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아티스트] 제여란 – 추상인가 형상인가
김원방 홍익대 교수
제여란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 2010년 가인갤러리와 대구 누오보갤러리, 2011년 조은숙갤러리, 2013년 스페이스 캔(베이징), 그리고 올해 1월에서 3월에 걸쳐 대구와 과천 두 군데의 <스페이스 K>에서 열린 개인전들을 통해 그녀의 막대한 양의 작업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제여란에 관해 이야기하자면, 작업에 대한 미학적 논평을 먼저 꺼내기보다는, 제여란이라는 이름이 생소한 이들을 위해 그녀가 ‘어디 있던 작가’였는지를 먼저 이야기하는게 순서 같아 보인다. 그러고 나서 그녀 작업의 미학적 특징을 논할 것인데, 이것은 “그녀의 작업은 결코 일반적 의미의 ‘추상’이 아니다”라는 명제가 될 것이다.
“제여란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라는 자극적 표현을 내세웠지만 이는 사실 옳은 표현이 아니며, 우리가 그녀에 대해 갖기 쉬운 선입견을 드러내려는 표현일 뿐이다. 여태껏 그녀가 어디로 떠나 칩거한 적은 결코 없다. 단지 이 떠다니는 안개 같은 미술계(라는 이름의 ‘집단적 욕망의 등록소’)가 이곳저곳 몰려다니다가, 우연히 그녀와 또다시 마주치고 그녀의 진가에 다시 주목하기 시작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다. 젊은 세대의 미술인들에게는 제여란이란 이름이 생소할 수도 있는데, 사실 제여란은 1980년대 후반부터 활동을 개시하여 현재에 이르기까지 작품활동을 쉬어 본 적이 없는 작가이다. 이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1980년대 암흑기부터 시작하여 오직 대한민국에서 시대를 몸으로 관통해 살아오면서, 미술 트렌드의 대세가 어느 쪽으로 가건 말건, 자신의 이름이 세상에서 완전히 잊히건 말건, “이제 세상 밖으로 좀 나오라”라는 무례하고 가식적인 조언을 듣건 말건, 20여 년의 긴 시간 내내 시장통이나 산 위의 작은 작업실에서 그 엄청난 양의 작업을 해낸다는 것이 과연 아무나에게 가능한 일인가? 결코 아닐 것이다. 대부분은 도중에 포기한다. 예술가는 대부분 ‘예술 그 자체에 대한 도취’보다는 ‘예술가가 되려는 욕망’이 강한 사람들이다. 무대 위가 아니라 어두운 칸막이 뒤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예술에 대한 도취는 줄어들고, ‘사회적 욕망’이 그를 광포하게 지배하기 시작한다. 이 욕망은 헤겔이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에서, 그리고 라캉과 지젝이 연달아 논하듯이, ‘세상 속에서, 타인들의 눈 속에서 인정받으려는 욕망’, 즉 ‘사람들의 보편적 욕망의 대상이 되고 싶다는 욕망’이다. 그것은 ‘파티에서 주목받고픈 욕망’으로 압축된다. 인정이 이루어지는 ‘타인들의 머릿속’을 쇼펜하우어는 “자신의 행복을 찾는 거처로서는 너무 초라한 곳”이라고 규정했는데, 이는 예술가가 꼭 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들의 불행한 초상이다. 이제 우리는, 디오니소스처럼 예술에 도취할 것인가 아니면 단지 ‘예술가의 욕망’을 좇을 것인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다시 던져야 한다.
극적으로 귀환하는 아나키즘적 결말
국내의 미술관과 갤러리들은 욕망만을 좇던 나머지, 제여란이라는 작가를 잘 알아보지 못했다. 예를 들어 미술관들이나 큐레이터들은 이미 다른 곳에서 앞서 인정받은 작가를(얄팍한 트렌드 때문이건, 외국 큐레이터가 좋아한다는 후광 때문이건) ‘다시’ 인정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실은 미술관이나 큐레이터 자신도 그 욕망의 네트워크 속으로 뛰어들어 스스로가 욕망의 대상이 되고자 하는 ‘변태적’ 욕망의 표현일 뿐이다. 제여란은 그러한 ‘욕망의 생태계’에서 벗어나 있던 작가인데, 지금이라도 미술계가 그를 점차 주목하는 것은 무척 반가운 일로 보인다.
이제 제여란의 작업 전개과정을 간략히 짚어보자. 제여란의 첫 개인전이 열린 곳은 1988년 윤갤러리였고, 좀 더 본격적으로 주목받은 것은 지금은 없어진 동숭동 인공화랑에서의 1990년 개인전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까지 국내 미술계는 설치, 복합매체, 그리고 비디오를 위시한 테크놀로지 예술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었다. 이 와중에서 회화는, 인테리어에 어울리는 무난한 미니멀풍 추상회화, 또는 잔재미를 추구한 포스트모던풍 아류회화(엔초 쿠치, 줄리앙 슈나벨 )나 팝아트 아류 등이 조금 살아남았을 뿐이다. 반면 밝은 곳에서조차 디테일 식별이 잘 안 되는 컴컴한 흑색톤, 용암처럼 솟구치는 물질덩어리, 환희인지 공포인지 알 수 없는 불길한 정조에 관객을 대면시키는 제여란의 그림은, 트렌드를 좇는 기획자나 무난한 그림 좋아하는 화상, 양자에게 모두 ‘부담스러운 그림’으로 인식되었던 듯하다. 그리고 이로 인한 전시활동의 감소가 그녀를 칩거한 것처럼 잘못 보이게 한 원인이지만, 최근 몇 년간 일련의 전시들은 그러한 생각을 완전히 바꿔주고, 놀라운 역량의 작가를 우연히 발견한 듯한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
이제 제여란의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미학적 특징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많은 이가 그녀의 작업을 편리하게 ‘추상화’라고 불러왔지만, 나는 결코 ‘추상이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이 점은 그녀의 작업 초기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은 점이다. 그녀의 회화는 추상화가 아니라, ‘형상성의 회화(painting of the Figural)’이다. 형상성의 회화는 ‘형상회화’ 또는 ‘구상회화’라고 부르는 성향, 즉 figurative painting과 전적으로 다른 개념이다.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용어로서의 형상(구상)회화는 재현적 지시기능을 지닌 ‘구체적 형상(figure)’을 내세운 것이고, 반대로 추상회화(abstract painting)는 그 재현적 형상들을 삭제하려는 시도이다. 이러한 형상성의 ‘현존/부재’, 말하자면 ‘예/아니오의 변증법에 따라 ’형상 대 추상의 구분이 미술사적으로 유지되어왔다. 이러한 형상 대 추상의 구분은 롤랑 바르트가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레키쇼와 사이 톰블리에 대해 1970년대에 쓴 글에서, 그리고 또 리오타르와 들뢰즈의 형상성 철학에서, 1990년대 이후로는 로잘린드 크라우스, 존 레이크먼, 디디 위베르만 같은 포스트모던 이론가들에 의해서 사실상 폐기되었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아는 그런 추상회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추상회화란 20세기 초에서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미술사의 맥락 속에서만 성립했고, 오직 ‘스타일’, 달리 말해 ‘형태학적 유형학’의 사고를 통해 구축된 ‘재현의 정치학’에 불과하다. 미술사의 구태의연한 도상학적 전통은, 구체적 형상들이 실은 우리의 시각적 욕망에 의해 포착된 최종 결과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그리고 형상들은 사실 관람주체의 응시와 시간 속에서 우발적으로 출현하고 사라지는 역동적인 과정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즉 ‘시각적 무의식(optical unconscious)’의 측면을 완전히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제여란의 작업은 바로 그러한 ‘형상들의 기괴한(uncanny) 출현과 소멸과정’을 극대화한 회화이다. 그것은 관객의 시선을 전복시키는 이상한 공포의, 혹은 시선을 좌절시키는 재난적 힘 같은 것이다. 그것은 회화에서, 형상의 출현/소멸을 통해 ‘응시’라는 최근의 정신분석학적 주제를 강력히 드러내는 흔치 않은 회화의 사례이다. 질 들뢰즈가 형태의 오형화(誤讀化, catamorphose des formes), 또는 바로크적 추상이라고 부른 것, 디디 위베르만이 ‘스스로 형상화하는 형상’이라고 부른 바로 그것이다. 우연히 망치고 우연히 드러나는 형상들은 제여란뿐만 아니라, 특히 게르하르트 리히터에서 탁월하게 나타나는 면모이다. 그의 회화를 지배하는 까닭 모를 ‘정신분열적 불안감’은 거기에 연유한다. 제여란의 회화는 들뢰즈의 관점을 빌리면, 잭슨 폴록이나 앵포르멜 회화처럼 혼란만으로 채워진 공간도 아니고, 또는 반대로 칸딘스키 경우처럼 기호화된 코드로 채워진 공간도 아니다. 대신 그것은, 롤랑 바르트의 표현을 인용하자면 “나타나는 것과 사라지는 것을 하나의 상태 속에 결합시키는 것, 에로스도 타나토스도 아닌 것, 바로 ‘삶-죽음’을 하나의 사유 속에, 하나의 행위 속에서 만들어내는 것”이다. 제여란 자신도 그 점을 명확히 의식하고 있다. 그녀는 작업 노트에서 “범주적 경계들을 어떤 지점에서도 인정하지 않기”, “사물이 모든 그물을 빠져나오는… ”, “모든 사물의 자발적 방황운동” 등을 강조한 적이 있다.
제여란의 회화는 무엇을 재현하거나(형상회화) 또는 반대로 재현으로부터 도피하는것(추상회화)이 목적이 아니라, ‘형상들 자체가 연출하는 에로티시즘’을 추구하는 회화라고 정의할 수 있다. 요약하자면, 제여란의 회화는 추상회화가 아니라, 포스트모던적인 ‘형상성의 회화’, 또는 들뢰즈적 의미의 ‘바로크적 추상’이라고 새롭게 정의되어야 한다. 제여란의 회화가 만약 전통적 추상회화라면, 왜 그 작품들은 수많은 ‘숲 같은 것’, ‘짐승이나 덤불 같은 것’, ‘폭포나 피의 분출 같은 것’으로 가득 차 있단 말인가? 실은 바로 이 ‘무엇 무엇 같은 것’이야 말로 내가 말하려는 핵심이다. 그것은 실은 차이의 출현, 즉 형상이 분열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 같은 것’은 동시에 ‘…같지 않은 것’과 동의어이다. 이것이 바로 기괴한(uncanny) 출현과정이며, 무슨 이미지이든 ‘형상 대 비형상’, ‘형상 대 배경’으로 구분해 내려는 우리의 ‘시각적 욕망’에 저항하고, 회화를 인식론적 도구로 전락시키는 도상학적, 지성주의적 전통에 저항하는 회화인 것이다.
초기부터 제여란 회화는 어두운 숲 속, 습지, 심연, 폭포 등을 연상시키는 어둡고 심지어 재앙적인 느낌의 풍경으로 채워져왔다. 그것은 완결되어 형상을 갖추어가는 풍경을 급작스레 무너뜨리는 재앙과 트라우마의 풍경과 같으며, 바로 이 점이 제여란의 회화를 일종의 정신분석학적인 ‘억압된 것의 귀환’에 연관지을 수 있는 이유이다. 따라서 이것은 미학적이면서도 동시에 신경증적인 정조이다. 연극의 장르 구분을 빌리자면 분명 그것은 그리스 비극 같은 것에 해당할 것이다(급작스러운 비극적 운명, peripeteia). 물론 비극의 정의가 단지 눈물과 가련함의 정조를 뜻하는 것이 아님은 당연하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니체, 그리고 크리스테바에 이르기까지, 예술로서의 비극은 ‘내 안의 혹은 세계 속의 타자라는 괴물적 존재를 기꺼이 수용하도록 만드는 승화의 힘’을 의미한다.
이번 스페이스 K에서 열린 전시를 비롯해 최근 몇 년간 개인전에서 우리가 볼 수 있었던 작품들은 그녀의 막대한 양의 작업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우리 미술계의 역동성? 그런 것은 없다. 욕망의 생태계는 실은 놀라울 만큼 정체되어 있고, 역동적이라기보다는 증기처럼 휘발적이다. ‘예술가의 욕망’보다 ‘예술에의 도취’를 우선시해온 이 작가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보는 것은, 우리 미술계가 정말로 좀 더 역동적이 되고 있다는 좋은 반증일 수 있다. ●
제여란은 196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88년 윤갤러리에서의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11회 개인전을 열었다. 한국현대판화가협회 공모전 대상을 수상했고, 현재 경기도 의왕시 청계산 기슭 작업실에서 작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