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FEATURE 세계 미술현장의 새 지형도 香港
잘 키운 아트페어 하나가 가져온 홍콩 미술시장의 변화
황희경 연합뉴스 문화부 기자
홍콩 아트페어가 막 성장하던 때만 해도 사람들은 홍콩을 일러 아시아 미술시장의 허브라고 했다. 그러나 이제 홍콩은 런던과 뉴욕에 이어 세계 미술시장의 3대 허브로 자리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다. 그 중심에는 지금은 <아트바젤 홍콩>으로 이름을 바꾼 <아트 HK>가 있다.
미술 분야를 취재하면서, 그리고 홍콩에서 3년간 지내며 지켜본 <아트바젤 홍콩>의 변화는 놀라웠다. 2008년 <아트 HK>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지 불과 5년 만에 급성장했고 그 가능성과 잠재력을 지켜본 바젤 아트페어에 인수되면서 거래 금액에서나 참여 갤러리 면면, 관람객 수 등에서 세계 수준의 아트페어로 위상을 확고히 했다. <바젤 아트페어>가 1970년 설립돼 40여 년의 역사를 지닌 행사라는 점을 생각하면 채 10세도 안 된 <아트바젤 홍콩>의 성장은 대단한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아트바젤 홍콩>의 성장은 연쇄적으로 홍콩 미술시장의 확대로 이어졌다. <아트바젤 홍콩>을 전후한 기간은 ‘아트 위크art week’로 불리다가 이제는 ‘아트 먼스art month’로 불릴 정도로 각양각색의 미술 행사가 끊이지 않는다.
최근 몇 년간 홍콩에서는 <아트바젤 홍콩> 개최 기간에 맞춰 열리는 위성 아트페어가 속속 생겨났다. <아트바젤 홍콩>이 처음 열린 2013년 5월에만 아시아 컨템포러리 아트 쇼와 홍콩 컨템포러리, 스푼 아트페어 등 4개의 아트페어가 열렸다. <아트바젤 홍콩>의 높은 진입 장벽과 비싼 부스 임대료에 부담을 느낀 갤러리들은 나름대로 특색을 갖춘 위성 아트페어에 참가해 틈새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자리를 잡은 아트페어들은 이제 <아트바젤 홍콩>에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인 일정으로 개최되기도 한다.
<아트바젤 홍콩> 기간엔 경매도 풍성하게 열린다. 크리스티 홍콩 봄 경매는 <아트바젤 홍콩>을 찾는 사람들의 필수 코스가 됐고 서울옥션을 비롯해 여러 경매사도 <아트바젤> 기간을 전후해 경매를 연다. 중국 고미술품을 많이 내놓는 중국 경매사들의 프리뷰 장에서는 마치 시장처럼 출품작들이 빼곡하게 전시된 가운데 중국 컬렉터들이 발 디딜 틈 없이 붐비는 광경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아트바젤 홍콩>은 이처럼 홍콩의 미술시장 활성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홍콩에서 벌어지는 대형 미술판은 ‘그들만의 잔치’일 뿐 정작 홍콩 작가들과 홍콩 대중은 소외되고 있다는 지적도 많다.
이런 점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도 눈에 띈다. 홍콩 정부는 미술시장이 아닌 미술 전반을 키우려 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홍콩 주룽九龍 반도 서부 지역에서 진행되는 ‘웨스트 까우룽 문화지구West Kowloon Culutre District’에 들어설 ‘M+ 시각문화미술관’(이하 ‘M+미술관’)이다. 사실 웨스트 주룽 문화지구는 사업이 계속 지연되고 비용 부담이 늘어나면서 홍콩에서는 상당한 비판을 받는 사업이다. 그러나 M+미술관이 2017년 완공돼 본격적인 전시를 시작하면 사실상 제대로 된 미술관이 거의 없는 홍콩의 미술지형에 변화가 예상된다.
영국 테이트모던의 초대 관장을 지낸 라르스 니트브를 총디렉터로 영입하고 한국 출신의 큐레이터 정도련 씨를 수석큐레이터로 영입한 M+미술관은 꽤 공격적으로 컬렉션에 나서고 있다.
2012년에는 중국 현대미술에서 중요한 컬렉터로 평가되는 스위스 컬렉터 울리 지그로부터 중국 미술품 1640여 점 기부를 이끌어냈다. 그가 기부한 미술품들은 약 13억 홍콩달러 (약 1억6800만 달러)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평소 소장품을 중국에 돌려주겠다고 말했던 지그는 중국 당국의 미술품 검열을 우려해 중국 영토지만 상대적으로 독립성이 있는 홍콩에 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M+미술관은 또 중화권 ‘큰손’ 기부자들 덕분에 <아트바젤 홍콩>에서도 작품들을 사들이는 한편 홍콩 작가를 비롯한 중화권 작가 미술품은 물론 다른 아시아 지역 미술품 소장에도 적극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홍콩 화랑협회는 2013년부터 ‘갤러리 위크Gallery Week’ 행사를 시작해 아직 갤러리 방문이 문화로 자리 잡지 못한 홍콩에서 홍콩인들이 갤러리를 가까이 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고 있다. 올해 11월 26일부터 12월 5일까지 열흘간 열린 두 번째 갤러리 위크에는 50여 개의 크고 작은 갤러리가 참여해 작가와의 대화, 오픈 스튜디오, 워크숍 등 100여 개 행사를 소화했다.
과거 갤러리들이 홍콩섬의 금융 중심지인 센트럴 주변 지역에 집중됐던 것에서 벗어나 홍콩의 외곽 지역에 새롭게 둥지를 틀고 있는 점도 눈길을 끈다. 갤러리들의 이동에는 홍콩의 살인적인 도심 임대료를 견디지 못한 측면이 크긴 하지만 홍콩 작가들을 위주로 개성 있는 프로젝트를 펼치면서 홍콩의 미술판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특히 홍콩섬 동부의 차이완柴灣은 최근 홍콩의 개성 있는 미술가, 디자이너, 음악가들이 모이는 새로운 예술지구로 각광받고 있다. 옛 공장 창고를 개조해 만든 전시공간과 작업 스튜디오 등이 속속 들어서면서 일부 평론가들은 이곳이 제2의 ‘뉴욕의 첼시’가 될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