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FEATURE 표류하는 국립현대미술관
많은 사람들이 꿈꾸면 현실이 될 수 있다
최효준 전 경기도미술관 관장
지난달 초순, 베니스를 거쳐 파리로 가 루이비통재단의 미술관을 찾았다. 100% 전기로 달리는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 줄을 서야 했고 입장을 위해서도 기다려야 했다. 프랭크 게리 건물의 성가(聲價)와 개관 특수 덕이기도 했지만 차가운 전시와 따듯한 전시를 함께 여는 전략적 접근과 디테일을 완벽하게 챙기는 치밀함, 공간 속에 절묘하게 녹아든 마케팅 센스 등을 접하며, “앞으로 기업이 작심하고 뛰어들면 공립 공영 미술관은 당해낼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좋은 전시를 보여주는데도 한산하고 쇠락한 기운이 역력한 파리시립미술관의 처지가 남의 일 같지 않게 느껴졌다. 앞으로 관심 있는 한국의 여러 기업인이 루이비통재단 미술관을 방문하고 벤치마킹하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외국인에게 한국의 대표 미술관으로 인식되는 삼성미술관 리움을 필두로, 공공 설치미술로 잘 짜여진 프로젝트를 연이어 선보이는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제주시 구도심의 면모를 일신한 아라리오 제주미술관,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확실하게 특화된 공간과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대림미술관 등기업에서 운영하는 사립미술관들의 성공적인 행보는 공립 공영 미술관장으로 10년 이상 일한 필자에게 늘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미술관 공공 서비스의 불가피성은 절대적일까? 미술관의 공공성은 공사립을 막론하고 공통적 성격이며 공공의 신뢰(Public Trust)를 먹고사는 것이 미술관이지만 공영이 불가피한 다른 행정 서비스와는 달리 민영의 효율성과 성과가 세계적으로 갈수록 인정되는 것은 아닌가? 적어도 한국에서 바람직한 미술관 거버넌스의 모델은 무엇일까? 이런 화두(話頭) 같은 것이 가슴에서 떠나지 않았다.
지난달까지 마크 로스코의 전시가 서울에서 열렸다. 파리, 나고야 등지에서 같은 작가의 회고전을 여러 차례 보았지만 그보다 더 충실한 내용이 놀라워 몇몇 아쉬운 점을 지나가듯 지적해 주었고 별다른 반응을 기대하지 않았는데, 조명, 레이블링 여러 면에서, 하나를 말했는데 서너 가지가 개선된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후 특정 공간에서 촬영 허용에 따른 감상 방해가 워낙 심해보여 조심스럽게 지적했는데, 즉시 “촬영금지를 했다”는 답이 왔다.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을 과감히 시도해서 그것의 주효함을 확인하고 미진하면 계속 보강하기로 작심한 듯 기획 운영의 대표자는 거의 늘 전시장에 있었다. 이런 것이 모두 영리 추구의 힘일까? 그렇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공립 공영 미술관의 프로그램에서조차 분명하게 전제되지 않는 전시를, 오늘 여기에서 왜 하는지, 타깃은 누구인지, 그들에게 어떻게 소구할 것인지 등에 대한 명확한 답을 가지고 접근하는 모습은 퍽 인상적이었다. 전시장 입구에 쓰여진 ‘위로, 치유, 화합’이라는 세 단어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여기서 드는 의문이 있었다. 미국의 유일한 국립미술관의 대대적인 개보수 정보를 국내 유일 국립미술관에서 파악하고 온 노력을 쏟아 부어 이런 전시를 기획 유치할 수는 없었을까? 만일 섭외하여 전시를 개최했다면, 그렇게 대중적인 호응을 끌어내 성과를 낼 수 있었을까? 관람객들의 반응을 적극 수집하고 예민하게 즉각적으로 반응하여 문제를 해결하고 상황을 부단히 개선해 나아갔을까? 도록과 상품을 그렇게 창의적으로 기획하고 다양한 연계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전방위적인 프로모션을 할 수 있었을까? 국립현대미술관 근무 경험이 있고, 현재 여건, 조직문화, 분위기를 잘 아는 필자가 낼 수 있는 답은 불행하게도 거의 모두 ‘아니요’였다.
입장료 환불을 요구하는 민원을 제기했다는 한 관람객의 에피소드를 들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상대적으로 많은 예산과 큰 조직을 자랑하는 국내 유일의 우리 국립미술관에 대한 만족도가 그토록 낮아졌을까? 접근성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전 미술인이 합심하여 서울관의 개관을 보았는데 물리적 접근성 말고 내용적, 심리적 접근성의 문제가 해결되었는가? 개관전 <시대정신>, 1주년 기념전 <정원>, 이런 것들은 정말 낯 뜨거울 정도였다. 큐레이터들은 그런 미흡함이 관장의 전횡 때문이라고 하였다. 아마도 그래서 관장 공석 중에 많은 규정을 개정하여 관장을 ‘허수아비’로 만드는 개혁(?)을 단행했는가 보다. 이해는 간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운영은 미궁에 빠졌다는 자조 섞인 탄식이 나오는 이즈음, 법인화를 반대했던 이들조차 법인화의 불가피성을 이야기한다. 과거 연극계 출신의 모 장관 시절 문체부 산하 법인화 대상 기관이 운 나쁘게 국립극장에서 미술관으로 바뀌었다고 하고, 그 이래 법안은 계속 상정되었다가 폐기되었고, 이제는 올려도 상임위 법안소위원회 소속 의원조차 그런 사실을 모른 채 본부 내 담당 부서도 담당자도 없이 으레 결국 폐기되려니 모두 생각하고, 주관부처인 행안부에서조차 “티오를 줄이는 그런 결정을 해당 부처에서 적극 추진할 리 있겠느냐?”고 말할 정도가 되었다.
미술관은 미궁에 빠졌다
전문직들은 아직도 극히 취약한 미술계를 보호 육성하기 위해 법인화는 불가하다 하고, 법인화되면 주무 부처와 완전 갑을 관계가 되어 운영여건이 지금보다 훨씬 악화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타당한 우려다. 재정자립도 80%라는 믿을 수 없는 수치를 자랑하는 예술의전당이 국립현대미술관의 미래 모습이라면 누군들 반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래도 예술의전당 팀은 자신만만하다) 법인화가 불가피하다면 적어도 5년간 수천억 원의 국고 출연과 같은 지원이 보장되어야 하며 30%를 재정자립의 상한선으로 잡아야 한다는 주장도 옳고, 기부를 촉진하도록 세제 등 법제도를 영국 미국 프랑스와 같이 바꾸기 위해 과거 조윤선 의원이 발의했던 법안류가 다시 심의, 통과될 수 있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견해도 옳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이 쉽지 않아 보인다.
여기서 드는 생각. 그것은 서울관의 분립 법인화이다. 현행 정부조직법상 모기관과 자기관의 운영체제가 다를 수 없어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렇겠다. 그런데 그것이 사람이 만든 법(法)인데 길이 없을까? 모기관으로부터 자기관을 제급(除給)내어 버린다면? 듣자하니 지금의 미술관 관장대행 체제에서 방대한 서울관을 과천관의 일개 과로 전락시켰다고 한다. 계약기간이 1년도 안 남은 서울관 직원들이 과천관, 덕수궁관의 전시를 4~5개씩 맡아 한다고 한다. 과천의 정규직들은 그 반도 안 되는 전시 업무를 맡고 있고. 지금의 서울관. 엄청난 덩치의 일꾼이 족쇄를 차고 굼뜨게 움직이며 비능률적으로 실수를 연발하며 일하는 모습을 연상하게 된다.
이제 서울관의 분리 법인화를 그려보자. 그래도 포기해야 할 티오가 없으므로 정부조직의 정규 공무원들이 부정적으로 볼 이유가 없다. 5년 정도의 계약기간으로 강호에 숨은 고수들을 널리 찾아 전문계약직으로 고용하고 그들이 합심하여 보통의 시민들이 호응할 미술관을 만드는 과업을 해내도록 하는 것이다. (그들이 퇴임할 때쯤은 순수 민간부문에 그들이 일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질 것이다.) 의식과 열정이 있는 기업인으로서 자체 미술관 건립까지 생각하지 않는 이들을 모아 이사회를 구성하고, 서민들의 욕구와 필요를 철저히 파악하고 세계의 사례를 수집하고 분석 연구하며 국내외 전문가와 전문기관과 연대하고 제휴하여 수년 내에 모마, 퐁피두, 테이트모던과 순회전을 공동 기획하는 데까지 가는 것이다. 집단 지성을 결집하여 미술 저변의 확대와 심화에 민관협치 방식으로 온 노력을 기울이고 강도 높은 자체 개혁과 함께 미술 교육, 제(諸) 미술제도의 근본적 개혁을 선도하는 것이다. 과천관은 직원의 직업 안정성을 보장하는 현 공영체제를 유지하며 연구, 수장, 교육 기능과 참신한 전시 기획에 매진하게 하여 법인화된 서울관과 선의의 경쟁관계와 협력관계를 유지하게 하는 것이다,(물론 서울관이 과천의 소장품을 제한 없이 활용할 수 있게 하는 조건이 필수적이다.) 서울관의 성공을 바탕으로 강원, 충청, 영남, 호남, 전국 4개 권역에 중앙정부-지자체 협력형 분관을 속속 건립하는 것이다. 공영의 기본 틀을 유지하며 민영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도 느낀다. 모마, 퐁피두, 테이트 모던, 그리고 앞서 예시한 기업 운영의 미술관 프로그램들이 뭘 잘 모르는 내게도 좋게 와 닿는다는 것을. 보통 사람들도 느낀다. 앞에 언급한 일개 기획사의 공들인 전시가 추상화가 전혀 와 닫지 않던 내게도 감동적이라는 것을. 요즈음 같이 “미술관은 미궁에 빠졌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 때, 공중의 기대가 강렬하게 모아지고 공공의 지원이 대폭 이루어지는 법인화된 국립서울미술관의 희망적인 비전을 뚜렷하게 그려보면 어떨까? 많은 사람이 꿈꾸면 현실이 될 수 있다. 문체부의 수장이 결심하고 전방위로 노력하면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랜 절차가 다시 필요할 국립현대미술관의 새 관장 취임보다 빠를 것 같은 문체부 새 수장의 취임 이후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