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REVIEW 박미화
작가 박미화는 자신의 작품을 ‘마음의 기록’이라고 설명한다. “내 작업에서는 다양한 물질(재료)이 등장한다. 흙, 모래, 시멘트, 종이, 스티로폼, 나무 등. 각 재료는 그만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다른 목소리들은 결국 한 가지 소리를 내게 된다. 그 소리는 다름 아닌 나의 ‘마음’이다. 따라서 어떤 재료를 사용하든 늘 한 가지 흐름을 가져가도록 노력하고 있다. 물질들이 내 마음과 만났을 때 내 작업은 관념이 아닌 살아있는 증거로 남게 된다. 다만 ‘물질’과 ‘관념’의 유혹에 너무 깊이 빠지지 않고, 내가 표현해야할 생명에 대한 예의를 지켜나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물질과 정신이 어우러진 박미화의 작품세계를 살펴본다.
물질에 새긴 마음의 기록
박영택 경기대 교수
흙은 질료덩어리다. 그것은 본래의 형체가 없다. 물의 농도에 따라 질퍽이고 물컹하다가도 단단해지는가 하면 말라버리며 균열을 일으키다 먼지로 흩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불을 받으면 더없이 단단해진다. 물과 불, 공기의 양에 따라 흙은 자유자재로 변화무쌍하다. 따라서 흙은 가변성이자 본래의 확고한 자기 정체성으로서의 물질에서 벗어나 있다. 그것은 여백 같은 물질이고 구멍과도 같다. 고형과 액체 사이에서 유동하는 물질이 흙이다. 흙의 이 수동성은 외부 환경을 자기 온몸으로 끌어안으며 수시로 몸을 바꾸는 넓고 깊은 포용성과 맞닿아 있다. 가연성을 지니며 더없이 활성적인 물질인 흙은 미술에서 가장 흥미롭고 매력적인 재료이다. 그것은 보는 이를 상상하게 하고 그 손길과 육신의 노동을 받아들이며 원하는 형상으로 마음껏 변할 순종의 마음으로 편하게 자리한다. 흙을 다루는 이들은 미지의 표정으로 질펀한 이 촉각적인 물질을 주무르고 쳐대고 굳혀서 원하는 상 하나를 만들어가는 체험, 신비스러운 유희에 빠진 이들이다. 그 체험은 흙으로부터 나와 그와는 전혀 다른 물질로 환생하는 기이한 경험이자 세계의 기원을 이룬 창조주의 능력에 근접한 매혹적인 행위, 놀이이다.
흙과 불 그리고 형상
박미화의 작업은 흙(물질)으로부터 시작한다. 그에게 흙은 모든 상념과 상상력을 가능하게 해주고 그로부터 발아한 상을 받아내는 한편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작가는 흙에 숨을 불어넣고 자신의 온기를 밀어넣어 저 흙과 자신의 마음과 정신(관념)이 맞닿은 접점에서 파생한 결과물을 조심스레 건져 올린다. 그것은 작가의 계획된 의도나 목적에 부합하기보다는 흙 자체의 본성과 작가 자신의 성향이 손상되지 않는 지점에서 밀려나온 것들이다. 흙으로부터 출발하는 박미화의 작업은 흙의 본성과 느낌, 그 상태를 가능한 유지하면서 그로부터 발아되는 이미지를 따라가는 여정이다. 흙과 함께 다루어지는 모래, 시멘트, 종이, 스티로폼, 나무 등의 물질 또한 동일하다. 자신의 상황에 맞게 여러 물질을 매만지며 그 물질에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밀어넣는다. 작업이란 결국 작가의 몸과 마음이 또 다른 물질에 기생해 나가는 일이고, 그 재료들을 자신만의 체온, 마음의 결, 음성을 드러내는 일이자 자신의 몸을 갖고 물질로 들어가는 일이다. 그는 자신의 삶의 반경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소박한 물질을 자신만의 감각으로 매만져 내놓는다. 희한하게도 그 모든 것은 흙의 맛을 물씬 풍기며 아득한 시간의 자취와 생명체에 대한 경의와 예의로 가득하다. 어떤 물질을 다루든 결국 흙의 색채, 질감, 맛이 나게 다룬다. 자신만의 감각, 색깔, 흐름을 만드는 것이다. 이는 전시장 전체로 확산되는 작품 설치에서도 엿보인다. 역시 공간을 자신의 흐름으로 조율하고 있다. 이처럼 물질을 생명체처럼 다루며 그 위에 생명의 흔적, 기운을 절박하게 올려놓고자 하는 작가는 자신의 육체와 기억에 따라, 육체의 기억에 따라 그 물질을 인식한다. 작가는 의식하는 사람이자 물질로 사유하는 이다.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생명에 대한 예의”(작가노트)다. 삶에서 마주한 다양한 사연, 타인의 상황, 비극과 참상들 그리고 책(문장)과 사진에서 영감을 얻은 것들이 작업의 단서로 풀려나온다.
박미화의 작업은 채색 테라코타가 주가 된다. 그 외에 판(나무판, 종이, 스티로폼 등)에 채색을 입히고 긁고 파내는 기법을 통한 회화작업이 함께 한다. 근작에는 나무와 풀, 야생화, 손과 발, 사람의 얼굴, 숫자와 문자들이 오래된 느낌을 주는 물질의 표면에 새겨져있다. 사라진 생명체들, 세월호의 비극이 참혹하게 새겨져 있다. 소멸된 생명체에 바치는 진혼의 성격이 강한 작업이 주를 이룬다. 물질들이 작가의 심정을 반영하는 존재로 탈바꿈한다. 변신을 거듭한다. 한편 테라코타작업은 조합토로 성형된 형태에 화장토를 바르고 초벌한 후 다시 화장토를 발라 섭씨 1,200도에서 소성한 것이다. 뜨거운 불을 맞아 성형된 흙은 새로운 생명체로 탄생한다. 온기를 품은 흙이 사람과 동물, 식물의 형상이 되고 그 무엇인가를 연상시키는 오브제가 되었다. 색채에 깊이를 더하기 위해서, 시간의 흐름을 비벼 넣기 위해, 상처를 올려놓기 위해 화장토를 바르고 소성하는 과정을 여러 번 반복했으며 착색한 나무나 스티로폼의 표면에는 수없이 칼로 긁고 파내는 과정을 올려놓았다. 모두 오랜 시간이 경과하는, 지루하고 참을성을 요구하는 작업이다. 작가는 작업을 자신의 의도나 목적에 종속시키기보다는 재료 자체의 발언을 존중하고 이념이나 논리, 개념을 앞세우기보다는 재료와 자신이 만나 불가피하게 이루는 것을 용인해내고자 한다. 작업들은 암시적이며 지워진 듯, 미완성인 듯 혹은 인공과 자연의 경계가 지워진 상황에서 지극히 자연스러운 미감으로 가득하다. 모든 작업은 흙 자체가 지닌(혹은 흙의 느낌으로 가득한 맛) 소박하고 무심하게 주무르고 구워낸 흔적을 지문처럼 지녔다. 흙과 흙 이외의 물질을 다룬 입체나 부조, 평면작업 모두가 회화적인 분위기와 오래된 흔적을 두텁게 지니고 있다. 표면의 균열과 탈색되거나 희박한 색채로 인한 색감이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드리워준다. 무심한 제스처와 자연 그대로의 물성을 끌어내면서 수수께끼 같은 형상과 표정, 신비스러운 색채 역시 가득 안겨주고 있다. 흡사 오래된 흙벽에 난 알 수 없는 스크래치나 부분적으로 박락된 벽면의 느낌이 나기도 하고 성스러운 분위기도 풍겨 나온다.
특별한 목적이 배제된 상태에서 자신의 마음속에 간직한 상, 원형 같은 이미지를 반복해서 호출해내고 이를 자연스럽고 무심하게 빚고 불에 굽거나 표면 처리를 해서 가능한 한 오랜 시간, 낡고 퇴락하고 박락된 느낌으로 응고시킨 이미지, 물질들이다. 그것은 수백 년, 수천 년 땅속에 있다. 이제 갓 나와 핼쑥해진 얼굴로 우리를 맞이한다. 자신의 생애를 이루었던 시간의 결과 자기 몸이 기억해내는 모든 것을 호명해 이를 흙과 불로 이겨 만든 것들이다. 개별적인 형상들, 흙으로 구워낸 오브제들은 마치 특정 텍스트의 행간을 암시하는 낱말이나 부호들처럼 전시장 공간에 흩어져 있다. 먼지를 잔뜩 뒤집어쓰거나 화산재를 맞거나 깊은 지층 속에 박혀있던 것들이 출토되어 햇살 아래 파리하게 자신의 몸을 드러내는 장면이고 특정한 성소에서 나름의 기능을 했던 이미지들이 이제는 사라져버린 옛 공간을 추억하며 졸고 있는 듯 하다. 작가는 “얼마나 많은 내가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는 많은 사람들의 삶이 쌓여있는 것인지” 그리고 “그날의 심상心象에 따라 흙속에 그려지는 이미지다. 그 잔상이 사라지기 전에 흙 위에 손가락으로 형태를 그리고 나무칼로 흙을 잘라낸다. 수수께끼 가득한, 나도 알 수 없는 눈빛들,,.어설프고 모호한 상, 전혀 새로울 것도 없는 재료와 기법이지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들을 불러올 수 있다면…” 이라고 말한다.
박미화의 작업은 지워지고 희박해진, 문드러지고 떨어져나가고 뭉개진 얼굴과 몸체로 이루어졌다.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의 힘과 아득한 사연과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그 존재의 생애를 다만 희뿌옇게 어른거리게 해준다. 그것들은 더 이상 이 세상 것이 아닌 듯하다. 소멸과 부재의 자리를 아련하게 추억하게 해준다. 따라서 그가 만든 이 희박해진 상, 불가해한 표면은 결정적인 볼거리를 망막에 안기는 상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심안으로 보아야 하는 상이고 희미하고 사라져버리기 직전의 추억의 이미지들이다. 무엇인가의 잔해이고 죽은 것들이고 망실된 것들이자 도저히 잡히지 않고 포착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그것은 흙이 섭씨 1,200도의 불을 맞은 자취이자 녹슬고 희미해지는 절묘한 색채를 피처럼, 녹처럼 뒤집어쓴 것이고 다시 흙으로 돌아가기 직전의 마지막 불꽃 같은 것들이기도 하다. 또한 시간의 입김 아래 허물어지는 벽면이자 사물의 피부들이다. 그 위에 얹힌 흔적, 상처는 주술적이며 신비스러운 영감으로 가득하다. 명시성과 구체성에서 한 발짝 물러난 얼굴이고 몸이다. 머지않아 사라질 얼굴이고 몸들이다. 겨우 끄집어낸 형상들이고 마지못해 드러난 잔해들이다. 기억과 추억 속에서, 상처 속에 나온 것들은 모두 슬프거나 외롭거나 아련하다. 암시적인 덩어리, 모호한 상을 통해 보는 이들은 상상력을 증폭하고 자신이 보고자 하는 부분을 겹쳐놓게 된다. 사실 미술에서 완성이란 개념은 무의미하다. 완성은 있을 수 없고 가능하지도 않다. 흙 자체를 무심하게 다루고 불에 구워내 인간의 손길이 깃든 인공의 것인지 혹은 돌이나 나무 둥치 그대로인지 구분이 안가는 지극히 무심한 작업들이다. 작가는 인간과 동물의 구분도 없고, 자연과 인공의 경계도 지우고 전통과 현대의 갈등도 없고 죽음과 삶의 가늠, 혹은 물질과 마음의 분리도 더 이상 무의미한, 완성과 미완성을 넘어 자리하는 영속성, 신비한 종교성, 유한한 생애를 초월하는, 아니 포월하는 수수께끼 같은 표정(아우라) 하나를 불멸로 새겨놓고자 한다. 그것이 모든 생명이 짓는 유일한 표정이자 진실과도 같이 다가온다. ●
박 미 화 Park Mihwa
1957년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응용미술과(공예전공)과 미국 필라델피아 University City Art League, 미국 템플대학교 타일러 미술대학원에서 도자조각을 졸업했다. 1989년 미국 필라델피아 펜로즈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12차례 개인전을 열었다. 2015년 4월 1일부터 24일까지 인사동 갤러리3에서 13번째 개인전이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