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FEATURE] 도쿠멘타 14 – 예술감독 선정 위원회 참가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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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셀 도쿠멘타14〉 예술감독 선정 위원회 참가 후기

김홍희│전 서울시립미술관장

2017년 〈카셀 도쿠멘타 14〉는 13회가 열린 2012년 바로 다음 해인 2013년부터 준비가 시작되었다. 그해 1월 도쿠멘타 예술감독을 선정하는 위원회(Finding Committee)를 결성하고 4월, 6월, 11월 세차례 회의를 통해 감독 선임을 마무리한 것이다. 행사 사이년도 첫해에 감독 선정을 끝내고 남은 3~4년간 기간 감독이 전시 준비에 집중하게 한, 그야말로 미술을 위한, 미술에 의한 미술 행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기간에 쫓기며 준비하고 서둘러 행사를 치르는 한국 현실에 비하면 낯설고 부러운, 문화 선진국의 일면을 보여준 모범 사례였다.
예술감독 선정위원은 Suzanne Cotter (포르투갈 포르토 The Serralves Museum of Contemporary Art 관장), Chris Dercon (당시 Tate Gallery of Modern Art 관장), Susanne Gaensheimer(프랑크푸르트 Museum fur Moderne Kunst 관장), Koyo Kouch(세네갈 다카 RAW MATERIAL COMPANY 예술감독), Joanna Mytkowska(폴란드 바르샤바 Museum for Modern Art 관장), Muhling Matthias(뮌헨 Galerie im Lenbachhaus 큐레이터), Osvaldo Sanchez(멕시코시티 inSite, Mexico-City, Mexico 예술감독 ) 그리고 당시 서울시립미술관장이던 나를 포함해 총 8인이었다.
2013년 4월19일부터 21일까지 카셀 현지에서 진행된 1차 회의에서 처음 만난 위원들은 GmbH재단 CEO인 Bernd Leifeldemfd와 Annette Kulenkampff로부터 행사관련 준비와 일정을 숙지받은 후, 14회 도쿠멘타의 방향성과 차별성에 대한 논의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아시아 대표격 위원으로 참가한 나는 탈식민주의 시각에서 아시아의 지리정치적, 미학적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번 행사가 카셀에서 열리는 비서구적, 비유럽적, 탈카셀적 도쿠멘터가 될 것을 제안했다.
2차 회의는 베니스 비엔날레가 열리던 6월 초에 개최되었다. 위원 대부분이 베니스에 들렀다 도쿠멘타 회의에 참가하는 일정이라 이번에는 교통이 편리한 프랑크푸르트에서 만났다. 마침 광주 비엔날레가 주도한 세계비엔날레대회가 베니스에서 열린 까닭에 나 역시 대회 참석 후 프랑크푸르트로 향했다. 이 회의 주요 과제는 이미 5월 위원들이 이메일로 추천, 공유하고 사전에 리서치한 후보군을 토론을 통해 좁히는 일이었다. 내가 추천한 한국과 아시아 지역 후보자를 포함해 모두 24인이 후보자 명단에 올랐지만 토론을 거쳐 6인이 선정되었다. 이 6인의 후보자는 마지막으로 열릴 11월 3차 회의 때까지 제안서를 제출하고 인터뷰를 준비해야 했다.
3차 회의는 11월 19∼22일 카셀에서 진행되었다. 19일 6인 후보에 대한 일반적 정보와 의견을 공유한 후, 20일 인터뷰를 거쳐 최후 3인을 선정하였다. 후보자들이 서로 만나지 못하도록 시차를 두고 별도 안내하는 세심한 배려가 눈에 띄었다. 당일 당선을 통보받은 3인 후보는 21일 최종 심층 인터뷰에 임했다. 이런 철저한 과정을 통해 아담 심칙 Adam Szymczyk이 14회 도쿠멘타 예술감독으로 탄생하였다. 22일 시청 도쿠멘타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GmbH 이사장인 Bertram Hilgen 시장이 인사말에 이어, 신임 예술감독을 발표했고 이어, 위원회를 대표한 Koyo Kouch가 심사평을 했다.
14회 도쿠멘타 예술감독으로 선정된 아담 심칙은 바젤의 쿤스트할레 관장이자, 다수의 유명작가 개인전과 시의성 있는 그룹전 기획을 통해 유럽 미술인들로부터 기량을 인정받은 젊은 기획자이다.
그는 이번 도쿠멘타가 2차 대전 후 폐허 속에서 일종의 문화적 절박함으로 창설된 1955년 1회 도쿠멘타의 선구적 태도를 되돌아보고 도쿠멘타가 현대 정치사회 현상에 개입하는 현장이자 용기가 될 것을 다짐했다. 도쿠멘타가 대중이나 미술시장이 요구하는 미학적 광경과 타협하지 않고 수동적 문화에 대항하고 통상적 예술개념에 도전하는 비판적 음성이 되어 절박한 현재를 기록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문화적 절박성은 단지 카셀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견지에서 그는 카셀 도쿠멘타가 다른 도시로 확장될 것을 제안하며 그 대상지로 아테네를 지목했다. 그가 말한 아테네여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고 절실했다. 지금 아테네는 폭력적 모순, 경제적 위기, 이주를 둘러싼 공포의 도시이지만 그리스의 내적 문제로만 추방될 수 없는 한줄기 희망이 필요한 극단적 모델이다. 서유럽 민주주의의 불확실성을 예증하는 그리스의 위기. 그로 인해 아테네라는 도시는 초지역적 미래를 생각하고 배우게 하는 가장 생산적인 위치로 자리매김된다는 것이다.
그가 언급하듯이, 카셀과 아테네에서 동시 개최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두 도시를 이동하게 하는 아이디어는 세상을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한 “여행의 메타포”로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개발을 위한 여행이 아니라 자의적 소외, 타자화를 위한 “표류”로서 여행이다. 그는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는 두 도시 프로젝트를 통해 병치되지 않는 2개의 그림을 그리고자 한다. 두 도시 참여 작가나 관객 모두에게 이 두 개의 그림은 경계와 차별을 붕괴시키고 변화와 변형의 세계를 경험하게 하는 문화적 촉진제가 된다. 결국 자율적인 2개의 전시가 동시에 진행되는 형식을 취한 도쿠멘타14는 긴박한 공동체 형성 과정의 살아있는 기록이자 이러한 과정을 목도하는 현대미술의 문화생산자적 역할을 촉구하는 문명비판적 전시라고 볼 수 있다.
아담의 이러한 제안은 탈서구 전시를 지향한 나의 의견과 동떨어지지 않아 개인적으로 기뻤고 무엇보다 선정위원회의 전폭적인 지지와 유럽 미술계의 호응을 받아 다행이었다. 그러나 아테네를 포함한다는 점에서 일부 카셀시민들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혀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이에 GmbH는 위원회의 지지 성명을 이끌어내고 반대자들을 설득하는 등 전방위적인 노력으로 이 난관을 무사히 넘겼는데, 주최 기관의 현명하고 진지한 초동 대처 역시 배울 점으로 주목되었다.●

위 사진 예술감독 아담 심칙을 선정한 선정위원. 왼쪽 두 번째부터 Joanna Mytkowska, Muhling Matthias, Suzanne Cotter, Susanne Gaensheimer, 김홍희, Koyo Kouoh , Osvaldo Sanche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