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FEATURE]도쿠멘타 14 – 그들이 ‘아테네’를 호출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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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카셀 하웁트반호프. 광장 바닥에 뚫린 통로를 통해 지금은 폐쇄된 옛 기차역 지하 전시장으로 들어갈 수 있다. 아래 Zafos Xagoraris < The Welcoming Gate > 2017 이 작품은 지하 역사 플랫폼에서 철로를 따라 외부와 연결되는 지점에 설치됐다.

그들이 ‘아테네’를 호출한 이유

이준희 | 《월간미술》 편집장

카셀 도쿠멘타의 시작은 6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5년, ‘모던아트’를 ‘퇴폐미술’로 규정하고 금지했던 과거 나치정권의 과오와 문화적 어둠에 대한 독일인의 반성과 자각에서 탄생했다. 그만큼 여느 국제전시에 비해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은 작품이 많이 출품된다. 14회 도쿠멘타 예술감독을 맡은 아담 심칙(b. 1970)은 기존 비엔날레 같은 일반적인 국제전시와는 차별화된 도쿠멘타만의 성격을 극대화시켜 보여주는데 주안점을 둔 듯하다. 폴란드 태생으로 쿤스트할레 바젤 관장을 역임한 아담 심칙이 내세운 주제는 일찌감치 알려진 대로 ‘아테네에서 배우기’. 어느 정도 예상한바 대로, 이번 도쿠멘타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은 현재 유럽이 직면한 경제, 정치, 사회, 문화적 딜레마를 드러내는데 있었다. 다시말해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 문명부터 근현대사를 지나서 현재까지 복잡하게 얽혀있는 유럽의 정치적 상황을 총체적으로 조망한 ‘시각이미지 보고서’라고 정리 할 수 있겠다.
아테네와 카셀을 과거와 현재의 경제·사회적 조건이 근본적으로 다른 도시다. 이런 두 도시의 차이는 유럽 국가의 양극화된 상황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이런 배경에서 아담 심칙 외에 7명의 협력 큐레이터와 수십 명의 어시스트가 참여한 큐레이터 팀은 아테네와 카셀 두 도시가 지닌 문화적 특성을 극대화시키고, 도시 전체를 전시장으로 활용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그만큼 이번 카셀 도쿠멘타는 어느 해 보다 많은 출품작과 다양한 퍼블릭 프로그램을 쏟아냈다.

유럽인이 바라보는 세계
《월간미술》 그랜드 아트 투어 첫 일정은 아테네였다. 6월 4일 밤늦게 아테네에 도착했다. 대충 짐을 풀고 몇 시간 잠을 자지도 못하고 조급한 마음에 다음날 아침 일찍 프레스센터를 부랴부랴 찾아 갔다. 하지만 굳게 문이 닫혀있었다. 관공서나 상점이 오전 11시가 돼서야 업무를 시작한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게다가 그날은 공휴일이어서 도시 전체가 거의 올스톱 상태. 아테네 도심 곳곳에 흩어져 있는 야외 전시부터 둘러보기로 했다. 가이드 맵 위엔 1번부터 47번까지 전시가 열리는 장소가 점으로 표기되어 있다. 빠듯한 일정에 47곳 모든 장소를 찾아가 보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 주요전시장을 사전 답사하고 아크로폴리스 아테네 신전을 방문하는 것으로 첫날 일정을 마무리했다. 다음날 1번부터 4번까지 ‘BIG 4’ 메인 전시장을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먼저 프레스 센터와 가장 가까운 1번 전시장 아테네 음악원(Athens Conservatoire). ‘Odeion’으로 불리는 이 건물이 음악과 관련된 장소다 보니 특히 악기 혹은 사운드와 어울린 작품이 눈에 많이 띄었다. 의자 같은 가구나 각종 가정용품을 악기로 만든 아날로그 조형물이 있는가하면, 신디사이저를 이용한 전위적인 음향이 곳곳에서 들려왔다. 건물 지하 고대 원형극장을 연상시키는 어두운 공연 홀에 설치된 나이지리아 작가 에메카 오그보(Emeka Ogboh) 작품이 압권이었다. 세계 주요 도시 주식시장 형황이 LED 전광판에 실시간 중계되는 가운데 레게 음악가 밥 말리의 음악이 공간을 채우는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이어서 2번 아테네 미술대학(Athens School of Fine Arts). 도시 외곽에 있어서 택시로 이동했다. 미술대학 안에 마련된 전시장 분위기는 마치 한국에서 본 〈공장미술제〉나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전시처럼 익숙하다. 시설은 열악했지만 미술대학이 풍기는 특유의 생동감으로 활력이 넘쳤다. 기존 미술관 전시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스펙터클하고 실험적인 설치작품이 특히 많았다. 이어서 3번 베나키 뮤지엄(Benaki Museum)은 그리스 고대유물을 비롯해 이슬람 문명권 소장품으로 유명한 박물관이다. 2000년 신축한 건물은 현대미술품 전시장으로서도 손색이 없었다. 전시작품은 주로 아프리카 신생국가의 민주화 내용과 유럽 제국에 의한 식민통치를 당한 제3세계 국가의 역사적 자료를 바탕으로 탈식민주의에 관한 내용이었다. 마지막으로 4번 그리스 국립현대미술관(EMST-National Museum of Contemporary Art)은 ‘BIG 4’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큰 곳이다. 입지 조건과 건축 환경이 뛰어났다. 원래 양조장이 있던 자리에 지어진 건물은 한 쪽 벽면 전체가 통유리로 마감됐고, 일직선으로 연결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4층 전시장까지 올라가면서 통유리를 통해 멀리 아크로폴리스 아테네 신전이 보인다. 개방된 이동공간과 달리 전시공간은 외부 빛이 완전 차단된 채 인공조명으로 꾸며진 화이트 큐브 전시장으로 꾸며졌다. EMST는 1960년대부터 그리스 현대미술 작품과 해외 유명작가의 작품을 컬렉션 해 왔다. 이 소장품은 카셀 도쿠멘타 메인 전시장인 카셀 프리데리치아눔 미술관에서도 전시된다. 한국작가 김수자의 작품 〈보따리〉가 그런 예다.
카셀도 도시 전역에 작품이 분산되어 전시된다. 프리데리치아눔(Fridericianum) 미술관이 카셀 도쿠멘타를 상징하는 공간이다. 1779년 영주와 귀족의 수집품을 일반에 공개하기 위해 유럽 최초의 박물관으로 건축된 이 건물은 도서관으로 사용되던 중 1941년 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의 폭격을 받아 파괴된 것을 다시 복원한 것이다. 앞서 언급한 김수자의 〈보따리〉 외에도 그리스 국립현대미술관(EMST) 컬렉션이 전시되고 있다. 한편 이번 카셀도쿠멘타 출품작 가장 두드러지게 눈에 띠는 작품은 프리드리히 광장에 설치된 대형 설치작품 〈The Parthenon of Books〉이다. 실제 파르테논 신전 규모로 지어진 이 기념비적 구조물을 만든 주인공은 아르헨티나 출신 작가 마르타 미누인(Marta Minujin, 1943). 파르테논 신전은 인류 최초로 민주주의를 실현한 아테네의 정치적 이상을 상징한다. 그리고 도서관으로 사용되던 프리데리치아눔은 35만 여권의 장서가 불에 타버린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이런 배경에서 마르타 미누인은 전 세계 고전문학 작품 가운데 정치적 이유로 금서(禁書)로 낙인찍힌 적 있는 책 10만여 권을 기증 받아 신전 외벽에 붙이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대중이 적극 참여하는 이 프로젝트는 표현의 자유를 금지하고 이해관계가 다른 저자에 대한 박해를 반대하는 이상적이고 민주적인 ‘지성의 상징물’이다. 이 밖에도 대다수 작품이 정치적 이슈를 다룬다. 난민문제를 비롯해 독재, 인권, 인종, 전쟁, 신자유주의, 종교, 테러, 성정체성, 제국주의, 탈식민지주의…. 민감한 현실적 주제를 제각기의 시각언어로 표현한 작품을 바라보는 관객의 시선은 무거울 수 밖에 없다. 이처럼 이번 카셀도쿠멘타를 통해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이기도 한 유럽(인)은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발언하고 표현했다. 물론 반성과 성찰, 미래에 대한 절망과 희망도 빠뜨리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이번 카셀도쿠멘타는 철저히 그들만의 잔치였다. 오직 유럽만 있었다. 명색이 국제규모 미술전시 임에도 참여작가와 출품작이 특정지역 국가와 작가에 편중되어 있다는 인상을 여전히 지울 수 없다. 그렇다고 푸념하거나 평가절하하려는 게 아니다. 실제 사정이 그랬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기 위함이다. 참고로 역대 카셀 도쿠멘타에 참여한 한국인 작가는 1977년 백남준과 이우환, 1998년 육근병, 그리고 2012년 문경원&전준호와 양혜규가 있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정치, 경제, 군사 등 거의 전 분야에서 세계유일의 패권국가가 되었지만, 유럽(인)이 보기에 적어도 문화와 예술에선 그들은 여전히 전통과 뿌리가 없는 대상이다. 이처럼 참여작가 리스트에 드러나는 표면적 이유가 아니라 그들이 이번 카셀 도쿠멘타에서 선보인 작품에서 주로 다루는 이슈를 보면, 여전히 유럽(인)중심 문화에 대한 자긍심이 깊이 뿌리내리고 있음이 확인된다. 한편으론 근대 이후 유럽문화의 중요한 한 축을 지탱해 온 독일은 여전히 전범국(戰犯國)이란 굴레를 벋어나지 못한 것 같다. 그럼에도 제2의 ‘팍스 로마나(Pax Romana)’를 꿈꾸는 것은 아닐까하는 예상을 조심스럽게 해본다. 그들이 지금 이 시점에서 굳이 ‘아테네’를 다시 호출해낸 저의 역시 이런 맥락으로 읽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