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FEATURE] THE GRAND ART TOUR 2017-도쿠멘타 14

2017 유럽 그랜드 아트 투어를 가다

전 세계 미술계를 흥분시키는 2017년 그랜드투어의 여정이 시작됐다. 유럽의 아테네, 베니스, 카셀, 뮌스터, 바젤에서 열린 비엔날레와 도쿠멘타, 조각프로젝트, 아트페어 등 그 상차림도 다양하다.
우선 물의 도시 베니스. 비엔날레의 제왕 제57회 베니스비엔날레가 5월 13일부터 11월 26일까지 열린다. 파리 퐁피두센터 현대미술부 수석 큐레이터 크리스틴 마셀(Christine Macel)이 총감독을 맡아 ‘Viva Arte Viva’를 주제로 본전시를 꾸몄다. 한국관에는 이대형 큐레이터의 기획 아래 코디최와 이완 작가가 참여했다.
‘Learning from Athens’를 주제로 한 카셀도쿠멘타14는 아테네(4.8~7.16)와 카셀(6.10~9.17)에서 각각 열린다. 폴란드 출신 큐레이터 아담 심칙(Adam Szymczyk)이 총감독을 맡았다. “근본적인 변화를 도모할 시간”이라는 그의 말이 전시에 어떻게 반영되었을지 살펴보기 바란다.
세계 공공미술의 흐름을 주도한 뮌스터조각프로젝트 (Skulptur Projekte Munster)의 다섯 번째 대회는 6월 10일부터 10월 1일까지 대학도시 뮌스터 곳곳에서 열린다. 이번 대회를 위해 새롭게 설치된 작품과 기설치된 작품을 비교하며 엄정한 화이트큐브를 벗어난 미술의 담론이 어떻게 펼쳐지는지 확인하기 바란다.
세계 미술시장을 선도하는 〈제48회 바젤아트페어〉 (6.13~18)도 열렸다. 35개국 291개 갤러리가 참여한 이번 페어에는 9만5000여 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오랜 세월을 지낸 공력을 보여주듯 〈아트바젤〉은 그간 행사의 다변화를 꾀하면서 생존의 방식을 개척하고 세계미술시장의 주도권을 이어왔다. 그 현장의 열기를 전한다.
《월간미술》은 아테네, 베니스, 카셀, 뮌스터 현지를 찾아 그곳의 분위기를 담아왔다. 이 지면의 다음 페이지부터는 바로 그 현장이다.
현지취재=이준희 편집장, 황석권 수석기자

DOCUMENTA 14

Germany, Kassel 2017.6.10~9.17
Greece, Athens 2017.4.8~7.16
예술감독 아담 심칙(Adam Szymczyk)

지난 6월 10일 오전 10시, 독일중부 작은 도시 카셀 한복판 프리드리히 광장에 위치한 프리데치아눔 미술관 앞에서 독일 대통령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Frank-Walter Steinmeier)와 그리스 대통령 프로코피스 파블로풀로스(Prokopis Pavlopoulos)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제14회 카셀 도쿠멘타〉 공식 개막식이 열렸다. 이에 앞서 그리스 아테네에선 4월 8일 도쿠멘타 연계전시가 이미 시작되어 7월 17일까지 계속된다. 예술감독 아담 심칙이 내세운 이번 도쿠멘타의 주제는 ‘Learning from Athens’ 5년 만에 드디어 베일을 벗은 도쿠멘타 현장인 아테네와 카셀의 이모저모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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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아크로폴리스의 아테네 신전. 여전히 보수 공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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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YME-CMRC 〈EMS Synthi 100〉 1971 1979년 아테네에서 결성된 현대음악연구센터 (KSYME-CMRC)는 1971년 런던 Electronic Music Studios에서 한정판으로 제작 된 희귀한 아날로그 신디사이저 〈EMS Synthi 100〉을 복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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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eka Ogboh(b. 1977, Nigeria)〈The Way Earthly Things Are Going〉 2017 아테네음악원 ‘Odeion’ 전시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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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vin Alada(b. 1972, Turkey)〈Music Room〉 Installation with furniture, housewares, musical-instrument components, and performances 2017
가구를 활용해 악기를 만드는 작가는 형식과 기능의 경계를 넘나들며 소리와 침묵, 움직임과 휴식을 동시에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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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deion’이라고 불리는 Athens Conservatoire는 1959년, 실현되지 않은 도시 계획의 일부로 지어진 건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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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 미술대학(ASFA) 전시장 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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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hibumba Kanda Matulu(b.1947∼1981 disappeared, Congo) 〈101 Works〉 Acrylic on canvas, Dimensions ranging from 33.5×62cm to 41×70.5cm 1973~1974 (Nationaal Museum van Wereldculturen, Amsterdam) 베네키 미술관 전시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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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키 미술관 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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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cilia Vicuna(?(b. 1948, Chile)〈Quipu Womb(The Story of the Red Thread, Athens)〉(사진 왼쪽) Dyed wool 800×600cm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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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otr Uklaski(b. 1968, Warsaw)/ McDermott & McGough 〈The Greek Way〉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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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au Dick(b. 1955∼2017 Canada) 〈Twenty masks from the series “Undersea Kingdom”〉 2016∼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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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 국립현대미술관 EMST 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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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wa K(b. 1975, Iraq) 〈When We Were Exhaling Images〉 2017 이라크 쿠르드족 출신인 작가는 현재 베를린에서 작업한다. 오쿠이 엔이저가 예술감독을 맡은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중동지역 고대 미술품과 분쟁으로 생긴 구호품을 이용한 작업을 선보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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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iel Garcia Andujar(b. 1966,Spain) 〈The Disasters of War/Trojan Horse〉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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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et Anne Sara(b. 1983, Norway) 〈Pile o’ Sapmi〉 2017 노르웨이 순록의 머리뼈 200개를 이어 붙여 커튼 형식으로 만든 이 작품은 강제로 추방된 토착민의 아픔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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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a Hassabi(b. 1973, Nicosia)〈STAGING〉 2017
관객은 전시장 곳곳에서 매우 느리게 퍼포먼스를 펼치는 댄서의 움직임을 통해 익숙한 신체의 형상이 매우 낯설고 기괴한 느낌으로 변형되는 감정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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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rdon Hookey(b. 1961, Australia) 〈MURRILAND!〉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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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셀 도심 곳곳에서 다양한 퍼포먼스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사진은 우체국 건물인 Neue Neue Galerie(Neue Hauptpost) 앞에서 펼쳐진 퍼포먼스다. 퍼포머들은 머리에 책을 얹은 채 조심스럽게 걸어서 카셀 중앙역, 하웁트반호프까지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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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illermo Galindo(b. 1960,Mexico) 〈Fluchtzieleuropahavarieschallkorper〉(사진 가운데)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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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rahim Mahama(b. 1987,Ghana) 〈Check Point Sekondi Loco 1901∼2030〉 2016∼2017 아프리카 가나 출신인 작가는 코코아, 커피, 쌀, 콩, 숯 등을 미국과 유럽으로 수출할 때 사용하는 자루를 이용해 세계 무역의 불공정한 역사를 고발한다.


Olu Oguibe 〈Monument for strangers and refugees〉 concrete 16.3×3×3m 2017 photo: Michael Nast
이 작품은 카셀에서 가장 번화하고 교통의 요충지인 쾨니히광장 (Konigsplatz)에 설치됐다.

[SPECIAL FEATURE] 도쿠멘타 14 – 예술감독 선정 위원회 참가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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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셀 도쿠멘타14〉 예술감독 선정 위원회 참가 후기

김홍희│전 서울시립미술관장

2017년 〈카셀 도쿠멘타 14〉는 13회가 열린 2012년 바로 다음 해인 2013년부터 준비가 시작되었다. 그해 1월 도쿠멘타 예술감독을 선정하는 위원회(Finding Committee)를 결성하고 4월, 6월, 11월 세차례 회의를 통해 감독 선임을 마무리한 것이다. 행사 사이년도 첫해에 감독 선정을 끝내고 남은 3~4년간 기간 감독이 전시 준비에 집중하게 한, 그야말로 미술을 위한, 미술에 의한 미술 행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기간에 쫓기며 준비하고 서둘러 행사를 치르는 한국 현실에 비하면 낯설고 부러운, 문화 선진국의 일면을 보여준 모범 사례였다.
예술감독 선정위원은 Suzanne Cotter (포르투갈 포르토 The Serralves Museum of Contemporary Art 관장), Chris Dercon (당시 Tate Gallery of Modern Art 관장), Susanne Gaensheimer(프랑크푸르트 Museum fur Moderne Kunst 관장), Koyo Kouch(세네갈 다카 RAW MATERIAL COMPANY 예술감독), Joanna Mytkowska(폴란드 바르샤바 Museum for Modern Art 관장), Muhling Matthias(뮌헨 Galerie im Lenbachhaus 큐레이터), Osvaldo Sanchez(멕시코시티 inSite, Mexico-City, Mexico 예술감독 ) 그리고 당시 서울시립미술관장이던 나를 포함해 총 8인이었다.
2013년 4월19일부터 21일까지 카셀 현지에서 진행된 1차 회의에서 처음 만난 위원들은 GmbH재단 CEO인 Bernd Leifeldemfd와 Annette Kulenkampff로부터 행사관련 준비와 일정을 숙지받은 후, 14회 도쿠멘타의 방향성과 차별성에 대한 논의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아시아 대표격 위원으로 참가한 나는 탈식민주의 시각에서 아시아의 지리정치적, 미학적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번 행사가 카셀에서 열리는 비서구적, 비유럽적, 탈카셀적 도쿠멘터가 될 것을 제안했다.
2차 회의는 베니스 비엔날레가 열리던 6월 초에 개최되었다. 위원 대부분이 베니스에 들렀다 도쿠멘타 회의에 참가하는 일정이라 이번에는 교통이 편리한 프랑크푸르트에서 만났다. 마침 광주 비엔날레가 주도한 세계비엔날레대회가 베니스에서 열린 까닭에 나 역시 대회 참석 후 프랑크푸르트로 향했다. 이 회의 주요 과제는 이미 5월 위원들이 이메일로 추천, 공유하고 사전에 리서치한 후보군을 토론을 통해 좁히는 일이었다. 내가 추천한 한국과 아시아 지역 후보자를 포함해 모두 24인이 후보자 명단에 올랐지만 토론을 거쳐 6인이 선정되었다. 이 6인의 후보자는 마지막으로 열릴 11월 3차 회의 때까지 제안서를 제출하고 인터뷰를 준비해야 했다.
3차 회의는 11월 19∼22일 카셀에서 진행되었다. 19일 6인 후보에 대한 일반적 정보와 의견을 공유한 후, 20일 인터뷰를 거쳐 최후 3인을 선정하였다. 후보자들이 서로 만나지 못하도록 시차를 두고 별도 안내하는 세심한 배려가 눈에 띄었다. 당일 당선을 통보받은 3인 후보는 21일 최종 심층 인터뷰에 임했다. 이런 철저한 과정을 통해 아담 심칙 Adam Szymczyk이 14회 도쿠멘타 예술감독으로 탄생하였다. 22일 시청 도쿠멘타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GmbH 이사장인 Bertram Hilgen 시장이 인사말에 이어, 신임 예술감독을 발표했고 이어, 위원회를 대표한 Koyo Kouch가 심사평을 했다.
14회 도쿠멘타 예술감독으로 선정된 아담 심칙은 바젤의 쿤스트할레 관장이자, 다수의 유명작가 개인전과 시의성 있는 그룹전 기획을 통해 유럽 미술인들로부터 기량을 인정받은 젊은 기획자이다.
그는 이번 도쿠멘타가 2차 대전 후 폐허 속에서 일종의 문화적 절박함으로 창설된 1955년 1회 도쿠멘타의 선구적 태도를 되돌아보고 도쿠멘타가 현대 정치사회 현상에 개입하는 현장이자 용기가 될 것을 다짐했다. 도쿠멘타가 대중이나 미술시장이 요구하는 미학적 광경과 타협하지 않고 수동적 문화에 대항하고 통상적 예술개념에 도전하는 비판적 음성이 되어 절박한 현재를 기록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문화적 절박성은 단지 카셀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견지에서 그는 카셀 도쿠멘타가 다른 도시로 확장될 것을 제안하며 그 대상지로 아테네를 지목했다. 그가 말한 아테네여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고 절실했다. 지금 아테네는 폭력적 모순, 경제적 위기, 이주를 둘러싼 공포의 도시이지만 그리스의 내적 문제로만 추방될 수 없는 한줄기 희망이 필요한 극단적 모델이다. 서유럽 민주주의의 불확실성을 예증하는 그리스의 위기. 그로 인해 아테네라는 도시는 초지역적 미래를 생각하고 배우게 하는 가장 생산적인 위치로 자리매김된다는 것이다.
그가 언급하듯이, 카셀과 아테네에서 동시 개최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두 도시를 이동하게 하는 아이디어는 세상을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한 “여행의 메타포”로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개발을 위한 여행이 아니라 자의적 소외, 타자화를 위한 “표류”로서 여행이다. 그는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는 두 도시 프로젝트를 통해 병치되지 않는 2개의 그림을 그리고자 한다. 두 도시 참여 작가나 관객 모두에게 이 두 개의 그림은 경계와 차별을 붕괴시키고 변화와 변형의 세계를 경험하게 하는 문화적 촉진제가 된다. 결국 자율적인 2개의 전시가 동시에 진행되는 형식을 취한 도쿠멘타14는 긴박한 공동체 형성 과정의 살아있는 기록이자 이러한 과정을 목도하는 현대미술의 문화생산자적 역할을 촉구하는 문명비판적 전시라고 볼 수 있다.
아담의 이러한 제안은 탈서구 전시를 지향한 나의 의견과 동떨어지지 않아 개인적으로 기뻤고 무엇보다 선정위원회의 전폭적인 지지와 유럽 미술계의 호응을 받아 다행이었다. 그러나 아테네를 포함한다는 점에서 일부 카셀시민들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혀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이에 GmbH는 위원회의 지지 성명을 이끌어내고 반대자들을 설득하는 등 전방위적인 노력으로 이 난관을 무사히 넘겼는데, 주최 기관의 현명하고 진지한 초동 대처 역시 배울 점으로 주목되었다.●

위 사진 예술감독 아담 심칙을 선정한 선정위원. 왼쪽 두 번째부터 Joanna Mytkowska, Muhling Matthias, Suzanne Cotter, Susanne Gaensheimer, 김홍희, Koyo Kouoh , Osvaldo Sanchez

[SPECIAL FEATURE]도쿠멘타 14 – 그들이 ‘아테네’를 호출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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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카셀 하웁트반호프. 광장 바닥에 뚫린 통로를 통해 지금은 폐쇄된 옛 기차역 지하 전시장으로 들어갈 수 있다. 아래 Zafos Xagoraris < The Welcoming Gate > 2017 이 작품은 지하 역사 플랫폼에서 철로를 따라 외부와 연결되는 지점에 설치됐다.

그들이 ‘아테네’를 호출한 이유

이준희 | 《월간미술》 편집장

카셀 도쿠멘타의 시작은 6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5년, ‘모던아트’를 ‘퇴폐미술’로 규정하고 금지했던 과거 나치정권의 과오와 문화적 어둠에 대한 독일인의 반성과 자각에서 탄생했다. 그만큼 여느 국제전시에 비해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은 작품이 많이 출품된다. 14회 도쿠멘타 예술감독을 맡은 아담 심칙(b. 1970)은 기존 비엔날레 같은 일반적인 국제전시와는 차별화된 도쿠멘타만의 성격을 극대화시켜 보여주는데 주안점을 둔 듯하다. 폴란드 태생으로 쿤스트할레 바젤 관장을 역임한 아담 심칙이 내세운 주제는 일찌감치 알려진 대로 ‘아테네에서 배우기’. 어느 정도 예상한바 대로, 이번 도쿠멘타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은 현재 유럽이 직면한 경제, 정치, 사회, 문화적 딜레마를 드러내는데 있었다. 다시말해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 문명부터 근현대사를 지나서 현재까지 복잡하게 얽혀있는 유럽의 정치적 상황을 총체적으로 조망한 ‘시각이미지 보고서’라고 정리 할 수 있겠다.
아테네와 카셀을 과거와 현재의 경제·사회적 조건이 근본적으로 다른 도시다. 이런 두 도시의 차이는 유럽 국가의 양극화된 상황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이런 배경에서 아담 심칙 외에 7명의 협력 큐레이터와 수십 명의 어시스트가 참여한 큐레이터 팀은 아테네와 카셀 두 도시가 지닌 문화적 특성을 극대화시키고, 도시 전체를 전시장으로 활용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그만큼 이번 카셀 도쿠멘타는 어느 해 보다 많은 출품작과 다양한 퍼블릭 프로그램을 쏟아냈다.

유럽인이 바라보는 세계
《월간미술》 그랜드 아트 투어 첫 일정은 아테네였다. 6월 4일 밤늦게 아테네에 도착했다. 대충 짐을 풀고 몇 시간 잠을 자지도 못하고 조급한 마음에 다음날 아침 일찍 프레스센터를 부랴부랴 찾아 갔다. 하지만 굳게 문이 닫혀있었다. 관공서나 상점이 오전 11시가 돼서야 업무를 시작한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게다가 그날은 공휴일이어서 도시 전체가 거의 올스톱 상태. 아테네 도심 곳곳에 흩어져 있는 야외 전시부터 둘러보기로 했다. 가이드 맵 위엔 1번부터 47번까지 전시가 열리는 장소가 점으로 표기되어 있다. 빠듯한 일정에 47곳 모든 장소를 찾아가 보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 주요전시장을 사전 답사하고 아크로폴리스 아테네 신전을 방문하는 것으로 첫날 일정을 마무리했다. 다음날 1번부터 4번까지 ‘BIG 4’ 메인 전시장을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먼저 프레스 센터와 가장 가까운 1번 전시장 아테네 음악원(Athens Conservatoire). ‘Odeion’으로 불리는 이 건물이 음악과 관련된 장소다 보니 특히 악기 혹은 사운드와 어울린 작품이 눈에 많이 띄었다. 의자 같은 가구나 각종 가정용품을 악기로 만든 아날로그 조형물이 있는가하면, 신디사이저를 이용한 전위적인 음향이 곳곳에서 들려왔다. 건물 지하 고대 원형극장을 연상시키는 어두운 공연 홀에 설치된 나이지리아 작가 에메카 오그보(Emeka Ogboh) 작품이 압권이었다. 세계 주요 도시 주식시장 형황이 LED 전광판에 실시간 중계되는 가운데 레게 음악가 밥 말리의 음악이 공간을 채우는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이어서 2번 아테네 미술대학(Athens School of Fine Arts). 도시 외곽에 있어서 택시로 이동했다. 미술대학 안에 마련된 전시장 분위기는 마치 한국에서 본 〈공장미술제〉나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전시처럼 익숙하다. 시설은 열악했지만 미술대학이 풍기는 특유의 생동감으로 활력이 넘쳤다. 기존 미술관 전시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스펙터클하고 실험적인 설치작품이 특히 많았다. 이어서 3번 베나키 뮤지엄(Benaki Museum)은 그리스 고대유물을 비롯해 이슬람 문명권 소장품으로 유명한 박물관이다. 2000년 신축한 건물은 현대미술품 전시장으로서도 손색이 없었다. 전시작품은 주로 아프리카 신생국가의 민주화 내용과 유럽 제국에 의한 식민통치를 당한 제3세계 국가의 역사적 자료를 바탕으로 탈식민주의에 관한 내용이었다. 마지막으로 4번 그리스 국립현대미술관(EMST-National Museum of Contemporary Art)은 ‘BIG 4’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큰 곳이다. 입지 조건과 건축 환경이 뛰어났다. 원래 양조장이 있던 자리에 지어진 건물은 한 쪽 벽면 전체가 통유리로 마감됐고, 일직선으로 연결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4층 전시장까지 올라가면서 통유리를 통해 멀리 아크로폴리스 아테네 신전이 보인다. 개방된 이동공간과 달리 전시공간은 외부 빛이 완전 차단된 채 인공조명으로 꾸며진 화이트 큐브 전시장으로 꾸며졌다. EMST는 1960년대부터 그리스 현대미술 작품과 해외 유명작가의 작품을 컬렉션 해 왔다. 이 소장품은 카셀 도쿠멘타 메인 전시장인 카셀 프리데리치아눔 미술관에서도 전시된다. 한국작가 김수자의 작품 〈보따리〉가 그런 예다.
카셀도 도시 전역에 작품이 분산되어 전시된다. 프리데리치아눔(Fridericianum) 미술관이 카셀 도쿠멘타를 상징하는 공간이다. 1779년 영주와 귀족의 수집품을 일반에 공개하기 위해 유럽 최초의 박물관으로 건축된 이 건물은 도서관으로 사용되던 중 1941년 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의 폭격을 받아 파괴된 것을 다시 복원한 것이다. 앞서 언급한 김수자의 〈보따리〉 외에도 그리스 국립현대미술관(EMST) 컬렉션이 전시되고 있다. 한편 이번 카셀도쿠멘타 출품작 가장 두드러지게 눈에 띠는 작품은 프리드리히 광장에 설치된 대형 설치작품 〈The Parthenon of Books〉이다. 실제 파르테논 신전 규모로 지어진 이 기념비적 구조물을 만든 주인공은 아르헨티나 출신 작가 마르타 미누인(Marta Minujin, 1943). 파르테논 신전은 인류 최초로 민주주의를 실현한 아테네의 정치적 이상을 상징한다. 그리고 도서관으로 사용되던 프리데리치아눔은 35만 여권의 장서가 불에 타버린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이런 배경에서 마르타 미누인은 전 세계 고전문학 작품 가운데 정치적 이유로 금서(禁書)로 낙인찍힌 적 있는 책 10만여 권을 기증 받아 신전 외벽에 붙이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대중이 적극 참여하는 이 프로젝트는 표현의 자유를 금지하고 이해관계가 다른 저자에 대한 박해를 반대하는 이상적이고 민주적인 ‘지성의 상징물’이다. 이 밖에도 대다수 작품이 정치적 이슈를 다룬다. 난민문제를 비롯해 독재, 인권, 인종, 전쟁, 신자유주의, 종교, 테러, 성정체성, 제국주의, 탈식민지주의…. 민감한 현실적 주제를 제각기의 시각언어로 표현한 작품을 바라보는 관객의 시선은 무거울 수 밖에 없다. 이처럼 이번 카셀도쿠멘타를 통해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이기도 한 유럽(인)은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발언하고 표현했다. 물론 반성과 성찰, 미래에 대한 절망과 희망도 빠뜨리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이번 카셀도쿠멘타는 철저히 그들만의 잔치였다. 오직 유럽만 있었다. 명색이 국제규모 미술전시 임에도 참여작가와 출품작이 특정지역 국가와 작가에 편중되어 있다는 인상을 여전히 지울 수 없다. 그렇다고 푸념하거나 평가절하하려는 게 아니다. 실제 사정이 그랬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기 위함이다. 참고로 역대 카셀 도쿠멘타에 참여한 한국인 작가는 1977년 백남준과 이우환, 1998년 육근병, 그리고 2012년 문경원&전준호와 양혜규가 있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정치, 경제, 군사 등 거의 전 분야에서 세계유일의 패권국가가 되었지만, 유럽(인)이 보기에 적어도 문화와 예술에선 그들은 여전히 전통과 뿌리가 없는 대상이다. 이처럼 참여작가 리스트에 드러나는 표면적 이유가 아니라 그들이 이번 카셀 도쿠멘타에서 선보인 작품에서 주로 다루는 이슈를 보면, 여전히 유럽(인)중심 문화에 대한 자긍심이 깊이 뿌리내리고 있음이 확인된다. 한편으론 근대 이후 유럽문화의 중요한 한 축을 지탱해 온 독일은 여전히 전범국(戰犯國)이란 굴레를 벋어나지 못한 것 같다. 그럼에도 제2의 ‘팍스 로마나(Pax Romana)’를 꿈꾸는 것은 아닐까하는 예상을 조심스럽게 해본다. 그들이 지금 이 시점에서 굳이 ‘아테네’를 다시 호출해낸 저의 역시 이런 맥락으로 읽을 수 있지 않을까?●

[SPECIAL FEATURE] 도쿠멘타 14 – 독일은 조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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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카셀 프리데리치아눔 앞에서 열린 〈제14회 카셀 도쿠멘타〉 공식 개막식 광경. 레드카펫 가운데 보이는 가장 키가 큰 사람이 예술감독 아담 심칙이다. 아래 아르헨티나 출신 작가 마르타 미누인의 < 파르테논 신전 > 을 위해 한때 금서로 낙인찍혔던 책을 기증받고 있다.

독일은 조심스럽다

최정미 | Diskurs Berlin 대표

독일에서 의전이 별것 아니라는 것을 종종 느끼지만 이처럼 생생하게 체험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독일 대통령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Frank-Walter Steinmeier)와 그리스 대통령 프로코피스 파블로풀로스(Prokopis Pavlopoulos)가 주빈으로 참가한 공식 오프닝이 6월 10일 오전 10시에 진행되었다. 도쿠멘타14 예술감독 아담 심칙(Adam Szymczyk) 및 녹색당의 유명 정치인 클라우디아 로트(Claudia Roth) 등 정치, 예술가들이 모인 행사지만 편하게 진행됐다. 기자들의 신상 체크는 메일로 이루어졌으며 입장은 리스트에 올려진 손님과 기자만 가능했다. 기자들은 아테네 출신 작가 마르타 미누진(Marta Minujin)의 <Parthenon der Bucher>이 설치된 계단 같은 철조 물에 앉아 그저 소풍 온 듯이 행사를 보거나 떠들거나 각자 제멋대로다. 경찰은 자기들이 서 있는 선만 넘지 않으면 따로 통제하지 않았다. 거창한 연설도 없었으며 행사 공간 확보를 위해 설치한 간단한 구조물 밖에는 구경꾼 외에 행사 반대 시위대가 간간이 있을 뿐이었다.
아테네에서 열린 도쿠멘타 오프닝에 참여한 동료나 작가들은 한결같이 실망감을 표현했다. 전시 자체 외에도 독일과 그리스 사이 불협화음을 방문객도 느낄 정도였다고 한다. 그래도 카셀은 다르리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다들 알다시피 아담 심칙은 폴란드 출신 큐레이터이며 전체 큐레이터(Curator at Large) 보나벤투어 소 베젱 디쿵(Bonaventure Soh Bejeng Ndikung, 이하 보나벤투어)은 카메룬 출신이다. 폴란드는 2차 세계대전 당시에 독일에 점령되었고 카메룬은 1919년까지 독일의 식민지였다. 보나벤투어는 베를린에서 비영리 전시공간을 운영하고 있으며 탈식민지와 아프리카인의 인권운동 관련 전시를 꾸준히 해왔다. 요즘처럼 종교, 정치 관련 테러가 빈번한 시대에 카셀에서 보여준 탈식민지 주제의 전시는 시기에 딱 맞았을까?
전시 주제가 ‘Learning from Athens’이어서 유럽 철학의 모태라 할 수 있는 그리스와 엮어 탈식민지라는 소재가 철학적인 방식으로 풀어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살짝 있었다. 또한, 역대 도쿠멘타 전시감독인 로저 M. 뷔르겔(Roger M. Buergel), 캐롤린 크리스토프-바카기에프(Carolyn Christov-Bakargiev), 캐서린 데이비드(Catherine David))가 풀어낸 도쿠멘타를 봤을 때 그리 허황된 기대감은 아니었다.
독일 언론은 과거에 지은 죄가 있어서인지 그들의 목소리를 내는 데 무척 조심스러워한다. 독일의 대표적인 신문인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인》은 한 논평에서 “Die Schuldigen stehen immer bereits fest”라고 이 행사를 함축했다. 우리말로 대략 ‘죄지은 놈은 항상 정해져 있다’인데 신자유주의, 탈식민지주의가 대세인 시대에 과거 패전국가는 아직도 나쁜 놈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비교적 온건한 논조의 신문 《디 차이트》는 6월 13일 논평을 통해 “독선의 신전(Im Tempel der Selbstgerechtigkeit)”이라는 타이틀로 도쿠멘타를 평했다. 메인 전시장인 프리데리치아눔에 대하여는 “Offenbar ist es Szymczyk und seinem Team herzlich egal, was im Fridericianum gezeigt wird. Fur sie zahlt allein die Geste: Wir offnen euch unser Haus!”라고 했다. 대략 “분명한 것은 아담 심칙과 큐레이터 팀에게는 프리데리치아눔에서 무엇을 보여 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행위만 중요할 뿐이다. 즉, 그들에게는 이 공간을 대중에게 열었다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이란 뜻이다. 도이칠란드풍크 방송은 6월 10일 기사 제목을 “Eine Kunstausstellung als Politikum”으로 뽑았는데 “현대미술 전시가 정치가 되었다”는 의미다. 예술의 중요한 기능의 하나인 담론의 형성보다는 작금 벌어지는 정치문제에 집착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술은 만화나 시사 프로그램이 아니다. 즐거움을 선사하고 친절하게 설명하는 기능과는 조금 거리를 둔다. 사고하고 담론을 형성하며 문제의식의 자율적 발현에 그 중요한 가치를 둔다.
도쿠멘타14에 700만 유로의 예산이 들어갔다고 한다. 또한 도큐멘타는 카셀뿐만 아니라 독일의 행사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언론은 조심스럽다. 또 주요 신문도 별다르지는 않지만, 지역 신문은 행사에 부담되는 기사는 되도록 자제하고 있다. 영구 티켓이 현재 1만 장이나 팔렸다고 자랑한다. 전범 국가인 독일에서 탈식민지, 난민 이야기를 정제 없이 쏟아내고 있으니 그렇지 않아도 나치 독일 때문에 괴로워 하는 독일은 조심스럽다.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인 처럼 죄지은 놈이 정해져 있으니 그저 닥치고 있을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