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Feature] 삼성미술관 Leeum 개관 10주년
interview
삼성미술관 리움 학예연구실장 우혜수
“Beyond and Between은 리움의 비전을 함축적으로 표현한다”
먼저 이번 전시를 준비하느라 고생이 많았겠다. 특히 처음으로 리움 전관(全館)에 걸쳐 전시하는 것도 꽤나 부담이 컸으리라. 전시 개막 후 주위 반응이나 평가는 어떠한가?
많은 분이 리움 개관 10주년을 축하해주신다. 이번 전시는 개관 10주년 기념전시이자 첫 전관 전시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교감(交感)’이라는 주제는 이 시대의 화두이기도 하고 리움의 향후 방향 설정의 중심이 되는 것으로서 시의적절하다고 평가해주신다. 전시 면에서는 10년 만에 처음으로 상설전시실의 변화에 중점을 두었는데, 고미술과 현대미술의 교감을 시도한 고미술 상설전시실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 밖에도 국내외 작가의 신작을 준비했고, 로비 같은 공용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볼거리가 많은 전시로 준비했다. 어떤 분이 ‘종합선물세트’ 같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그분 표현대로 어릴 때 특별한 날 선물로 받았던 ‘종합선물세트’의 행복한 느낌 일거라는 생각을 하니 매우 감사하고 덩달아 기뻤다.
고미술과 현대미술을 함께 보여준 점이 특히 돋보인다. 동서고금을 아우르는 리움의 소장품 특성이 잘 드러난 것 같다. (현대미술 전공자로서) 고미술에 대한 이해나 접근 방식을 어떻게 설정했는가?
이번 전시에서 관객들로부터 가장 주목 받는 전시가 고미술 전시실, 즉 Museum 1에서 열리는 ‘시대교감’이다. 지금까지 흔히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시도라는 점에서 관객의 호응과 관심이 이어진 것으로 받아들인다. 소장품 전시실 가운데에서도 특히 고미술 소장품 전시실에서 이루어지는 시도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고미술은 그 존재 자체가 아름다움이다. 그러나 이러한 아름다움을 그 자리에 머무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시점으로 불러들여 지속적으로 새롭게 해석해내고 맥락화할 때 생명을 갖는 존재가 된다. 그런데 지금까지 고미술에 대한 연구와 해석은 미술사를 전공한 학자에 의해서만, 혹은 고미술 전시를 통해서만 이루어졌다. 반면 이번 리움에서의 시도는 고미술에 대한 작가들의 연구와 해석이다. 이것은 분명히 생동하는 가치 부여이며 유의미한 예술적 연구라고 확신한다. 많은 분이 이런 시도가 지속되면 좋겠다는 의견을 이야기해주셔서 반갑다. 그러나 그것이 쉽지는 않을 것 같다. 두 분야 큐레이터의 연구는 물론이고 현대미술 작가와도 오랜 시간 연구와 토론을 통해 작품과 전시 구성을 완성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 이번처럼 완성도 높은 전시를 다시 기획하려면 최소한 1~2년의 기간이 필요할 것이다.
‘교감(交感)’이라는 타이틀은 시기적으로나 주제를 드러내는 면에서도 적절한 것 같다. 영문으로는 ‘Beyond and Between’이라고 표기하는데, 타이틀에 대한 부연 설명을 부탁한다.
교감, 소통, 공감 등은 우리 사회의 화두이다. 이것은 예술과 사람이 함께 하는 미술관에서도 중요한 주제이다. 특히 한국의 고미술과 현대미술, 외국 현대미술을 아우르는 리움의 소장품은 전통과 현대의 단절 문제, 동양과 서양의 복잡한 관계 등을 복합적으로 담고 있다. 전통과 현대의 시대적 간극을 뛰어넘는 교감, 현대미술에서 한국과 서양이라는 지역을 초월한 교감을 통해 예술 간의 단절을 극복해 보고자 했다. 그리고 리움이라는 미술관이 관람객에게 더욱 가까운 도심의 휴식처가 되고자 하는 바람을 관객교감이라는 주제에 담고자 했는데, 이 세 교감은 미술관이 중점을 두게 될 미래를 담는 것이기도 하다. 영어로 Beyond and Between은 많은 의미를 담기 위해 다소 의역한 면이 있다. Beyond는 경계를 초월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Between은 예술과 사람, 과거와 현재, 예술과 과학 등 다양한 가치들을 포괄하고 예술로서 매개하고자 하는 뜻을 갖고 있다. Beyond and Between은 미술관의 슬로건이기도 한데, 리움의 비전을 함축적으로 표현한다.
소장품 외에 이번 전시를 위해 제작된 신작 혹은 특히 눈여겨볼 작품을 소개해달라.
<교감전>에는 리움 소장품뿐만 아니라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로이 제작된 작품이 여럿 있다. 특히 로비의 작품들은 미술관을 방문하는 사람 누구나 볼 수 있는 공용공간에 설치되어 누구나 가까이 접할 수 있다. Museum 1 계단 공간에 설치된 올라퍼 엘리아슨의 네온 설치, 플라스틱 바구니로 만든 최정화의 18미터 높이의 기념비적 기둥, 카페 공간을 변화시킨 리암 길릭의 벽 설치작업과 파티션은 모두 리움 공간을 면밀히 관찰, 분석하고 주제에 대한 오랜 고민 끝에 나온 신작이다. 특히 올라퍼 엘리아슨의 작품은 고미술 상설전시실과 현대미술 상설전시실을 연결하는 계단에 위치하는데, 이 공간은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사실 외국 작가가 이 공간의 의미를 해석해내는 것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었을 것이다. 특히, 고미술관을 나오면서 마주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많은 고려가 있었다. 오랜 기간 작가와 논의해 우리는 태양계 우주공간을 창조하게 되었다. 이것은 우주라는 영원한 시간과 공간을 표현한 것으로 인류와 예술이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해 영속할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고미술 상설전시실과 현대미술 상설전시실을 연결하는 상징적 의미다. 로비에서 관람객을 맞이하는 고헤이 나와의 유리구슬로 뒤덮인 사슴도 매우 아름답다.
‘관객교감’이라는 주제가 눈에 띄는데 기획의도를 좀 더 자세히 설명해달라.
관객교감이라는 주제는 세 관의 주제를 하나의 주제 아래 놓고 볼 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까지 우리에게 미술관은 어렵고 엄숙한 듯 보이며, 특히 현대미술은 난해하다. 대중에게 미술이 어떻게 하면 흥미롭고 즐거우며 가끔은 단순하게 몸을 움직여 걸어 다니기만 해도 즐길 수 있는 곳이 될 수 있을지 생각하면서 관객교감이라는 주제를 설정하고 구성했다. 네토는 자칫 현대미술이 간과하기 쉬운 아름다움, 즐거움, 휴식 등과 같은 요소들을 우리에게 선사하는 작가로 이해되며, 티라바닛은 예술작품의 역할과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관점의 변화를 일관되게 추구해 온 작가이다. 재닛 카디프 & 조지 뷰어스 밀러의 작품은 눈에 보이지 않는 소리를 통한 공간 창조를 성공적으로 이루어 온 작가이다. 그리고 인사이트씨잉은 이번 전시에서 가장 젊은 작가들이다. 리움이 이태원에 자리 잡은 이래 이 지역은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그것은 예술이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에 대한 하나의 답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리움과 이태원은 알게 모르게 소통하며 서로를 변화시켜왔다고 보며, 작가들이 이태원을 연구함으로써 리움과 개인을, 나아가 예술이 사회와 세계를 매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함께 작업을 하게 되었다. 작품을 감상하는 데는 여러 방법이 있을 것이다. 표면적인 흥미로 작품을 즐기는 것도 충분히 좋고, 그 이면에 자리 잡은 맥락들을 해석해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이는 모두 보는 사람의 몫이다. 아는 만큼, 보이는 대로 즐길 수 있으면 되는 것 아닐까?
삼성미술관 학예사들에게도 이번 전시는 새로운 경험이자 도전이었을 듯싶다. 전시를 준비하며 고미술과 현대미술 전공-담당 학예사 간의 의견 조율은 어떻게 했나. 혹시 이견은 없었는가?
리움의 고미술 학예실과 현대미술 학예실이 통합된 지도 이제 6년이 넘었다. 리움 개관 이전 오랫동안 서울과 용인이라는 물리적 거리를 두고 있었던 두 학예실이 통합된 후 같은 공간에서 일하고 늘 가까이 대화한다. 또한 정기적으로 회의를 통해 의견을 나누고 전시에 대해 토의한다. 처음 ‘교감’과 ‘시대교감’이라는 주제를 논의하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그간 많은 것을 놓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004년 리움이 개관할 당시 고미술 학예실과 현대미술 학예실은 ‘고미술 상설전시실은 조선말기까지, 현대미술 상설전시실은 그 이후부터’라는 시기 구분 외에는 함께 논의한 것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내고 서로 놀랐다. 고미술 전시실은 고미술 작품의 크기를 고려한 전시실의 형태와 작품 보호를 위한 고정된 진열장으로 인해 장르 간의 교류나 전시 실간 교체 등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도 큰 제약이었다. 또한 현대미술과의 표피적인 교류가 되지 않기 위해 현대미술 큐레이터뿐만 아니라 작가들도 고미술을 충분히 이해한 상태에서 작품이 나오기를 서로 원했고, 따라서 오랜 기간 학예사들 간에 주제와 작가 선정을 위한 토론, 고미술/현대미술 학예사와 작가의 토의를 거쳐 작품이 완성되기에 이르렀다. 길고 어려운 과정이었지만 의미 있고 뿌듯한 일이었다.
리움 전시실의 전시환경은 국내 최고수준이다. 소장품을 보존 관리하는 수장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평소 소장품 관리와 연구는 어떻게 이뤄지는가?
미술관의 근간은 소장품이다. 리움은 사립기관으로는 드물게 보존연구실이 있는 미술관으로 늘 소장품을 최상의 상태로 관리, 보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예를 들면, 이번에 상설전시에 처음 나온 박노수의 <산정도>는 오랜 기간 복원처리를 통해 공개될 수 있었다. 상대적으로 오래된 고미술, 근대미술의 보존과 복원이 매우 중요하다. 또한 레지스트라는 작품에 대한 정보를 빠짐없이 관리한다. 크기, 서명, 재질 등은 물론이고, 이동에 대한 세세한 기록도 놓치지 않는다. 이러한 일은 작품을 소장한 미술관의 기본적 활동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것임을 늘 생각한다. 학예사들은 소장품으로 구성되는 상설전시를 위해 각각의 소장품을 늘 연구하며 또 그 작품들의 맥락화를 염두에 두고 있다. 특히 리움처럼 한국 고미술, 현대미술, 외국 현대미술에 이르는 방대한 소장품을 가진 미술관에서는 전체를 바라보는 시각이 중요하다. 이번 10주년 기념전은 오랜 기간 소장품 연구의 축적으로 맺은 열매이다. 앞으로도 깊이 있는 연구를 통해 새로운 소장품 전시들을 기획할 계획이다.
개관 10주년 기념전 이후 계획하고 있는 일정이 있다면 소개 바란다.
올 연말까지 <교감전>이 열리고, 내년 상반기에 작가 양혜규의 개인전이 예정되어 있다. 2015년은 삼성문화재단이 창립 50주년을 맞는 해다. 이를 기념해 삼성미술관의 근간이 되었던 고미술 분야를 중심으로 다루고자 한다. 호암미술관과 리움에서 기획하는 2개의 고미술 특별전이 있고, 연이어 한국 고건축을 다루는 전시가 리움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또한 올해 새로이 개편한 아트스펙트럼도 지속하면서 젊은 작가들을 지원하는 등 시대와 지역, 장르를 초월하여 다양한 분야와 중요한 문화적 가치를 아우르는 전시들을 기획하고자 한다.
이준희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