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Feature] 삼성미술관 Leeum 개관 10주년
블랙박스 속 현대미술의 교감
정연심 홍익대 교수
재난이 유난히 많이 발생한 올해, 예술이 우리 사회에 근원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플라톤이 이상국가에서 예술을 추방한 것은 어쩌면 예술이 가진 전복적인 힘, 예술이 미메시스로서 모방 차원이 아니라 ‘예술작품에서 그려진 이미지, 재현 그 자체가 현실이 될 수 있는 가능성’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렇듯, 예술은 사회에서 때때로 전복적인 힘을 가지고 충격효과를 더해서 기존의 질서에 혼란을 가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반대로 전복적인 현실, 어려운 현실을 마주한 채, 오히려 예술작품 그 자체에서 위안을 받으려 기대를 걸기도 한다. 삼성미술관 리움 개관 10주년 기념전으로 개최되는 〈교감〉은 우리 사회가 가진 여러 형태의 갈등과 충돌 속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소통’과 ‘함께함(Being-together)’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듯하다. 전시를 구성하는 상이한 미학적 요소들, 시대적 배경, 다양한 역사성과 예술성은 시대와 특정 장소를 초월하는 독특한 미적 언어로 다가온다.
특히 삼성미술관 리움의 블랙박스에 배치된 현대미술은 참여를 지향하는 현대미술의 다양한 지점들을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글로벌한 맥락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현대미술가들을 중심으로 비엔날레, 도쿠멘타 등을 통해서 이미 작품성을 인정받은 작가들인 에르네스토 네토(Ernesto Neto), 리크릿 티라바닛(Rikrit Tiravanija), 재닛 카디프와 조지 뷰어스 밀러(Janet Cardiff & George Bures Miller), 함경아, 문경원+전준호, 이세경, 아이웨이웨이(Ai Weiwei), 최정화,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 리암 길릭(Liam Gillick) 등이 이 전시에 참여한다. 이들의 작품을 함께 모아주는 요소들은 한 단어일 수 없지만, 그들의 작품을 통해서 2000년대 이후 현대미술의 동향이나 단면들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현대미술은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을 바탕으로 전개되면서, 이전의 예술과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관람자의 참여를 유도하는 인터랙션(interaction)의 증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시각예술은 이제 시각성이나 시각적인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시각적인 것을 확장하여, 인간이 가진 또 다른 감각들에 반응하거나 작용하는 예술로 나아간다. 시각적인 것을 넘어서는 보이지 않는 것, 인체를 통해서 느낄 수 있는 모든 지각에 이르기까지 현대미술가들은 시각성의 한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예술을 정의하고자 한다. 1964년 브라질 태생의 미술가인 에르네스토 네토는 리우 데 자네이루의 파르크 라즈 시각예술학교(Escola de Artes Visuais do Parque Lage)에서 수학하였는데, 그의 설치미술은 관람객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요구한다. 관람자들은 네토의 비정형적인 설치물 안으로 걸어가면서, 브라질의 원시림을 걷는듯 정향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심비오인테스튜브타임-향기는 자궁집에서 피어난다>(2010)에서, 반투명한 재질들은 조각적이면서도 건축적이고, 또 은신처처럼 따뜻하고 포근하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휴식을 취할 수도 있고, 번잡한 일상에서 잠시 떠나 명상에 취할 수도 있다. 아로마 향을 맡으면서 말이다.
전통미술을 바라보는 수동자의 위치가 아니라, 작품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원형무대 위로 직접 올라가야 한다. 니콜라 부리요가 관계미학의 대표적인 작가로 선정했던, 리크릿 티라바닛은 <데모스테이션 No.5>(2006~2014)를 통해 관람자의 적극적인 개입을 유도한다. 실제로 작가는 영감의 원천으로 회화를 삼차원적 입체 조형물처럼 전시했던 프리드리히 키슬러를 들고 있다. 관람자들은 미술관 안에 배치된 놀이터와 같은 <데모 스테이션>에서 같이 온 사람들과 담소를 나눌 수도 있고, 날씨에 대해 이야기할 수도 있다. 일종의 벤치, 혹은 공연장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다. 미술관에서 오브제는 만지지 말아야 할 대상이었던 역사가 무색하게 이제 관람자는 작품을 직접 사용하는 공간의 유저(user)가 되는 것이다.
이번 리움 전시에서 전통미술을 관람하고 내려오는 순간 발견할 수 있는 올라퍼 엘리아슨의 작품은 ‘세런디퍼티(serendipity)’이다. 실내공간에서 인공자연과 빛을 주로 다뤄온 작가(1967년생)는 덴마크 태생으로 아이슬란드에서 성장했다. 북유럽의 사회주의적인 공동체를 주장하듯, 그의 작업에는 유난히 ‘당신/당신들(you)’이라는 대명사가 많이 등장한다. 엘리아슨의 신작인 <중력의 계단>은 벽 전체를 거울로 덮어 무한한 우주 공간을 만들고, 그 위로 태양계를 상징하는 빛의 고리들이 부유하게 하였다. 그는 문화의 공간인 미술관 안에서 빛과 거울, 기계장치들을 사용함으로써, 미술관 내에 자연의 시뮬라크라를 형성한다. 천장에 비춰지는 관람자 자신과 상대방의 모습은 그 공간에서는 느껴보지 못했던 공간과 빛을 새롭게 체험하게 한다. 그는 미술관 안에 이끼, 버섯, 가짜태양 등을 설치하여 관람자들이 순간적으로 함께 할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어낸 바 있다. 그것은 지속되지 못하는 공동체이지만, 리암 길릭의 <일련의 의도된 전개>처럼 예술작품과 사물의 경계를 계속해서 얄팍하게 만들면서, 관람자들을 오브제의 향유자가 아니라 ‘설치’라는 물리적 공간의 개입자들로 존재하게 한다.
카디프(1957년생)와 밀러(1960년생)는 각자 단독 작업도 하지만, 사운드설치 협업 미술가들로 활동한다. 두 작가는 72개의 스피커를 설치하여 피아노, 첼로뿐 아니라 자연스러운 소음이나 대화 등을 사용하여 전시 공간에 아우라를 만들어낸다. F#의 음악은 다양한 스피커 아래에 설치된 센서들을 통해 관람자들의 움직임에 반응하는데, 특히 그림자는 다양한 소리를 이끌어낸다. 이 작품은 관람자 수와 위치에 따라서도 인터랙티브하게 반응한다. 그들이 모두 떠나면, 이 작품이 놓인 룸은 고요와 침묵이 흐르는 빈 방으로 바뀌게 된다. 카디프는 최근 뉴욕 메트로폴리탄의 중세분관에서 현대미술로는 처음으로 <40성부 모테트(40 Part Motet)>를 설치하여, 소리가 만들어내는 공간성을 새로운 조형요소로 실험하였다. 이러한 사운드는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소리 채집인 경우도 있지만, 종교적인 숭고함과 경건함마저 느끼게 한다.
앞서 언급한 작품들이 물리적이고 직접적인 현존성(presence)을 강조했다면, 아이웨이웨이와 문경원+전준호의 작업은 심리적이고 실존적이다. 대표적인 저항 미술가인 아이웨이웨이는 중국 남부지방에 버려진 나무들을 가져와 전통방식으로 이어 중국정원을 만들었다. 멀리서 보면 한 그루의 나무지만, 가까이서 보면 상처받고 어눌하게 이어진 나무 정원은 실제로 오늘날의 사회를 말해주는 듯하다. 문경원과 전준호의 신작 <q0>는 이번 전시의 주제에 맞춰 특별히 제작된 신작이다. 영상은 리움의 소장품인 통일신라시대의 <금은장 쌍록문 장식조개>를 소재로 이용하여, 소지섭 등이 등장하는데, 그 내용은 유물의 탄생과 역사를 가상적인 시나리오로 연결한다. 소장품과 영상작업 사이에 위치한 관람객은 타임머신을 타고 여행하는 것 같은 순간적인 아찔함을 느낄 수 있다 (이는 넓은 스크린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람자가 설 수 있는 공간이 다소 좁아서, 영상 속의 이미지와 관람자의 몰입을 온몸으로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머리카락을 이용하는 이세경은 <카펫 위에 머리카락>으로 전혀 예기치 않은 공간에 사람들이 직접 밟아서 들어올 수 있는 작품 위의 길을 만들어낸다. 함경아는 추상화가 모리스 루이스의 회화 형식을 차용하되, 인터넷 뉴스에서 가져온 문구들을 이용하여 탈추상화시키는 작업을 보여준다. 그리고 4명의 젊은 작가로 구성된 인사이트씨잉 그룹은 영상작업인 <잇!태원: 감각의 지도 프로젝트>에서 상황주의자들처럼 여기저기를 표류하며,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기억을 들추어내어 과거의 기억 지도를 재편성한다. 낯설다고 느껴지는 현대미술은 최정화의 <연금술>에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맞이하게 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봐온 플라스틱들을 이어 붙여서 만든 연금술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동아줄 같기도 하지만, 로툰다 사이에 있는 공간으로 머리를 내밀고 끝없이 긴 선을 보면 아찔한 공포를 느끼게 한다. 그에게 ‘연금술’은 일상적인 것을 예술적인 가치의 오브제로 변형시키는 일이며, 그 어떤 신비로움을 발견하는 연금술사의 비밀이 내재된 것 같다. 전통미술을 보면서 동시에 바라볼 수 있는 서도호의 <우리나라>와 고려청자 옆에 배치된 바이런 킴의 <고려청자 유약> 작품들, 그리고 지금까지 살펴본 작업들은 어려운 비평언어 속에 매몰되어버렸거나, 예술의 전복적인 은유 속에 은폐되어버렸던 예술작품의 근본적인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이러한 설치들은 작품 속 몰입과 비평적 거리두기를 적절하게 작동시키는 동시에 관람자들의 물리적 참여와 개입, 심리적 교감을 이끌어내는 원동력을 만들어낸다. <교감>전은 미술관의 공적 기능을 실천하고 있다. 또한 서구와 한국의 지리성과 시간성을 수직적인 위계 관계로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수평적인 실천, 수평적인 시선으로 접근하고 있어 2000년대 이후 한국미술의 동시대성과 역동성을 느끼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