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FEATURE 이슬람 현대미술의 현주소

TR.16402

미트라 타브리치안(Mitra Tabrizian) 〈테헤란 2006년(Tehran 2006)〉(5/5) 라이트젯 C-타입 인쇄 © Mitra Tabrizian © 2014 Museum Associates / Los Angeles Country Museum of Art. (위)아미르 무사비(Amir Mousavi) <잃어버린 원더랜드> 시리즈 중에서<무제, 제8번>(1/5) 광택 사진 인화지 © Amir Mousavi. Photo © 2014 Museum Associates / Los Angeles Country Museum of Art

박진아 미술사

“인간의 두뇌는 (통합이 아닌) 임의적으로 가르고 나눔으로써 세계를 이해한다”고 독일의 철학가 아르투르 쇼펜하우어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Die Welt als Wille und Vorstellung》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글로벌리즘이 정점에 도달해 승승장구하는 21세기는 지역 문화도 지정학적 구분에 따라 브랜딩하고 상품화하는 시대다. 언제부터인가 현대미술계와 미술시장은 ‘이슬람미술’ 또는 ‘아랍미술’이라는 종교적 배경이나 역사적 의미가 함축된 명칭들 대신에 ‘중동미술’이라는 한결 중립적이고 정화된 이름으로 쇄신하고 현대 시각 미술 트렌드를 마케팅하며 21세기 글로벌 문화지도를 재서술하고 있다.
전 세계 미술계가 별안간 아랍권 미술에 관심의 촉수를 세우게 된 계기는 실은 중동 지역이 대중매체를 통해 국제 시사 관심사로 떠오르면서부터였다. Y2K 밀레니엄 버그에 대한 공포가 괜한 우려로 마감되며 21세기가 기지개를 켠 직후 2001년, 뉴욕 9・11 테러를 시발로 중동 지역은 이슬람 종교의 과격화, 종파 간 분열과 내전, 정권교체 등의 소식으로 국제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일찍이 1970년대부터 시작된 레바논 내전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발발한 이라크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 이란의 녹색혁명, 알제리에서 촉발해 이집트를 거쳐 북아프리카 도처로 번진 이른바 아랍의 봄Arab Spring 민주화운동, 리비아 전 그리고 최근의 시리아 내전에 이르기까지 글로벌리제이션Globalization이라는 무대를 배경으로 아랍권의 많은 나라가 글로컬 위기에 처해 있다.

중동권 현대미술 시장을 선도하는 새 주소
아랍권 이웃 국가들과 형제들이 전쟁, 소요, 트라우마로 신음하는 사이에 아랍에미리트UAE와 카타르 등 걸프 토호국의 부유한 형제들은 산유産油경제로 축적한 막강의 국부펀드와 세계 최대 국내총생산GDP을 자랑하는 신흥 초부유국으로 떠올라 경제다각화 기치 아래 초호화 부동산 개발과 관광 및 소비 서비스 산업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었다.
막강한 부에 못지않게 걸프국들은 빠른 시일 내에 국제적인 문화도시로 발돋움하겠다는 야심을 갖고 있다. 카타르는 2008년 말 수도 도하에 고故 사우드 알 타니 왕자가 수집한 방대한 전통 이슬람미술 컬렉션(현 감정가격 약 16억 달러어치)을 기반으로 이슬람 박물관을 개관했다.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에서는 사디얏 문화구역에 루브르 박물관과 구겐하임 미술관 아부다비 분관이 각각 장 누벨과 프랭크 게리 두명의 스타 건축가의 설계로 2015년과 2017년 개관을 앞두고 있고, 이웃 두바이는 현재 30여 사설화랑이 각축하며 연간 3편의 현대미술페어를 주관하는 중동권 미술시장의 중심도시로 급부상했다. 아랍에미리트의 제3도시 샤르자만은 1993년 〈샤르자 현대미술 비엔날레〉를 설립해 비상업적 입장에서 중동 및 걸프권 미술계의 담론을 이끌고 있다.
그 결과 걸프국 신흥 도시들은 명실 공히 초현대식의 기상천외한 마천루로 빼곡한 도심 스카이라인과 호화 숙박 및 소비시설이 갖춰진 관광 목적지로서만 아니라 일년 내내 현대 비엔날레와 박람회 등 세간의 이목을 끄는 행사들이 번갈아 열리며 뉴욕, 런던, 마이애미에 다음가는 국제미술시장의 허브가 되었다. 크리스티 경매소가 2006년 두바이에서 중동현대미술 경매를 성공적으로 마치자, 2008년 소더비 경매소가 뒤따라 도하에 아랍/이란/터키 현대미술 경매실을 열었다. 중동 미술붐을 간파한 사치갤러리는 2009년 런던에서 〈새로운 중동 미술 베일을 벗다전〉(2009.1.30~5.9)을 열어 중동 현대미술 시장 붐을 거들었다. 최근 이곳의 현대미술 페어에는 보다 큰 시장을 찾아 중동지역에서 온 화랑들 외에도 가고시안, L&M Arts, 페이스빌덴스타인 등 국제적 메가급 화랑들도 정기적으로 참여해 피카소, 워홀, 베이컨의 20세기 블루칩 작품들을 장에 내놓고 이곳의 부유한 컬렉터들을 유혹한다.

걸프 익스프레스의 양지와 그늘
급히 먹는 밥은 체한다고 했다. 막대한 액수의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미술을 매개로 삼아 단기간에 글로벌 문화지도에 새 발자취를 남기겠다는 걸프왕국들의 노력은 분명 야심차지만 후유증도 있다. 방글라데시 태생의 문필가 슈몬 바사르Shumon Basar는 중동지역 현대미술계가 자칫 졸부의 자기망상심리를 자극해 오일머니에 눈이 먼 서구 미술시장 세력의 포로로 전락할 수 있음을 경고했다. 창조활동을 하는 미술인들 또한 급가열된 중동권 현대미술시장의 시류에 휩쓸려 외형만 서구적 무늬를 흉내 내고 내용은 공허하거나 무의미한 작품을 양산하는 데 그치기 쉽다. 영국 월간지 《아트뉴스페이퍼Artnewspaper》의 아나 소머스 콕스 편집장은 2009년 7/8월호 논평에서 돈과 명성을 찾아 이 신개척지로 몰려온 구미권 큐레이터, 평론가, 경매소, 아트딜러, 미술관 기관들이 서구중심적 시각으로 중동의 ‘현대contemporary’ 미술을 임의로 규정하고 서구적 구미에 맞는 중동권 미술가나 작품을 편애・편식하며 연약한 중동 미술계를 식민화하지나 않을까 우려했다.
실제로 미술대학에 진학하고 유럽과 미국으로 건너가 공부하고 돌아온 걸프국의 젊고 부유한 인재들은 이른바 ‘에미라티 자아정체성’ 부재를 앓고 있다. 신세대 에미라티 미술가들에게 1960~1970년대 플럭서스 운동의 영향을 받은 개념주의 선구자 하싼 샤리프Hassan Sharif가 유일한 근현대 미술계 선배로 본받을 만한 롤모델이다. 에미라티 자아정체성 부여라는 취지로 2009년 아부다비에서는 에미리트 궁전에서 〈에미라티 표현전〉(2009.1.20~4.16)이 기획돼 제2세대 UAE 출신 작가 6명의 작품을 소개하고 UAE에도 국제미술계에 자랑스럽게 내보일 수 있는 현대미술가가 존재함을 선언했다. 같은 시기 두바이에서는 사설 화랑인 엘레멘타 갤러리가 〈리-소스Re-Source전〉을 열어 UAE의 신인 미술인 10명을 소개했지만 대체로 2009년 봄 〈샤르자비엔날레〉에서 발굴된 작가들을 다시 보여주는데 그쳐 아쉬움을 남겼다.
현대미술 면에서 실질적인 미술 프로덕션은 ‘메나MENA: Middle Eastern Northern Africa’로 불리는 이란, 터키, 북아프리카 등 옛 아랍 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유구한 역사를 거쳐온 메나권 미술인들은 자기정체성 모색이나 구축으로 고뇌하기보다는 거친 현실 속에서 미술가의 정당한 역할을 하고 싶어한다. 근현대 아랍권 미술계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이 벌어지고 있는 이란에서 현대미술은 대체로 전통적인 회화와 조각 위주로 ‘침착하고 단조로우며 내면지향적’인 경향을 띠나 미술가란 현실 도피를 일삼는 순진무구한 몽상가가 아니라 어떤 상황 속에서도 사회 참여를 멈추지 않는 현실참여적 직업인이다.
1979년 이란 혁명의 영향으로 지금도 이란에는 신식민주의와 페미니즘이 주축이 된 좌파 경도 성향 미술인들의 활동이 눈에 띤다. 이슬람교 규율이 일상과 공공활동을 지배함에도 불구하고 이란에서는 대중 차원의 미술 감상이 정책적으로 장려되고 있어 문화향유에 관심 많은 중산층의 주도로 현재 테헤란에는 50여 군데의 사설 미술화랑이 성업 중이다. 이란의 현대미술계는 종교적 제약을 피해가면서 창조활동을 멈추지 않고 있는데, 그렇다 보니 화랑 주인들과 전시기획자들은 전시 허가를 받기 전 이슬람교계도부의 검열을 거쳐 최종전시까지 미세조정하며 타협하는 관행에 능숙하다. 그렇다고 이를 피하기 위해 서구 미술시장에 휩쓸리지 않으려는 자의식이 강한 것도 특징이다.
구미권 현대미술 시장에서 찾는 ‘아랍다움’이라는 개념에 가장 강렬히 저항하는 주체도 이란 미술계다. 현재 중동의 현대미술에 대해 논평하고 작가를 발굴하는 평론가나 큐레이터들은 아랍 혹은 이슬람권 문화의 윤리적 가치관, 정치, 사회, 문화적 코드를 부여해 서구적 시각에서 해석하고 중동 현대미술이라는 정형화된 틀에 넣어 집단적으로 규정하는데 이란 미술계는 이에 대해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가 지칭한 ‘오리엔탈리즘’이라 비판한다. 예컨대 이란의 미술계 인사들은 아랍문화 속 여성문제를 부각시켜 서구 미술계에서 호평받는 망명작가 쉬린 네샤트Shirin Neshat의 사진은 서구중심 오리엔탈리즘에 편승한 ‘자기이국화Self-Excoticism’라 본다.
그런가 하면 터키의 현대미술계는 한결 서구친화적인 입장이다. 근대가 도래하기 이전까지 600여 년을 지배한 오스만 제국의 후신이나 1920년대 아타튀르크의 근대화 이후 현재까지 터키의 국민은 종교와 정치가 분리된 근대적 개념의 세속적 민주주의를 누리고 있다. 유럽연합EU의 정식 가입국이 될 비전을 안고 일찍이 1987년부터 이스탄불비엔날레 재단을 발족하는 등 문화 인프라 개발에도 앞섰으나 결국 EU의 정식 가입은 현실화되지 않았다. 게다가 이슬람 신도 수의 급속한 증가와 친이슬람교 성향의 에르도안 총리가 집권한 후로 현재 터키는 사회문화적으로 점점 이슬람화하는 추세다.
세속주의 원칙에 익숙한 터키 국민과 미술인들은 이슬람화가 자유로운 예술 표현과 자유방임적 미술시장 정착을 방해하고 있다고 불평한다. 실제로 <이스탄불비엔날레>를 비롯해서, 호화 사교클럽과 화랑들이 응집한 베요글루 화랑가와 <컨템포러리 이스탄불> <아트인터내셔널 이스탄불> 아트페어 조직위원회는 이슬람교 정서에 거슬리는 표현이나 논조가 담긴 작품은 전시하지 말 것과 작품 가격 경쟁을 과열시키지 말라는 정부의 당부 혹은 압력을 받고 있다. 터키의 미술인과 화랑계 인사들은 ‘조국에 표현의 자유가 없다면 이민 간다’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터키가 유럽과 가깝다는 지리적 이점도 있지만 이주・이민이 쉬워진 글로벌 시대에 노마디즘과 임시변통에 능숙한 미술가들은 창조의 자유가 보장된 곳으로 떠날 준비가 돼 있다는 뜻일테다.

그들만의 시각적 아이덴티티를 찾아서
아랍권 현대미술 큐레이터 잭 페르세키언 Jack Persekian은 오늘날 전 세계 곳곳으로 망명 또는 이민을 가 예술활동을 하는 아랍인이 유독 많아진 원인을 1960년대 불거진 범아랍주의운동의 실패에서 찾는다. 과거 이슬람권 지역을 세속주의 사회주의로 이끌어 근대화를 꾀했던 이집트 정치가 가말 압델-나세르의 계획은 결국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반발로 좌절됐다. 그래선지 이 지역의 현대미술인들은 ‘시대의 목격자’ 역할을 자처하며 주로 사진, 비디오, 설치 등 뉴미디어를 통해 상실, 실패, 실망의 정서가 서린 기록성 강한 작업을 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레바논 출신의 사진가 커플인 하지토마스와 조레지Joana Hadjithomas & Khalil Joreige는 15년 넘는 내전 끝에 살아남은 자들과 유령들이 공존하며 폐허 속에서 서성이는 고국 레바논의 현실을 기록한다. 이집트 출신의 설치미술가 할라 엘쿠시Hala Elkoussy는 옛 북아프리카 아랍인들의 사라지고 잊힌 공동체에 대한 향수와 아쉬움을 표현한다. 시리아의 흐레르 사르키시언Hrair Sarkissian 역시 황량하고 건조한 사막을 배경으로 짓다말고 방치된 건축 현장을 서늘한 분위기의 컬러사진으로 담아 성장 정지당한 시리아 사회를 은유한다.
고대부터 19세기까지 유럽 역사와 운명을 함께한 북아프리카에서는 제도적인 차원에서, 특히 뉴미디어가 주가된 현대미술을 장려하는 추세다. 튀니지에서는 2011년에 인터넷상으로 <가상 비판미술전>을 시도하는 한편, 라메종디마주La maison d’image Tunis 연구소를 운영하는 등 오늘날 북아프리카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비판성 강한 미술이 전개되고 있다. 모로코는 2005년부터 무함마드 6세 국왕의 후원으로 <마라케시비엔날레>가 열리며, 최근에는 뉴 포토 뮤지엄과 트란캇 아트스페이스가 개장했다. 2014년부턴 <디지털 마라케시 페스티벌>이 열릴 계획이다. 알제리는 알제리 근현대미술관에서 국제현대미술페스티벌을 발족해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있고, 말리도 2009년 <바막 사진비엔날레>를 설립해 북아프리카 현대사진과 비디오 예술 육성을 꾀하고 있다. 통치자나 이슬람교에 대한 비판은 법적으로 금지돼 표현의 자유 면에서는 제약이 있지만, 대다수 미술인은 이 대륙이 처한 보다 긴급한 문제들—경제, 관광산업, 후기 식민주의, 이민과 글로벌리즘 그리고 그 속의 자기정체성—을 미술로 논하기에도 바쁘다.
여전히 유럽 현대미술계는 서구적 컨셉추얼리즘과 아랍적 이그조티시즘이 적절히 조합된 현대 작가들에게 주목한다. 2007-2008년 보스턴 ICA 레지던시, 2009년 사치갤러리 전시, 2010년 퐁피두 전시를 통해서 소개된 알제리계 프랑스인 카더 아티아Kader Attia는 유럽과 북아프리카 문화라는 두 의자 사이를 오가며 논평하는 설치작품으로 구미 일급 화랑들과 현대미술 컬렉터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팔레스타인 혈통이면서 레바논인임을 강조하는 설치작가 모나 하툼Mona Hatoum도 서구와 아랍 사이 문화적 차이를 개념주의로 전환시킨 작품으로 주류 미술계와 시장에서 인정받고 있다. 이집트 태생인 와엘 샤우키Wael Shawky는 유럽 꼭두각시 인형으로 퍼포먼스나 설치작업을 해 글로벌 시대 종교 대 정치, 유럽 대 이슬람 세계의 대립에서 빚어진 과거사와 갈등상을 이야기로 푸는 작업을 하며, 모로코 출신의 이토 바라다Yto Barrada는 유럽으로의 불법 이민을 꿈꾸는 북아프리카인의 삶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기록해 서구가 주도한 글로벌화 프로젝트의 실패상을 지적한다.
두말 할 것 없이 현재 중동권 현대미술은 국제 미술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일본 도쿄 모리미술관은 <아랍 익스프레스전>(2012.6.16~2012.10.28)을 기획해 일본인에게 최신 현대아랍미술을 소개했다. 특히 2013년 베니스비엔날레서 UAE관이 처음 개설된 이후로 중동권 현대미술에 대한 미국의 관심도 커져서, 보스턴 파인아츠미술관은 〈이야기하는 여자전〉(2013.8.27~2014.1.12)을, 뉴욕 뉴뮤지엄은 〈여기와 다른 곳전〉
(2014.7.16~9.2)을 열었고, 현재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박물관에서도 〈이슬람 현대미술전〉이 올 2월부터 폐막일 없이 계속된다. 로스앤젤레스의 이 오픈엔드 전시가 시사하듯, 중동 현대미술의 추진적 기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

모로코 출신의 모하메드 엘 바즈(Mohamed El Baz) 〈밤일주(La ronde de nuit)〉 2014 © Photo: Mohamed El Baz. Courtesy of Institut du Monde Arabe. Le Maroc Contemporain

모로코 출신의 모하메드 엘 바즈(Mohamed El Baz) 〈밤일주(La ronde de nuit)〉 2014 © Photo: Mohamed El Baz. Courtesy of Institut du Monde Arabe. Le Maroc Contempo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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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rt
프로젝트 비아 아랍에미리트 자유리서치 참여

아랍에미리트의 미술현장

IMG_4295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와 아부다비에서는 3월과 11월에 각각 아트 두바이와 아부다비 아트페어가 열리고, 샤르자에서는 1993년부터 시작해 올해로 12회를 맞는 샤르자비엔날레가 개최된다. 이와 더불어 ‘문화예술의 섬’을 목표로 아부다비의 사디야트 섬에서 대대적으로 진행 중인 미술관 프로젝트는 장 누벨이 설계한 루브르 아부다비와 프랭크 게리의 구겐하임 아부다비, 노먼 포스터의 자이드 국립박물관과 자하 하디드, 안도 다다오의 퍼포밍 아트센터와 해양박물관을 포함한다.
아부다비의 거대한 미술관 프로젝트 기획이 예술특구지역 구축에 있다면, 두바이에는 이미 많지는 않지만 당대미술을 전시하는 갤러리들이 모여 있는 지역이 형성됐다. DIFC 게이트 빌리지와 알 쿠오즈(Al Quoz) 지역의 알세르칼 애비뉴(Alserkal Avenue)가 그곳으로 10여 개의 갤러리가 모여 있는 DIFC 게이트에는 중동지역 작가들을 중심으로 한 기획전시를 선보이는 아트 사와(Art Sawa), 아얌 갤러리(Ayyam Gallery), 쿠아드로 파인 아트 갤러리(Cuadro Fine Art Gallery) 등과 같은 국내 갤러리들과 크리스티 두바이 사무실과 오페라 갤러리가 있다. 알세르칼 애비뉴가 위치한 알 쿠오즈는 원래 공단지역으로 이곳의 갤러리들은 빈 창고 건물들을 손봐서 전시공간으로 쓰고 있는데, 물론 그 수나 규모는 훨씬 작지만 뉴욕의 첼시나 베이징의 다산쯔를 연상시킨다. 알세르칼 애비뉴에는 아얌갤러리, 카본 12, 갤러리 IVDE(Gallery Isabelle Van Den Eynde), 그린 아트갤러리(Green Art Gallery), 그레이 노이즈(Grey Noise), 로리 샤비비(Lawrie Shabibi) 등 15개의 갤러리가 모여 있으며 인근의 모타헤단 프로젝트 등을 포함하여 30개 정도이다. 이 지역의 갤러리들이 두바이 또는 아랍에미리트에서 컨템포러리 아트 갤러리를 대표하는 공간이자 아부다비 아트나 아트 두바이는 물론 아트 바젤, 프리즈, 아모리 쇼 등의 국제적인 아트페어에 참가하여 아랍에미리트 및 중동권 작가들을 소개하고 지원한다.
샤르자 예술재단의 새로운 전시 공간은 샤르자 헤리티지 지역(Sharjah Heritage Area) 옛 건물을 훼손하지 않고 이미지에 거스름 없이 과거와 현재, 전통과 현대가 함께하는 모습이다. 샤르자 예술재단은 여러 예술 활동의 기회를 만들고 국내외의 협력과 교류를 추진함으로써 페르시아만 지역의 예술적 환경을 부흥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샤르자비엔날레> 개최뿐만 아니라 다양한 전시와 연계한 이벤트, 교육프로그램, 레지던시 프로그램 외에 해마다 작가와 큐레이터 등 예술계 전문가들이 모여 아이디어와 네트워크를 다지는 3월 미팅(March Meeting)과 같은 프로그램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송희정 PNCO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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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아부다비 아트 레지던시 참가

아부다비의 환대

사막_도로시경기도창작스튜디오에 있을 무렵 뭔가 새로운 곳을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는데, 김현정 학예사의 제안으로 한 아트레지던시 공모에 응하게 되었고 10월에 아부다비 아트 레지던시에 참여하게 되었다. 런던 유학시절 두바이를 경유하는 노선 비행기 표 가격이 경제적이어서 가끔 두바이를 경유한 적이 있었지만, 아부다비는 2013년 그때 처음으로 가게 된 것이었다. 나는 아부다비가 아랍연합국가(UAE)에 수도인 것도 그때 알았다.
아부다비에 도착했을 때 이미 4명의 한국작가가 더 있었다. 매달 각 나라를 정해서 그 나라의 작가들을 초대하는 식의 레지던스 프로그램이었다. 도착한 다음 날은 금요일이라 (무슬림 국가에서 금요일이 일요일과 같아서 그날은 종교적으로 휴일이다) 쉬고 토요일부터 본격적으로 관광을 하기 시작했다. 레지던시 기간은 한 달이었다. 처음 일주일은 아랍문화를 알 수 있을 법한 토속미술관이라던가 아랍현대미술관 등을 보여주고 사막도 체험하게 해주고, 그 다음주부터는 영감을 받아 작품을 만들게 하는 식이었다.(특별히 아랍문화에 대한 미술작품을 할 필요는 없었다.) 이전에도 해외로 레지던시를 다녀본 적은 있지만 이처럼 관광과 음식, 그 나라 문화체험 등을 시켜주는 프로그램은 드물었다. 참 특이한 레지던시 프로그램이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도 외국에서 사람이 오면 한국문화를 못 보여줘서 안달이고 손님이 오면 환대하는데 아랍문화도 약간 우리나라와 비슷하다고 느꼈다.
또한, 무슬림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는데, 사막의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온 점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그 척박한 땅에서 석유가 나고 지금 부유하게 살고 있는 것을 모두 그들이 모시는 신이 주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재미있었던 것은 K-pop이 유명해서 그런지 한국말도 잘하고 한국문화에 관심을 가진, 아랍 젊은이가 생각보다 많다는 점이었다. 거기서 만난 정말 아름다운 소녀가 한국에서 작가가 왔다는 말을 듣고 와서 하루 종일 자기 차를 몰고 관광을 시켜주었다. 그 당시 시청률이 높았던 소지섭 주연 드라마에 대해서 한국말로 또박또박 이야기를 하는데 한국 연예인들의 스캔들을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어서 놀랐다. 하여간, 그녀와 그녀의 친구들을 사진으로 찍고 싶어서 4명에게 모델 제안을 했더니 그녀들은 모델이 너무너무 하고 싶지만, 아직 시집을 안간 처녀인지라 집에서 부모님이 사진 모델로 찍히는 것을 결사반대한다고 했다. 그래도 전시 오픈에 꽃과 선물을 챙겨서 와주었다. 정이 많은 사람들이라 느꼈다. 이렇게 추운 겨울날이면 가끔 그때 따스했던 아부다비의 사막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도로시엠윤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