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예술이 예술법 개념을 바꾼다

캐슬린 김 | 미국 뉴욕주 변호사, 홍익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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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 르윗(Sol Lewitt, 1928~2007)은 1968년부터 2007년까지 1,259점의 〈월 드로잉(Wall Drawing)〉을 남겼다. 그런데 이 드로잉은 솔 르윗이 직접 그린 것이 아니다. 르윗은 작품의 구상만을 문서로 제시했고, 실제 벽에 그린 이들은 그의 고용인들이었다. 〈월 드로잉〉 시리즈에는 르윗의 서명조차 없다. 전시할 때도 직접 그린 이들의 이름만 나열할 뿐이었다. 르윗의 작품이라는 유일한 증거는 구상을 담은 문서인 ‘증명서(certificate)’뿐이었다.

“내가 관여한 이런 예술을 개념예술(conceptual art)이라고 부를 것이다. 개념예술에서는 아이디어 또는 개념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측면이 된다. 예술가가 예술의 관념적 형식을 사용한다고 할 때 이는 모든 계획과 결정이 미리 만들어지고 그 실행은 요식행위임을 의미한다. 아이디어가 예술을 만드는 기계다.” 르윗은 오늘날 개념예술의 강령이 된 ‘개념예술에 대한 단락들(Paragraphs on Conceptual Art)’(1967)이라는 글을 통해 재료의 물질성을 벗어나 형식에 관계없이 아이디어를 활성화하는 것이 개념예술의 본질이라 규정했다.

개념예술의 기원은 1910년대 마르셀 뒤샹으로 돌아간다. 뒤샹은 기존의 전통적인 예술형식을 부정하고 예술가의 관념이나 아이디어가 예술의 본질임을 표명했다. 그 유명한 〈샘〉(1914)이라는 ‘예술작품’은 시중에서 구입한 공산품 변기에 제조업체의 이름 등을 조합한 가짜 서명을 넣은 것이다. 뒤샹 이후 예술과 사물의 경계가 물리적 성질로부터 추상적 담론으로 옮겨졌다.

개념예술이 예술시장을 뒤흔들었다. 혼란스러운 것은 예술 유통업자뿐이 아니었다. 법률가들도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개념예술이 미학적, 재산적 가치가 있다면 다른 예술과 마찬가지로 법적 보호대상이 되어야만 했다. 예술 저작권법상 보호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표현성과 독창성이라는 두 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즉 아이디어가 아닌 ‘표현’이어야 하며, ‘오리지낼리티’라는 성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개념미술가들은 표현 대신 아이디어를 내세웠고, 오리지낼리티가 불분명한 예술작품을 창작해내기 시작한 것이다. 뒤샹의 〈샘〉의 경우, 최초의 ‘변기’는 사라지고 뒤샹의 ‘승인’을 받은 복제품들만 남았다. 오히려 오리지널 작품은 기계적으로 생산된 공산품이었던 데 반해 복제품들은 스티글리츠가 촬영한 뒤샹의 원본 작품사진을 토대로 수공으로 제작됐다. 개념미술가들은 예술법의 핵심 개념인 ‘원작자성 (authorship)’과 ‘진품성(authenticity)’마저 무시했다.

채프먼 켈리는 미국 시카고시의 의뢰를 받아 60여 종의 야생화로 타원형의 〈야생화 화단(Wildflower Works)〉(1984)을 설치했다. 20년 후 시카고시가 공원 정비를 위해 이 ‘작품’을 절반으로 축소하고 타원형을 직선으로 변경하려 했다. 저작인격권침해 소송이 시작됐다. 하급심은 저작권의 요건인 저작물성은 인정하되 침해는 인정하지 않았다. 항소법원은 작품의 저작물성과 오리지낼리티를 모두 부인했다. 식물은 끊임없이 스스로 변하는데 이는 자연의 섭리일 뿐 인간의 저작물이라 보기 어렵다는 논리였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항소법원은 “예술계에서 켈리의 화단을 포스트모던 개념예술로 이해한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법에는 한계가 있다. 즉 모든 개념예술에 저작권이 있는 것은 아니다”고 설시한 다음, 켈리의 작품이 “(저작권 보호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은유나 상징으로서의 조형물 또는 회화가 아니라 실제적으로의 회화나 조형물이어야 한다”고 판시한 것이다. 한마디로 개념예술을 인정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이 판결을 두고 한 예술학자는 ‘법의 프리즘’을 통해 대지예술이나 1945년 이후 대부분의 작품을 제거해버린 사태라고 평했다.

예술저작권 보호는 전통적 의미의 예술을 전제한다. 그렇다 보니 비전통적 예술 사조인 개념예술을 포섭하기는 쉽지 않다. 표현되지 않은 생각을 어떤 방식으로 특정해서 보호할 수 있겠는가. 개념예술의 핵심인 ‘아이디어’를 저작권의 보호대상으로 포섭하고 나면 ‘아이디어 – 표현 이분법’1 (아이디어는 보호할 수 없고 구체적 표현만을 보호하는 법리)이라는 저작권법상 대원칙이 무너진다. 예술법계의 흐름은 저작권법의 원칙은 지켜나가되 가능하면 해석을 통해 개념예술의 아이디어를 보호하는 쪽으로 나아간다.

핑크 플로이드 창립 멤버인 로저 월터스는 25년 만인 2017년 ‘Is this the life we really want’ 제목의 새 앨범을 발표했다. 파동이 시각예술계로 번졌다. 이탈리아 작가 에밀리오 이스그로(Emilio Isgrò)가 음반사를 상대로 저작권침해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이 작가는 텍스트에서 남기고자 하는 단어들을 제외한 모든 단어를 검은 잉크로 지워 메시지를 전달하는 ‘삭제 기법(erasure technique)’의 창작 스타일로 유명하다. 그는 로저스 앨범의 커버와 속지 등이 자신의 〈Cancellatura〉(1964)(취소, 삭제, 지우개 등을 뜻하는 이탈리아어)라는 작품을 무단으로 도용해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로저스의 앨범 역시 나머지 모든 단어를 검은색의 선을 그어 텍스트에서 지움으로써 앨범 제목인 ‘Is this the life we really want’만을 남겼다.

창작 스타일이나 기법, 화풍 등은 표현에 이르기 전의 아이디어에 해당한다. 입체파와 인상파 같은 화풍이나 스타일, 콜라주 같은 창작 기법 등을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이치다. 피소된 음반사 측의 주장도 그랬다. 이스그로의 창작 스타일은 그저 아이디어라서 저작권 침해를 구성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2017년 7월 25일 이탈리아 법원은 예술가의 창작 스타일은 단지 아이디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표현에 해당한다며 저작권법상 보호대상임을 확인하고 앨범의 판매 금지를 명령했다. “구체적인 창작적 표현이 일부 다르더라도 동일한 작품 창작 기법을 사용하였다면 아이디어를 넘어 표현에 이른 것”이라고 본 것이다. 법원은 이스그로의 작품과 앨범 표지는 한눈에 보기에도 그 표현이 동일하다고 했다.

흥미로운 것은 ‘삭제 기법’이 1924년 만 레이(Man Ray)의〈Poem Optical〉이라는 작품에서 이미 시도된 바 있다는 점이다. 이스그로도 레이로부터 영감을 받아 자신만의 삭제 기법을 개발했다. 레이가 텍스트의 모든 단어를 삭제했다면 이스그로는 특정 단어를 남겨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스그로 판결의 옹호자들은 레이와 이스그로는 아이디어는 유사하지만 표현이 완전히 다른 반면 이스그로와 로저스의 앨범은 아이디어뿐만 아니라 표현도 유사하다고 주장했다.

말콤 레인즈 〈PARNASUS〉 캔버스에 유채 100×150cm 1992

루치안 보그단 모레아 〈futuristic architecture〉 캔버스에 유채 101.6×152.4cm 2005

캐나다 작가 맬컴 레인스(Malcolm Rains)는 1991년부터 구겨진 하얀 종이를 어두운 배경에 정물처럼 대비시키는 회화작업을 해왔다. 그런데 루치안 보그단 모레아(Lucian Bogdan Molea)가 저작권침해 소송을 걸었다. 2013년 캐나다 온타리오주 법원은 “전통적인 회화 방식으로 구겨진 종이를 사실적으로 그리는 방식으로 작업하는 것은 유사한 (그리고 독특하지도 않은) 아이디어다. 그러나 두 예술가가 내세우는 창작의도가 다를 뿐 아니라 절차도 다르며 결과적으로 표현도 다르다”고 했다. 레인스가 모레아보다 앞서 아이디어를 표현했기 때문에 그리고 상업적으로 성공하고 비평가들로부터 찬사를 얻었다는 이유만으로 모레아나 다른 예술가들이 정물 형태로 구겨진 종이를 표현하는 것을 영원히 금지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도대체 아이디어와 표현의 경계는 어디쯤일까. 한 작가의 ‘연작(series)’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봐야 할까. 캐나다 소송의 두 당사자는 유사한 색채와 기법을 통해 구겨진 종이를 사실주의 정물화 형태로 그리는 연작을 생산했다. 관람자는 두 사람의 작품을 한 작가의 연작으로 충분히 오해할 만하다.캐나다 법원은 단순히 아이디어만 같은 것인지 아니면 아이디어의 표현이 실질적으로 유사한지 여부를 판단했다. 여기에 표현된 아이디어의 독창성 즉, 오리지낼리티로서의 가치가 있는지도 평가했다. 법원은 원고 측 작가의 아이디어가 “독특하지 않다”고 했다. 과거에도 구겨진 종이를 그린 정물은 분명히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럼 만약 그 아이디어가 충분히 ‘독특’했다면 오리지낼리티로서 보호받을 수 있었을까.

앙드레 지드는 “쓰여야 할 모든 이야기는 이미 다 쓰였다”고 했다. 조너선 레선 뉴욕대 교수는 “어떤 작품을 두고 원작 또는 오리지널이라고 부르는 것 열에 아홉은 참조한 대상이나 최초의 출처를 모르는 것”이라고 했다. 모든 창작물은 이전의 다른 창작물을 토대로 하여 만들어진다. 그래서 “독창성 또는 오리지낼리티는 들키지 않은 표절”(윌리엄 랠프 잉)이라고도 했다.

그렇다면 모든 독창성은 부정될 수밖에 없는 운명인가. 그렇게 된다면 예술 저작권법 개념 자체가 설자리를 잃게 된다. 저작권법은 창작을 보호하는 법이다. 창작이 곧 인류 진화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늘 그렇듯 낯설고 새로운 것들이 세상에 받아들여지고 익숙해지기까지는 혼란과 어느 정도의 시간을 동반한다. 비전통적 예술사조인 개념예술을 예술법의 보호대상으로 받아들이는 과정 또한 그러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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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879년 미국 연방대법원 판결에서 기원한 저작권법의 핵심 법리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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