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FEATURE] THE GRAND ART TOUR 2017 – 뮌스터 조각프로젝트

2017 유럽 그랜드 아트 투어를 가다

전 세계 미술계를 흥분시키는 2017년 그랜드투어의 여정이 시작됐다. 유럽의 아테네, 베니스, 카셀, 뮌스터, 바젤에서 열린 비엔날레와 도쿠멘타, 조각프로젝트, 아트페어 등 그 상차림도 다양하다.
우선 물의 도시 베니스. 비엔날레의 제왕 제57회 베니스비엔날레가 5월 13일부터 11월 26일까지 열린다. 파리 퐁피두센터 현대미술부 수석 큐레이터 크리스틴 마셀(Christine Macel)이 총감독을 맡아 ‘Viva Arte Viva’를 주제로 본전시를 꾸몄다. 한국관에는 이대형 큐레이터의 기획 아래 코디최와 이완 작가가 참여했다.
‘Learning from Athens’를 주제로 한 카셀도쿠멘타14는 아테네(4.8~7.16)와 카셀(6.10~9.17)에서 각각 열린다. 폴란드 출신 큐레이터 아담 심칙(Adam Szymczyk)이 총감독을 맡았다. “근본적인 변화를 도모할 시간”이라는 그의 말이 전시에 어떻게 반영되었을지 살펴보기 바란다.
세계 공공미술의 흐름을 주도한 뮌스터조각프로젝트 (Skulptur Projekte Munster)의 다섯 번째 대회는 6월 10일부터 10월 1일까지 대학도시 뮌스터 곳곳에서 열린다. 이번 대회를 위해 새롭게 설치된 작품과 기설치된 작품을 비교하며 엄정한 화이트큐브를 벗어난 미술의 담론이 어떻게 펼쳐지는지 확인하기 바란다.
세계 미술시장을 선도하는 〈제48회 바젤아트페어〉 (6.13~18)도 열렸다. 35개국 291개 갤러리가 참여한 이번 페어에는 9만5000여 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오랜 세월을 지낸 공력을 보여주듯 〈아트바젤〉은 그간 행사의 다변화를 꾀하면서 생존의 방식을 개척하고 세계미술시장의 주도권을 이어왔다. 그 현장의 열기를 전한다.
《월간미술》은 아테네, 베니스, 카셀, 뮌스터 현지를 찾아 그곳의 분위기를 담아왔다. 이 지면의 다음 페이지부터는 바로 그 현장이다.
현지취재=이준희 편집장, 황석권 수석기자

Skulptur Projekte Munster 2017

뮌스터 조각프로젝트
2017.6.10~10.1
예술감독 카스퍼 쾨니히(Kasper Konig)

10년 만이다. 그만큼 오랜 기간 준비했고, 그 결과물을 뮌스터 전 지역에 펼쳐놓았다. 40년 역사의 뮌스터조각프로젝트. 그 다섯 번째 대회 역시 카스퍼 쾨니히가 건재한 가운데 열렸다. 세계 미술계의 비상한 관심을 끄는 뮌스터조각프로젝트는 한 번도 ‘국제적인’이라는 수식어를 동원하지 않았다. 뮌스터에 설치되는 작업은 뮌스터만의 맥락과 역사, 이야기, 사람, 상황 등을 담아야 한다는 것이다. 도시에 곳곳에 설치된 작업을 살펴보는 것은 고단한 일이다. 자전거 탑승은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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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찾으려면 지도와 함께 주의력이 요구된다. 작품 설치 근처에 형광색으로 표시했다. 피에르 위그 작품 관람을 위해 자전거를 몰고 온 이들이 주차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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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reas Bunte 〈Laboratory Time〉 2017 QR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스캔하면 행위의 모습을 담은 영상이 재생된다. 뮌스터 시내 3군데에 설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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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ye Erkmen 〈On Water〉 2017 물에 잠기는 임시교량을 설치, 관람객이 물 위를 걷는 체험을 할 수 있게 했다. 관람객의 호응도가 가장 높은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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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erre Huygue 〈After ALive Ahead〉 2017 폐쇄된 아이스링크 내부를 마치 발굴 현장처럼 탈바꿈시켰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정적인 것과 움직이는 것 등의 대비가 비시각적이지만 항상 발생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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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les Empire 〈Sculpture〉 이 여성 듀오작가(Barbara Wolff and Katharina Stover)팀은 대상과 그것의 복제물에 대한 연구를 지속한 이들로 이번에는 뮌스터의 건축 역사와 그 시조로서 루마니아에 있는 Peles성(城)을 한데 묶으려 했다. 물론 가설치물과 외벽의 가짜 대리석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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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am Bartholl 〈5V〉 2017 뮌스터 시내에 〈12V〉, 〈3V〉를 설치한 작가는 〈5V〉라는 제목의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열을 전기에너지로 변환시키는 장치를 이용해 전화기를 충전하는 퍼포먼스를 통해 디지털화된 현재의 모습을 반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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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to Steyerl〈HellYeahWeFuckDie〉 2015년 베니스비엔날레 독일관에 참여했던 작가는 세계를 코드와 알로리듬, 광범위하게 분화된 상호연대성에 기인한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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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ra Favaretto 〈Momentary Monument-The Stone〉 언뜻 육중한 돌덩이로 보이지만 가까이서 들여다 보면 동전을 넣을 수 있는 틈새가 있다. 이번 프로젝트가 종료되면 작품은 파괴되며 관람객이 넣은 돈은 난민구호단체에 기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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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ine Matherly 〈Nietzsche’s Rock〉 작품명은 스위스에 있는 ‘니체의  바위’에서 따왔으며 그곳에서 니체는 ‘영원회귀 사상’을 정립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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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WL미술관 앞 Cosima von Bonin과 Tom Burr의 〈Benz Bonib Burr〉. 영구설치작품인 헨리 무어의 〈Three Way Piece No.2: The Archer〉 (1964~1965)를 실어가려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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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hael Smith 〈Not Quite Under_Ground〉 65세 이상 노인에게 문신비용을 깎아주는 행위를 통해 젊음의 전유물에 대한 인식을 얽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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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am Bartholl 〈3V〉 역시 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바꾸는 과정을 통해 지하도로에 설치된 LED샹들리에를 빛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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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remy Deller 〈Speak to the Earth and It Will Tell You〉 2007년 뮌스터조각프로젝트를 위해 작가는 50호에 달하는 시민농장협의회에 활동을 담은 일기를 보관할 것을 부탁했다. 그 활동을 담은 책이 33권에 달하며 이번 프로젝트에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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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ka Rottenberg 〈Cosmic Generator〉 저임금 국가에서 생산되는 물품은 열악한 작업환경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작가는 그 물품과 몸을 연계하여 노동의 문제를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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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rbara Wagner and Benjamin de Burca 〈Bye Bye Deutschland! Eine Lebensmelodie〉 1970년대풍의 디스코테크에서 상영되는 영상작업. 독일의 독특한 대중음악 장르인 Schlager의 히트송을 별로 인기를 끌지 못한 팝송과 함께 선보인다. 이를 통해 공공조각의 정의에 대한 인식을 환기한다

 

 

[SPECIAL FEATURE] 뮌스터 조각프로젝트 – 땅으로 내려온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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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Koki Tanaka 〈Provisional Studies: Workshop #7 How to Live Together and Sharing the Unknown〉 ‘10일 동안 함께 사는 법’을 뮌스터 시민 8명에게 질문하고 이에 대한 답변을 영상으로 담았다 아래 Nicole Eisenman 〈Sketch for a Fountain〉 편하게 산책을 나온 관람객이 전통과 현대, 유머, 관능 등의 요소를 발견할 수 있는 작업이다

땅으로 내려온 미술

황석권 | 《월간미술》 수석기자

올해 뮌스터조각프로젝트(Skulptur Projekte Munster 2017, 6.10~10.1)에 미술계의 다양한 기대감이 얹혔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우리의 일상 속 시야에도 공공미술 현장이 쉽게 잡힐 정도로 그 개념에 상당히 익숙해졌다. 서울역 고가도로를 리모델링해 시민에게 오픈한 ‘서울로 7017’에 설치된 <슈즈트리>가 큰 논란을 일으키며 공공미술에 대한 논쟁이 일반인 사이에도 흘러들어가 각종 대중미디어를 비롯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갑론을박이 오고갔다. 대부분 자신의 미적 기준에 작품을 끼워 맞춰 호불호에 대한 단편적인 의견을 개진하는 식이지만 공공미술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무관심을 환기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전 지자체들이 경쟁적으로 설치한 무분별한 공공 조형물들의 문제점들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여지도 남겨놓았다.
이번 뮌스터조각프로젝트가 국내의 관심을 받는 또 다른 이유는 40년 넘게 행사 터줏대감을 자임해온 카스퍼 쾨니히가 총괄하는 마지막 프로젝트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다. 1977년 프로젝트 출범 당시부터 기획에서 손을 뗀 적이 없는 카스퍼 쾨니히는 한국과도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데 양현미술상 심사위원으로 활동했고, 또한 뮌스터조각프로젝트가 서울의 도시길러리 프로젝트나 안양공공미술프로젝트 등 국내 공공미술프로젝트의 롤모델이자 중요한 레퍼런스였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오랜 기간 총감독을 맡는 것은 우리 상황에서는 좀처럼 없는 사례이기에 카스퍼 쾨니히의 뮌스터조각프로젝트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이렇듯 우리의 상황과 맞물려 뮌스터조각프로젝트를 올해 유럽에서 열리는 이른바 ‘그랜드투어’의 메인 메뉴 중 하나로 넣기에 충분했다. 10년이라는 오랜 기간 준비하는 장대한 프로젝트라서도 그렇고. 화이트큐브 안에서만 유효한 매우 한정적이고 편협한 모더니즘적 미적 의미를 공공미술은 어떻게 넓혔을까. 바로 미술관을 뛰쳐나와 미술을 탈담론화 하고 탈제도화했다. 일상의 맥락과 연결시키려는 시도와 탐구를 선지식 없이 단순히 몸으로 느끼게 하며 오롯이 ‘site’의 숨은 맥락을 그곳에서 드러내는 이른바 ‘과정으로서의 미술’이 ‘발견’ 되는 지점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것들을 위한 전제 조건은 예술가와 그가 이룩한 현현물이 놓인 미술과 다른 레이어로서의 공간 상정이다. 우선 작가는 일상이라는 사회적 활동에 어떤 발언을 하여 개입할 것인가, 꼭 그래야만 하는가 혹은 그것이 미술의 문법 체계에서 온당한가에 대한 논의가 있을 것이다. 뒤이어 작품이 놓인 공간이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맥락에서 작품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따른다.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고속열차(ICE)는 뮌스터 역에 당도했다. 인구 30만 중 5만5000명이 학생이라는 뮌스터는 인구 1인당 3대의 자전거가 등록되어 있을 정도로 ‘자전거의 도시’로 유명하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없는 평평한 지대인지라 자전거를 타고 도시를 다니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실제로 이번 뮌스터조각프로젝트는 자전거 대여소를 LWL미술관 뒤편에 마련해 관람객의 편의를 도모했다. 작품은 대부분 공원으로 조성된 순환공원 겸 자전거 도로의 내부와 주변에 설치되었고 그간 뮌스터조각프로젝트에 초대되어 영구설치된 작품도 이번 프로젝트에 초대된 작품을 찾아보며 만나볼 수 있었다. 뮌스터에서 자동차를 타고 43번 도로 남쪽으로 1시간가량 질주하면 화려했던 광업도시 마를(Marl)에 당도하게 되는데 이곳에도서 연계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가장 많은 관심과 호응을 이끈 작품은 역시 피에르 위그의 <After ALive Ahead>였다. 시내 중심지에서 20~30여 분간 열심히 자전거 페달을 밟아 달려온 이들은 입장객을 엄격히 제한하는 위그의 작업을 보기 위해 길게는 1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2016년 폐쇄된 아이스링크의 콘크리트 바닥을 절단하여 하부의 흙이 드러나게 했고, 천장에는 개폐되는 전동루프를 달았다. 해가 뜨고 지는 하늘 아래 마치 동토(凍土)의 발굴현장을 연상하게 한 이 작업은 인위적으로 만든 작은 풍경을 통해 그 안에서 보이지 않지만 치열하게 벌어지는 다양한 유기적 움직임을 담았다.
관람객이 작품에 참여하여 즐거워하는 현장도 볼 수 있었다. 뮌스터 역 동남부로 약 10분 정도 걸어가면 운하와 연결된 작은 항구가 있는데 이곳에 Ay?e Erkmen의 <On Water>가 설치되어 있다. 어른 무릎에 차일 정도 깊이의 물에 잠겨 있는 다리를 건너면 걸어서 족히 20분 이상 걸릴 거리를 가로질러 갈 수 있게 한 것. 안전요원이 배치된 가운데 다소 쌀쌀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기꺼이 신발을 벗고 물을 건넜다. 이 대단할 것도 없는 행위에 많은 이가 즐거움을 느끼는 이유가 궁금했다. 미술행사라는 인식이 없다면 놀이공원에서 롤러코스터를 타는 즐거움과 차이가 없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전까지 돌아가는 것을 당연시했던 곳을 마치 물을 걷는 듯한 체험을 통해 가로질러 갈 수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삶의 변주를 느껴서가 아닐까? 그렇다면 작품은 그곳을 건너는 이들의 삶에 개입한 셈이 된다. 그래서 이는 공공미술의 범주에 들어오게 된다.
10년을 준비하여 개최하는 프로젝트의 면모를 드러내는 사이트도 있었다. 문화센터이자 Aram Bartholl <5V> 퍼포먼스가 열린 Theater Im Pumpenhaus 인근 시민농장의 회원들을 2007년에 섭외해 10년 동안 그들의 일상을 기록하고, 책으로 엮어 보여주는 Jeremy Deller의 <Speak to the Earth and It Will Tell You>가 그것이다. 개별 프로젝트를 10년 동안 준비했다는 점도 감탄스럽지만, 프로젝트를 위해 자신들의 일상을 꾸준하게 기록한 참여자들의 의식도 놀랍다.
20년 전 백남준이 은빛자동차 32대로 제작한 <32 cars for the 20th century: play Mozart’s Requiem quietly>가 설치됐던 Munster Schloss를 찾았다. 뮌스터 베스트팔렌 빌헬름대학 건물 앞은 이제 백남준의 작품을 찾아볼 순 없었지만 후면의 공원에서 Jenny Holzer나 Dan Graham, Martin Boyce의 영구설치 작품을 만나볼 수 있었다. 물론 주변 공원에도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새로이 설치된 작품이 이곳을 찾는 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부동산 투자회사 LBS Westdeutsche Landesbausparkasse 사옥 내에 Hito Steyerl의 <HellYeahWeFuckDie>가 들어서 있었다. 2015년 베니스비엔날레 독일관을 흡사 중력이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공간처럼 만든 화한 작가의 이번 작업은 로봇개발사의 홍보 영상물을 연상하게 했다. 화면에서는 로봇동물의 움직임과 그것을 더욱 정교하게 제어하려는 각종 실험이 3D시뮬레이션으로 보여지고 있었다. “오늘날 로봇은 미래의 공룡이다”라는 작가의 말은 이곳이 예전에 동물원 자리였다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디지털 영상은 과거와 현재, 미래의 시간의 연속을 보여주지만 이곳이 과거 인류의 출범 이전 공룡의 천국이기도 했다는 점을 그리 멀지 않은 과거의 시간과 연계하여 보여주고 있다.
뮌스터조각프로젝트의 각각의 사이트를 찾아다니며 발견한 흥미로운 지점이 몇 가지 있다. 그것은 뮌스터조각프로젝트가 세계 유명작가들을 불러 모아 벌이는 대형 전시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런 프로젝트는 이미 세상에 널리고 널렸고, 이번 그랜드투어의 각 사이트가 그러했다. 도리어 기자의 머리에는 뮌스터라는 도시가 각 작품에 선명히 드러났다. 이는 설치물이 놓인 장소의 역사와 의미를 알아내야 한다는 강박으로 다가왔다.
또한 뮌스터조각프로젝트는 도시를 꾸미는 장식프로젝트를 지향하지 않는다는 점을 발견했다. 이는 작가가 이른바 점령군으로서, 도시의 어떠한 맥락도 파악하지 못한 채 자신의 예술적 욕구를 펼쳐놓는 그런 프로젝트가 아니라는 의미다. 참여작가가 전 도시를 빈 캔버스 삼는다면 한 번 벌이고 마는 1회성 행사에 그칠 것이다. 그러나 뮌스터조각프로젝트는 이미 40년을 이어왔고 그 스스로가 존재의 이유와 가치를 증명하고 있었다.
뮌스터라는 도시 안에서는 여러 생각이 드는 것이 틀림없었다. 이전에는 ‘미술’에 대해 ‘좋다’, ‘나쁘다’하는 가치판단을 얼마나 빠른 속도로 내리느냐가 관건이었다면 이제는 미술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부각되었다. 거대한 자본 앞에서는 그 자본을 보이지 않게 하기, 절대 권력 앞에서는 비껴서 가기, 다른 가치의 미술들과는 거리를 두고 뒷면을 살펴보기. 이와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은 아마 그랜드투어의 마지막 일정을 뮌스터로 잡은 취재 동선의 영향일 수도 있다. 오로지 사적영역에서 탄생한 작품과 개입이 전제되어야 할 작품이나 프로젝트는 분명 차이가 있으니 말이다.
다시 서울로 돌아가는 하늘길에서 처음 가졌던 공공미술에 대한 몇 가지 단상을 떠올렸고 뮌스터에서 확인하거나 다른 방식의 접근법과 비교해보았다. 우리 공공미술에 대한 논의의 해답을 뮌스터에서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이전 카스퍼 쾨니히가 “서울의 공공미술프로젝트에 참여한다면 어떻게 해볼 생각이냐”는 한 언론의 질문에 “뮌스터프로젝트를 했던 건 뮌스터 근처에서 자라나 그곳의 역사를 알았기 때문이다. 그 도시의 상황은 그 도시 사람이 잘 안다. 그래서 미안하지만 내 머릿속의 해답은 없다”고 한 답변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겠다.●

[SPECIAL FEATURE] 뮌스터 조각프로젝트 – 치열한 전문성과 네트워크가 바탕이 된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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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학생들이 2017년 뮌스터대학 내 설치된 Bruce Nauman의 < Square Depression > 에서 벌어진 프로그램 < from our perspective > 에 참여하는 장면, 아래 프레스콘퍼런스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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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전문성과 네트워크가 바탕이 된 행사

최정미 | Diskurs Berlin 대표

조각 프로젝트로 유명하지만, 유서 깊은 인문학의 도시이기도 한 뮌스터로 가는 열차 안에서 ‘연착되어 간담회에 늦겠다’는 통화 내용이 들렸다. 필자도 같은 신세라 왠지 모를 동료 의식과 안도감이 들었다. 그래서 그 여성에게 뮌스터에 도착하면 기자회견에 같이 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어봤다. 그도 내 제의가 반가웠는지 자신이 택시비용을 내겠단다. 택시 안에서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분은 다름 아닌 연방문화재단(Die Kulturstiftung des Bundes) 홍보(Communication)부 수장인 프리데리케 타페-호른보스텔(Friederike Tappe-Hornbostel)이 아닌가. 참고로 연방문화재단은 국가적으로 굵직한 문화예술 관련 프로젝트만을 지원하는 곳이다. 서둘러 간담회장인 뮌스터 극장에 들어가니 국내외 기자들이 극장을 가득히 메우고 있었다. 세어 보니 대략 300명 정도는 되어 보인다. 홍보담당 야나 두다(Jana Duda) 씨의 말을 빌리면 등록은 약 600명 정도가 했단다. 잠시 후 시작된 회견장 무대에 필자와 함께 택시를 타고 온 그녀가 떡 하니 자리 잡고 앉아 조각 프로젝트에 왜 지원했는지에 대하여 설명하는 것이 아닌가. 총감독 카스퍼 쾨니히는 회견 중 자주 물병을 만지는 등 다소 산만한 모습이었지만 정작 자기 차례가 돌아오니 원고도 없이 참가자들을 웃고 박수 치게 했다. 간담회 후 공동 큐레이터인 브리타 페터(Britta Peter) 씨와 대화를 나누며 루르 지방에서 여러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우어바네 쿤스테 루르(Urbane Kunste Ruhr)에 디렉터로 임명된 것을 축하했다. 아무래도 조각 프로젝트 큐레이터로 활동한 것이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어쨌든, 한국작가는 없지만 35팀이 초대됐다는 조각 프로젝트 작품 사냥에 나섰다. 우선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의 주 전시장인 LWL 미술관으로 직행했다. 미술관 로비에 설치된 노라 슐츠(Nora Schultz)의 카펫과 영상작품은 건물과 강렬한 햇빛에 가려 직원에게 물어보고 나서야 찾을 수 있었다. 미술관 3층 외관 비상구를 통해서 2명만 입장할 수 있게 한 그레고르 슈나이더(Gregor Schneider)의 작품 〈N. Schmidt〉는 건축과 심리를 이용한 듯하다. 입장을 통제하는 담당자는 말이나 행동이 살짝 공포영화에 나오는 연기자와 같았다. LWL 미술관 주위에 14점이 설치되어 있는데 자전거 없이 걸어서 거뜬히 이동할 수 있었다. 보도에 형광 핑크로 작품이 있는 곳을 표시해놔 자전거든 도보든 어렵지 않게 시내 곳곳에 설치된 작품을 찾을 수 있었다. 행사용 지도 외에 앱도 마련되어 있어 방문자를 위한 배려가 읽혔다. 자전거도 조금의 사용료만 내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으며 젊은 도우미들이 다리 길이에 맞춰 안장 높이도 조절해준다.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설치된 미하엘 스미스(Michael Smith)와 아이셰 엘크만(Aye Erkmen) 그리고 오스카 투아존(Oscar Tuazon)의 〈Burn the Formwork〉의 작품을 보려면 자전거를 빌릴 수밖에 없어 땡볕에 1.5리터 물을 장착하고 나섰다. ‘Not Quite Under_Ground’라는 타이틀의 타투 서비스가 이루어지는 문신 가게에 도착하니 알고 지내던 바바라 헤스(Barbara Konches)가 반가이 맞아 준다. 그는 독일 가장 큰 주인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예술지원재단 (Kunststiftung NRW)의?현대미술 부문 수장이며 상금이 1만5000유로가 걸려 있는 ‘백남준어워드’ 또한 총괄한다. 백남준이 교수로 있던 뒤셀도르프에서 그를 기념하기 위해 제정한 상으로 독일치고는 꽤 큰 상금이 걸린 행사다. 자국민뿐만 아니라 외국인이라도 업적을 남긴 이를 기꺼히 대접하는 풍토가 그저 부러울 뿐이다. 타투를 하는 직원의 열성적인 설명을 뒤로하고 근처 도심 항구에 설치된 아이셰 엘크만의 〈On Water〉를 접하니 짧지 않은 자전거 여행에 쌓인 피로함이 싹 가신다. 물, 사람, 오리가 한 공간에서 조화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 모습을 뒤로하고 큐레이터와의 대화가 진행되는 LWL미술관으로 길을 돌렸다.
카스퍼 쾨니히를 비롯해 공동 큐레이터 두 명 그리고 홍보담당 야나 두다 씨가 참여해 질의 응답식으로 토크를 펼쳤는데 이들의 질문하고 답변하는 속도와 진지함은 독일의 토론문화를 대변하는 듯했다. 저녁 7시 미술관 베스트팔리셔 예술협회(Westfalischer Kunstverein)에서 열리는 톰 부어(Tom Burr)의 오프닝에는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외 각국에서 내로라하는 예술계 인사가 거의 다 모인 듯했다. 베혀 클라세 출신 작가 외에 주목할 사진작가 알브레히트 푹스(Albrecht Fuchs), 라우렌츠 베르게스(Laurenz? Berges), 카스퍼 쾨니히 씨의 아들이자 뉴욕에서 갤러리를 경영하는 레오 쾨니히(Leo Konig) 그리고 세계 전역에서 온 작가, 큐레이터들이 모처럼 화창한 날씨에 삼삼오오 모여 샴페인이나 예술 맥주를 즐겼다. 다리를 다쳐 휠체어에 앉은 카스퍼 쾨니히는 회복은 안중에도 없는 듯 샴페인 잔을 높이 들어 10년 만에 맞은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를 즐겼다. 참으로 독일다운 조각 프로젝트가 세계적인 행사가 된 데는 이들의 치열한 전문성과 네트워크가 그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