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Feature] This is not a tour

 

<로드쇼>의 뒷이야기

신보슬  토탈미술관 책임 큐레이터

길 떠나는 큐레이터 & 작가
큐레이터 18년차.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전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쇼핑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 그럴싸한 주제를 정하고, 그에 맞는 작가와 작품을 고르고. 어김없이 아티스트 비용을 제대로 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하면서 오프닝을 준비하고, 사람들을 초대하고, 도록을 만들고, 못내 아쉬움을 내비치며 철수하는 사이클. 주제와 작가들은 바뀌지만 전시장을 채우고 비우는 과정은 언제나 비슷했고 마음은 점점 느슨해졌다. 생각해보니 작가들과 아직 만들어지지도 않은 작업에 대해서, 세상에 대해서 오랜 시간 토론하고, (가끔은) 언성을 높이기도 하면서 서로의 생각들을 털어놓던 기억도 가물하다. 예술이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창이라면, 작업실에만 있는 작가와 사무실에만 앉아 인터넷 서핑을 하는 큐레이터가 보여주는 세상은 별로 매력적일 수 없을 것 같았다. 뭔가 변화가 필요했다.   <로드쇼>의 시작이었다.

내성천에서 시작된 첫걸음
2011년 4대강 개발을 두고 갑론을박이 뜨거웠다. 이런저런 문제가 있지만 어찌 되었던 우리 경제에 새로운 활력이 될 거라며 밀어붙이려는 세력과 허무맹랑한 기획들을 낱낱이 밝혀내면서 반대하는 목소리가 맞부딪쳤다. 뭔가 크게 잘못되고 있음은 알았지만, 현장을 보지 않고, 섣불리 의견을 더하기는 조심스러웠다. 마침 뉴욕 아이빔에 있던 최태윤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직접 가서 상황을 보면 어떻겠냐는 의견이 나왔다. 마음 같아서는 4대강을 모두 둘러보고 싶었지만, 시간적, 재정적인 여유가 없으니 하나의 강이라도 제대로 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아 첫 번째 <로드쇼: 대한민국> 낙동강 여행이 시작되었다.
최태윤 작가는 아이빔에서 Mary Mattingly, Fran Ilich, Nova Jiang, Jon chors 이렇게 4명의 작가를 초대했고, 박은선, 김화용, 이정민, 노순택, 연미, 최빛나 등 일군의 한국 작가들과 기획자들이 함께 했다. 스무 명이 넘는 인원이  관광버스 한 대에 몸을 싣고 여행을 시작했다. 일주일로 예정된 그 여행은 낙동강의 지천인 내성천에서 시작하여, 하구에 있는 을숙도까지 계속되었다.
로드쇼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대부분 무엇을 하는 프로젝트냐고 묻는다. 딱히 우리가 뭘 해야겠다는 의지보다는 함께 여행하고, 이야기하면서 서로를 좀 더 알아가는 것이 목적인 우리로서는 ‘여행을 한다’는 것 외에 딱히 그럴듯한 답을 찾기가 쉽지 않다. 우리는 액티비스트도 아니고, 저항이나 캠패인을 하기 위해 나온 것이 아니었다. 우리의 여행이 상황을 바꾸기 위한 도구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꼭 뭔가를 해야 하나. 큐레이터와 작가가 함께 하는 여행의 결과물이 당장 새로운 작업으로 나오기는 힘들겠지만, 빠듯한 일상에서 일주일가량 일탈하여 함께 이야기하고, 생활하는 경험은 언젠가 좋은 작업으로 나오리라는 것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굳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한다면, 여행에 집중하고, 우리가 만난 것과 생각했던 것들, 이야기 나눈 것들을 공유할 수 있는 후반 작업을 고민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래서 우리는 여행의 끝에 전시가 아닌 책을 만들기로 했다.
별다른 계획 없이 함께 여행하자고 시작된 프로젝트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들과 함께 한 낙동강 여행은 많은 것을 남겨주었다. 특히 4대강 이슈에 열정적이었던 리슨 투 더 시티의 박은선 작가, 그리고 내성천에 새롭게 둥지를 틀고 강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지율스님이 있기 때문에 그저 그런 여행일 수 없었다. 지율스님은 내성천에 왜 오게 됐는지, 낙동강의 모래톱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강을 걸어서 건넌다는 것이 어떤 의미였는지 자세히 설명해주고, 체험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4대강 계획에 얼마나 많은 문제가 있는지도 빼놓지 않았다. 해질 무렵 내성천 모래톱에 앉아 넓디넓은 하늘을 물들이는 석양을 보며 들은 이야기들은 지금도 귓가에 생생하다.
물론 많은 여행이 그렇듯 불편함과 갈등도 있었다. 외국작가 중에 채식주의자가 있어 매끼 메뉴를 고르느라 애먹은 순간도 있었고, 폐교를 개조한 숙소에서, 그것도 딱딱한 마룻바닥에서 단체로 취침하는 데 대한 불만도 있었다. 왜 인터넷이 안되느냐며 매일 인터넷 타령을 하던 외국작가도 있었다. 챙겨야 할 것, 설명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그만큼 내가 살고 있는 사회에, 내가 발디디고 있는 땅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할 수 있었다. 로드쇼를 시작하고 얼마되지 않았을 때, 다시는 <로드쇼>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차라리 전시가 낫다고. 하지만, 여행이 끝날 무렵, 나는 이미 다음 해의 <로드쇼>를 기획하고 있었다. 서로 바쁜 일상에서 빠져나와 같은 공간에서 같은 곳을 바라보며 생각을 나눌 수 있었던 일주일은 포기하기에 얻는 것이 너무나 많은 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로드쇼의 몇 가지 규칙들
두 번째 <로드쇼>를 기획하면서 첫 번째 <로드쇼: 대한민국>를 돌아보았다. 즐겁고 좋은 추억이었지만 몇 가지 아쉬움이 남았다. 외국에서 초대하는 손님으로는 작가보다 큐레이터가 더 좋을 듯했다. 함께 여행하는 동안 참여한 한국 작가들의 작업도 소개한다면 여행과 홍보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욕심이 생겼다. 그리고 큰 차로 스무 명이 넘는 인원이 단체로 이동하는 것보다는 4~5명 단위로 나눠 그룹으로 이동하게 된다면, 여행의 경로도 좀 더 다양해질 수 있고, 같은 그룹에 있는 사람들끼리는 좀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그리고 여행 기간 뭔가 새로운 작업을 만들어내야만 한다는 과제는 여행도 부담스럽게 하고, 정작 작품도 제대로 나오기 어려우니, 여행이 진행되는 과정에 더욱 집중하자고 했다. 그렇게 이런저런 아쉬움을 보완하면서 두 번째 로드쇼의 새로운 규칙들이 만들어졌다.

첫째, 여행지는 기획팀과 이전 참여 작가들의 추천에 의해서 선정한다.
둘째, 해외 초청의 경우 가급적 큐레이터를 초청하되, 작가를 초청하는 경우 전시기획이 가능하거나 혹은 프로젝트를 함께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고 선택한다.
셋째, 여행 중 작업에 대한 부담감을 주지 않는다. 신작을 해도 좋고, 퍼포먼스를 해도 좋다. 작업과 관련된 사항은 작가에게 맡긴다. 기존 작업을 가져오는 경우, 10분 안에 설치하고, 10분 안에 철수할 수 있는 게릴라형 전시를 준비한다.
넷째, 작가-기획자-해외 초청자가 골고루 섞이도록 그룹을 재구성한다.
다섯째, 여행지는 기획팀에서 설정하지만, 개별 여행 계획은 그룹 내에서 상의하여 조정할 수 있다.

강정마을 구럼비 바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로드쇼를 자연스럽게 ‘제주’로 이끌었다. 독일, 인도, 스페인에서 온 해외 참가자들은 서울이 아닌 제주도, 그것도 한국 작가와 기획자와 함께 하는 여행에 큰 관심을 보였다. 안타깝게도 로드쇼 기간 동안 세 차례 태풍이 오는 바람에 일정에 차질을 빚기도 했지만, 돌이켜보면 태풍으로 인해 더 많은 추억거리가 생기기도 했다.
낙동강 여행과는 달리 제주에서는 게스트하우스를 한 채 빌려 베이스 캠프로 삼았다. 강정마을과 4・3 제주평화공원 등은 함께 방문했지만, 팀별로 한라산을 오르거나 아름다운 제주의 해변을 찾기도 했다.그리고 여행 중간중간에 버스 정거장에서, 둑방에서 퍼포먼스도 하고 게릴라식 전시도 했다. 그리고 밤이면 다시 베이스 캠프에 모여 번갈아가면서 식사도 준비하고, 서로의 작업에 대해서 프리젠테이션도 하고, 긴 토론을 하기도 했다.

로드쇼는 계속된다
세 번째 로드쇼는 백령도에서 진행되었다. 서해 최북단의 섬 백령도는 분단이라는 현실을 마주하게 하는 곳이다. 북한이 바라다보이고, 연평도 포격사건 현장과도 그리 멀지 않은 곳, 천안함 피격사건 등 백령도는 여느 섬과는 다른 히스토리를 갖고 있었다. 루마니아, 스페인, 인도 등지에서 온 기획자(겸 작가)들이 한국 작가들과 함께 그곳을 찾았다. 섬을 여행하고, 바닷가와 심청각에서 퍼포먼스도 하는가 하면, 가지고 간 사진으로 설치작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작업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질문을 받기도 했다. 전시장에서는 하기 어려운 경험이었다.
그리고 바로 얼마 전, 프랑스 정부의 지원을 받아 프랑스 작가와 큐레이터를 초청하여 <로드쇼:경주>를 마쳤다. 경주, 신라 천년의 고도(古都)이자 단골 수학여행지인 불국사와 석굴암, 왕릉으로 대변되는 경주를 새롭게 경험할 수 있었다. 사운드 장비를 가지고 재래시장에서 소시를 채집하는가 하면, 방폐장 앞에서 작업을 하기도 했다. 문무대왕 수중릉 앞에서 모든 참가자들이 함께 퍼포먼스를 하기도 하고, 이름 없는 사찰을 찾아 사진작업을 하는 작가도 있었다.
함께 여행하고, 작업하고, 이야기하면서 <로드쇼>에 중독성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로 마주하는 큐레이터와 작가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으로 함께 고민과 생각을 나누는 시간은 다음 번 로드쇼를 기대하게 한다. 2015년 로드쇼는 강릉에서 강릉대학교 학생들과 함께 해보려 한다. 정해진 포맷이 없기에 매번 조금씩 변화하는 로드쇼. 그렇게 로드쇼는 계속된다.

로드쇼, 해외를 가다
최근 해외에서 <로드쇼>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아마도 전시에 비해 비용이 적게 드는 반면, 직접적인 홍보효과나 결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물론 해외여행의 경우는 국내여행과 많이 다르다. 국내여행은 우리가 사전 답사도 하고, 여행지에 대한 내용을 사전 미팅과 스터디를 통해서 준비하여 해외 참가자들에게 소개해주는 입장이지만, 해외여행은 자칫하면 정말 관광에 그칠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다. 그래서 외국으로 나가는 경우, 현지에서 제대로 가이드를 해줄 수 있는 큐레이터와 작가 없이는 진행이 힘들다.
올여름, 로드쇼의 첫 해외편인 <로드쇼: 북동부 인도>편을 진행했다. 델리나 뭄바이와 같이 잘 알려진 도시가 아닌 방글라데시 위쪽의 북동부 인도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 사뭇 달랐다. 크리스천 커뮤니티가 있는가 하면, 여전히 모계사회를 유지하는 부족도 있었고, 말로만 듣던 헤드헌터 부족이 살고 있는 곳도 있었다. 매일이 문화적 충격이었다. 다행히 현지 큐레이터가 있었기에 그저 관광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현지 작가들을 만날 수 있었고, 현지 작가들과 조인해서 짧은 피크닉도 진행할 수 있었다.     <로드쇼: 북동부 인도>의 경우, 작가들 외에 로드쇼 이후의 다양한 프로덕션을 전담할 팀을 초청했다. 영상 촬영팀과 디자인팀이 함께 여행을 함으로써 작가와 큐레이터가 여행 자체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런가 하면, 중국문화원의 후원으로 <로드쇼: 실크로드>도 진행했다. 란저우에서 둔황까지. 서북 중국 역시 베이징이나 상하이와는 전혀 다른 사회이자 문화권이었다. 중국에서 만나는 이슬람 문화권, 말로만 듣던 황하. 함께 한 작가들은 부지런히 작업을 진행했다. 기존 로드쇼와 달리 <로드쇼: 실크로드>는 여행의 결과를 작은 전시로 풀어낼 계획이다.
이외에도 <로드쇼>에 대한 제안이 많이 들어오고 있다. <로드쇼: 니스에서 마르세유까지>(프랑스),     <로드쇼: 뭄바이에서 고아까지>(인도), <로드쇼: 히말라야에서 바라나시까지>(인도), <로드쇼: LA>   (미국) 등. 큐레이터와 작가가 함께 하는 여행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로드쇼, 남은 이야기
마셜 맥루한은 《미디어의 이해》에서 “에즈라 파운드는 예술가를 세상의 안테나라고 했다”고 언급한다. 촉각을 세워 세상의 변화를 감지하는 안테나. 그런 예술가들과 작업을 하는 큐레이터 역시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그러나 전시가 일이 되고, 작업이 일이 되는 과정에서 우리들의 안테나에는 녹이 슬고, 촉각은 무뎌진다. <로드쇼>에 대한 관심은 어쩌면 예술가들의 안테나가 다시 예민하게 작동하길 기대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당장 작업으로 나오는 성과보다는 예술가들의 생각을 공유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기대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저 여행이나 같이 해볼까 하고 시작한 로드쇼는 ‘함께’ 세상을 바라보고, 생각을 공유하는 시간을 만들어주었다. 그래서 다시, 또, 짐을 싼다. 그저 그런 여행이 아니라, 알찬 우리들의 여행을 떠나기 위해. 그리고 그리 멀지 않은 시간에 우리들의 이런 경험은 또 다른 작업으로, 전시로 보여질 것임을 믿는다. ●

 안동병산서원 앞에 설치되었던 작가 연미의  작품 관람

<로드쇼 2011 : 대한민국>안동병산서원 앞에 설치되었던 작가 연미의 <뉴스 스탠드> 작품 관람

강정마을 앞에서 퍼포먼스 중인 이리스 드레슬러, 한스 D. 크리스트, 다니엘 가르시아 앙두하르, 권순관 그리고 촬영 중인 노순택

강정마을 앞에서 퍼포먼스 중인 이리스 드레슬러, 한스 D. 크리스트, 다니엘 가르시아 앙두하르, 권순관 그리고 촬영 중인 노순택

 

<로드쇼 2014 : 경주> 재래시장 골목에서 사운드를 채집하고 있는 파스칼 브로콜리키

로드쇼
Road Show
신보슬 토탈미술관 책임 큐레이터가 기획한 <로드쇼>는 국내외 작가와 기획자들이 여행을 매개로 만나 서로의 작품세계를 공유하고, 다양한 의견을 나눌 수 있는 플랫폼이다. 2011년 4대강 사업이 진행되는 낙동강 일대를 둘러보는 것에서 시작해 제주, 백령도, 경주를 여행하면서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해외 참가자들에게 소개하고, 서로의 시각을 확장시키며, 이해의 폭을 넓히는 기회를 가졌다. 그리고 올해부터 대상지를 확장해 인도, 실크로드 등 해외 지역을 여행하면서 다른 문화권 지역과 현지 작가들과의 교류를 도모했다. 이 프로젝트는 다양한 시각을 가진 개인들이 모여 함께 여행하고 생각을 공유하면서 다양한 이슈에 대해 장기적인 개입을 시도한다.
roadshow2014-gyeongju.tumbl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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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rt

예술가와 기획자의 ‘이동’을 지원하는 프로그램

“예술은 움직이는거야”

창작자와 기획자의 역량 강화를 목표로 뚜렷한 성과보다 이들이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여행을 지원하는 제도가 눈에 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위원장 권영빈)에서 진행하는 노마딕 레지던스 프로그램과 예술경영지원센터(대표 정재왈)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 비아(Project Via) 프로그램이 그것이다. 이는 최근 국내 지원금 제도가 ‘작품’, ‘전시’와 같은 결과물 지원 일변도에서 벗어나 예술 활동을 육성하는 보다 근본적인 조건에 대한 지원에도 관심이 높아진 현상을 반영한다.

노마딕 레지던스 프로그램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아르코)에서 진행하는 노마딕 예술가 레지던스 프로그램은 2008년 몽골 노마딕 사업으로 시작해 이란, 남극, 인도, 러시아의 바이칼 호수 등 작가가 개인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지역을 체험할 수 있도록 지원해 창작 역량을 강화하는 사업이다. 이 사업은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의 이동 이상으로 작가 개개인의 삶과 작업에 큰 변화를 준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또한 새로운 문화와 낯선 환경에서 현지 작가와 다양한 협업 프로젝트를 진행해 현지 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이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할 수 있다는 측면도 주목된다.
참여 작가의 경우 1회성으로 제한하지 않는다. 레지던스 팀은 기획자와 참여 작가로 구성되며 팀 구성은 기획자 재량이다. 이 프로그램은 기존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비해 전시, 출판 등 특정한 성과물을 보고하는 방식이 아니며 참여자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작업세계에 반영하고 있다. 노마딕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3회 참여한 작가 김승영은 “기존 레지던스가 도시를 중심으로 진행된다면, 노마딕 레지던스 프로그램은 도시로부터 떨어진 장소에서 자연과의 대면을 통해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과 성찰을 유도한다. 이를 통해 나 자신의 작품에 대한 개념에 좀 더 깊이 몰두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고 참여 소감을 밝혔다.
사실 이 프로그램은 자칫 잘못하면 예술가들의 오지체험으로 그칠 수 있는데, 사업 담당자인 시각예술팀 이동석 씨는 “예술가들이 처음에는 오지에 매료되어 참여했지만 사업이 성숙하면서 작가들 스스로 오지를 타자화하는 것을 분명히 경계하는데 동의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그리고 “아르코 측에서도 해외 기관과 동등한 입장에서 국제 교류를 진행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지난해에는 호주 파트너 기관과의 협력을 바탕으로 한국 작가들이 호주 중심부 사막 지역에서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진행했으며, 올해에는 호주 원주민 예술가들이 한국을 방문했다. 지금까지는 시각예술을 중심으로 진행됐지만 앞으로 음악, 영상, 무용, 영화 등 다양한 영역의 예술가에게 문을 열 예정이다. 2015년에는 몽골, 호주를 중심으로 진행될 계획이며 나머지 지역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노마딕 레지던스 Nomadic Residence

바이칼 호수 알혼섬에서 작가 안경수가 하루에 한 점씩 완성한 작품 이미지

바이칼 호수 알혼섬에서 작가 안경수가 하루에 한 점씩 완성한 작품 이미지

2014년 바이칼 노마딕 레지던시 프로그램 ‘미니마 모랄리아’ 단체사진 (기획 김현주, 작가 김승영, 안경수, 정재철, 홍진훤, 황연주)

2014년 바이칼 노마딕 레지던시 프로그램 ‘미니마 모랄리아’ 단체사진
(기획 김현주, 작가 김승영, 안경수, 정재철, 홍진훤, 황연주)

 

 프로젝트 비아(Project Via) 프로그램
예술경영지원센터(이하 센터)에서는 2013년부터 한국 현대미술의 해외 진출과 국제교류 활성화를 위한 시각예술 기획자 육성 프로그램, ‘프로젝트 비아’를 진행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기획자들의 장-단기 리서치 지원, 워크숍 참가 지원, 파일럿 프로젝트 지원으로 구성되며 지금까지 총 78명, 3개 단체가 참여했다. 큐레이터를 비롯해 갤러리스트, 평론가, 기자 등 실무경력 5년 이상의 시각예술 및 시각예술 기반 다원예술 기획자(에듀케이터 제외)는 누구나 지원가능하다.
개별 리서치의 경우 주제・권역에 제한 없으며 작가 리서치, 미술계 현장 확인, 워크숍 참가, 심포지엄 발표 등 다양한 형태가 가능하다. 그룹 리서치의 경우에는 센터가 사전에 해외 협력기관과 기획한 리서치 프로그램을 현장에 가서 수행하는 방식이다. 단기 리서치가 주로 10일 내외의 일정이라면 장기 리서치(펠로십 지원)는 권역 제한 없이 3~6개월간 진행할 수 있다. 큐레토리얼 워크숍 참가지원의 경우 센터가 해외 기관과 공동으로 국제 워크숍을 개최하고, 국내 기획자들의 참가를 지원하는 방식이다. 지난 2년간 센터는 영국의 테이트 아시아태평양미술연구소와 공동 기획해 해외 이벤트가 많은 홀수연도에는 외국에서 개최하는 방식으로 진행했고 국내 이벤트가 많은 짝수연도에는 해외 미술 전문가들을 불러들여서 국내에서 워크숍을 개최해 강연, 토론, 현장리서치, 네트워킹 세션 등을 구성했다.
현재까지 참가자들이 진행하는 리서치 트립 비중을 보면 80%가 유럽과 북미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기획자들이 활발한 예술 신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해외 교류 역량을 강화시키기 위해서는 단순히 국내 기획자들이 선진국을 방문해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그쳐서는 곤란하다. 사업 담당자인 인력개발팀 안현숙 씨는 “센터 측에서는 다양한 협력기관을 개발해 대등한 관계에서 장기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데 심혈을 기울인다”며 “해외 기획자들에게 국내 신을 소개하는 역할도 겸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센터는 네덜란드 몬드리안재단과 협력해 올해 국내 참가자들이 유럽을 방문하고 유럽 지역의 기획자들이 자체 예산으로 한국을 방문하는 교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센터는 앞으로 남미, 중동, 아시아 등 그룹 리서치 위주로 국내 미술계에 잘 알려지지 않은 국제무대를 활발히 소개하고 국내 신을 해외에 알리는 플랫폼 역할을 수행할 계획이다.
‘프로젝트 비아’는 기존 지원제도가 작가 중심으로 운영되고, 전시나 출판 등 결과물에 치중한 반면 기획자들을 위한 지원이 전무했다는 점에서 현장의 호응을 받고 있다. 사업 담당자인 심지언 씨는 “기획자들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자극을 굉장히 많이 받는다. 그만큼 동기부여가 된다는 반응이 많다”고 말했다. 이 사업의 경우 중복 지원이 가능하다. 한 번의 리서치 트립으로 어떤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인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존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리서치 결과를 바탕으로 한 전시, 출판, 심포지엄, 워크숍 등 형식의 제한없이 파일럿 프로젝트 실행을 지원한다. 이 사업은 현장에 맞는 방식으로 조정하기로 해 일부 변화가 있을 예정이지만 기본 틀은 유지하며 장기적으로 진행될 계획이다. 2015년에는 중동, 아시아, 프랑스에서 그룹 리서치 프로그램과 큐레토리얼 워크숍이 진행될 예정이다. 이슬비 기자

프로젝트 비아 Project Via

프로젝트 비아 2014년 영국-그룹 리서치 프로그램에서 진행한 라운드테이블

프로젝트 비아 2014년 영국-그룹 리서치 프로그램에서 진행한 라운드테이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