐다. 2014년 이불, 2015년 안규철이 선정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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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미술제 (1)

한국 미술시장에 활기를 불어넣다
〈제34회 화랑미술제〉열려

사단법인 한국화랑협회(회장 박우홍)와 코엑스가 공동 주최한 제34회 화랑미술제가 3월 2일 VIP오프닝을 시작으로 3월 6일까지 이어졌다. 올해는 작년보다 2개 갤러리가 늘어난 89개 화랑이 참가하면서 500 여명의 작가가 2500점 이상의 작품을 선보였다. 화랑협회 측은 폐막 후 발표한 자료를 통해 판매 작품수와 금액은 작년과 비슷했다고 밝혔다(600여 점, 37.5억(추정)). 미술시장이 불황인 것을 감안하면 수치상 판매가 저조한 편은 아니라는 평이다. 올해는 포털 사이트인 네이버와 공동 기획으로 특별전 〈나의 공간, 나의 취향〉을 꾸며 미술에 대한 보다 친근한 이미지를 만들고자 30만원 이상 200만원 이하 가격대 작품을 선보이며 기존의 미술애호가를 넘어 새로운 미술 컬렉터를 유입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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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고궁박물관 수장고

잠들어 있던 조선의 유물 빛을 보다
4만 5000여 점의 왕실 유물 일반에게 최초로 선보여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관장 최종덕)은 조선 왕실의 보고(寶庫)인 수장고와 보존 과학실을 관람할 수 있는 ‘수장고·보존 과학실 공개 행사’를 연 4회 운영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외부인의 출입이 통제됐던 수장고와 보존과학실을 일반에 개방하여 유물 관리에 대한 국민의 이해를 돕겠다는 취지다. 프로그램은 유물의 유형별 보관 및 보존처리 방법 소개, 수장고 관람과 유물 모형 보관방법 시연, 보존처리실 탐방 등으로 구성된다. 3, 9월은 일반 성인을 대상으로 하며 8, 12월은 중학생 이상 국민이면 누구나 참여 가능하다. 인원은 10명씩 제한한다. 3월 30일 부터 진행되는 첫 행사 신청은 국립고궁박물관 누리집(www. gogung.go.kr)에서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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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계 수상소식
〈제28회 이중섭미술상〉〈제7회 일우사진상〉〈종근당 예술지상 2016〉

사진작가 배병우가 〈제28회 이중섭미술상〉을 수상자로 선정됐다. 사진작가가 〈이중섭미술상〉을 수상하는 것은 1988년 상이 제정된 이래 처음이다. 수상자에게는 1000만 원의 상금과 상패가 주어지며 시상식은 오는 11월 8일 서울 광화문 조선일보미술관에서 수상 기념전과 함께 열릴 예정이다.
또 하나의 사진상 수상 소식도 있다. 한진그룹 산하 일우재단이 시행하는 〈제7회 일우사진상〉의 ‘올해의 주목할 만한 작가’로 출판 부문 한성필, 전시 부문 윤진영, ‘올해의 특별한 작가’로 보도사진 부문에 김성룡이 선정됐다.
‘출판 부문’ 수상자에게는 독일 핫체칸츠 출판사에서 단독 작품집 출판과 일우스페이스 개인전 개최 기회를 제공하며, ‘전시 부문’ 수상자에게는 작품 제작 활동비와 일우스페이스에서의 개인전 개최를 지원한다. 보도사진 부분 수상자에게는 3,000만 원 규모에서 전시 또는 출판 활동을 작가와 협의해 지원한다. 한편 올해로 제5회를 맞이한 〈종근당 예술지상 2016〉의 최종 3인 작가로 김수연, 박광수, 위영일이 선정됐다. 이들은 매년 1,000만 원씩 3년간 창작지원금을 제공받고, 지원 마지막 해에 선정 작가전을 개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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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주 (2)

미술에 질문을 던지다
조기주 개인전과 책 출판 동시에

조기주 단국대 교수가 르네상스부터 입체주의까지의 서양미술사를 살펴본 《이유 있는 미술시간》(노스보스 336쪽· 25,000원)을 출간했다. 작가로서 자신의 경험과 미술작품에 대한 그의 애정을 담아 미술사의 흐름을 짚어냈다. 전체적으로 연대기적 구성이지만 때로는 미술사조 전반을 설명하고, 때로는 특정 작가 분석에 집중해 미술사의 흐름을 입체적으로 살펴보았다. 한편 책 출간에 맞춰 동명의 개인전을 3월 14일부터 20일까지 양재동에 위치한 한전 아트센터에서 열었다. 시멘트를 사용해 산업 생산물을 재해석해 눈길을 끌었으며 2분 30초 길이의 애니메이션 (〈Mother- Daughter-2016’〉)도 함께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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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갑철 (2)

이 시대의 타인은 누구인가
이갑철 사진집《타인의 땅》출간

다큐멘터리 사진을 통해 시대의 현실을 카메라에 담아온 작가 이갑철이 1988년 서울 인사동 경인 미술관에서 열었던 개인전 〈타인의 땅〉과 동명의 제목으로 사진집(《타인의 땅》 열화당 192쪽· 50,000원)을 출간했다. 〈타인의 땅〉은 1980년대 군사정권 시절 한국사회의 모순된 일상을 담은 시리즈 사진으로 구성됐다. 작가는 서문에서 〈타인의 땅〉이란 제목에 대해 “격변하는 삶의 배경에 스미지 못한 개인들의 이물감에 대한 술어”라고 밝혔다. 1980년대의 현실을 담은 사진은 약 3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다시 세상에 나와 현재의 모습과 비교되며 현재의 타인은 누구인지 생각해 보게 한다. 한편 책 출간과 함께 갤러리 나우에서 책에 수록된 작품을 만나 볼 수 있는 전시가 3월 16일부터 29일까지 개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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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 건축전

한국 도시건축의 숨은 동력
〈제15회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한국관 주제 발표

〈제15회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5.28~11.27) 한국관의 주제와 계획이 공개됐다. 이번 전시의 예술감독을 맡은 김성홍은 신은기 안기현 김승범 정이삭 정다은 등의 공동큐레이터가 참여한 가운데 지난 3월 11일 서울 아르코미술관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고 한국관 주제를 〈용적률 게임: 창의성을 촉발하는 제약〉으로 정했다고 발표했다. ‘용적률 게임’이란 한정된 대지에 최대의 건물 면적을 요구하는 건축주, 이러한 요구를 충족하면서도 질을 추구하는 건축가(사), 이를 통제하고 조율하는 법과 제도 사이에서 벌어지는 범사회적 현상을 말한다. 큐레이터 팀은 그동안 서울지역의 건물 약 60만 동의 용적률 게임을 조사했다. 이를 통해 도시 속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건축에서의 도전과 결과를 보여줄 예정이다.
한편 〈제15회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은
칠레 출신의 알레한드로 아라베나가 총감독을 맡았고 전체 전시 주제는 ‘전선에서 알리다(Reporting From the Front)’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