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FEATURE] 뮌스터 조각프로젝트 – 치열한 전문성과 네트워크가 바탕이 된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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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전문성과 네트워크가 바탕이 된 행사
최정미 | Diskurs Berlin 대표
조각 프로젝트로 유명하지만, 유서 깊은 인문학의 도시이기도 한 뮌스터로 가는 열차 안에서 ‘연착되어 간담회에 늦겠다’는 통화 내용이 들렸다. 필자도 같은 신세라 왠지 모를 동료 의식과 안도감이 들었다. 그래서 그 여성에게 뮌스터에 도착하면 기자회견에 같이 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어봤다. 그도 내 제의가 반가웠는지 자신이 택시비용을 내겠단다. 택시 안에서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분은 다름 아닌 연방문화재단(Die Kulturstiftung des Bundes) 홍보(Communication)부 수장인 프리데리케 타페-호른보스텔(Friederike Tappe-Hornbostel)이 아닌가. 참고로 연방문화재단은 국가적으로 굵직한 문화예술 관련 프로젝트만을 지원하는 곳이다. 서둘러 간담회장인 뮌스터 극장에 들어가니 국내외 기자들이 극장을 가득히 메우고 있었다. 세어 보니 대략 300명 정도는 되어 보인다. 홍보담당 야나 두다(Jana Duda) 씨의 말을 빌리면 등록은 약 600명 정도가 했단다. 잠시 후 시작된 회견장 무대에 필자와 함께 택시를 타고 온 그녀가 떡 하니 자리 잡고 앉아 조각 프로젝트에 왜 지원했는지에 대하여 설명하는 것이 아닌가. 총감독 카스퍼 쾨니히는 회견 중 자주 물병을 만지는 등 다소 산만한 모습이었지만 정작 자기 차례가 돌아오니 원고도 없이 참가자들을 웃고 박수 치게 했다. 간담회 후 공동 큐레이터인 브리타 페터(Britta Peter) 씨와 대화를 나누며 루르 지방에서 여러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우어바네 쿤스테 루르(Urbane Kunste Ruhr)에 디렉터로 임명된 것을 축하했다. 아무래도 조각 프로젝트 큐레이터로 활동한 것이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어쨌든, 한국작가는 없지만 35팀이 초대됐다는 조각 프로젝트 작품 사냥에 나섰다. 우선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의 주 전시장인 LWL 미술관으로 직행했다. 미술관 로비에 설치된 노라 슐츠(Nora Schultz)의 카펫과 영상작품은 건물과 강렬한 햇빛에 가려 직원에게 물어보고 나서야 찾을 수 있었다. 미술관 3층 외관 비상구를 통해서 2명만 입장할 수 있게 한 그레고르 슈나이더(Gregor Schneider)의 작품 〈N. Schmidt〉는 건축과 심리를 이용한 듯하다. 입장을 통제하는 담당자는 말이나 행동이 살짝 공포영화에 나오는 연기자와 같았다. LWL 미술관 주위에 14점이 설치되어 있는데 자전거 없이 걸어서 거뜬히 이동할 수 있었다. 보도에 형광 핑크로 작품이 있는 곳을 표시해놔 자전거든 도보든 어렵지 않게 시내 곳곳에 설치된 작품을 찾을 수 있었다. 행사용 지도 외에 앱도 마련되어 있어 방문자를 위한 배려가 읽혔다. 자전거도 조금의 사용료만 내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으며 젊은 도우미들이 다리 길이에 맞춰 안장 높이도 조절해준다.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설치된 미하엘 스미스(Michael Smith)와 아이셰 엘크만(Aye Erkmen) 그리고 오스카 투아존(Oscar Tuazon)의 〈Burn the Formwork〉의 작품을 보려면 자전거를 빌릴 수밖에 없어 땡볕에 1.5리터 물을 장착하고 나섰다. ‘Not Quite Under_Ground’라는 타이틀의 타투 서비스가 이루어지는 문신 가게에 도착하니 알고 지내던 바바라 헤스(Barbara Konches)가 반가이 맞아 준다. 그는 독일 가장 큰 주인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예술지원재단 (Kunststiftung NRW)의?현대미술 부문 수장이며 상금이 1만5000유로가 걸려 있는 ‘백남준어워드’ 또한 총괄한다. 백남준이 교수로 있던 뒤셀도르프에서 그를 기념하기 위해 제정한 상으로 독일치고는 꽤 큰 상금이 걸린 행사다. 자국민뿐만 아니라 외국인이라도 업적을 남긴 이를 기꺼히 대접하는 풍토가 그저 부러울 뿐이다. 타투를 하는 직원의 열성적인 설명을 뒤로하고 근처 도심 항구에 설치된 아이셰 엘크만의 〈On Water〉를 접하니 짧지 않은 자전거 여행에 쌓인 피로함이 싹 가신다. 물, 사람, 오리가 한 공간에서 조화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 모습을 뒤로하고 큐레이터와의 대화가 진행되는 LWL미술관으로 길을 돌렸다.
카스퍼 쾨니히를 비롯해 공동 큐레이터 두 명 그리고 홍보담당 야나 두다 씨가 참여해 질의 응답식으로 토크를 펼쳤는데 이들의 질문하고 답변하는 속도와 진지함은 독일의 토론문화를 대변하는 듯했다. 저녁 7시 미술관 베스트팔리셔 예술협회(Westfalischer Kunstverein)에서 열리는 톰 부어(Tom Burr)의 오프닝에는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외 각국에서 내로라하는 예술계 인사가 거의 다 모인 듯했다. 베혀 클라세 출신 작가 외에 주목할 사진작가 알브레히트 푹스(Albrecht Fuchs), 라우렌츠 베르게스(Laurenz? Berges), 카스퍼 쾨니히 씨의 아들이자 뉴욕에서 갤러리를 경영하는 레오 쾨니히(Leo Konig) 그리고 세계 전역에서 온 작가, 큐레이터들이 모처럼 화창한 날씨에 삼삼오오 모여 샴페인이나 예술 맥주를 즐겼다. 다리를 다쳐 휠체어에 앉은 카스퍼 쾨니히는 회복은 안중에도 없는 듯 샴페인 잔을 높이 들어 10년 만에 맞은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를 즐겼다. 참으로 독일다운 조각 프로젝트가 세계적인 행사가 된 데는 이들의 치열한 전문성과 네트워크가 그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