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IEFING

《월간미술》활용법

또 다시 오월이다. 오월은 왠지 ‘오월’이라고 써야만 할 것 같다. 그래야 진짜 오월 같으니까.
아라비아 숫자로 ‘5월’이라고 쓰면 달력에 빨갛게 표기된 온갖 기념일이 먼저 떠오른다.
5.1 노동절부터 5.5 어린이날, 5.8 어버이날, 5.14 석가탄신일, 5.15 스승의날, 5.16 성년의날, 5.18 광주민주항쟁기념일에 이르기까지. 유난히 기념일이 많다. 매달 시기성을 고려해서 월간지를 만들어 내는 입장에선 행복한 달이 아닐 수 없다. 이현령비현령, 아무 기념일에 대충 꿰맞춰도 누가 뭐라고 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로또 추첨하듯 무작위로 테마를 선정하지는 않는다. 나름 고민하는 시늉이라도 한다. 그리하여 이번 특집, 어린이날을 염두에 뒀음을 부인하지 않겠다.
한편으론 지난 호 특집이 너무 무거웠던 까닭도 크게 한몫 차지했다. 그래서 어깨에 힘을 좀 뺐다. 화보 이미지도 한결 가볍고 발랄하다. 아무튼 특집 진행하는 걸 옆에서 지켜 본 바, 우리나라 참 많이 좋아졌다는 걸 새삼 실감했다. 어린이미술관/박물관을 두고 하는 말이다. 시설이나 프로그램이 이렇게 훌륭하다니. 격세지감이다. 솔직히 그동안 어린이문화공간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깨달았다. 고령화 사회를 맞아 실버산업이 유망하다지만 베이비 혹은 유소년 (미술)교육 관련 사업이야말로 영원불패란 걸.
어쨌든, 이번 특집은 어린 자녀가 있는 독자에게 좋은 정보가 될 것이다. 반면 그렇지 않은 독자에겐 그다지 흥미롭지 못할게다. 그래서 이렇게 제안해 본다. 이번 기회에 책꽂이에 꽂혀있던 《월간미술》 과월호를 다시 꺼내보시라고. 예컨대 어린이박물관 기사에 뭔가 부족함을 느꼈다면, ‘중고교 미술교과서’를 다뤘던 지난 2015년 11월호를 다시 꺼내 보시란 말이다. 그러면 ‘미술교육’이란 큰 틀에서 이런 기획기사의 의미가 다시 보일 게다. 또 다른 예. 이번호 작가 꼭지에 등장한 작가 이왈종 강요배 부지현은 제주도라는 공통점이 있다. 고향이 제주도이거나 오래전부터 그곳에 살면서 작업하는 작가다. 제주도 소식은 이것뿐 아니다. 감귤농장 ‘중선농원’에 새로 생긴 전시공간 갤러리2 관련 내용도 짤막하게 실렸다. 이 기사를 핑계 삼아 ‘제주도 미술’이 특집으로 소개됐던 《월간미술》을 다시 꺼내 보시라. 2013년 6월호다. 지금이라도 당장 제주도로 날아가고 싶어질 게다.
내친김에 하나 더, 해남 미황사 자하루미술관 개관기념전 소식도 한 페이지 실었다. 멀리까지 발품 팔아 취재해 온 기사지만, 역시 이것만으로 흡족하지 못하다. (좀 오래됐지만) 2006년 5월호를 찾아보시라. ‘불교미술로 보는 한국의 미’가 특집이었다. <한국 불교미술의 이해>, <불교미술 아는 만큼 보인다> 같은 텍스트와 전국 주요사찰 성보박물관 정보등 불교미술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 실려 있다. 마지막으로 ‘전시와 테마’ 꼭지 최진욱과 오치균 개인전 기사도 마찬가지. 《월간미술》 더 깊이 읽기가 가능하다. 두 작가의 전시를 비교분석하며 비평에 대한 딜레마를 토로한 반이정의 글은 2012년 3월호 특집 ‘안녕하세요, 비평가씨!’를 다시 꺼내 읽게 한다.
《월간미술》은 정기간행물이다. 유통기한 혹은 유효기간은 오직 한 달. 그래서 대형서점 책꽂이에 한 달 넘게 꽂혀 있을 수 없다. 그 달에 팔리지 못한 책은 천덕꾸러기 재고상품으로 전락한다. 제때 팔리지 않아 몇 달이고 아니 몇 년째 먼지 쌓인 채 서점 책꽂이에 초라하게 꽂혀있는 시집이나 소설책 신세에 비하면 오히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월간미술》은 월간인 듯 월간 아닌 월간지다. 그러니 유통기간이나 유효기간 따윈 무시해도 좋다. 《월간미술》은 두고두고 다시 꺼내 보는 책이니까.
편집장 이준희 dam2@unitel.co.kr

COLUMN 예술가의 권리: 표준계약서와 아티스트 피

“예술은 이상주의자가 되어 세상을 바꾸는 꿈을 꿀 수 있는 곳이자 상업주의와는 거리가 먼 장소였다. 예술하는 사람치고 예술로 생계를 꾸리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미술평론가이자 프랭크 스텔라(Frank Stella)의 배우자인 바버라 로즈(Barbara Rose)의 회고다. 그렇듯 예술은 돈벌이에는 관심 없는 낭만적 이상주의자들의 피난처 같은 곳이기도 하다. 예술가들이 소명 의식을 가지고 예술 활동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은 ‘강요’가 아닌 ‘자발적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자발적 선택이나 예술의 특성이 예술가 나아가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유예해도 된다는 의미는 될 수 없다. 예술가라면 경제적 보상이나 상업성에 무관심해야 한다며 순수성과 도덕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정당한 대가와 권리를 인정하는 시스템의 부재로 이어지고, 결과적으로 예술가의 창작 활동을 향한 의지를 꺾을 수 있다.
미술품의 시장 가치나 경매가 기록 경신이 미디어의 헤드라인으로 오르내리고 예술의 가치와 예술품의 거래 가치가 혼재하는 시기, 예술은 산업이나 상업의 영역이어서는 안 된다거나 예술가는 창작 활동에 따른 감정적 보상과 사회적 존경심으로 먹고산다는 말은 공허하다. ‘2012 문화예술인 실태조사’(문화체육관광부, 2013)에 따르면 미술 창작 활동을 통한 월평균 수입이 전혀 없다고 응답한 미술인은 약 33%, 경제적 보상에 대한 만족도는 1.29(5점 만점)로 매우 낮았다. 불공정한 보상과 경제적 불안정성, 저작자로서의 권리 침해 등이 예술창작 활동을 방해한다는 증거는 많다. 예술 창작자로서 그에 상응하는 권위마저 보장받지 못한다면 더욱 문제다.
예술생태계 개선을 위해선 예술가 복지에 앞서 적법하고 ‘정당한’ 권리 보장과 ‘정당한’ 보상체계 구축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최근 문화체육관광부가 나서서 계약관행에 대한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시각예술분야 표준계약서를 개발·보급하고, 미술인보수지급제도(artist fee) 연구를 진행한 사실은 긍정적인 일이다. 아티스트 피는 전시라는 형태로 공공의 장 안에서 작품 공표와 전시 참여에 대해 지급하는 보수의 성격으로 이해될 수 있다. 다른 영역과 마찬가지로 예술창작도 최종 결과물뿐만 아니라 참여와 활동에 대한 보상이 따라야 한다. 예술가의 창조적이고 지적인 노력과 노하우를 사회문화적 기여 또는 공공재적 성격으로만 치부해 희생을 당연시해서는 안 된다.
예술가의 정당한 보상 지급 문제는 공정한 계약 체결과도 직결된다. 계약문화의 전통이 부재한 한국 사회에서 특히 예술계의 경우, 구두 형태의 간단한 합의 또는 동의서 수준의 일방적 계약서 사용이 관행이 됐다. 내용적으로도 합리적이고 정당한 수준을 보장받지 못하거나 불공정 계약을 강요당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된 데는 낮은 권리 의식과 소극적으로 참여하는 예술가들 책임이 있다. 불공정 계약문화는 궁극적으로 미술계 전체의 발전을 저해하고 예술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저해한다. 예술가 역시 자유계약 원칙에 따라 자유의사에 의한 거래와 경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시각예술분야 표준계약서 개발은 정부가 나서서 예술계에 건전하고 공정한 계약 및 거래 관행을 만들어 가고자 하는 시도이다. 표준계약서는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을 근거로 한다. 특정분야 또는 직군에서 빈번히 사용되는 계약 내용에 대한 표준 양식이자 불공정한 계약을 예방하는 준거로서의 기준을 제시한다. 시각예술분야 표준계약서는 저작재산권, 저작인격권, 정보요구권 등을 포함한 저작자로서 당연한 권리 주장이 어려운 예술가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계약 불이행이나 운송 및 보관 시 미술품의 훼손이나 멸실 등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조항들을 담았다.
물론 표준계약서는 거래의 모델이 되는 서식이자 표준화된 내용을 모아놓은 문서에 불과하므로 그대로 적용해야 하는 법적구속력을 가진 것은 아니다. 다만, 부당하게 계약기준을 하향하거나 삭제하는 것은 불공정 금지행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또한 표준계약서를 토대로 하되 계약당사자의 여건, 계약의 목적 및 성격, 세부조건 등에 따라 계약당사자 간 협의를 통해 계약서를 수정·변형하여 활용해야 한다. 계약서의 조건과 내용에 대한 완벽한 이해 없이 경솔하게 서명을 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표준계약서든 미술인보수제도든 예술가와 예술계종사자의 적극적인 참여가 동반돼야 한다는 점이다.
캐슬린 김 법무법인 중정 변호사, 홍익대 겸임교수

HOT PEOPLE | 박영택

박영택_2길29 (5)

〈취향심향(趣向心向) : 미술평론가의 수집미학〉
이길이구갤러리 3.24~4.28

수집품은 그것을 소유한 사람의 인품을 고스란히 드러내기도 한다. 한 사람의 취향을 비롯해 삶의 태도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미술평론가인 박영택 경기대 교수는 다양한 사물을 수집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현대미술 작품뿐 아니라 고미술품, 아기자기한 취향을 반영한 소품과 문구류, 자신을 꼭 닮은 심슨 캐릭터 등 수집의 범주도 다양하다. 그는 수집한 사물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 《수집미학》 을 발간하기도 했다. 서울 신사동 이길이구갤러리에서 박 교수의 소장품 30여 점이 공개됐다. 수집품 중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지만 그의 심미안을 살펴보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사실 박 교수는 본격적으로 수집을 하겠다고 마음먹고 시작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가 모으는 것은 투자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미술사적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다. 주머니 사정상 구입 가격도 그리 비싸진 않다. 무엇보다 보는 순간 그를 매혹하는 것들이다. 그는 수집품을 창고에 쌓아 보관하지 않고 연구실 책상과 책장 위에 올려놓고 매일 눈길을 준다. 연구실 책상 앞 가장 잘 보이는 공간에는 삼국시대 토기들이 항상 자리 잡고 있다. 수집한 토기만 100여 점에 달하는데 그는 아득한 시간을 머금고 있는 질박한 형상이 아름답기 그지없다며 설레는 표정으로 말했다. 박 교수는 비평 행위나 수집 행위를 설명할 때 ‘편애’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비평이나 수집은 제 감각에 전적으로 의존하며 저를 사로잡는 무엇을 찾는 과정이죠. 전시를 보고 글을 쓰는 것, 골동품 가게를 둘러보고 물건을 사는 것이 분리된 행동은 아닙니다.” 감각의 촉수를 벼리며 자신의 감각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일관된 행위에 가깝다.
일단 수집의 단계에 들어서면 물건 하나를 사는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단다. 그 역시 자신의 수집품을 바탕으로 하나의 체계를 세우는 일종의 분류작업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 과정이 언젠가는 《수집 미학》의 후속편으로 소개될 것이다.
이슬비 기자

HOT PEOPLE | 이광례

《미술 철학사 1, 2, 3》미메시스 2016

미술을 바라보는 인식은 철학과 깊게 연관되어 있다. 역으로 말하자면 철학이라는 시대의 인식에 대한 탐구가 미술을 보는 시각을 만드는 것이다. 근래 출간된 《미술 철학사 1, 2, 3》(미메시스)은 바로 서구 미술사를 바라보는 철학적 인식체계를 정리한 책이다. 총3권으로 구성된 《미술 철학사》는 강원대 철학과 이광래 명예교수가 10년을 준비해 펴냈다. 2656쪽에 달하는 방대한 노작(勞作)이다.
3권으로 구성된 이 책은 각각 권력과 욕망, 재현과 추상, 해체와 종말의 부제를 달고 있다. “이성의 체조에만 몰두해온 철학자에게 지적 피로골절을 치유하는 것이 미술이었다”는 이 교수는 “19세기 후반 학예의 칸막이를 걷어낸 이래 미술은 철학적 가로지르기의 중요한 사유공간”이라며 “독자에게는 ‘미술의 철학지도’를, 미술에 관심을 가진이나 종사자에게는 ‘철학적 미술지도’를 내보이고 싶었다”고 책을 펴낸 이유를 설명했다. 또한 박사과정에 임한 현역작가들과 한 약속도 이유가 됐다. 서문에서 이 교수는 “미술사를 욕망의 계보학으로 정리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 의미는 그간 미술사가 외면했던 욕망의 울타리 밖도 살피자는 것이다. 유의미성의 범위를 넓혀보자는 것으로 읽힌다. 그러기에 이 책은 작가들이 철학을 하기 시작한 시기로 르네상스 시대를 지정하고 그 이후의 흐름을 살펴보고 있다. 그렇다면 이 책의 뼈대를 ‘시대를 떠나 미술은 그 자체로서 의미’라는 유미주의적 관점을 거부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바, 이에 대해 이 교수는 “시대를 떠난 예술은 존재할 수 없지만, 시각 자체의 감각만으로 받아들여지는 예술도 없다”고 답했다. 인간 사유의 정서가 초시공간일 수 없다는 의미다.
책을 통해 독자와 소통하는데 있어 본지가 가진 고민과 저자와의 상통하는 고민의 지점이 있을 것이다. 이에 “현대미술의 지도는 갈래를 잡을 수 없는 만큼 ‘거대한 무질서’ 그 차체”라며 “전문가 그룹의 역할이 중요하다. 대중은 통계적 의미일 뿐이다. 《월간미술》도 그 통계적 유혹에 빠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조언했다.
이 교수는 내년 《미술과 문학의 파타피지컬리즘》이라는 책을 펴낼 계획이다.
황석권 수석기자

IMG_7313_view

4월 2일 미메시트아트뮤지엄에서 열린 이광래 교수의 저자 강연 장면

 

HOT PEOPLE | 이경순

〈Honesty-in your life〉누브티스 3.28~4.30

성북동에 위치한 누브티스(Nouveautes)는 갤러리와 카페, 고가구점, 레스토랑 등이 함께 들어선 복합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누브티스는 ‘새롭다’는 뜻의 프랑스어 ‘Nouveau’와 ‘구상하다’는 뜻의 그리스어 ‘Textele’를 합성하여 만든 이름으로 “새로운 것에 대한 비전과 창조”, “새로운 것에 대한 끊임없는 구상”이란 의미를 담았다.
디자인을 전공한 이경순 누브티스 대표는 태극과 팔괘를 응용해 디자인한 이른바 ‘히딩크 넥타이’로 유명세를 탔다. 또한 전직 대통령과 유명 정치인, 경영인 등이 이 대표가 디자인한 넥타이를 착용하고 있다고. 이 대표는 백제금동대향로, 해시계, 가야금, 신사임당의 <초충도> 등 우리 고유의 문화유산을 디자인에 활용한다.
누브티스를 실제로 방문해 보니 넥타이 박물관을 방불케 한다. 그간 디자인하고 수집한 넥타이와 스카프, 각종 액세서리 등이 고가구와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디자이너로서, 경영자로서 이중 역할을 담당하던 이 대표는 최근 작가로 변신했다.
자신이 세운 누브티스에서 첫 개인전을 연 이 대표는 전시 타이틀을 <Honesty-in your life>로 명명했다. 이 대표는 “넥타이의 기본 심지를 주제로 삼았다”며 “나비, 들꽃, 장미, 눈, 코, 잎, 와인글라스, 선물꾸러미, 옷걸이를 콜라주 형태로 풀어냈다”고 작업에 대해 설명했다. 캔버스에 위의 요소를 그리고 그 위에 넥타이 형태로 천을 잘라 붙인 작품이 공간 여기저기에 설치됐다. 이 대표는 “솔직함, 정직, 당당함을 주제로 작가로서 하고픈 이야기를 화폭에 옮기게 되었다”고 이번 전시의 주제를 설명했다. 그러고 보니 다양성을 담은 공간과 이 대표의 다방면에 걸친 욕심이 닮아있다는 느낌이다. 이 대표는 향후 제주와 파리에서도 전시를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황석권 수석기자

DF2B5478

이경순 대표가 디자인한 넥타이와 소품을 모아놓은 진열대 광경

 

SIGHT & ISSUE 김희수 기념 수림아트센터 개관

〈무용가 최승희 사진展: LEAP & EXTENSION, 도약 그리고 펼침〉 수림아트센터 5.12~8.12

‘도약’과 ‘확장’의 계기를 마련하다

하정웅 이사장

하정웅 이사장

수림문화재단 설립자 故 김희수 이사장의 유지를 잇기 위한 ‘김희수 기념 수림아트센터(이하 ‘수림아트센터’)’가 5월 12일 개관, 운영에 들어간다. 부산으로 이전한 영화진흥위원회의 홍릉 구관을 리모델링한 수림아트센터는 전시장과 공연장, 전통음악가들의 연습장, 레지던시 공간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수림문화재단은 2009년, 학교법인 중앙대학교를 20여 년간 운영해 온 동교(東喬) 김희수(金熙秀) 선생이 설립했다. 알려졌다시피 김 초대 이사장은 1924년 경남 창원 태생으로 일본에서 활동한 사업가였다. 수림문화재단은 설립이념으로 ‘문화예술 가치의 확산 및 보급’, ‘인문학 발전과 부흥 촉진’, ‘사회계층 간의 문화격차 해소’, ‘다문화 갈등의 해소와 소통’ 등을 내세우며 문화예술과 관련한 지원사업을 이어왔다. 주요 사업으로 ‘수림사진문화상’, ‘수림문화상(전통예술 작가 지원)’, ‘수림문학상(장편소설 공모)’ 등이 있다. 국공립미술관 등에 평생 모은 1만여 점의 작품을 기증해 국내 미술계에 신선한 파장을 일으킨 재일사업가 하정웅 씨가 2012년부터 2대 이사장을 맡아 운영하고 있다.
하 이사장과의 인터뷰는 그의 바쁜 일정으로 인해 공항에서 연결 항공을 기다리는 사이에 이뤄졌다.
하 이사장은 김 이사장과 40여 년 넘게 교유했고, 특히 김 이사장이 설립한 도쿄의 슈린(秀林)외국어학원 이사직을 맡았는데 그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진 셈이다. 하 이사장이 내세운 재단의 주요 활동은 한국과 일본의 문화·인재의 교류를 통해 이해관계를 깊게 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수림아트센터 건립이 큰 계기가 될 것”이라며 “김 이사장이 한국에서 최초로 국악대를 개설했는데 그 뜻을 받들어 우리 전통예술을 지원하는 다양한 활동도 이어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수림문화재단은 북촌아트페스티벌을 지원하고 있다.
개관전은 ‘도약과 확장’을 대주제로 〈무용가 최승희 사진전〉으로 준비하고 있다. “최승희 그 자체가 개척자라는 데 초점을 맞췄다”며 개관전을 설명한 하 이사장은 “그것이 수림아트센터 운영의 기본바탕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인터뷰 내내 하 이사장은 재단 운영의 바탕을 ‘화(和, 일본 발음 ‘와’)’ 문화라고 강조했다. 일본 고유의 문화를 지칭하는 ‘화’는 질서와 조화를 중시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일본에서 나고 자란 하 이사장에게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 문화일 것이다. 취임 후 재단의 조직과 운영 기틀을 마련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는 하 이사장은 “예술문화단체의 성격 상 상이한 문화를 공유해 갈등을 극복하는 ‘화’ 문화를 만들어 가겠다. 이를 통해 평화와 행복을 이룩하는 것이 재단의 궁극적 목표”라고 힘주어 이야기했다.
마지막으로 하 이사장은 “내가 작품을 수집한 것도 25세에 처음 산 한 점부터였다”며 “재단도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디는 심정으로 사명을 다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황석권 수석기자

IMG_0536

하정웅 이사장이 자신의 고향을 모티프로한 작품

 

SIGHT & ISSUE 권진규미술관 개관 기념전

〈권진규와 여인〉권진규미술관 2015. 12.5~5.31

괴짜 컬렉터가 사랑한 조각가

5월 4일은 조각가 권진규(1922~1973)의 기일(忌日)이다. “인생은 공(空), 파멸”이라는 짧은 글귀를 남기고 자신의 작업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날인 것이다. 함흥에서 태어난 권진규는 춘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무사시노 미술학교에서 본격적으로 조각을 배웠다. 이런 인연 때문일까? 강원도 춘천시에 권진규미술관이 건립됐다. 지난해 12월 정식 개관한 권진규미술관은 개관기념전으로 〈권진규와 여인〉(2015.12.5~5.31)을 개최한 데 이어 한국근대미술 11인선 유작전 〈歸巢, 그리고…〉(4.4~6.30)를 연달아 선보인다.
권진규미술관을 설립한 주인공은 김현식 월곡문화재단 이사장이다. 춘천 토박이 사업가(옥광산 대일광업 대표)인 김현식 대표는 권진규 작품뿐만 아니라 옹기, 장난감, 로봇, 만화책, 슈퍼카 등 오랫동안 다방면에 걸쳐 특색 있는 컬렉션을 해왔고, 《새드 무비 69》라는 장편소설을 쓴 문학인이기도 하다. 특히 권진규 작품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던 김현식 대표가 미술관까지 개관하게 된 데는 권진규의 여동생 권경숙 여사와의 만남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권경숙 여사는 오빠 권진규의 조각과 부조 100여 점과 드로잉 500여 점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다. 이를 토대로 한 독립된 미술관 건립을 몇 년 후로 미루고, 일단 김 대표의 주요 사업터전인 옥광산타운에 건설 중이던 건물을 활용해 미술관을 개관했다. 건물 이름은 미술관이 위치한 월곡리(月谷里)의 순우리말 지명인 ‘달아실’이라고 지었다.
개관기념전으로 기획된 전시 〈권진규와 여인〉은 크게 세 주제로 구성되었다. ‘자소상’과 ‘도모’(일본 유학시절 결혼한 일본인 부인 가사이 도모), 그리고 ‘여인의 조각’이 그것이다. 권진규는 유난히 많은 자소상을 제작했다.
이 자소상은 영원의 시선과 구도자의 내면세계를 구현하고 있다. 그가 사랑한 여인 도모의 모습을 형상화한 시리즈는 몇 점 되지 않지만, 신라 석공의 혼과 조형의 본질을 담은 불상을 연상시키며 그녀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여인의 조각’은 귀국 후 서울에서 제작된 여인상을 모았다. 사랑하는 아내 도모를 그리워하며 제작된 여인들의 모습은 작가의 내면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무사시노대학 박형국 교수가 언급한 것처럼, “권진규는 내면의 정신성까지 조형화”하려 했다. 그의 조각은 인물의 외형 묘사에 그치지 않고 그 인물의 인격과 정신까지 표현하고 있다는 것. 은은하면서도 강렬한 힘으로 가슴속 깊이 진한 감동을 주며 전율을 느끼게 한다. 권진규미술관에서 만난 작품을 통해 그가 여전히 우리 곁에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박규형 ART PARK 대표

권진규 (9)

 

HOT ART SPACE

시간의 빗장이 어긋나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 4.8~17

아랍-이스라엘 전쟁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1974년 바그다드에서 열린 <제2회 아랍예술 비엔날레>와 천안문 사태와 베를린 장벽 붕괴가 일어나기 직전인 1989년 베이징에서 열린 <차이나/아방가르드전>. 이 두 전시를 재연하면서 2022년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에서 열릴 ‘적도 콘퍼런스’를 추적해 나간다. 시공간의 개념을 넘어 불안의 시기에 작가들이 취하는 행위와 자세를 살펴본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샤르자예술재단이 공동제작한 전시로 하산 칸의 〈아득한 추억에 관한 긴 간주곡이 있는 짧은 이야기〉, 5·18 민주광장에서 오디오 튜닝 차량을 통해 음향적 자유를 표현한 〈오토모빌〉 등 다양한 퍼포먼스가 전시기간 내내 이어졌다. 전시는 아랍에미레이트 샤르자에서 6월 12일까지 이어진다.
사진제공 김익현

[section_title][/section_title]

김병기_가나 (7)

김병기 개인전
가나아트센터 3.25~5.1

김병기 화백은 평생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 추상과 구상 등 이분법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자신만의 형상성을 탐구해왔다.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는 미공개작과 신작 50여 점을 선보였다. 전시 제목 ‘百世淸風: 바람이 일어나다’는 일제강점기, 전쟁, 이민 등을 겪은 그가 살면서 힘들 때마다 읊었던 폴 발레리의 시 <해변의 묘지> 마지막 연의 한 구절 “바람이 일어나다. 살아야겠다”에서 따온 것이다. 100세에도 붓을 놓지 않은 김 화백은 고령에도 건강한 모습으로 전시 개막식에 참석해 자신의 나이보다 작품에 집중해달라고 당부했다.

[section_title][/section_title]

충무 (2)

artist’s achive-나의 10년의 기록
충무아트홀갤러리 3.11~4.3/4.8~5.8/5.13~6.6

현재 미술계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40대 작가 3명이 출품한 전시. 총 3부로 구성된 이 전시에 이현열(사진) 나형민 윤종석이 순차적으로 참여한다.
먹 선의 반복으로 작업하는 이현열, 여백을 살리며 한지에 토분을 이용한 기법의 나형민, 그리고 주사기를 이용해 점묘화 작업을 하는 윤종석이 그들이다.

[section_title][/section_title]

서울시립

도시괴담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4.5~5.29

한불수교 130주년을 기념해 레 드 도쿄와 교류 프로젝트로 열리는 전시. 두 기관의 레지던시 협업으로 양국의 작가 7명이 참여했다. 한국에서는 김아영 작가가 참여했으며 그가 기획한 퍼포먼스(사진)가 개막일에 펼쳐졌다.

[section_title][/section_title]

임동식 (2)

임동식 개인전
대전시립미술관 4.12~5.29

‘동방소년 탐문기’라는 부제를 단 작가의 개인전은 회고전 형식으로 꾸며졌다. 회화, 드로잉, 아카이브 등 총 165점이 출품됐다. 금강현대미술제, 야투(野投) 등 자연미술에 선구자 역할을 했던 그는 이번 전시에서 풍경 자체를 숙고하게 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section_title][/section_title]

사월의동행 (2)

사월의 동행
경기도미술관 4.16~6.26

전시가 개막한 날은 세월호 참사 2주기를 맞아 수많은 추모객이 미술관 앞 분향소로 모여든 날이었다. 전시 제목이 암시하듯 세월호 희생자를 추념하는 이 전시에는 22명(팀)의 작가가 참여했다. 희생자를 추모하고 유족의 슬픔과 상처를 위로하는 메시지를 담은 전시

[section_title][/section_title]

_KS_1468

구자현 개인전
조은숙갤러리 4.21~5.14

한국과 일본 등을 오가며 판화의 다양한 변화를 꾀해온 작가 구자현이 카날로그 레조네 형식으로 판화 전작을 다룬 도록 《구자현 판화 전작도록 1978-2016》의 출판을 기념해 개인전을 연다. 이번에 발간된 도록은 국내 판화 작가 중 전작을 한 권으로 묶은 드문 경우다. 특히 각 작품에 판화를 찍은 이의 이름까지 표기해 눈길을 끈다. 이번 출판물은 일본 아베출판사에서 출판 및 제작되었다.

[section_title][/section_title]

_05A8669_2

김홍주 개인전
제주 중선농원 갤러리2 4.16~8.31

제주도에 핫(Hot)한 갤러리가 또 하나 생겼다. 제주시 영평길 269번지 중선농원 내에 문을 연 갤러리2(대표 정재호)가 바로 그 곳. 갤러리2 개관기념 전시로 중견작가 김홍주의 개인전이 8월까지 열린다. 특히 이 전시에는 나무를 깎고 채색한 김홍주의 입체작업이 처음 선보인다.
중선농원은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문정인 교수의 부친이 생전에 가꾼 감귤농원으로 문 교수와 며느리 김재옥 부부가 선친의 뜻을 이어받아 농원의 창고를 개조해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큰 창고는 갤러리2 전시공간으로 리노베이션해서 비영리로 운영되며, 작은 창고는 카페로 쓰인다. 부속건물은 예술인문서적 도서관 청신재(晴新齋)로 꾸며졌고 문 교수 부친이 거주하던 공간은 게스트 하우스(太麗莊)으로 변모됐다.
제주=이준희 편집장

[section_title][/section_title]

미황사 (2)

땅끝마을 아름다운 절 미황사
미황사 자하루미술관 3.26~5.31

1993년 처음 발간된 유홍준 교수의 《나의문화답사기》 1권은 ‘남도답사일번지-강진, 해남’으로 시작된다. 이 책에도 소개된 미황사는 한반도 최남단 땅끝마을 해남군 달마산 봉우리를 병풍처럼 두르고 자리 잡은 절이다. 1200년 역사를 지닌 미황사에 있는 누각 자하루가 미술관으로 새롭게 변신했다. 그동안 자하루는 방학기간동안 어린이청소년에게 ‘한문학당’으로 사용돼 왔다. 미황사 자하루미술관 개관을 기념해 열린 전시에는 미황사를 테마로 신작을 출품한 작가 32명이 참여했다. 작가 명단은 다음과 같다. 김선두 김억 김영택 김은숙 김주호 김천일 김현철 민정기 박구환 박미화 박방영 서용선 손민아 송필용 신재돈 신태수 안윤모 안혜경 오원배 윤석남 윤후명 윤희수 윤혜덕 이수경 이수예 이인 이인성 이종구 조병연 하성흡 홍웅선 금강스님. 특히 이 전시는 해남지역에서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을 지원해온 행촌문화재단(이사장 김동국)이 함께 주관했다.
해남=이준희 편집장

SPECIAL ARTIST 이왈종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학교수직을 버리고 아무 연고도 없는 제주도로 홀연히 내려간 지 어언 27년. 특히 서귀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의미를 지닌 곳이 되었다.
<제주생활의 중도(中道)와 연기(緣起)>라는 일관 된 제목의 이왈종 작품은 ‘도대체 인간의 행복과 불행한 삶은 어디서 오는가?’라는 화두에서 출발됐다. 5월 17일부터 6월 12일까지 현대화랑에서 열리는 개인전을 계기로 작가 이왈종의 예술세계를 되돌아본다.

세속에서 찾는 중도(中道), 평형(平衡)의 기운

전은자 이중섭미술관 큐레이터
‘일상’이란 평범한 사람들이 그리 특별하지 않게 사는 ‘곳곳의 생활, 생활의 곳곳’을 말한다. 그래서 사람들에겐 일상을 살아가는 것 이상 중요한 것이 없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살아가는 법을 가장 잘 터득한 종(種)이었고, 그들의 삶의 모습이 오늘날 일상이라고 하는 우리의 생활상인 것이다. 그렇지만 흔히 일상은 인간이면 누구나 다 누리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일상을 그리 신통하다고도, 그리 범상하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웃의 삶에 대해 별다른 관심도 갖지 않는다. 일상은 모든 삶의 근원이고 결과이며, 도덕의 기원이 된다. 삶이 시작되고 마감되는 시공(時空)이고, 온갖 내러티브가 등장하는 문화 생산 장소인데도 말이다.
이 일상의 소중함을 알리기 위해 일생을 바쳐온 화가가 있다. 일상을 흔하디흔한 무관심 영역에서 한 차원 높여 일상을 주목하게 만든 그가 바로 ‘서귀포 왈종’이다. 그는 이런 자호(自號)로 제주의 일상에 향기를 더했다. 2016년은 이왈종이 서귀포에 정착한 지 27년이 되는 해이다. 27년간 그의 그림에는 ‘서귀포 왈종’이란 서명이 일관되게 들어갔다. 일상을 생활의 중도로 풀어서 어느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예술의 주제로 택했던 사람, 일상을 마치 보물처럼 여기는 이왈종은 서귀포의 휘파람새가 되어 제주 전역을 자신의 정원인 양 훨훨 날아다닌다. 그는 제주 자연의 요소요소를 끄집어내어 생활에 접목하여 실재(實在)보다 더욱 풍요로운 제주를 재구성한다. 그의 그림 안에서 제주는 실제(實際)보다 더 아름답게 완성된다. 그가 완성해낸 이 새로운 제주 안에 들어오면 사람들은 늘 행복해 한다. 인생이란 즐거운 것, 그의 그림을 대하면 사람들은 마치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한다.

서귀포와 하나가 된 삶
1990년, 이왈종은 삶과 예술 사이의 방황을 끝내고 제주에 정착한다. 몸은 제주에 내려왔지만 마음 정리라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심란한 마음 정리를 위해 붓과 종이를 없애버리고 2~3년 동안 릴리프 작업에 몰두했다. 붙이고 또 붙이는 작업은 몸을 지치게 했지만 정신적으로 큰 기쁨을 주었다. 인간은 만드는 것에서 존재를 확인하고 희열을 느낀다고 했다. 만드는 행위가 창조의 근원임에 분명했다.
작업을 끝내고 산책길에서 마주친 나무와 야생초들은 신기할 정도로 서로가 다치지 않게 질서 있게 서로의 영역을 지키며 자라고 있었다. 그는 야생초의 삶에서 상생과 질서로 이루어진 생명의 힘을 보았다. 우주의 조화는 작은 생명에도 상생과 질서의 철리(哲理)가 있음을 새삼 깨달았다. 야생초를 통하여 비로소 생명의 습성과 자연의 이치대로 살아가는 만물의 도를 배울 수 있었다. 세상살이의 조화를 위해 서로가 공생하는 질서를 취하는 것이 중도라는 것을 생각하니 만물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중도(中道)는 평형(平衡)의 기운이었다. 어느 쪽에 치우친 차별이 아닌 부족하게 보이는 만족이었다. 이런 눈으로 만물을 보니 새나 짐승, 풀이나 꽃들도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교감의 관계였다. 예술 또한 고정된 장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상황 속에서 형태와 색채의 균형과 조화를 찾는 것이라면 오히려 장르의 벽을 허물어야만 자유롭게 된다. 자유가 없는 권위는 억압적이기 때문에 자신과 예술을 융합시키지 못한다. 서귀포에서 마음의 평정을 찾은 지 10년이 됐을 때, 제주에서 시도한 릴리프 작업으로 개인전을 열어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켰다. 제주에서는 회화라는 개념을 고수하지 않고 오히려 그 경계를 넘어 자유로운 형식을 취하면서 생활 속으로 한층 더 다가섰다.
이왈종이 제주에 정착한 27년의 시간을 되돌려 보면, 그는 처음으로 정착했던 남원에서 서귀포로 화실을 옮겨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화실 근처에 철공소가 들어서자 서귀포 시내의 삼일빌딩으로 화실을 옮겼다. 165~198m2 의 새로운 화실은 300호 5점을 동시에 놓을 수 있을 정도로 넓은 곳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후회 없이 많은 작품을 제작했다.
1997년경, 마지막으로 풍광 좋은 정방폭포 가까운 곳에 작업실을 마련했다. 몇 년이 흘렀을까 그동안 살던 집을 헐어 큰 작업실을 마련하고 싶다는 생각에 도자기를 빚어 자연과 빛과 바람이 잘 전달되도록 건물 모형을 만들고, 건축설계사와 의논해 전시실과 어린이 미술교육실까지 마련해 2013년 지금의 ‘왈종미술관’을 건립했다. 커피숍을 겸한 아트숍도 마련했다. 새들의 놀이터를 위해 예전 집 뜰에 있던 나무들을 그대로 옮겨 심는 작업도 잊지 않았다. 미술관을 개관하게 된 동기는 예술의 사회적 환원이라는 생각을 염두에 둔 때문이다. 이로써 이왈종은 1990년 이후 줄곧 살아온 제주 서귀포에 값진 선물을 한 셈이다.

1115 LWJ_1111

<제주 생활의 중도(中道)와 연기(緣起)> 장지에 아크릴 187×250cm 2013

생활 미학의 높은 경지
이왈종의 1980년대 <생활 속에서>는 1990년대 이후 <제주 생활의 중도(中道)>의 모티프에 해당한다. <생활 속에서>는 기법으로 볼 때 수묵과 채색의 혼합이면서 기하학적 형태의적용이 두드러지고, 내용적으로는 도시의 파편적인 일상과 도시의 정경들이 대세를 이룬다. 1990년대 제주에 정착하면서 그의 그림은 자연 제주의 싱그러움과 제주 일상의 즐거움을 반영하고 있다.
1990년대 이왈종 그림의 두드러진 특징은 1994년 조선일보의 <노래하는 역사> 시리즈에 연재한 삽화에서 찾을 수 있다. 비록 삽화라는 형식의 작은 그림이었지만 양각과 평면의 혼성, 역사 해석의 다양한 기법, 신명과 상징의 세계 등 상당한 실험성이 돋보인다. 또 탐라와 한국미의 절충, 단색과 컬러의 배분, 선과 면의 융합, 전통과 현대의 동시성 등 시간과 공간의 내레이션을 맘껏 음미하게 한다.
이왈종의 철학적 사유는 그림의 제목이자 주제가 되는 ‘제주생활의 중도(中道)’와 삶의 이치인 ‘연기(緣起)’설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인간의 행복과 불행의 원천인 마음상태에 주목하며 하루하루 끊임없이 이어지는 ‘마음 비우기’는 곧 그의 ‘그림’으로 전환된다. 가장 참다운 예술이란 작가 자신을 진솔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그림은 마음이 가는 대로, 생각대로, 느끼는 대로, 마음 따라서 편안하게 그리면 되는 것”이 이왈종의 화론이다. 골프그림의 등장도 이와 맥락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시대마다 삶의 내용은 다양하고 예술취미와 취향이 다르므로 생활 속의 모든 내용은 예술의 소재가 된다. 우리가 일상을 세속이라고 하는 것은 세속을 통해서만 높은 단계의 예술 세계를 그려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이왈종이 추구하는 행복론 역시 그의 그림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의 그림 안에서는 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되고, 모든 사물의 작용이 화평한 세계로 이어진다. 그의 그림은 날로 험악해져가는 오늘날의 사회에서 오아시스와 같은 존재다. 세속은 공자의 말대로, 강의 하류와 같다. 강의 하류를 인간의 세상에 비유하면 모든 희로애락이 모여들고 섞이고, 요동치는 곳이다. 이왈종은 하류 속에서 건강한 삶을 건져 올렸다.
이왈종의 화력(畵歷)은 변화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기존의 동양화와는 확연히 다른 기법과 화려한 색상과 그만의 재료를 사용하고, 장르도 부조, 목각, 조각 등 다양한 입체 조형을 통해서 다중적인 시도를 하고 있다. 죽은 친구를 위해 개발한 향로도 이와 맥락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는데 향로에는 특히 그의 인간적인 면모가 잘 드러난다. 인간은 기억에 의해 서로 연결된다. 향로는 자신의 삶의 중심에 머물렀던 소중한 한 지인을 위한영혼의 제기였다.
주변의 삶을 담아내는 이왈종의 작업은 풍류와 잡기, 익살과 에로티시즘을 인생의 보편적인 놀이와 유희로서 보여주는데, 이들은 평범한 일상의 인간들과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다. 그의 그림 앞에 서면 누구나 주인공이 되는, 그러한 관점의 전환은 하나의 마술처럼 사람들을 매혹시킨다. 그것은 예술의 난해함과 고고함이 주는 부담으로부터의 해방감이 주는 특별한 선물과도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화가 인생에 어리는 서귀포의 봄
이제 칠순에 접어든 이왈종. 그를 대하면 노화가라기 보다는 항상 젊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의 이런 생각에는 ‘늙으면 죽어야지’라는 식의 패러독스가 배어있고, 이 철학적 코믹성은 삶에 활력을 주는 위트로 돌아온다. 그의 코믹성과 위트는 그의 삶의 미학이자 젊은 삶을 유지하는 은유의 반전(反轉)이기도 하다.
또한 이왈종의 마음에는 인간에 대한 배려가 숨어있는데, 이것은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윤리 의식과 같은 것이다. 그의 나눔에 대한 실천은 서귀포에서 부각되었다. 이왈종은 일찍부터 유니세프와도 깊은 인연을 맺고 있었다. 2011년 서귀포시가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협약도시로 선정되면서 유니세프 서귀포시후원회의 회원으로 위촉된 이후 그는 매년 오프셋 판화전을 개최해 그때마다 3000만 원을 유니세프기금으로 후원함으로써 나눔의 문화를 확산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2016년 바다로부터 봄이 왔다. 한라산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서귀포 정방폭포의 파도소리를 가슴으로 안고 있다. 정방폭포 주변에 북적대는 사람들의 소리도 연례행사처럼 끊임없이 들려온다. 생활의 중도 그 대장정에는 자연과 인간에 대한 포용력을 느낄 수 있는 따뜻한 메시지가 있고, 현실과 비현실의 조화로움이 있다. 마치 우리 마음의 놀이터가 바로 이왈종의 작품인 것처럼 말이다. 미술관 한 켠에 위치한 2평짜리 황토방은 이왈종의 더 없는 안식처다. 아침저녁 황토방에 비치는 그의 얼굴엔 여전히 아이 같은 웃음이 포말처럼 번진다. 이보다 더 행복한 삶이 있으려나. ●

 

 

ARTIST REVIEW 강요배

작가 강요배의 어린 시절 습작부터 최근작까지 총망라된 대규모 회고전이 제주도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4월 14일부터 7월 10일까지 ‘시간 속을 부는 바람(The Wind Blowing through Tim)’이란 제목으로 계속되는 이 전시는 오랫동안 작가가 역사와 자연, 그리고 인간을 주제로 탐구해온 리얼리즘 회화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제주도 특유의 자연 풍광과 그 속에서 살아온 민초의 삶이 담긴 강요배의 작품세계를 추적한다.

제주의 특수에서 우주의 보편으로

김준기 미술비평, 지리산프로젝트 예술감독
자연 속에서 삶의 뜻을 찾아온 화가 강요배의 대규모 회고전이 열렀다. 10대 어린이 시절부터, 20대 청년기, 30대 이후의 구작들과 낙향 이후의 근작들 그리고 최근작들을 망라한 대규모 기획전 <강요배: 시간 속을 부는 바람>은 한 예술가의 세계를 체계적으로 펼쳐놓은 본격 회고전이다. 우주를 생각하며 자신을 진지하게 성찰했던 청년 강요배의 1970년대 그림들은 물론 성장기의 동심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어린이 강요배의 그림들까지 선보이며, 제주의 역사와 풍경으로 우주와 생명을 이야기해온 예술가의 깊은 세계를 체계적으로 보여주는 전시다. 어머니의 컬렉션으로 고스란히 드러난 어린이 강요배의 그림들은 이제는 초로에 들어선 예술가의 삶 전체를 다시 들여다 보게 한다.
청년 강요배의 그림은 중년 강요배와 맞닿아 있다. 그동안 보기 어려웠던 ‘현실과 발언’ 동인 활동 전후 작품들을 포함해 1990년대 이후 20여 년간 제주에 살면서 작업한 그의 구작 다수를 만날 수 있어 더욱 뜻깊었다.
그가 첫개인전을 연 것은 1976년 제주시 관덕정 인근 대호다방에서의 일이었다. 이후 40년만에 제주도립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연 것은 제주 예술가 강요배의 세계를 가늠해보는 데 큰 의미를 가진다. 초등학교(초등학교) 시절의 그림이 등장한 것은 뜻밖의 선물이었다. 자화상이나 풍경, 사물, 상상의 세계 등을 그려낸 꼼꼼한 솜씨가 돋보인다. 본격적인 수련기에 접어든 청년 강요배가 문학과 철학에 심취하여 정신세계를 키워가던 시기의 작품들도 매력적이다. 민중미술운동에 뛰어든 20대 청년 강요배는 우주와 자연을 생각하는 태극문양을 비롯한 기하학적 형상들을 이용하여 세계이해를 시도하고 있다. 1980년대의 강요배는 현실 속의 삶을 추적하여 적극적으로 발언하고자했다.그는 민중미술의 전형성 가운데 하나인 전통회화의 형식과 내용을 차용한 그림들로 당대의 경향을 대변하고 있다.
민중미술 1세대 화가로서 그는 현실과 발언 동인 활동과 제주의 자연과 역사를 그린 화가로 주목받아왔다. 1990년대 초까지의 그가 제주의 역사를 그렸다면, 이후의 그는 제주에 귀향하여 제주의 자연을 그렸다. 낙향하기 이전의 강요배는 서울에 머물면서 제주도 4?3항쟁을 담은 역사화를 그려냈다.
그것은 꼼꼼한 현장 취재를 할 여력이 없어, 매우 제한적인 텍스트와 이미지 자료들을 토대로 일군 성과라는 점에서 상당히 놀라운 일이다. 소설가와 마찬가지로 화가도 서사적인 회화, 특히 풍경과 사건을 다루는 그림에서 필수불가결한 시각자료들의 결여를 딛고 장중한 역사화를 그려냈다는 점에서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만큼 강요배는 어린 시절부터 온몸으로 체득한 제주의 풍경과 서사를 충만한 에너지 저장소에 담아놓고 있었다는 얘기다. 물론 1992년 이후의 강요배는 제주에 살면서 제주 전역을 답사하며 땅과 바다와 하늘의 뜻을 담아냈다.
제주의 시공간은 그에게 ‘시간 속을 부는 바람’이라는 전시명이 드러내듯 우주적 관점의 성찰을 가져다 주었다. 예술적 표현은 예술가 개인의 자아주체로부터 나온다. 이것은 예술적 근대주의의 근본이다. 강요배는 예술에 대한 이 근대적 신뢰로부터 출발한다. 강요배의 예술은 철저하게 예술적 자아의 발현으로서, 자연과 생명, 역사 그리고 우주를 객관대상으로 삼은 비판적 주체로서의 예술가 정체성으로부터 나온다. 비판적 예술의 제1상수는 이러한 성찰의 주인공인 예술가 주체의 자아다. 우리가 강요배의 예술을 이해한다는 것은 인간 강요배의 삶을 이해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의 그림에는 제주가 녹아 있다. 제주는 강요배 예술의 상수다. 제주의 강요배와 강요배의 제주를 들여다 보는 것은 강요배 예술을 이해하는 핵심이다. 유년기의 기억으로부터 청년기의 학습과 중년기의 성찰을 아울러 그가 품어온 제주는 우주적 세계관으로 나아가는 창이자 우주 그 자체다.
그는 제주를 중심으로 우주를 성찰해왔다. 그의 세계관은 물질과 생명 양대 축으로 진화하는 우주의 공진화를 좇아 생성과 사멸의 이치를 생각하는 일이다. 끊임없이 운동하는 에너지의 흐름을 타고 시간 속에 부는 바람처럼 세계 이해에 다가서려는 부단한 여정이 강요배의 삶과 예술이다. 그는 한 줌의 흙과 풀 한 포기, 그리고 한줄기 바람에서 인간과 자연, 생명과 우주를 생각하며 화가의 길을 걸었다.
이러한 강요배의 세계관은 민중미술 1세대로서의 정체성과 관련하여 모종의 부정적 독해를 불러오곤 했다. 일각에서는 제주도 낙향 이후 동시대적 현실에 대한 구체적 발언을 뒤로했다는 점을 들어 민중미술의 퇴행으로 언급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이해를 넘어서는 총체적 관점으로 이해의 지평을 확장한다면, 우리는 강요배라는 한 화가의 세계를 더욱 웅숭깊은 우주예술의 시각에서 재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501_3295

제주도립미술관에서 열린 <강요배: 시간 속을 부는 바람> 전시광경

리얼리즘회화를 넘어서
적지 않은 수의 민중미술운동 당사자가 보여준 1990년대 중반 이후의 경향을 리얼리즘 관점의 퇴행으로 보는 시각은 강요배의 경우에도 예외일 수는 없었는데, 이번 전시에서 나타나듯 강요배는 청년시절부터 일관되게 자연과 인간 삶을 총체적으로 집약한 우주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제주도에서의 그의 삶과 예술은 인간 강요배의 성정을 일관되게 추구해온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의 세계는 한 시대의 대세를 이룬 특정 예술이념과 관계를 맺으면서도 애초에 그를 길러낸 제주의 자연과 역사가 그에게 안겨준 근본 성정을 풀어낸 과정으로 보아야 한다는 얘기다.
청년 강요배의 <태극도>, <생존>, <나비> 등의 작품들은 생명과 존재에 대한 우주적 관점의 세계 이해를 모색하고 있다. 강요배는 30여 년 전의 화두를 다시금 본격화하고 그것을 고도의 추상화 전략으로 풀어내고 있다. 세계관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공시적 관점에서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바탕을 둔다. 나아가 시간의 축선을 타고 흐르는 통시적 관점의 세계이해를 결합한 강요배의 예술은 풍경화의 영역을 역사적 풍경화로 확장하면서 우주적 관점의 세계이해로 진화해왔다. 그의 진화는 더욱 깊은 곳으로 나아간다. 오랫동안 형상회화를 그려온 강요배는 근년에 들어 추상화(化)를 언급해왔다. 몇 해 전부터 그는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추상화 과정’이라고 언급하며 지금까지 펼쳐온 형상과 서사의 세계에 모종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음을 예시하곤 했다. 그가 말하는 ‘추상화 과정으로서의 그림’은 세계이해의 지평을 화면 위에 나타내는 인간의 목적의식적인 행위로서의 그림에 대한 정의다.
이러한 생각은 이미 근작들에서 펼쳐지고 있거니와 향후 작업의 본격적인 향배로 보인다. 물과 불 같은 세계 구성의 근본 물질을 다룬다거나, <구름이 하늘에다>와 같이 푸른 하늘에 나타난 뭉개구름 토끼구름을 그려내는 일은 순수한 동심의 표현이 아니라 매우 대담한 도발에 가깝다. 지금까지 그가 보여온 자연과 역사 같은 거대서사를 이렇듯 유머코드로 풀어낸다는 것은 그림의 뜻에 대한 그의 말과 흐름을 같이하는 일이다. <청시창>이나 <답청> 같은 작품에서 나타나듯이 최소한의 형상과 색채로 사물과 사건의 깊은 뜻을 담아내려는 시도에서도 그렇다. 그것은 사물에 담긴 간명한 뜻이나 인간행위가 남긴 최소한의 흔적을 포착하여 은밀하면서도 치명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하는 고도의 추상화 전략이다.
이 전시는 강요배의 그림에 따라붙는 제주의 자연과 역사라는 수사를 확인하는 장이면서, 동시에 그렇듯 지역적 특수성의 국면으로 치달아온 그의 삶과 예술을 우주적 보편성의 차원에서 재해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삶이 예술을 위해 투신하는 것이라거나, 그 반대로 그의 예술이 자신의 삶을 규정하기를 원치 않는다고 말한다. 삶이 예술이고 예술이 그의 삶인 삶과 예술의 불이(不二)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발 디디고 살아온 땅의 역사를 안고, ‘시간 속을 부는 바람’을 잡아내고자 했다. 나아가 그는 그 부는 바람 속에서 우주의 이치와 생명의 이치를 찾아내고자 했다. 우주를 품은 그의 보편적 가치 지향은 제주라는 특수한 현실 지평에서 한층 더 풍부한 감성학의 세계로 진화하고 있다. ●

강요배  Kang Yobae
1952년 제주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1976년 제주 대호다방에서 첫 개인전 <각(角)>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25회 개인전을 열었다.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민족예술상(1998), 제27회 이중섭미술상(2015)을 수상했다. 현재 제주에서 거주하며 작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