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 & THEME 올해의 작가상 2015 오인환
한국 현대미술의 비전을 제시할 역량 있는 작가를 후원한다는 취지로 제정된 <올해의 작가상>이 올해 4회를 맞이했다. ‘2015 올해의 작가’ 후보 작가로 김기라, 나현, 오인환, 하태범이 선정돼 각자의 작업세계를 뚜렷하게 보여주는 프로젝트 전시를 밀도있게 선보인다. 전시는 8월 4일부터 11월 1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며 전시기간 중 최종 선정 작가 1인이 발표된다. 취재·인터뷰 이슬비 기자
오인환 | 사각지대 찾기 Finding Blind Spot
“제도의 무게에서 벗어나 나를 찾는 방법”
전시장 폐쇄회로TV(CCTV) 화면에서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에 분홍색 테이프를 붙여 이를 시각화했다. 생각보다 이 공간의 범위가 넓어 놀라웠다. 분홍색 테이프에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는가? 테이프는 탈부착이 용이하고 진행 과정을 잘 드러낸다는 점에서 과정 중심적인 작업의 성격과 부합하기 때문에 선택했다. 분홍색 테이프 자체는 재료로서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의미가 있는 것은 사각지대를 찾아내고 그것을 시각화하는 과정이다.
문화적인 사각지대를 찾는 과정에서 군대 전역자들의 인터뷰를 담았다. 우리 사회의 다양한 사각지대 중에서 특히 군대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문화적 사각지대’란 누구나 접근 가능한 곳은 아니다. 누구나 접근 가능하다면 그건 이미 사각지대가 아닐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 사회에 다양한 사각지대가 있겠지만 내가 개인적으로 직접 접근할 수 있는 사각지대는 제한되어 있다. 병영생활에서의 사각지대는 내가 경험했기 때문에 작업으로 다룰 수 있다고 판단했다. 미술가로서 나와 내 작업에 등장하는 사례들이나 주제가 서로 긴밀한 관계가 있는지 점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주체로서 미술가들은 타자의 삶에 대한 경험이 없이, 즉 ‘관찰자’로서 타자들을 재현하면서 끊임없이 대상화해왔다. 대상화를 지속하있는 미술 혹은 주류 미디어의 문제를 목격하고 있는 나로서는 대상화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나와 내 작업의 정당한 관계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상호 감상 체계>라는 작품 제목에서 CCTV 하면 떠오르는 ‘감시’라는 단어 대신 ‘감상’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상호 감상 체계>는 감시라는 큰 주제를 전시장이라는 미술의 문맥에서 다루고자 했고 그렇게 함으로써 감시라는 사회적인 주제뿐만 아니라 미술을 시각적인 것으로만 제한하는 관습적인 미술 감상의 방식을 비판적으로 다루고자 했다. 그래서 CCTV 등 감시 장치들을 일방적으로 관찰하는 감시 도구에서 ‘보는 것’과 ‘보여지는 것’을 상호적으로 연결하는 미술(소통)의 도구로 전환시킬 때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상호 감상 체계>라는 제목을 선택했다.
한국 사회에서 ‘사각지대 찾기’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설명 부탁한다. 한국은 민족적인 단일성으로부터 혈연적인 순수성에 이르기까지 문화 전반에 걸쳐 순수성과 단일성을 내재화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다양성에 대한 요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러한 단일성이나 순수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만 허용된다. 이러한 문화구조는 자연스럽게 다른 것, 그리고 이질적인 것에 대해 배타적일 수밖에 없다. 이성애만을 유일하게 합법화하는 것도 그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단일성이나 순수성에 기반을 둔 한국사회가 문화적인 배타성을 정당화하지 않기 위해서는 다양성이라는 가치를 강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내가 작품을 통해 언급하는 문화적인 사각지대는 이러한 배타적 단일성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다른 것들, 즉 다양성이 출몰하는 공간이다.
관객이 참여해 경험하고 느끼게 하는 작업을 많이 선보였다. 초기에는 참여자를 제한했는데 최근 작업은 모든 관람객이 참여할 수 있도록 연출하면서 좀 더 보편적인 방향으로 접근하는 것 같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내 작업은 ‘참여’라기 보다는 ‘협업’의 방식에 보다 가깝다고 생각한다. 작업의 주제에 따라 협업자들을 선택한다. 협업자의 정체성이 곧 내 작업의 주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누구나 내 작업의 ‘관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내 작업의 협업자는-관객과 같이-누구나가 될 수 없으며 각 작업 주제에 의해서 제한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경비원과 나>에서는 미술관 경비원이 내 작업의 협업자였고 이번 전시회에서 선보인 <나의 사각지대-도슨트>에서는 시각장애인 청년들이 협업자들이다. 참고로 시각장애인 도슨트의 안내를 받는 사람들은 관객이다. 이들 관객은 참여자와는 다르다고 본다. 내 프로젝트에서 협업자의 정체성과 작업의 주제를 연결시키는 방식은 지속되지만 매번 다른 협업자들과 협업을 시도하는 것이다. ‘누구나’ ‘모두’ ‘동일’하게 참여하는 방식은 매우 추상적이고 계몽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거리를 두고 있다.
<사각지대 찾기>는 2014년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갤러리 팩토리에서 선보인 바 있다. 이번 전시의 차별점은 무엇이며 어떤 점을 강조했나? ‘사각지대 찾기’는 작품이 아니라 내가 최근에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이다. 다시 말해 <사각지대 찾기>라는 작품은 없다. 2014년 개인전과 “올해의 작가상 후보 전시회”는 ‘사각지대 찾기’라는 주제를 공유하지만 작업 구성에서는 매우 다르다. 예를 들어 <나의 사각지대-도슨트>와 <사각지대 찾아가기>는 이번 전시를 위한 신작이다. 반면 2014년 개인전에서는 <나의 사각지대-약도>가 전시되었다. 이들 전시회에서 공동으로 진행한 <상호 감상 체계>는 그 장소 특정적인 성격 때문에 각 전시회의 특성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구현될 수밖에 없었다. 2014년 개인전에서는 경리단길에 위치한 윌링앤딜링과 창성동에 위치한 갤러리 팩토리가 지리적으로 확실히 분리됐기 때문에 공간적인 분리를 강조하는 방식, 즉 팩토리에서는 스티로폼을 사용해서 3차원적인 설치를 했고, 윌링앤딜링에서는 페인트를 이용해서 보다 2차원적인 방식으로 진행했다. 반면 이번 전시에서는 미술관 내 두 개의 공간에서 진행했기 때문에 공간적인 분리보다는 공식적인 전시장(4전시실)과 전시장이 아닌 공간(멀티미디어홀 옆 복도)의 위계를 축소하는 방향으로 접근했다. 즉 사각지대라는 개념을 강조함으로써 공식적인 전시장보다 비공식적인 전시장인 멀티미디어홀 옆 복도가 더 부각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방법적으로 공간의 차이를 부각시킬 필요가 없기 때문에 두 개의 공간에서 테이핑이라는 동일한 방식을 사용했다. 아울러 두 공간의 상호적인 연결성을 강조하기 위해 <나의 사각지대-도슨트>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사각지대 찾기>뿐 아니라 <유실물 보관소>, <이름 프로젝트> 등 ‘찾는다’는 행위에 집중한 작품이 많다. 오인환이라는 개인의 정체성과 작가로서의 정체성과도 맞닿아 있는 것인가? 작가의 정체성과 상관없이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주제들을 모두 자신의 미술로 다룰 수 있다는 것은 주체적인 미술의 전형이다. 앞에서도 설명했지만 이러한 주체적인 미술과는 다르게 타자의 미술은 개인의 정체성과 자신의 작품 주제나 방식의 구체적인 연결 관계가 확인될 때만 미술 작업이 가능하다고 전제한다.
나에게 ‘찾는다’는 것은 ‘과정’이다. 이러한 ‘과정’으로서의 ‘찾기’는 내 정체성과 관계가 있겠지만 보다 구체적으로 타자로서의 내 삶의 방식과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한국사회에서 타자의 삶이란 이미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한 개인으로서, 그리고 미술가로서도 늘 찾아야만 하는 것이다. 서울은 타자들이 정착하기에 여전히 문화적으로 열악한 곳이다. 물론 나를 포함해서 다수의 타자가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 삶의 속성은 임시적일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찾기’라는 행위는 과정을 더욱 과정으로 만드는 것으로서 주체를 욕망하지 않는 타자로서의 내 삶을 미술의 방식으로 연결하기 위한 것이다.
<나는 미술가가 아니다/나는 미술가이다>(2015)는 미술을 전공했지만, 현재 미술 활동을 중단한 사람들의 인터뷰이다. 그런데 작가가 인터뷰어가 아니라 인터뷰이로 등장하는데 어떤 의도에서 만든 작품인지 설명해달라. 사실 작업을 중단하거나 그만둔 사람의 다수는 얼굴을 밝히면서 인터뷰하는 것을 썩 내켜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들의 대역이 필요했고 그 역할을 내가 하기로 했다. 이러한 결정은 물론 작업의 주제 때문이다. 나는 “올해의 작가”라는 전시회의 중요한 주제는 작가, 즉 ‘작가는 어떻게 규정되며 나아가 작가는 누구인가’를 밝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차별화된 방식으로 작가라는 주제에 접근하고 싶었고 그것이 작가가 아닌 사람들과의 인터뷰이다. 인터뷰에서 나의 역할은 질문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수용하는 입장이 되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인터뷰한 사람들의 대사 전체를 외웠고 그리고 그것을 기억하면서 그들의 진술을 반복한 것이다. 사실 작업을 중단한 사람들의 진술에서 많은 부분은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러한 과정은 결국 <올해의 작가상>이 소개하는 작가로서 오인환을 ‘작가가 아닌 사람’으로 재현한다. 그 결과 미술제도가 구분하는 작가와 작가가 아닌 사람이 중첩되면서 이분법적으로 분리될 수 없다는 내 생각을 전달하는 방식이 되었다고 본다.
오 인 환 Oh Inhwan
1965년 태어났다. 서울대 조소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뉴욕시립대 헌터칼리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서울, 뉴욕, 시드니 등지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현재 서울대 서양화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