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Review] 김선형

블루수묵화, 감각으로 밀고 나가기

지천명의 나이를 갓 넘긴 작가의 51번째 개인전이라 하면 누구든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김선형의 푸르디푸른 화면을 직접 본다면 그의 “두서없는 이미지들은 작가의 변화무쌍한 심정의 전환에 따라 나타나는 심상”이라는 평가에 동의할 것이고, 그것이 왕성한 작품 제작의 바탕임을 수긍할 것이다. 김선형의 파란 정원에서 동양의 수묵과 서구 현대미술의 조우를 목도한다.

박영택  경기대 교수

김선형은 수묵 대신에 청색 안료와 미디엄을 구사해 단색조로 이루어진 그림을 그린다. 여전히 모필과 물의 농담에 의한 변화를 극대화해서 수묵의 맛을 유지하는데 먹 대신 쓰인 청색 안료는 청화백자 같은 그 푸르른 맛을 가득 껴안고 있다. <Garden Blue>이란 제목이 언급하듯 화면은 자연, 숲의 한 풍경을 연상시키는 이미지를 선사한다. 결국 그는 수묵화와 산수화, 서예(선) 등을 결합해내고 한편으로는 청화백자의 미감과 선비들의 문기(文氣) 짙은 취향과 격을 끌어안으면서 그러한 전통과의 깊은 교호나 공감을 지향하는 ‘현대적인’ 그림을 시도하고자 한다. 그런데 그는 이전 스승, 선배 작가들과는 다른 문화적 체험을 한 세대다. 그야말로 울트라모던, 포스트모던의 세례를 받은 감각의 소유자이다. 따라서 이 두 개의 층이 교접하고 엇갈리면서 표출되고 있다. 따라서 그것은 기이한 청색 수묵화이자 감각적인 수묵 추상작업이며 기의를 상실한 초서적인 추상에 가깝다. 이른바 한국의 전통미술 혹은 문화를 자기의 감각으로 번역하는 작업이다. 그것은 전통의 정신과 격을 존중하나 그 문화적 실체감은 부재한 상황에서 빚어지는 불가피한, 감각적으로 근접하는 전통문화의 오마주에 해당한다.
한국의 근현대미술은 예외 없이 ‘현대와 전통’ 사이에서 끊임없이 현재적 정체성의 의미를 모색해왔다. 이는 현재적 자기정체성에 대한 전통적 환원이라는 방법론에 기초해 이루어져왔다. 그러나 여기에는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의 만남과 결합을 매끄럽게 파악하고 있다는 단점이 자리한다. 과연 그러한 만남과 조화는 가능할까? 사실 ‘전통’이란 현재의 관점에서 해석되고 평가된 과거(전통이란 현재의 산물)이기에 전통과 현재가 만난다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다. 전통이란 것이 정신이나 영혼, 민족성 같은 허깨비가 아니라 박물관, 교육제도, 평가, 역사기술의 제도 등의 ‘물리적이고 현실적인 제도에 의해서 유지’되고 있음을 상기해보면 현재라는 시간을 메우고 있는 그 제도들 밖에서 전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알다시피 전통이란 보존되고 전승된 어떤 것이 아니라 고안된 어떤 것이다. 그러니까 전통이란 이 시대의 여러 가치관 중 하나일 뿐이며 그것은 현재가 과거에 대해 덧씌운 프레임이다. 과거는 전적으로 현재의 산물이란 얘기다. 따라서 문제는 현재의 관점에서 그 전통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이해하느냐이다. 그간 우리의 동양화는 전통과 서구에서 받아들인 현대미술 사이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도모해야 하는 운명을 외면하기 어려웠다고 본다. 그 사이에서 모종의 틈과 가능성, 균열을 모색했던 것이 오늘날 한국 현대미술의 초상일 것이다. 김선형의 그림 역시 전통과 현대의 연결, 접목과 해석이란 과제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해 보인다. 그리고 그는 조선 문인들의 멋과 격을 동경하고 고미술에 담긴 절묘함과 소박미도 헤아리고 있다. 동시에 수묵화의 당위성에 타피에스나 황창배, 나아가 동시대 미술의 다양한 경향과 스타일을 두루 체득하면서 이 모두를 결합해낸 자신만의 회화를 만들고자 한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게 <Garden Blue>이다. 내 생각에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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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기(文氣) 흐르는 추상의 시도
그래서 그는 자연/숲(생명)을 소재로 그린다. 청화백자의 꽃문양이나 민화를 차용한다. 그 기운을 어떻게 동양화의 전통적인 재료체험과 물성을 통해 드러낼 것인지를 고민한다. 한지와 천, 안료와 물, 붓의 사용은 당연하지만 검정의 먹 대신 감각적인 블루 색을 대신했다. 여기에는 문인화적 멋과 운치, 그리고 한국적인 그림, 전통에 대한 고민이 묻어있다. <Garden Blue>의 경우, 유기체로서의 자연이 지닌 생명력과 기운을 푸른 색감과 자유로운 필획으로 표현하고자 하는데 그것은 구체적인 숲을 그린 것이 아니라, 숲으로 대변되는 존재를 개념적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숲을 보고 그린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속에 떠오르는 숲, 그 숲의 이미지를 그렸다. 그가 궁극적으로 추구한 것은 자연을 통해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정신적 흐름인데 이는 자기의 뜻을 자연물에 의탁하는 문인화적 전통의 연장선상에 있다. 또한 형태와 닮음을 구하지 않고 생동하는 기운을 찾는다. 만물은 영기(靈氣)의 화신이므로, 만물이 영기를 발산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느냐는 화가의 몫이다.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그는 자신만의 필법, 골법을 만든다.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론은 다음과 같다. 그는 아크릴, 안료와 석채, 미디엄을 섞고 이를 물과 함께 해 인위적으로 마름을 조절한다. 선묘처리를 한 바탕 위에 스프레이로 물을 뿌린 뒤 촉촉한 상태에서 스퀴즈로 물기를 밀어내는 방법 등을 구사하는데 이때 물이 밀려나가면서 다른 부분과 접촉점을 갖게 되고 결과적으로는 전체적으로 비슷한 톤을 유지하게 된다. 김선형은 동양화의 수묵화를 이루는 재료들, 매재적 속성을 최대한 순리에 따라 화면 위에 얹혀놓았다. 자연에 따른다는 것은 순리와 이치에 따르는 것이다. 동양화는 침윤하기 쉬운 먹과 색을 부드러운 모필을 먹여서 침윤하기 좋은 종이 위에다 그리는 것이므로 지극히 우연적인 수법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인위로, 작위로 이루어지기 어렵다. 우연히 가져오는 기법을 필연으로 이용해서 그리는 게 동양화 수법의 전통이다. 그림 역시 인위적이며 작위적인 것이 아니라 무위적인 것이다. 그는 한지의 물성에 꾸준한 관심을 보여왔다. 한지는 무엇보다도 그 흡수성 때문에 평면에서도 깊이와 부피를 포용하는 신축성 있는 재료이다. 먹이 번진 한지는 2차원도 3차원도 아닌 이를테면 소수 차원의 프랙탈 공간이며 생성하고 변화하는 차원을 보여준다. 이는 무척 동양적인 세계관, 우주관을 가시화한다. 물의 순리를 따르지 않으면 그림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동양의 먹그림이란 결국 물의 흔적, 자취, 경로, 흐름 등을 보여주는 것들이다. 수묵은 필법에 묵법으로, 궁극적으로는 수법(물의 법칙)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다.
몇 가지 안료를 섞어 만든 푸른색의 물감을 장봉에 묻혀 한지 위로 직입하는 그의 작업은 붓을 대는 장력과 화선지의 반발, 그리고 물감의 물성이 순간적인 필획으로 만나 묶여버리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붓 자체, 선이나 색, 물, 종이의 물성을 만나는 일”(강선학)이다. 무엇보다도 화면은 필획의 흔적들로 이루어졌다. 가장 기본적인 그리기, 붓의 놀림으로 화면을 가득 채운다. 이 자동기술적인 선은 직관적으로 나아간다. 그는 대충 생각하고 곧바로 그림을 그려나간다고 한다. “그의 두서없는 이미지들은 작가의 변화무쌍한 심정의 전환에 따라 나타나는 심상”(김백균)이라는 얘기인데 그러나 장식적인 선, 몇  가지 도상이 반복해서 출몰한다. 거의 본능적이고 직관적인 붓놀림의 흔적이고 그것으로 충족한 화면이면서도 유사한 패턴들로 마감되는 장식이 있다. 어떤 것을 그리고 나타내려고 한 것이기보다 순수한 선과 점의 자동적인 기술의 흔적에 불과한 듯 보인다. 그러나 그 선들은 나무와 풀, 꽃과 새, 그리고 상징적인 도상의 꼴을 암시한다. 그래서 그의 붓질은 구상과 추상 사이, 선과 도상 사이에서 진동한다. 붓질, 붓의 놀림들만이 전면적으로 화면에 가득하다. 그것은 전적으로 필력에 의존한 것이다. 가장 근원적인 그 붓질, 선은 무척 골법적이다. 골법이란 형체의 기본형 및 그 형체 안에 갖추고 있는 감정을 뜻한다. 그런데 형체의 근원이자 형체를 지탱하는 것은 결국 기(氣)다. 이 붓질은 자연풍경을 암시하는 듯하면서도 기의 표출이고 흔적이 된다. 한편 붓질이란 다름 아닌 작가의 신체적 행위의 기록인 셈이다. 붓을 통해 자기 자신의 신체의 굴곡과 이동, 움직임, 호흡, 떨림 같은 것들을 보여준다. 그는 수묵화의 뼈대인 필을 통해 수묵의 정신을 육화해내는 조형적 실험을 전개하고 있으며 이 같은 작업을 통해 서구 현대미술을 동양화 재료와 정신으로 접목하고자 한다.
화면은 온통 푸른색으로 가득하다. 종이 안에서 이루어지는 물과 먹/청색 안료의 운용만이 보일 뿐이다. 여기서 청색의 의미는 아침이 시작될 때의 푸르름으로 여명, 시종의 상징적 색이자 윤회의 색이다. 그리고 어둠과 밤 사이에 있는 색, 공기의 색이기도 하다. 더불어 청색물감은 먹보다는 물성이 적극적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그청색은 청화백자의 푸른 빛깔을 연상시킨다. 맑고 청아하다.
“슬픔과 희망의 빛을 함축한 푸른색의 선을 긋고 점을 찍어 나가는 나의 그리기는 내 안의 모든 감정으로부터 나를 정리하는 동시에 나를 정화한다. 기쁨을 채우고 묵은 슬픔을 지워나가며 내 삶을 그려낸다…. 내게 있어서 시공의 경계적이고 인생의 시작이며 끝점의 색…. 생멸 자연의 근본색이며 인간 삶의 운용을 다스리는 기운의 색이다”(작가노트)
김선형은 이른바 문기에서 나오는 추상을 시도하고자 한다. 이는 동양화가 현대회화로 나갈 수 있는 방법이란 인식 아래 가능하다. 그러한 인식은 해방 이후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고암이나 산정, 남천 등이 그러한 길을 걸어왔다고 여겨진다. 이처럼 그는 한국적인 정서, 한국인으로서의 그림을 의식적으로 추구한다. 동양화가 해낼 수 있는 여러 가능성과 매력, 의미를 열어놓고자 한다. 특히나 조선이 가졌던 문인의 소박하고 담백하며 격이 있던 미감, 우아하고 점잖은 문화를 추구하는 그는 문인적 모습을 동경하며 긋고 찍고 툭툭 던지듯이 그린다. 김선형의 그림은 문인화에서 볼 수 있는 고도의 간결과 절제의 정신적인 격조를 띤 것, 선묘 자체가 생동하는 기능을 지닌 그림의 동경으로 보인다. 동양화 고유의 표현기법을 회복시키면서도 그것을 자신의 ‘감각’으로 밀고 나가고자 한다. 문제는 그 감각이 얼마만큼 지속적이며 정체되지 않고 밀고 나가 줄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아울러 문기 있는 그림의 실현이란 과연 어떤 것이냐 하는 점도 문제다. 심정적인 공감이나 코스튬으로는 가능하지 않을 텐데, 더구나 지금 우리는 그 문화로부터 너무 멀리 벗어나 있기에 어떠한 체득이 가능할지는 무척 곤혹스러운 문제다. 그것을 감각으로 내포하기에는 어림없는 일이기에 그렇다.●

김선형은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홍익대 동양화과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88년 첫 개인전을 시작하여 국내외에서 51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또한 다수의 기획전과 그룹전에 참여했다. 현재 국립경인교대 미술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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